옷을 버리다 보니 대형 가방이 17개나 필요했던 나.
와! 17개!
오늘 큰 마음먹고 옷 정리를 시작했다. 정말 못 버리는 성격인데 과감하게 버렸다. 다시 빠져버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몇 편을 보고는 장갑을 꼈다. 모든 옷장과 서랍을 열었다. 그러다 보니 그 큰 이마트 장바구니와 그것에 준하는 크기의 가방들이 17개나 필요했다. 분명, 좀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다.
이미 옷들을 몇 차례 내다 버린 적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대대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다. 존재도 까맣게 잊고 있던 옷들이 수두룩했다. 이제껏 나가기 전에 옷이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시간을 많이도 버렸다. 그때마다 그런 내가 싫었다.
난 세부적인 일을 하거나 정리를 하는데 아주 그냥 젬병이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소수에 해당하는 정리의 신이 아니고서야 모두에게 정리정돈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타고나기를 더욱 어렵게 타고난 셈이다.
어마무시한 양의 옷을 사들였던 이유
대학교 1학년 때 나의 별명은 ‘샤방이(;;)’였다. 그만큼 꾸미는 데 열을 올렸다. 수능을 마치자마자 옷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캠퍼스를 활보하는 예쁜 여대생’이라는 상을 충족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색깔별로 카디건을, 굽 별로 하이힐을 사들였다. 뿐만 아니라, 길이와 무늬 별로 치마를, 포인트를 줄만한 목걸이, 귀걸이들을 사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쇼핑 횟수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4학년 때 나의 쇼핑 욕구는 다시 부활하고야 말았다. 4학년 1학기 때, 태국으로 교환학생을 갔기 때문이다. 태국은 1년 내내 여름이기에 굉장히 독특한 여름옷이 많았다. 게다가 물가까지 저렴하다.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놀러 나갈 기회가 많았다. 그랬기에 또 대학 새내기 때처럼 패션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만큼 사보아서 그런지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물욕이 없어졌다. 스물다섯부터 이어진 그 현상은 매우 다행히도 지금까지 이어졌다. 다만, 전통 의상에 대한 쇼핑 욕구는 아직 버리질 못했다. 명품에 대한 소유욕은 하나도 없는데 전통 의상 욕심은 많다.
여행을 가면 미얀마에선 ‘론지’를, 네팔에선 ‘사리’나 ‘꾸르따’를 사는데 눈이 멀어 버린다. 워낙 마음을 끄는 디자인이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연습이 필요하다.
물건이 주연이고 내가 조연이던 삶에 이제 작별을
중학생 시절 동대문에서 샀던 옷까지 몽땅 버렸다. 반성을 많이 했다.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고 여태까지 미뤘던 나를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 많은 옷을 다 헤집을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정리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을 만났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매일이 주말인 것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옷만큼 나의 찌꺼기도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물건이 많다 보면 내가 집에 사는 것인지, 물건이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들 하는데 내가 딱 그랬다. 다시는 집 안에 괴물을 만들고 싶지 않다. 정리하는 데 내 소중한 시간과 주의력을 뺏기고 싶지 않다.
한 달 넘게 매일 글을 쓰며 감추고 싶었던 나의 방을 하나하나 공개했다. 느껴졌던 건 진정한 의미의 자유였다. 오늘 그 많은 옷을 가방 안에 차곡차곡 담으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주 오랜 시간 나를 꽁꽁 묶어왔던 녹슨 동아줄로부터 가까스로 해방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옷이라는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내일은 보다 자잘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지만 내공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도 이전의 나에게는 단호하게 이별 선언을 내리고자 한다.
다가오는 금요일에 업체에서 우리 집에 옷 수거를 하러 올 것이다. 웬만큼 비워내긴 했는데 아직 3일이 더 남아있다. 버릴 옷이 무엇인지 살피고 또 살펴야겠다. 나의 생활을 더욱 깔끔하게 만들고, 옷장에 옷 대신 나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보관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니멀리스트 옷장을 만들기 위한 10가지 방법
‘미니멀리스트 되기’라는 사이트에서 미니멀리스트 옷장을 만들기 위한 방법 10가지를 조사해 보았다. 출처는 여기다.
1. 옷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2. 적은 옷을 입자. 대부분 좋아하는 색깔은 한정되어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몇 가지 색깔만 잘 활용하자.
나의 의견 : 퍼스널 컬러 진단이 도움이 많이 된다. 보기에는 예뻐 보여도 막상 내 얼굴 위에 올리면 매우 칙칙해 보일뿐더러 팔자주름 같은 흠도 부각되는 색깔이 있다. 반대로 더욱 생기 있는 나로 보이게 하는 색깔도 있다. 그러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3.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자.
수영복 한 벌, 한 쌍의 검정 운동화, 핸드백 한 개 등 직업·기후·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하나의 아이템만 가져보자.
4. 기부하고, 팔고, 재활용하고, 버리자.
얼마나 많은 옷들을 버릴 수 있는지 놀랄 것이다. 일단 탄력이 붙으면 쉬워진다.
5. 기부하고, 팔고, 또 버리자.
계속 버려야 한다.
6. 쇼핑을 중단해보자.
쇼핑은 대부분 그저 습관일 뿐이다. 구매와 버리는 사이클을 부수기 위해서는 한동안 사지 말아야 한다. 어렵다면 90일부터 시도해 보자. 점점 옷과 상점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될 것이다.
7. 한 달간 지출 한도를 정하자.
8. 양보다 질을 선택해 구매하자.
9. 세일 가판대를 외면하자.
10. 옷이 아닌, 나만의 캐릭터로 무장하자. 감동시키자.
내가 생각할 때 이게 가장 중요하다!
이제 정리하면서 살기로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과 정리 정돈에 매우 취약한 나. 그러한 나를 완전히 갈아엎으려 하고 있다. 천성을 이겨내는 무적은 ‘습관’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말이다. 그 습관을 기르고자 30일 매일 글쓰기 과제를 완수했다. 이 일은 나에 대한 신뢰를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
공부할 때도 성취감을 느끼는 계기 하나가 중요하다. 그와 비슷하다. 나는 나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믿기 시작했다. 금융 신용도가 상승하듯, 나에 대한 나의 신뢰도가 상승했다. 카드 대금일을 때때로 못 맞추던 이전의 내가 금융 신용도를 떨어뜨렸다면, 최근에는 날짜를 딱딱 맞추어 결제를 하는 나를 보는 기분이랄까.
밖을 자유롭게 떠돌며 홀로 하는 도전은 이제까지 잘해 왔다. 스쿠버 다이빙, 자전거 라이딩, 전통 무술, 묵언 명상 등을 세계 곳곳에서 해왔다. 하지만 정작 나의 근본을 이루는 일상 안에서의 도전을 어려워했다.
매일 일정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과제를 내게 줄 것이다. 옷 대신 미소를 걸치자. 물품이 아니어도 충분히 빛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옷이 아닌, 나만의 캐릭터로.
원문: 달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