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명확함과 날카롭게 다듬어진 수익 모델, 그리고
지적자본론은 나에게 바이블이 되었다. 쓰타야 서점을 알게 된 후 제안하기라는 관점의 비즈니스에 대해 푹 빠져버렸기에, 이름도 우아한 지적자본론에 말 그대로 빠져버렸다. 도쿄에 가서 꼭 가야 할 곳, 가고 싶은 곳으로 쓰타야 서점을 꼽았고, 이를 위한 사업모델과 우리 사업의 적용 역시 다양하게 시도하고자 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지식이 축적된 비즈니스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실험적으로 서점이라는 것을 해보았는데, 시작은 매우 단순했다. 내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책을 파는 것. 서점은 말 그대로 책을 파는 거니, 어떠한 공간에 있더라도 책만 있으면 서점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이 온갖 망상을 끌어냈고, 사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할 것 같았다.
쓰타야 서점과 관련된 책과 기사는 빠짐없이 읽어보았다. 독립서점 관련 세미나도 가보고, 사람들도 만나 이야기도 나누어보았다. 대개 경험 있는 분들은 하지 말라는 편이지만, 조금이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책과 관계된 사람은 ‘요즘 독립서점 인기잖아’라는 한마디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내가 걸린 쓰타야 병은 ‘지식의 축적보다 이미지만 모방하는 사업적 태도’ 였다. 거기다 고객은 빠져있고 주체는 나 자신이었던 것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쓰타야 서점이라는 사업은 어떻게 적용되고 잘 만들어져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모델인데, 이를 거스르고 주제와 분수에 맞지 않는 모방으로 사업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설픈 모방과 따라 하기, 그리고 이에 대한 부족한 실행력은 한순간에 회사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고, 이를 극복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오를 다시금 반성하며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왜 잘되지 않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래도 요즘에도 틈만 나면 읽곤 하는데, 쓰타야 서점의 모델과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의 철학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지적자본론의 문제와 허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축적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추구하는, 보여주기식을 위한 모방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몽서점은 책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남들에게도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욕망에서 출발했다. 또한 책이란 콘텐츠의 원천소스는 분명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누구보다 원가 우위와 출판사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기대했다.
만나기 어려운 출판사와 관계자들을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접하고 친목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다는 생각과 당시 늘어나는 독립서점 열풍과 반짝이는 스타 작가나 인디 작가의 베스트셀러화 등으로 일어난 출판계의 새로운 기회도 기대했다. 그냥 서점을 하기에는 콘셉트가 뭔가 명확하지 않은 듯해, 잡지 전문 서점은 어떨까 해서 잡지만 전문으로 팔기로 했다. 독립잡지들이 무수히 많이 나오고, 너도 나도 잡지를 좋아하고 만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서점이란 비즈니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단순 물건을 떼와서 판매하는 것으로만 이해했던 중간 유통상으로서 역할을 잘 알지 못했다. 또한 물건을 갖다 두면 저절로 팔리겠지 했던 생각에 중간 유통상도 알아보고 계약하고 책을 들여왔던 그런 상황에서, 경험 없는 담당자의 예술적 마인드에 대한 후한 평가는 모든 것이 어긋날 징조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몽서점의 실패 이후 나의 사업과 가치관 모두 바뀌었다. 한국의 쓰타야를 표방한 자몽서점의 실패는 과연 나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겼나.
