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호봉제나 공무원 열풍이 정말 많이 한심한 게, 일에 기여한 지분이 크거나 하다못해 열심히라도 한 사람이 많은 보상을 받는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거다. 적게 일하고 많은 보수를 받는 꿀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올라가는 게 보상이 되는 구조다.
소수의 꿀자리를 끝내 차지한 사람은 투여한 노력을 다 보상받고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나머지는 아쉽지만 땡. 미끼를 사용하는 어부는 그것을 재활용하면서 아무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무급 인턴 등이 좋은 예다. 치킨 게임의 승자는 음식 빼먹는 배달 기사다.
공무원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껴서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실제 일을 하는 데 썼다면 나라가 정말 잘 굴러갔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시용 지식만 외우다가 낙오한 패배자와, 이제부터 편하게 산다는 승리자만 남는다.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 나라에서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변호사가 비서보다 타이핑을 더 잘한다고 해도, 타이핑은 비서에게 맡기고 변호사는 변호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집중해 돈을 벌고, 비서 구직자에게도 일자리가 생긴다. 그것이 비교 우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윈윈(win-win)이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변호사도 스스로 문서작성을 할 일이 많기에 연수 과정에 타이핑과 전화응대만 하는 비서 업무를 1년간 집어넣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때의 근무 평가를 향후 임용에 반영한다. 변호사에게 앞으로의 기대 수익에 비하면 말단 비서직의 월급은 대세에 영향이 없는 정도다.
변호사들은 고작 1년만 하는 비서직을 죽었다 생각하고 묵묵히 일하기로 한다. 일반 비서들은 9시 출근 17시 퇴근하지만, 판사로 임용될 때 0.1점의 가산점이라도 얻으려 6시 출근 23시 퇴근을 기본으로 한다. 150만 원에 불과한 기본급은 대형 로펌에 취직하면 별것 아니니 그마저도 반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서를 생계로 삼은 사람들은 막막해진다. 비서보다 훨씬 풍부한 법 지식을 가지고 일머리조차 더 잘 돌아가는 변호사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월급마저 반납한다. 정상적으로 9시에 출근해 17시에 퇴근하는 일반 비서들은 일도 못 하면서 근태조차 불량한 저성과자이자, 월급마저 150씩 가져가는 파렴치한 도둑놈들이다.
비서를 필요로 하는 법률사무소들은, 어느새 예비 법조인이 무급으로 몸을 불살라 달려드는 열정 비서제에 길들었다. 사무실의 운영과 예산을 수십 년간 이에 맞추어 왔으니, 예비 법조인들이 갑자기 월급을 달라고 하거나 혹은 저녁 8시에 조기 퇴근을 해버리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게 된 것이다. 비서에게 150씩이나 주면 월세는 언제 내나, 비서가 8시에 퇴근해버리면 24시간 전화 응대는 어떻게 하나.
법조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결국 예비 법조인이 거쳐 가는 비서직과 단순 타이핑 업무는 경쟁적으로 1년, 2년, 3년으로 차차 늘어난다. 정상적으로 비서를 하려고 했던 일반 구직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쉬어야 한다. 한편 변호사는 철야로 타이핑을 하느라 막상 배운 법 지식을 활용할 햇수는 그만큼 줄어든다.
할랄 푸드 전문가나 동물 심리상담사와 같은 신직업으로 무리한 일자리를 만들려 하는 동안 기존에도 필요했던 비서업이라는 분야는 변호사들의 땜빵 인턴제에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사무소 이외에 이득 보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 예비 법조인이 150만 원의 월급을 반으로 나누고 비서 인턴을 두 배로 뽑으면 해결될 문제일까?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타이핑 업무를 하려고 하는 비서 대학원이 생길 판이다.
열정 페이는 개인의 단순한 노력 문제이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타인의 정당한 권리와 노동-임금이 교환되는 시장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폭력이다. 그것은 열정 페이를 주는 쪽만이 아니라 받는 쪽도 해당하는 문제다. 100만 원을 주는 사람에게 200만 원어치 일을 해서 바치는 것은, 그 일의 정당한 가치를 반으로 떨어뜨리는 덤핑이다.
0.1점의 가산점으로 탄탄대로를 시작해 대법원장까지 올라간 덤핑의 승리자는 혼자서 많은 이득을 얻었지만, 타이핑은 타이핑대로 하고 임용되지 못한 나머지는 전부 패배한다. 많은 국가에서는 덤핑을 비정상적인 경쟁, 즉 반칙으로 본다.
원문: John Lee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