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은 믿고 걸러라” “이런 친구는 가까이하지 마라” 같은 콘텐츠가 쉽게 눈에 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은 없기에 이런 제목을 보면 클릭하게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이렇게 다 걸러 버리면 대체 누구를 만나라는 건지 의문이 들고, 혹시 내가 피해야 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닐지 걱정도 된다.
일반적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이, 남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이타적인 사람이 ‘객관적으로’ 낫다. 그런데 개인 간의 관계로 설정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절대 가까이하면 안 되는 인간 유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10–20대 때 왜 그렇게 인간관계가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나와 맞는 사람을 알 수 없던 탓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 어떤 유형인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남았다.
어떤 사람을 사귀고 어떤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지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내가 사귀는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될 것이다. 현재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 3명을 합친 모습이 나 자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무의식 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인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친구를 보라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인간관계를 고민하기 전에 나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내가 자존감이 높은 편이기도 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을 꼬아서 듣는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이 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도 기분 나빠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사람들과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이다. 여기서 개인주의라는 말은 타인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자기 위주의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삶의 중심에 ‘나’를 두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주변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불편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처럼 내가 어떤 성향인지에 따라 나와 잘 맞는 사람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성향과 취향을 고려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상식‘이라는 잣대다. 여기서 상식은 ‘법’으로 해석했다. 도덕과 윤리 규범도 사실 상식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호하다고 느낄 수 있어 우선은 제외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최소한의 상식은 ‘범법자‘를 거르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성향과 취향이 맞는다는 이유로 이를 방관하면서 사람을 고쳐 쓰려하는데, 안 될 말이다.
범법자는 거른다는 상식만 지켜도 인간관계에서의 큰 상처는 피할 수 있다.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은 논외로 하여 나와 잘 맞는 사람 위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성찰은 괴롭고 또 외로운 작업이지만, 내가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성찰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오래가는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마치며
인간관계에서 배운 것들을 공유해보았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있으시거나, 저와 계속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요와 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일러스트도 계속 업로드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