1. 시장 우선주의자가 되었다, 모든 것의 해답은 시장이었다
출판시장 규모와 서점의 숫자. 성장률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살펴봤다면 아마 시작조차 안 했을 거다. 물론 출판시장은 크고, 성장률도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책을 사서 읽는 비중과 특히 잡지를 읽는 사람들의 비중. 여기에 독립잡지를 읽을 확률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시장의 규모와 크기는 단순히 환상을 심어주는 숫자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거래 가능성과 성장 한계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함이다. 현실적으로는 실제 거래가 얼마나 일어날 수 있는지 즉 돈이 벌리는 산업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다. 그러나 내가 도전했던 서점업은 이러한 장밋빛에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매번 이야기했던 시간의 대체재가 무엇인지 빨리 깨달아야 하는데, 마냥 자신감과 무모함에 도전했다. 비즈니스의 성장과 가능성은 시장의 규모와 가능성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2. 준비 없는 모방, 분석 없는 타기팅, 활동 없는 브랜딩
쓰타야 병이라고 명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붙이고자 했던 그 마음과 열정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서점이라는 것을 오픈할 때 그 과정을 너무나 간과했다. 가볍고 쉽게 책만 가져다 놓으면 팔리겠지라는 마음으로 유통 지식도 경험도 크지 않은 상태에서 마진율과 원가절감 그리고 재고 처리, 비용 정산 등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몇백 원, 몇천 원 단위의 금액을 매달 입력하고 보내야 하는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몰랐다. 모르는 것도 죄다.
이러한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명확한 타기팅도 되지 않았다. 나의 고객이 누군지 우리는 찾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가져다 놓고, 있어 보이는 그런 잡지들로 채워놓으면 손님들이 저절로 찾아와 사 가겠지 생각을 했다. 유동성 높은 지역에 서점을 열면 그중 1%는 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마음도 있었다.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몽서점을 알 리가 없다.
우리의 세계에서나 알아주는 이름일 뿐이다. 또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에서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이름이다. 여기서 큰 착각이 있었다. 나의 팔로워, 페친, 인친 등의 숫자로 인해 나와 내 사업은 어디서나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겸손함을 유지하지만, 막상 서점을 시작할 때는 조바심과 막연함에 네트워크의 함정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세상은 넓고 아무도 우리를 모른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더 핵심을 찌르는 마케팅 활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브로슈어조차 돈아 낀다고 하지 않았다. 처절한 실패였다. 이러한 준비 없는 상태에서 따라 하기만 급급했다. 이름도 멋들어지게 자몽서점을 한자로 바꿔서 쓰타야 서점을 따라 했다. 산세리프체의 폰트 역시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해 고민했고, 굿즈 판매까지 염두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모두 다 망했다.
3. 안전장치 없는 맨땅 헤딩은 기업을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나는 현금 유동성 확보라고 생각한다. 이번 달에 들어올 돈 들어오고 나갈 돈 제대로 내보내고. 지금껏 콘텐츠 비즈니스만 했던 내 입장에서 새롭게 시작한 오프라인 비즈니스, 특히 유통 비즈니스는 너무나 신선했다.
제대로 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설렘과 그동안 공간 비즈니스를 경험해왔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현금 유동성을 고려해도 어느 정도 들어올 돈의 가능성만 있다면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업체의 솔깃한 제안도 너무나 감미로웠다. 성공하면 전국에 모두 지점 내자는 그 말.
게다가 가장 간과했던 건 바로 몰 공사였다. 몰 공사는 그간 해왔던 인테리어 공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원래 있던 장소에 가벽 세우고 바닥 깔고 조명 설치하면 끝날 줄 알았던 나는, 사전 작업계, 야간작업, 원상복구 계약 등의 과정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다. 더군다나 야간 인테리어 공사는 인건비가 따불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리 설계를 직접 했다고 해도, 디자인을 직접 했다 해도 이런 디테일한 걸 알지 못했다. 업체 선정도 첨부터 잘못되었다. 불안불안한 업체는 기어이 사고 치고 말았다. 원상복구에 비용이 예상보다 3–4배나 더 들어간 것이다. 처음 계획했던 예산에 비해 돈이 3배 정도 더 들어간 상황에선 멘털도 나가 있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첨부터 무조건 현금이다. 현금을 깔아 두고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보증금이 없어서 망정이지 기타 제품 매입과 운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상황이었다. 넉넉한 여유자금 없이 시작했고, 막연함으로 잘 될 상황만 고려해서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유동성 높은 영화관에 갑자기 등장한 서점이라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밀어붙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적자행진에 매달 나간 돈이 계속해서 불어났다. 속은 타는데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있어빌리티만으로 위안 삼는 셈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감출 수 없는 게 많다. 그때가 딱 그랬다. 그리고 깨달았다. 신시장 개척은 대기업에서, 자본이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거라는 것.
