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겠다. 물론 경제학자라고 해서 같은 의견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내가 경제학자 대표로 나설 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가진 의견은 편의상 주류(mainstream)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견해와 대체로 비슷할 것으로 (적어도 나는) 믿고 있다.
일단 먼저 나는 시장경제와 친구 사이임을 밝힌다. 나는 학교에서 시장경제를 가르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시장의 효율성과 자생적 질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벌써부터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류경제학은 시장만능론이 아닌 인센티브가 핵심
첫째, 나는 스스로 믿지도 않는 내용을 가르치면서 먹고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도 꽤 있다). 둘째, 평생 주류경제학을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의 생각이 그 경계를 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친구는 신뢰하지만 신봉의 대상은 아니다. 주류경제학이 바라보는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
사람들은 주류경제학자들이 시장을 전지전능으로 본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만일 신봉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인센티브’의 중요성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건 인센티브다. 도덕성, 윤리, 공동체 의식 등 다른 숭고한 가치들은 잠깐동안, 혹은 일부의 사람에게는 많은 영향을 줄 지 모르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는 없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적절한 방향으로 이끄는 최선의(이 말이 맘에 안 든다면 그나마 가장 나은) 메카니즘이다.
시장경제에서 모든 상품 공급자는 최소 두 번의 체크를 받는다. 우선 다른 사업자와 경쟁한다. 그 경쟁에서 1등을 하거나 심지어 독점사업자라서 부전승을 거둔다 하더라도 여전히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아무리 악덕 자본가라 하더라도 이 두 번의 체크를 그냥 통과할 수는 없고, 좋은 상품을 만들 인센티브가 있다. 그 동안 인류가 발명한 다른 어떤 인센티브 메카니즘도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가 제대로 된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럴 때 더 나은 인센티브 메카니즘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주류경제학자의 태도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장경제가 친구라는 말을 쓴 것이다. 믿고 의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내는 존재까지는 아니라는 뜻에서. 그렇지만 확실히 더 나은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친구를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본다.
모든 주체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지 못한 세월호 사고
하지만, 이 사건을 보면서 시장에 대해 좀 더 겸허하게 접근할 필요를 느꼈다.
경제원론 수준의 얘기지만 시장경제는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정보 획득에 문제가 없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청해진해운의 사주가 정말 합리적이었다면 침몰위험을 무릅쓰면서 배를 부실하게 개조하고, 안전수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이윤을 챙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으니 보험금을 타려고 일부러 침몰시킨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정말 그 정도로 나쁜 놈이라 해도 합리적이라면 이렇게 충격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승객이나 수학여행을 주관한 학교 측은 만일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되는 배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가격이 싸도 절대 탑승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이 사건은 탐욕만 추구하는 자본가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이윤극대화를 하지 않는 공급자와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가 만나서 생긴 비극적 결과다.
시장주의자가 겸허해져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유시장만 옹호해 온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미 완전한 자유방임과 경쟁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제한적 합리성과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류경제학의 주요 연구테마였다. 어느 정도 해결책이 제시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규제적 개입은 꼭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러한 지식들이 논문 밖으로까지 확장되어 현실에 충분히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와 내용과는 상관 없이 학술지에 실릴 만한 논문만 쓰면 장땡인 국내 학자들의 왜곡된 인센티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은 인센티브 탓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방향으로 가다보면 세월호의 선원들까지 옹호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센티브: 승객, 선원, 선주, 규제당국에게 모두 제공돼야
그렇다면 주류경제학자라면 해상운송의 안전확보를 위해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까? 먼저 선주와 선원, 승객, 규제당국 중에 누가 배의 안전에 가장 민감할까를 물을 것이다. 그 쪽의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답은 배를 실제로 타야 하는 선원과 승객일 것이다.
하지만, 선원들은 정보부족의 문제가 없는 대신 승객들의 안전까지 돌볼 인센티브가 부족하고(젠장!), 무엇보다 필요한 안전조치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힘이 부족하다 (그 힘은 안전하게 육지에서 돈만 챙기는 선주가 가지고 있다). 반면, 승객들은 정보가 부족한 대신에 약간의 정보만 얻더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예컨대 구명벌이 안 펴진다는 사실 정도만 미리 알려졌어도 세월호는 텅텅비어 출발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인센티브 설계자라면 우선 승객들이 손쉽게, 또는 자발적으로 안전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도록 자극하는 여러 방법부터 모색할 것이다. 구체적 방법들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예를 들어 안전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거나 구명시설이 없는 배를 승객이 발견하여 신고하면 보상하고, 적발된 사실을 주기적으로 공표하는 방법이 있겠다. 터미널 매표소 앞에 크게 써 붙이는 것도 좋다.
그 다음엔 선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만일 승객들의 안전을 돌보다 피해를 입는 경우 큰 명예를 안겨주고, 남은 가족에게는 상당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평소 소방공무원이나 경찰관에게도 그런 보상이 부족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이 유치한 나라이기 때문에 평소에 영웅을 떠받드는 게 아니다).
