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과 넥슨을 제주도로 옮긴 남자, 사회적 기업으로 3개의 로컬 푸드를 성공하기까지」에서 이어집니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고등학교까지 제주도에서 나오셨는데, 공부 잘해서 서울대 들어갈 때 어땠습니까?
김종현: 유학 온 기분이었어요. 서울이 주는 다양성도 있지만, 또 서울은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게다가 제주도는 섬인데다 인구도 워낙 적으니, 정말 유학 간 느낌에 가까웠어요. 제가 92학번인데, 대학교에서는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라고 혁신적인 모색을 하는 당시로서는 온건한 운동권 조직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조직은 이후 NGO, 진보정당 활동 등에도 영향을 많이 줬고, 민주당의 박주민 의원님도 같이 활동했습니다. 저는 95년도에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정책실에서 활동했어요.
리: 대학교 때는 계속 학생운동만 하신 거예요? 공부와는 담을 쌓고?
김종현: 네. 졸업하고서 다음에 입사했습니다. 학생운동 때부터 개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사회 전체와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기존의 학생운동은 집단으로 똘똘 뭉쳐서 거대 권력에 대항했다면, 저희 92학번, X세대들은 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졌잖아요. 집단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단 거예요.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소통을 인터넷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리: 그래서 그 꿈을 이루셨습니까?
김종현: 제가 다음에서 맡은 일은 검색 비즈니스였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다음이 튼튼하게 만들면, 인터넷 미디어의 발전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이를 자발적으로 이루더라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 카페 하나가 개설됐는데, 24시간 내에 몇십만 명이 가입하고 자발적, 조직적으로 활동했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촛불을 들고나왔죠. 인터넷과 미디어적인 변화들이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음을 느꼈죠.
파격적인 지원비 월 150만 원을 청년들에게 2년간 지원하는 이유
리: 다음, 넥슨에서 굵직한 일을 하시고 사회적 기업가로도 성공한 걸로 압니다. 제주더큰내일센터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김종현: 정부가 혁신 성장 막 얘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벤처 생태계는 정말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근데 정작 스타트업은 누가 하나요? 사람이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혁신적으로 일할 사람을 육성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청년들에게 2년간 월 150만 원씩을 지원하며 지역의 혁신 인력으로 육성하려는 게 우리 센터의 비전입니다.
리: 월 150만 원요? 이거 너무 퍼주기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종현: 비판은 분명히 있죠. 근데 저는 지금 혁신 성장을 하려면 사람을 키우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웃긴 게, 청년들이 놓인 갈등 상황이 참 불행해요. 기성세대는 혁신을 외치면서도, 정작 부모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을 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없어요. 부모 세대의 경험으로 안정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요즘 청년들이 원하는 게, 기성세대들이 했던 것처럼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사우디 가라면 사우디 가고, 그러면서 자식들을 위해 내 집 마련하는 게 아니에요.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가치 있는 일도 해보고 싶고, 라이프스타일도 지키고 싶어 하죠. 그런데 기성세대는 중소기업 안 가는 애들에게 헝그리정신이 없다고 일갈한다? 전 잘못됐다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청년층에게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적이 없으니까요.
리: 음… 우선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탐색하기 위한 시간이다…
김종현: 네. 전 근본적으로 청년세대가 자기가 가진 본래의 욕구를 찾을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지방대 다니며 알바하고 공무원 준비하고, 이런 삶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의미 없어져요. 저는 청년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면서 충분한 자기 경험을 통해 취업이 되거나 창업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면 당연히 기본 생활비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거죠.
리: 그러니까 이 센터에서 하는 교육의 의미는 “너 창업해”, 이것도 아닌 거죠?
김종현: 네, 기존 기업에 취업한 후,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창업해봤지만 다음과 넥슨에서 충분한 경험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창업은 매우 고도화된 작업이라서 섣불리 시키면 안 된다 생각합니다.