4. 오프라인 매장 성공은? 제품은 다다익선, 상품은 취향 저격
예전 기업의 역사를 읽었을 때 두산 창업주 박승직 회장께서 포목상을 하는데 옷감을 씨가 말라버리게 사들여서 명절에 내놓았고, 그해 옷감을 구해 옷을 지어야 하는데 구할 수 없던 찰나 박승직 상점에선 장안에 모든 옷감이 다 있다고 소문이나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몰려들었다는 글을 본 적 있었다.
사람들의 기호는 너무나 다양하고 선택의 폭은 넓기에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제품이 많아야 한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오프라인은 유독 이것이 심한데, 사람들은 고르는 즐거움, 살펴보는 재미,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자발적 입소문을 기대하기 위해 무조건 인테리어만 신경 쓴 것이 아닌 고객이 직접 와서 구매하고 골라보고 살펴보는 재미를 제공했어야 했다. 또한 콘셉트는 분명히, 상품은 타깃에게 맞는 취향 저격 제품을 내놓아야 했다.
처음에는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재고 부담과 인력의 한계로 인해 갈수록 추가로 제품 들여오거나 만들어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디언이 기우제 지내는 것처럼 언제 계약 종료되나… 생각만 하게 될 정도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한데 나의 제품은 다양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취향은 너무나 확고한데, 이를 저격하지 못했다.
5. 고정비보다 무서운 건 내일의 막연한 희망
사업을 하면서 가장 무서운 건 월급날이다. 그리고 의미 없이, 알 수 없이 빠져나가는 망각비용과 욱해서 지르는 X발비용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나가는 돈들이다. 지출 통제를 위해 지출 날 고정, 품의 및 절차 체계화, 무조건 PC 이체 등으로 운영했지만, 돌아온 건 구매와 지출이 되지 않아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욕뿐이었다.
몰 중에서도 가장 핫하디 핫한 용산 CGV 메인스트리트에 위치한 자몽서점은 파트너사라는 이유로 월 임대료를 깎아주었다고 하더라도 어마 무시하게 냈다. 메우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1/5 정도 매출 나온 것으로 위안 삼을 때도 있었다. 핑계와 비난의 대상을 찾았지만, 결국 책임은 내 가지니 아무 소용없었다.
이렇게 무서운 고정비보다 더 무서웠던 건 막연한 희망이었다. 누군가 희망을 남겨두는 것이 가장 큰 고문이라고 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업이 잘 안 될 때 내일은 잘될 거라며 분철 주야 움직이며 체력과 시간을 소진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일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버리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시간과 효율이라는 점을 배웠다. 희망을 위해 안 되는 일을 붙잡고 노력하고 움직이고 시간과 체력과 스트레스로 인한 직원 몰아세우기는 더욱더 구렁텅이로 빠트릴 뿐이었다.
6. 예술하는 직원, 대표병 걸린 대표는 최악의 조합
사업 초창기 광고대행사를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한 건 바로 예술과 밀접한 사람인가였다. 광고대행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적 결과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늘 채용 시 질문에는 음악, 미술, 무용, 작문 등의 활동이 빠지지 않았고,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 중심으로 채용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성과도 만들고 이들은 명랑한 타입이 많아 사무실 분위기도 늘 즐거웠다. 딴짓도 권장했고 아이디어를 위해 도서구입과 문화예술 비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사업모델이 바뀌고 창의보다 절차와 과정으로 결과 우선의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예술적 감각을 가진 직원들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보기 좋게, 만족할 만큼, 예쁘고, 아름답고 등 좋은 말투성이지만 이는 반대로 시간을 잡아먹고, 고객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에 집중하며, 결과 지향적인 태도보다 과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매사 지연되거나 느긋하기 일쑤였다.
