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6공화국 최초의 과반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당선인 축하한다. 어려운 시기가 될 거라는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정말 나라를 잘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결과에 승복하라느니 같이 하나되어 열심히 하자느니 하는 말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결과에 승복? 누가 결과에 승복 안하는 사람이 있나. 대의민주주의가 ‘이 마을 유일의 게임’이고 룰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박근혜를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인정할 것이고 또 인정해야 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당선인의 아버지처럼 군대를 이끌고 정부를 전복할 세력은 현재 대한민국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귀찮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전쟁이 아니고, 승부에서 졌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한 명 뽑았다고 해서 반대 의견이 묵살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러한 언론 통제의 문제는 앞으로 출범할 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하나가 되자는 말은 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애초부터 어긋나는 말이다. 앞으로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전 때와 비교도 안되는 비판과 질책을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견뎌야 할 무게일 것이다.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대선을 복기해 보자. 투표율 75.8%인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15,773,128표를, 문재인 후보는 14,692,632표를 얻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다. 50대 이상 유권자가 20-30대 유권자보다 많아졌다는 인구공학적인 분석, 민주당의 전략 문제, 젊은 세대의 보수화 문제 등등.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문재인 후보의 표가 역대 어느 대통령이 얻은 표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표를 얻고도 졌다는 것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어반복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투표율이 높으면 이긴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번 대선에 임했다. 그러나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은 민주화 이후 야권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표를 얻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친구의 말처럼, 구 YS계와 구 DJ계가 뭉쳤음에도 패배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87년체제의 종식을 의미하며 앞으로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그 원인이 세대 간 갈등이 되었든 지역주의가 되었든 간에, 야권은 민심분석에 실패했다. 과반의 국민들은 논리적이고 침착한 인권변호사 보다 비극의 주인공으로 온화한 미소를 띠고 웃는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존의 야권 지지자, 즉 SNS에서 열성적인 활동을 하면서 이른바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선민의식으로 기존의 대다수를 대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과반은 아니라는 점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며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이들을 주 지지층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결과는 이번 대선이다.
온라인의 타임라인은 각자 스스로가 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타임라인은 딱 그만큼의 현실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구성원이지만, 거기에는 가사일에 매달리다가 장을 보러 가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떤 뒤 돌아와 티비를 시청하고 잠드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직장 동료와 한 잔 하면서 부동산 걱정 사교육 걱정 하는 아버지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폐지를 줍고 탑골공원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싸가지 있게’ 품어낼 것인가. 이 부분에서 민주당은 한 방향에서 새누리당에게,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는 NL에게도 뒤쳐져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짚을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중도-보수’의 현상이다. 안철수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기존의 한국 정당이 놓치고 있는 중간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새누리당도 싫다, 그러나 민주당은 더 싫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이러한 표심에 작동하는 기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고 싶은 것은 대북정책이다. 민주당은 역사의 상처에 근거해 대북정책을 끌어 왔다. 이제 이러한 화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빨갱이라고 몰아붙인 보수세력 뿐만 아니라, 북한을 도저히 같은 민족으로 생각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반감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북한을 과연 어떠한 대상으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은 현재 통일에 찬성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중도-보수’ 문제를 이어서 생각해 본다. 대선 전에 썼던 내 글(http://ppss.kr/?p=1780)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quote style=”1″]대선을 앞둔 한국의 두 정당 역시 앞으로 선택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현 상황을 보면 아직 양대정당의 공백이 존재하며 안철수 현상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새누리당은 이른바 ‘좌클릭’으로 정당정치 시장의 중간지점을 확보하려 했고 민주당 역시 왼쪽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생겨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당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중도-보수는 김빠진 맥주와 김빠진 콜라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부당한 선택 앞에 놓여 있다. 양당제화가 심화되면 이러한 ‘빈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적인 예상으로 이번 대선이 새누리당의 패배로 끝난다면 이들은 ‘좌클릭’이 아니라 보수적인 색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선에서 필요한 것은 이념에 기반한 대립이 아니라 중간지점의 확보, 달리 말하면 안철수 현상의 정당화(adopting in party politics)이다. 이 문제는 대선이 끝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선의 준비기간이 시작된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quote]
대선이 끝난 후 하나 달라진 것은 이번 대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내외 환경을 고려했을 때(세계적인 경제침체, 중국의 성장 감속, 북한의 리스크, 가계부채, 일자리 문제 등)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처럼 강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은 내세운 공약의 최소한을 지킬 것이고, 그것은 새누리당의 위치를 어느 정도 왼쪽으로 옮겨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각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1번에 투표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흔쾌히 박근혜를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김빠진 맥주와 김빠진 콜라’ 중에서 김빠진 맥주가 더 나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분석에는 내 주변의 경험과 직감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래도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대쪽’ 이미지의 보수 정치인 이회창은 지금까지 대선에서 993만표(15대, ’97), 1,144만표(16대, ’02), 355만표(17대, ’07)를 얻었다. 캡콜드(@capcold) 님의 이야기처럼 가장 가까운 17대 대선의 득표수를 비교해 보면, 보수의 총득표는 1,149만표(이명박)+355만표(이회창)으로 대략 1500만표가 된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얻은 표는 1,577만표. 지난 대선과 단순비교하면 70만표 정도가 박근혜에게 간 표이다.