제주더큰내일센터의 대표가 된 이유? 청년 정책 해답은 ‘청년’이 안다
리: 제주의 청년을 위해 삶을 바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의 ‘내일’은 다음 날(tomorrow)란 뜻도 있고, 나의 일(my work)이란 뜻도 있습니다. 즉, 제주의 미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거냐, 또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거냐, 두 가지를 고민하죠.
일단 제주 얘기를 해 보면, 산업화 시대의 일자리는 주로 일자리는 공장이 만들었어요. 조선산업이 뜬다 하면, 정부, 대기업, 금융권이 막대한 돈을 들여 산업을 키우죠. 그리고 필요한 인력이 양성되어 공장으로 들어가죠. 그런데 탈산업화 시대에는 전환이 필요해요. 스웨덴의 말뫼라는 지역이 좋은 예인데, 여기 조선 사업이 한국에 밀려서 폭망해요.
리: 어찌 지금 한국과 겹칩니다?
김종현: 네. 그런데 실업률이 20%가 넘었던 말뫼가, 지금은 북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가 됐어요. 에너지, 환경, IT 스타트업이 잔뜩 들어서 있습니다.
말뫼 시장이 인터뷰에서 “어떤 산업이 미래 산업인지를 찾는 거는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잘 아는 사람은 있다. 청년들이다”라고 했더라고요.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청년들이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걸 지원하면, 미래산업은 자연스럽게 육성된다는 거죠. 그래서 시 재정이 최악인데도 탈탈 털어서 ‘말뫼대학’을 만들어요. 이 대학이 북유럽에 있는 혁신적인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서, 지금처럼 전환을 이뤄낸 거죠.
리: 엄청나네요;;; 리스크 꽤 클 것 같은데요.
김종현: 조선업이 망해 본 도시니까, 산업을 정하고 투자하는 방식의 리스크가 그 이상 클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죠. 또, 제조업이 성공하면 대량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반대로 구조조정이 오면 대량의 실업을 만들어내요. 우리나라도 비슷하잖아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탈산업적 관점에서 작지만 역동적인 흐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단 거죠. 제주도 마찬가지로 미래 일자리를 정의하고 행정이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그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인 청년층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리: 거참 행정에 불만이 많으시네요…
김종현: 제가 넥슨에 있을 때부터 청년단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도의 청년정책 위원회 자문을 맡게 됐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정작 청년정책에서 이해당사자인 청년들이 배제돼 있었어요. 청년들은 직접 정책도 제안하고 했는데, 정작 외부 용역기관이 다 진행해 버리는 거죠.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환경이 아니었어요. 속된 말로 들러리가 된 거죠.
리: 그래서 센터장님이 좀 변화를 끌어냈습니까?
김종현: 그러진 못했습니다. 위원회에 나가거나 자문을 할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하자, 주체적으로 플랜을 만들게 하자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설문조사로 대체되거나 했어요. 그래도 번번히 문제제기를 하니 원희룡 도지사님 눈에 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청년들의 관점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여겨졌는지, 센터장 자리까지 맡게 됐습니다.
위험한 창업을 독려하지 않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비즈니스 인재로
리: 그렇다면 센터에서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지요?
김종현: 저도 직장 생활을 오래 해왔습니다만, 모든 일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에요. 이를 위해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기획 능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IT 기업에 있었지만, 회사 옮기고 건물도 짓고, 투자도 하고, 레스토랑도 하고, 다양한 일을 했잖아요. 그런데 기존의 대학과 지원 시스템은 기획과 문제 해결을 가르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리: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김종현: 올해 첫 기수 100명을 선발해서 10월부터 교육 중입니다. 100명의 참여자한테 매주 제주의 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줘요. 제주도 감귤 사업의 고도화 방법을 찾아보라거나, 제주 향토기업의 SNS 마케팅을 기획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팀별로 원 프로젝트의 답을 가져옵니다. 그걸 가지고 창업이나 투자를 해보셨던 멘토님들이 미팅하며 피드백을 드리지요. 저도 모든 원 페이퍼에 관해 피드백을 드립니다.
