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퇴사를 앞둔 후배 K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글쓴이는 7년 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퇴사를 결심하는 분들의 고민이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잘 알기에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 후배 K에게, 그리고 퇴사에 관심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성해 보았다.
1. 자기 자신과 충분히 대화하기
퇴사를 결정하는 건 ‘나’다. 퇴사를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막상 왜 퇴사를 하고 싶은지,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이를 알아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왜 내 마음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가. 자신의 말도 들어줄 필요가 있다.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난감한 분들도 많다. 철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존재의 근본 질문을 하면 어색해진다. 퇴사를 앞두고 읽은 나카고시 히로시의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순 없을까?>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책에서는 천직을 찾는 질문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오늘 하루,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고 한다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 만일 오늘 밤 신이 나타나서 당신이 어떤 일을 하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습니까?
- 당신에게 질투의 불꽃이 가장 불타오를 때는 언제입니까?
좋은 질문들이지만,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글쓴이가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다.
-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의 능력
- 나에게 중요한 것(절대 침해받고 싶지 않은 가치)
- 내가 좋아하는 것
- 내가 싫어하는 것
- 내가 두려워하는 것
-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
-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
-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싶은지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퇴사 결정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는 한 번 적어볼 만하다. 이 글 다 읽고 뒤로 가기 버튼 누르면 까먹으실까 봐 파일로 만들어보았다. 한글 파일과 PDF 파일은 형식만 다르고 동일한 내용이다.
뒷면에는 마인드 맵을 그려도 좋다. 중앙에 ‘나’라고 크게 쓴 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지치기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글쓴이가 제시한 질문들 외에 더 창의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다. 위의 질문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의 능력은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업무 외적인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상담을 많이 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잘 찾아주는 것도 나의 능력이 될 수 있다. 통계를 잘 뽑는다, 글을 잘 쓴다, 남들 앞에서 떨지 않고 이야기한다 등도 여기에 적으면 된다. 다음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절대 침해받고 싶지 않은 가치)은 그 무엇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나만의 가치를 말한다. 글쓴이의 경우 ‘자율성’이라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적으면 된다. 퇴사를 앞두면 심리상태가 다소 불안정하여 싫어하는 것이 엄청 많아질 수 있는데, 사물보다는 사람 위주로, 구체적인 것보다는 추상적인 단어로 적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글쓴이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 ‘타인에게 고용된 상태’라고 적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처음에는 보통 ‘바퀴벌레’라고 적는데, 좀 더 생각해보면 ‘돈이 없는 상태’라든지,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 등 근본적인 마음이 나온다. 이 질문에서 퇴사 힌트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100가지도 넘게 적으실 수 있을 테지만, 이 질문의 취지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다른 길을 모색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데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둠으로써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고찰해보기 위한 질문이다.
그다음 질문인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많이 막힌다.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 너무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싶은지 정도로 적어보면 도움이 된다.
이 질문에서는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 적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다. 돈이 최고의 가치라면 부자가 되고 싶다고 쓸 수 있고, 공동체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고 쓸 수 있을 것이다.
2. 심리 상담 받기
이 난리를 치다 보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퇴사’라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기에 심리가 불안정해진다. 이럴 때는 가볍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다. 감기몸살이 나서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사람은 활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심리가 불안정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멘탈이 나간 상태에서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심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다. 상담은 병원(정신의학과)과 심리상담센터에서 받을 수 있다. 병원은 진료와 상담 모두 진행하고, 센터는 상담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신과에 방문하는 것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며 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 의사의 진단에 따라 심리상담 여부를 결정한다. 병원에서의 심리상담은 의사가 직접 진행하기도 하고, 병원 내에 상주하는 임상심리사에게 받을 수도 있다. 심리상담센터의 경우 방문의 문턱이 낮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내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방문하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비용 문제가 남는다. 정신과는 의료보험 처리를 하면 진료비가 몇천 원 수준이므로 비용 걱정은 덜어도 좋다. 상담의 경우 1회에 약 8만 원가량으로 다소 비싸지만, 4회 정도만 받아도 멘탈이 상쾌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추천한다.