안전문제를 알리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장치도 필요하다. 선주와 규제당국, 특히 규제당국의 인센티브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도 이야기 했으므로 또 반복하지 않겠다. 이런 장치들도 일종의 규제다. 하지만, 시장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활용하는 규제라는 점에서 정말로 완전한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시장주의자가 아니라면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뭐 대단한 대책이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말도 맞다. 내가 선박운행에 대해 뭘 알아서 남들이 생각도 못하는 삼빡한 대책을 만들겠는가? 그래도 뭐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효율적일지 정도는 안다.
도덕적 해이에 맞설 수 있는 장치가 필요
한편, 시장주의자가 규제강화적 접근을 잘 믿지 못하는 이유는 당국자들의 인센티브를 적절한 방향으로 이끌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결국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자신의 인센티브를 거슬러야만 하는 것들이다.
단적으로, 적당히 허가 내주고 봐줄 것 봐주고 그러면서 순탄하게 지내는 게 인센티브에 가장 맞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잘 되면 당연히 해야 할 일 했을 뿐으로 취급되고, 잘 안되면 욕만 얻어 먹는다. ‘잘 되면 당연’ 이게 특히 중요하다. 과거 씨랜드 사건에서 담당공무원이 부실건물에 허가를 내주지 않고 버텼더니 왕따에 전근을 보냈고, 그 후 결국 사고가 터졌다.
궁금한 것은 만약 이 분이 그 때 성공적으로 버텨서 허가가 안 났다면, 이 분의 인생은 어땠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사고가 안 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여전히 꼴통으로 간주되어 공무원 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분이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나마 소금과 빛이 되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이후에 이 분에게 더 나은 커리어가 제공되거나 명예가 주어졌다는 얘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건 다음 해에 공무원직을 그만 두셨다고 보도되어 있다. 이렇게 인센티브 시스템이 엉망인 규제당국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리고, 이게 과연 몇 명 담당자나 장관, 심지어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욕을 퍼 붓는다고 해결될 문제 같은가?
큰 정부주의자의 함정: 선박연한은 핵심이 아니다
‘큰 정부’주의자들께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서 대안을 내 주기 바란다. 대개 ‘진보 = 큰 정부’로 인식되는데,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음을 잘 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시장경제와 친구 사이인 나는 자동으로 애국보수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러니 정치적 얘기로는 해석되지 않기 바란다.
나는 시장경제를 더 신뢰하긴 하지만, 큰 정부와 더 많은 규제를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도 항상 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혹시 그게 답이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 Paul Krugman의 예의 없고 자기만 다 안다는 식의 태도가 불쾌하지만, 그가 뛰어난 경제학자고, 함부로 허튼 소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까 큰정부주의자들이 진지한 성찰과 대안을 제시하면 들을 자세가 되어 있다. 물론 쉽게 수긍은 안 하겠지만.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런 대안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보신 분 있으면 링크좀 부탁한다). 어떤 분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규제완화에서 찾았다. 대표적으로 MB정부에서 선박연한을 30년으로 완화시킨 것을 비판한 것이다. 선박에 대해 잘 모르니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선박연령과 이 사건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이를 문제 삼으니 의아할 뿐이다.
어쨌든 논의를 위해 그게 문제라고 가정해 보자. 내막은 몰라도 선박연령에 대한 규제는 예를 들면 10년 이상된 자동차는 운행하지 말라는 식의 규제와 비슷하다. 아마도 관리만 잘 하면 아무 문제 없는데 왜 그런 규제를 받아야 하냐고 로비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풀어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로비가 있어도 공무원이 그렇게 드러내 놓고 봐주긴 어렵다).
문제는 ‘관리만 잘하면’이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에 생긴다. 규제완화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연한 규제가 완화되었을 때 왜 이의 부작용을 대비하는 보완책은 마련되지 않는 지를 지적해야 하고(그런데 사실 그런 보완책이 마련되었는 지 여부조차 모른다), 보완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나서 보완책 마련이 도저히 어렵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규제완화를 반대한다면 나같은 경제학자도 수긍할 지 모른다.
그런데 그냥 규제완화했으니 나쁜 놈이라니..(MB가 과연 그 규제의 내용에 대해 알기나 했을 지도 의문이다).
비정규직 역시 핵심 이슈는 아니다
이른바 선장과 선원의 비정규직 논란도 그렇다. 난 그 비판을 통째로 무시할 생각은 없다. 비정규직이었지만 자신을 숭고하게 희생했던 승무원들이나 정규직이지만 엉망으로 사고에 대처한 사람들을 반례로 제시하고 싶지도 않다.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고객에 대한 로열티나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을 갖기 어렵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비정규직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가는 것은 논리적 연결성이 너무 약해서 그냥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건 마치 공무원 비리사건이 터지니까 남자보다는 여자가 비리를 덜 저지르는데 왜 공무원을 다 여자로 채용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는 식의 느낌이다. 이런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통계가 있다고 해도 공무원 비리의 수많은 요인과, 비리를 줄일 수 있는 그 많은 방법들 중에서도 하필 성별 문제가 주목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수 많은 요인들 중에서 선장과 선원의 비정규직 문제는 요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백번 양보해서 비정규직이라서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만일 선주가 안전확보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었다면 비정규직을 ‘착취’해서라도 안전을 챙기지 않았을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큰정부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와 친구인 한 주류경제학자가 그 동안 친구만 너무 믿고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면서 쓴 글이다. 그러니 좀 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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