리: 굉장히 빡세 보이는데요…
김종현: 네. 실제로 좋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들입니다. 매일 9 to 6로 출퇴근하듯 교육을 제공하지요. 그러면 변화가 눈에 보여요. 특히 대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게, 굉장히 자기 주도적으로 변합니다. 아직 우리 교육에서는 토론하거나 협업하는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앞에서 강의하는 걸 받아적는 것만 익숙한 교육시스템에서 커왔잖아요. 근데 여기는 계속 토론하고 자기주장을 펼치다 보니, 점점 자기 주도적으로 변하는 거죠. 사실상 해커톤을 매주 하는 셈입니다.
리: 와, 빡센데요… 그러면 6개월 과정을 마친 후에는 무엇을 하게 되나요?
김종현: 계속 세팅 중인데요, 일단은 6개월 동안 참여자들이 기업과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아주 새로운 사업을 많이 하는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 회사 1년 다녀도 기획할 일은 기껏해야 한두 번이죠. 그래서 6개월 정도 20개 과제를 스터디하면 기획에 있어서는 충분히 현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역량에 기반해서 기업과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자기만의 창업 아이템을 발전시키는 기회도 지원하게 됩니다.
리: 그렇게 보면 지원비 150만 원을 통해 제주도 로컬 기업에 이바지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김종현: 그렇습니다. 아직 창업할 준비까지는 안 돼 있는 분들은 로컬 기업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무 능력을 더하려 해요. 현장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에서 제주도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받는 거죠. 로컬 기업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영역이 많잖아요. 크라우드펀딩이나 SNS 마케팅 같은 건 생소한 영역이에요. 이런 프로젝트에 저희 친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원자분들이 더 성장하는 거고요.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퍼주기가 아닌 마음의 여유, 그리고 충분한 육성
리: 기존 창업지원과 제주더큰내일센터의 프로그램을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요?
김종현: 우리나라 창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엄청나게 잘 되어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서만 지원을 받는 창업 팀이 70개 정도 되거든요. 적게는 2,000–3,000만 원, 많게는 1억씩 주면서 지원해주는데, 몇 가지 단점이 있어요. 첫 번째는 준비된 팀이 별로 없어요. 그냥 페이퍼, 사업계획서 정도 보고 지원해주죠. 그다음에 사업개발비를 지원해주는데 창업자의 생활은 책임져주지 않아요.
저희는 반대예요. 사업비는 지원해주지 않지만, 창업자의 생활을 입소 후 2년간 지원해줘요. 그 기간 동안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 맞는 사람들이랑 팀 빌딩도 좀 하고, 어느 정도 준비됐다 싶으면 지원사업에 응모해서 사업개발비를 받으면 사업비와 생활비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지요.
리: 중복수혜까지 허용이 되나요? 특혜논란 이런 거 있을 것 같은데…
김종현: 물론 창업 좀비, 지원금 사냥꾼처럼 되는 건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 생각해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돈 주면 일 안 하고 엉뚱한 데 쓸 거야’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150만 원 준다고 오지 않아요. 자기 인생의 황금기 같은 1–2년인데, 편의점 알바만 해도 200만 원은 받습니다. 그들에게 150만 원이 목적일 순 없어요.
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만들 수 있는가, 청년들은 이런 데 관심이 많아요. 마찬가지로 창업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인 장치를 많이 만들어서 맘껏 뛰놀라고 해야, 훨씬 혁신적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청년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기존의 방식, 그러니까 사업 잘할 것 같은 애한테 돈을 지원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김종현: 꼭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희도 어차피 선발 과정을 거치는 거니까요. 저희도 보편적으로 모든 청년에게 150만 원을 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회가 허락하는 자원만큼은 최대한 청년들이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데 투입하게끔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리: 청년수당 얘기 많이 나오잖아요. 그냥 돈을 쥐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 자기를 발견하고 가꿀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건가요?
