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학 전공자인 글쓴이가 펭수 덕질을 하다가 사심으로 펭수 영상 분석을 하게 된 내용입니다.
펭-하!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대체 왜 이 나이에 펭수 영상을 보고 웃다 울다 하는 걸까. 주책이다. 그런데, 어라?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댓글을 보니 나이 인증이 이어진다.
“44살에 펭수에 빠져서 덕질 중이에요. 시간 날 때마다 유튭 들어가서 펭수 보며 울고 웃고 아주 쌩쇼 중입니다.”
“35세 직장인입니다. 애 없습니다. 펭수 마음으로 품었습니다. 사랑해요, 펭수.”
“펭수야 나는 10살인데 우리 엄마가 너를 엄청 좋아해.”
“타깃 시청 층이 어떻게 되나요. 32살인데 이거 보고 웃고 있어도 되나요.”
모든 상황을 정리해준 ‘베댓’은 이거다.
애들(이었던 것들) 보라고 만든 것.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냥 펭수 덕질할래.
펭수의 인기 요인에 관한 단편적인 분석이 넘쳐난다. 펭수가 ‘사이다’ 발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는 분석이 가장 많다. 펭수는 ‘갑’으로 간주하는 제작진에게 호통을 치고, “김명중” 사장님 이름을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현실 속 ‘강약약강’한 놈들에게 지친 우리에게 펭수는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주며 우리를 열광하게 한다.
맞는 말이다. 이외에도 펭수는 10살 답지 않은 올드한(?) 취향으로 세대를 아우르고, ‘자이언트’한 몸으로 엄청난 댄스를 선보이며, 요들송과 엣헴송을 무한 반복하여 듣게 하는 매력이 있다. 억눌렸던 포텐을 폭발시킨 EBS의 반전 매력이나, 박재영 전 매니저를 비롯한 제작진과의 찰떡 케미도 인기 요인이다. 무엇보다 그냥 귀엽다. 그저 펭수를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위로받고 치유된다.
하지만 이렇게 단편적으로 해석하기엔 펭수에게 좀 더 특별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대중문화 텍스트를 분석하는 작업을 해온 글쓴이는 펭수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지 궁금했다. 펭수에 ‘입덕’하자마자 유튜브 영상을 정주행한 뒤 생각했다. 우리는 어떻게 펭며들었나?
진짜 어린이 프로그램인가?: 프로그램의 개요와 장르
분석에 앞서 장르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튜브 댓글 창에는 진짜 어린이 프로그램이 맞느냐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EBS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자이언트 펭TV’의 장르는 ‘어린이’다. ‘자이언트 펭TV’를 기획한 이슬예나 PD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 PD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성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느라 EBS를 보지 않기에, 이에 위기감 때문에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밝은 모습만 보여주거나, 도덕적 교훈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는 인터뷰 내용에서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자 한 기획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어린이 프로그램의 학술적 정의는 명확하다. 방송위원회가 1993년 내놓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형분류기준에 관한 연구」에 보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유형 분류는 크게 내용별, 대상별, 기능별, 형식별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중 ‘대상별’ 분류에서 ‘자이언트 펭TV’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 어린이는 대개 4~5세 아동부터 초등학생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내용별’ 분류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자이언트 펭TV’는 내용별 유형분류에 있어 ‘교양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이다. EBS ‘자이언트 펭TV’ 공식 홈페이지 중 프로그램 소개 부분에 교양예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교양예능은 유익함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시작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인포테인먼트’라는 프로그램 장르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의 ‘비타민’과 ‘스펀지’처럼 건강 정보나 생활 정보를 오락적 내용과 함께 배치하면서 공익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았던 프로그램들이 바로 교양예능 장르다. 정보성이 강한 교양적 메시지에 오락적 요소를 가미해 더 재미있고 유익한 형태로 만들어 냈다고 해서 ‘탈장르’ 프로그램으로 각광받았다.
결국 ‘교양예능’은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탈장르’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고, 장르에서 탈피한 ‘자이언트 펭TV’는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정해진 한 장르로는 수준이 높아진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어렵고,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도 제작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장르를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르에서 자유로워진 ‘자이언트 펭TV’가 넓은 시청 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이유다.