적응하기도 힘들어했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경험이 없다 보니, 실제로 잘 만들고 예쁘면 팔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업의 정의가 바뀌니 사업모델에 적응하기가 여간해서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체질을 개선하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에 내 반성도 있다. 항상 조심한다고 했지만, 자몽서점을 하고, 멋들어진 인테리어에 아주 비싼 용산 CGV 내에 떡 하니 스튜디오와 서점을 오픈하고 나니 나 스스로가 너무나 감격스러웠었다. 가만히 있어도 잘될 것 같고, 대박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앞섰다. 그러다 보니 실제 사업모델을 만들고 돈을 버는 과정에 집중해야 함에도 계속해서 상대방의 물건만 입점하거나 제휴를 통해 사업을 해결하려고 했다. 오롯한 내 것이 없는 상태로 무의미한 시간이 지나갓다.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에 걸린 시간은 2달 정도인 듯하다. 결국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심했다.
7.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더 날카롭게, 가볍게, 명확하게
멋들어진 자몽서점을 조금 멀리서 떨어져서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한 건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몽서점을 통해서만 올 것으로 생각했다. 자몽서점을 통해 출판사와 연결되고, 콘텐츠를 확보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 원천으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자가 메인 모토였다.
새로운 기회는 위에 모든 것을 경험했기에 이제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2월과 3월을 겨우겨우 넘기고 나서야 객관화된 나 자신과 회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잘못된 판단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회사를 소개하면 사람들이 무슨 회사냐고 묻곤 했다. 설명해도 어려웠고,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고 반복된 회사 소개와 사업모델 설득에 지쳐서 검색해서 찾아보라는 말도 했다. 잘못된 행동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사업은 한 문장으로, 한 단어로 정리될 수 있어야 한다. 간결해야 한다. 어떠한 산업군에 속해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그래야 상호 이해하며 비즈니스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는 우리 회사를 스튜디오로만 알고, 어떤 회사는 우리를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회사로 안다. 하지만 어떤 투자자는 우리를 부동산 임대업이냐고 묻기도 했고,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결국 나 자신도 설득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설득할 수 있는 문장으로 사업모델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확장하더라도 더욱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날카롭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쓰타야 서점에 빠져서 자몽서점을 한국의 쓰타야 서점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그럴만한 가능성과 자신이 있었고, 돈만 조금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내 업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고객 중심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서 내가 잘하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자몽서점을 마무리한 지도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반년이 훌쩍 넘어갔어도 업무의 종료는 최근 8월에서야 끝이 났다. 벽체 훼손과 유지보수로 인한 원상복구 공사가 남아있었던 탓이다. 인테리어 업체는 공사 도중 사고 치고 잠수 타는 바람에 추가로 손해가 발생했다. 시트콤 같아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고 좋은 것만 바라본다. 잃은 것도 있지만 반대로 얻은 것도 있다(스스로 위로하는 중이다).
우선 오프라인 유통 시스템을 익힐 수 있었다. 특히 위탁 판매 구조와 마진율의 유통방식도 알았는데, 콘텐츠 비즈니스만 하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자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더불어 책이라는 건 도매로 주문도 가능하고, 한 곳에서 한 번에 처리하는 시스템 중간 업체가 여럿 존재하는 것도 알았다. 제품이 소량으로 다품종일수록 중간 유통 비즈니스 과정을 익힐 수 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또한 사업모델의 막연함과 그간 하고 싶었던 경험 및 사업을 모두 정리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오롯이 집중해야 할 것의 가지치기가 되었다. 성격상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성향을 지닌 터라, 만약 자몽서점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여전히 헤맸을지도 모른다.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크게 느꼈다. 인테리어와 같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맞물린 상태에선 계약과 절차, 그리고 수고롭고 귀찮더라도 체크할 수 있을 때까지 돌다리 두들기는 심정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경험했다. (인테리어 아저씨가 잠수 탄 건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얻은 게 있다고 위로 차원에서 써봤지만, 아직도 그 손해는 뼈아프다. 그때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조건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의 아쉬움이 있다. 당분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전히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기에 아직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쓰타야 같은 기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앞서 적은 6가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진화하는 중이다. 미디어자몽은 자몽서점 종료 후 3달 뒤 첫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회사 설립 만 7년이 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