김종현: 저는 같이 가야 한다고 봐요. 첫 번째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죠. 기왕 지원할 거면 충분한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6개월 50만 원씩 300만 원 지원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혁신은 그런 심리적, 재정적 안정을 제공해 줄 때 가능합니다. 두 번째로 재정적 지원만 주면 알아서 해낼 거라 기대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충분히 자기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함께 제공해주려고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결국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 어떤 가치로 돌아올 것이다…
김종현: 네. 경제적 가치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자리일 수도 있고, 혁신적인 시도일 수도 있고, 사회적 가치일 수도 있고.
지역 내 청년에게 좌절감이 아닌 희망을 줘야 할 때
리: 청년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참 독특한데, 어쩌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셨나요?
김종현: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자아실현, 자기 성장, 타인을 돕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거든요.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상위 욕구에 반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욕구를 받쳐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자꾸 결혼 못 할 거야, 좋은 대학 못 가면 백수 될 거야, 이런 말만 하지 말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게끔 해 줘야 해요. 그러면서 높은 단계의 동기 부여를 해야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낮은 단계의 욕구로만 접근해요.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물질적인 동기 부여, 학점에 대한 동기 부여로 청년들을 컨트롤하려고 하죠. 복지 시스템이 됐든 저희 같은 교육훈련 수당이 됐든, 일단 청년들의 재정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으로 자기 성장을 해서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 줘야죠. 당연히 이를 위한 교육훈련 시스템도 함께 받쳐줘야 하겠고요.
리: 제주도 로컬 청년들이 겪는 문제점은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종현: 뭐 전국의 지역 사회에 있는 청년들이 다 비슷합니다. 기성 사회에서 큰 불안감만 불어넣고, 반면 새로운 방향의 동기 부여는 전혀 없죠. 이런 혼란스러움 때문에 회사에 가도 적응하기 힘들게 되어버려요. 근데 지역이라고 하면, 여기서 몇 가지가 더 있어요. 일단 지역에 남은 인재들은 기본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요.
리: 굉장히 위축되죠. 똑똑한 애들은 서울 다 간다 이런 생각이 있으니까.
김종현: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에 대한 위축감이 지역에 대한 위축감으로 연결돼요. 제주에 대한 자부심은커녕 패배감만 생기죠. 그런 심리상태로는 부모님 시키는 것만 해야 할 것 같고, 지역을 향한 자부심도 안 생겨요. 그래서 지역에서 뭘 하려 하지 않아요. 서울에 있는 직장에 가고 싶어 하는 욕구만이 남는 거죠.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참 슬퍼요.
리: 그렇게 보면 제주더큰내일센터의 지원책이 다른 지역에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은 사실 지원 안 해도 알아서 잘 살 거니까…
김종현: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참여자 중 25%의 인재는 제주도 밖에서 뽑았어요. 제주도에 관심 있거나 제주도에서 창업하고 싶거나 제주도에 살고 싶은 청년들을 유입시키려고 하거든요. 그게 왜 중요하냐면, 새로운 문화적 환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자극이 있고, 그것이 자기의 사고 지평을 넓히는 데 되게 도움이 돼요. 그런데 지역에 사는 청년들은 그게 없어요. 제주대학교에 입학하면 3주 만에 통성명이 끝나요. 다 중학교 동기, 고등학교 형. 이런 문화적 환경이라 새로운 자극이 없죠.
리: 반대로 외부에서 들어온 분들은 연착륙할 수 있는 거군요.
김종현: 그렇죠. 그래서 저는 지역 밖의 인재와 지역 내 인재들이 혁신적인 교육들을 통해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각 지역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와 서울뿐 아니라 모든 지역이 그렇게 연결돼야 서울에서도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니까요.