펭수 EBS 오디션 영상 분석: 리얼리티 프로그램 장르 차용
‘자이언트 펭TV’는 에피소드마다 또 다른 새로운 장르를 차용하기도 한다. 펭수가 EBS에 와서 처음 오디션을 보는 영상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장르를 빌려왔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실제 인물과 상황을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전개될 것인가에 호기심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프로그램이 전형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펭수가 왜 EBS에 오디션을 보러 왔는지 모르는 상황을 가정한 채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실제 촬영의 무대가 되는 공간(EBS 방송국 사무실)에 여러 대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설치했다. 화면에 카메라와 음향 장비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비디오가 녹화된다는 ‘REC’ 마크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요소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보다 현장감을 높이고 현실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펭수가 오디션 중 요들송과 랩을 하는 부분에서 1차 시도에 실패하고 다시 진행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도 리얼리티 프로그램 장르를 차용한 것으로 보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의 실수나 NG 장면 등이 그대로 방송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요구되는 조작과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재연 방식은 재연 ‘과정’의 진실성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성을 구성한다. 가공된 상황일지라도 현실성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펭수에게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오디션 중 박재영 매니저가 오디션장으로 들어오는 장면도 재미 요소다. 펭수와 박재영 매니저 사이에서 촉발되는 대립 구조는 ‘자이언트 펭TV’를 극화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플롯으로 작용한다. 펭수의 오디션 영상은 구독자들이 이 둘의 ‘케미’를 알고 난 이후에 업로드되었다.
현실성과 현장감을 최대한 살린 장르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처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수용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프로그램의 등장인물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한다. 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삽입된 관계적 요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로그램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 활용된다.
오디션 에피소드의 서사 구조: 펭수 세계관 강화
펭수 EBS 오디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은 서사 구조를 따른다.
- 펭수 입장, 인사와 자기소개
- 제작진과의 대화
- 본격 오디션 시작(요들송)
- 박재영 매니저 등장과 퇴장
- 이어지는 오디션(랩, 춤)
- 결과 발표
서사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기호학적 분석 방법 중 통합체적 분석 방법에 속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흐름과 이야기의 전개를 분석하는 것에 해당한다. 통합체적 분석 방법을 사용해 제작진이 마련해놓은 특정한 서사구조를 파악하면 제작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그리고 프로그램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화 구조는 펭수와 제작진(심사위원) 간의 대화다. 이 대화의 구조가 극의 전개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오디션 에피소드에서는 펭수의 세계관이 스토리와 연결되어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전달한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을 말한다. 이야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틀로서, 사고와 감정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자신의 사고와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다양한 형식으로 발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펭수가 심사위원들과 상황을 공유함으로써 상호작용이 되는 것이다.
펭수는 한국에서 뽀로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남극에서부터 헤엄을 쳐서 한국의 EBS까지 온 펭귄이다. 펭수는 이 에피소드에서 직접 이 같은 사실을 말하기도 하고, 그동안 ‘자이언트 펭TV’의 다른 영상에서도 자주 언급된 내용이다. 다른 방송국에 출연한 분량에서, 혹은 언론 기사를 통해 언급된 부분도 있다. 이러한 부분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펭수의 ‘세계관’이 강화된다.
펭수는 또 이 에피소드에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동원해 자신의 세계관을 강화한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뜻하는 말로, 몸짓, 자세, 시선, 표정, 제스처, 의상 등이 이에 속한다. 펭수가 사용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머리에 조개와 미역을 달고 나타난 것이다.
오디션 도중 조개가 머리에서 떨어지는데, 이는 자신이 인천 앞바다로 표류하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의 장점을 보이고 매력을 표출하는 간접적 소통 수단으로 활용된다.
평가와 경쟁의 담론 전복: “지금 당장 선택해!”
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선택이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또한 호감의 표시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선택한 심사위원들 간에 합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처음에 펭귄이 등장한 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펭수가 요들송을 부르자 분위기가 반전된다. 3명의 심사위원들은 요들송이 끝나자 크게 호응하며 손뼉을 치고 “(와아아)”라는 자막이 달린다.
펭수가 오디션에 임하는 행위를 지켜보며 우리는 ‘평가’와 ‘경쟁’이라는 사회적 담론에 스며든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경쟁 요소와 평가에 관한 우리의 아주 오래된 무의식적 정신세계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반복해서 생산한다. 심사위원이 “회의를 해보고 결과를 나중에 알려드린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해버리기 직전, 펭수는 말을 끊어버리며 일갈한다.
여기서 하세요. 빨리해주셔야지 저도 KBS를 가든 MBC를 가든 해야 합니다앙. 하나 둘 셋!
영상의 이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펭수는 심사위원에게 소리치며 경쟁사회에서 평가받는 데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 그리고 펭수는 현재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기존의 가치들을 전복함으로써 새로운 담론을 구성해낸다.
마치며
매거진 ‘펭수의 미학’을 새로 발행합니다. 펭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구독해 주시고 저와 소통해주셔요. 펭수가 제 글을 볼 때까지 계속 씁니다. 오디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습니다. 에피소드 다 분석합니다. 성덕이 되고 싶습니다. 펭수가 제 글을 볼 수 있도록 공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아요와 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펭수 일러스트도 계속 그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