나는 이 70만표의 의미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신 이회창을 지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박근혜를 찍었다고 본다. 이들이 ‘합리적인 보수’ 또는 ‘중도-보수’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안철수 현상과 기타 환경을 종합해 보면 이들이 원하는 몇 가지 요구조건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를 듣는 것에 실패했고 새누리당은 부전승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 생각나는 것만 열거한다면 앞에서 말한 대북 강경책, ‘남한’이 아닌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역사인식, 복지보다 성장에 중점을 둔 경제정책, 그리고 더 큰 범위에서 말하면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방향성 등일 것이다.
안철수 사퇴 이후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과, 안철수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박근혜를 마지못해 찍은 사람들. 이들이 이른바 ‘중도-보수’에 해당할 것이다. 정당정치 시장에서 ‘중도-보수’의 제품은 아직 시판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당이 안철수를 중심으로든 아니면 민주당 재창당을 통해서든 창당된다면 한국의 정당정치에는 좋은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1번을 찍은 사람들을 ‘생각없이 투표하는 사람들’로 비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민주당이 싫었을 뿐 새누리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의 정치적 지향에 비추었을 때’ 적당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젊은 세대의 보수화 경향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도 우려할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반대로 기존의 정당정치가 만족시키지 못한 지점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여기에서 말한 ‘중도-보수’를 포괄하는 정당이 생긴다면 우려되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에 새누리당이 품을 수 있었던 우파들의 분리 및 아스팔트 우익과의 결합이다. 일본의 젊은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히 젊은 세대들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등장하여 세를 규합하면 거기에 몰리게 되어 있다. 히틀러 역시 독일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음으로써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진보-좌파 진영에 대한 것이다. 이번 대선의 결과로 이들 진영은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되었다. 만약 앞서 이야기한 ‘중도-보수’ 세력이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것은 이들 진영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을 버리지 않은 채 공당(公黨)으로서 정당정치에 참여하려 한다면 생각을 바꾸는 편이 좋다. 특정 정당명을 거론하지는 않겠으나, ‘한반도’의 정치단체가 아닌 ‘대한민국’의 정치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않는 한 진보-좌파 진영에게도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빨갱이 사냥이나 마녀사냥이 아니다. 2000년대에 그들이 항상 들어왔던 말, 즉 ’80년대 마인드를 가지고 90년대의 수법으로 2000년대의 국민들을 상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결론을 짓자. 이번 대선의 결과 실망한 사람들은 너무 처져 있을 필요가 없다. 관료제와 상비군이라는 두 축으로 건설된 근대국가는,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쉽게 망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반대로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에 ‘행복실현 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람들도 너무 기뻐할 필요가 없다. 국내외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으며, 그 누가 집권하든 힘든 상황은 이어질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구상을 할 시기가 좀 더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결과를 보면서 하나 아쉬운 점은, 한윤형(@a_hriman)의 말대로 ‘왜 박정희는 딸내미 어린 시절에 책을 안 읽혔을까’이다. 그녀가 조금 더 내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처참한 심경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