엘리트만 키우는 사회가 아닌 모든 청년이 성장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리: 한편 VC 쪽에서는 그냥 잘하는 창업자에게 지원금 몰아주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김종현: 저도 투자업을 해본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우사인 볼트처럼 달릴 수는 없잖아요. 10초대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배제하는 것도 잘못이죠.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잘 달리지 못하는 이들도 잘 달리게 해주는 시스템이 함께 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가진 혁신 역량의 평균을 향상하는 노력도 함께 필요합니다. 특히나 지역 전체의 역량을 생각하면 이런 지원은 더욱 중요합니다. 서울만 날고 지역이 버려지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리: 그렇네요, 야놀자나 배민 같은 IT 플랫폼이 잘 된다고, 제주 지역경제가 사는 건 아니죠.
김종현: 그렇죠. 반대로 혁신가들이 더 잘 되는 것도 지역의 역량이 받쳐줄 때 가능한 일이죠. 지역에 뛰어난 인재가 없다면 지역에서의 비즈니스 확장과 개선이 힘들잖아요. 몇몇의 혁신가를 키워내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각 지역의 혁신 역량이 얼마나 오르냐가 매우 중요할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수학 공부를 한다고 모두 수학자가 될 순 없지만, 고등학교 교육까지 성실하게 하면 웬만큼 미적분 풀 줄 알잖아요?
리: 뭐 지금은 미적분 없어졌습니다만…
김종현: 더큰내일센터는 다른 창업보육기관과 문제 정의 자체가 달랐어요. 다른 곳들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걸 창업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기존 기업의 성장에 좀 더 주목했습니다. 누구든 좋은 인재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잘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지역에 일자리를 잘 만드는 방법은 굳이 위험한 창업을 유도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 혁신을 끌어낼 인재를 키워, 지역 전체의 혁신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리: 돈을 뿌리기보다 사람을 키운다는 생각이군요.
김종현: 네, 그리고 개별적인 사람의 성장을 넘어 그 사람들이 연결된 커뮤니티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함께 새로운 성장과 시도를 도와주는 커뮤니티가 없이는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제가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이재웅 대표님, 김정주 회장님 등도 다 386세대의 IT 커뮤니티를 형성했잖아요. 그렇게 맨날 인터넷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사람들이 지금 IT의 토양을 닦은 거고요.
리: 생각해보니까 저는 서울에 있으니 창업자들끼리 쉽게 만나서 얘기하는데, 로컬에서는 다르겠군요.
김종현: 네. 그냥 지역에선 특이한 청년으로 보이겠죠. 얼마나 외롭겠어요. 지역에서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친구들은 왕따당하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지역에서의 혁신적인 시도를 서로 응원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인재를 키우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이게 바로 지역의 혁신역량이 올라가는 거라고 봅니다. 지금 지역에 혁신적인 기업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도전하는 분들이 없진 않아요. 사람을 키우고, 이런 분들과 함께 매칭시켜주는 쪽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리: 정말 그런 인재가 늘어나고 커뮤니티까지 형성되면 기업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겠군요.
김종현: 네. 저희가 3–4년 지나면 5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우리 교육을 이수하고, 그 역량을 바탕으로 제주에서 뭔가 할 겁니다.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익숙한 청년들이 제주도에 한 4-500명 된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커뮤니티로 연결되어 있다… 그때쯤이면 충분한 제주도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행이 가능한 혁신적 인재, 그들이 함께 일궈나가는 혁신적 기업,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의 구성. 이게 저희가 바라는 그림입니다.
리: 꼭 성공해서 전국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종현: 저 역시 제주더큰내일센터의 실험이 성공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를 간절하게 희망합니다. 좋은 혁신적 모델을 만드는데, 미약한 역량이지만 헌신하려고 합니다. 제주더큰내일센터를 만들면서, 다짐 한 가지를 했어요.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에요. 저는 청년세대가 지금의 기성세대보다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내리라 믿습니다. 제 삶이 아주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멋진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더 멋진 100명의 후배가 만드는 삶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 해당 기사는 제주더큰내일센터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