글쓴이의 경우에도 퇴사를 앞두고 심리상담을 8회 진행했으며,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불안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상담을 받다 보면 단지 회사만이 우울의 원인이 아닐 수 있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급하게 퇴사하기보다는 의사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신적으로 안정되면 어려운 결정이 수월해진다.
3. 부모님과 대화하기
퇴사를 했다고 하면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10대도 아니고 30대 중반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창피하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님의 기대와 지원을 많이 받고 자란 세대다. 퇴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허락과 지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부모의 기대를 벗어나는 일에 내면의 두려움이 있다. 부모는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경우도 보았다. 나도 모르게 효녀, 효자에 강박이 생긴 탓이다. 이 부분에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부모님들이 회사를 못 그만두게 하는 이유는 자식을 믿지 못해서도 아니고, 회사가 좋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부모님들은 그저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신다. 그래서 눈앞에서 자식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어떤 일을 하면 성공하고, 어떤 일을 하면 실패하는지 부모 역시 알 수 없다. 단지, 취업 준비의 어려움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섣불리 퇴사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글쓴이는 평소에도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물론 대화를 많이 하는 만큼, 많이 싸우기도 한다. 부모님은 나를 향한 기대가 높은 편이고, 자녀를 독립적인 개체로 생각하기보다는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부모님과 대화했다. 부모님에게 퇴사 이슈를 꺼내는 것 자체로 엄청난 갈등이 발생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의 진로를 좀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찬성과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다. 설사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 없다. 결론이 ‘퇴사 반대’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뜻대로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4. ‘돈’에 관해 공부하기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의 답은 각자가 다 다르다. 퇴사한 사람이 알려줄 수 없는 문제다. 상황이 너무 다르다. 거주 지역, 거주 형태, 성별, 생활 습관, 소비 습관, 결혼 여부, 자녀 여부, 자차 소유 여부 등 비용을 산정하는 데 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보다 근본적인 ‘돈’ 공부가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해야 할 일 1, 2, 3은 모두 잊더라도 ‘돈’ 공부는 꼭 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다. 생존에 유리한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다.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이변이 없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본주의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돈에 스트레스받고 걱정하면서 돈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인문학적 소양도 높고 굉장히 똑똑한 친구인데 ‘금융맹’인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맹은 문맹이나 마찬가지다. 글쓴이는 20대 중반 경제지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입사 후 수습 기간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7시까지 회사로 복귀하면, 그때부터 한 명의 기자 선배가 3시간 동안 금융 강의를 해줬다.
외환 담당 기자에게서는 외환을, 채권 담당 기자에게서는 채권을, 증권 담당 기자에게서는 증권 과외를 받았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뒤돌아서면 까먹었다. 그래도 정식 기사를 쓰기 전이어서 기초적인 질문을 해도 혼나지 않았다. 이때 질문하며 배운 내용들이 있었기에 적어도 ‘금융맹’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금융에 관한 지식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은 후배 K와 같은 초심자를 대상으로 썼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금융 공부가 막연한 이유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주식, 외환, 부동산, 보험 같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부터 공부해 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글쓴이는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몇 년째 매일 듣는다. MBC 라디오인데 팟캐스트로 들으면 편리하다. 진행자인 이진우 기자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준다. 경제 전문가 중에서는 홍춘욱 이코노미스트와 박종훈 KBS 기자의 의견을 참고한다. 최근 이 두 분이 공저를 내서 신기했다. 이분들은 주로 거시 경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유튜브 채널도 즐겨 본다. 신사임당과 렘군의 채널을 좋아한다. 부동산 이야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추천을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융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고, 종종 사기꾼도 있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정보는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옳다.
‘돈’ 공부의 목적은 경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누구나 노력을 통해서 어느 정도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당신이 옳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있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퇴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으시거나, 저와 이야기 나누시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요와 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일러스트도 계속 업로드합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