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를 보면 스타트업들이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광고가 많이 나와 놀랍습니다. 피크 타임에도 공중파뿐 아니라 jtbc나 tvN 같은 채널에도 꽤 많이 나옵니다. 그에 비해 유튜브 광고에는 오히려 대기업의 서비스나 제품이 많은 게 꽤나 흥미롭습니다.
유튜브에서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인기가요가 인기를 끈 이유는 당시 10대였던 현재 30대가 TV로 대중문화를 소비하던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원더걸스, 빅뱅, 소녀시대 시절인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사이 인기가요로 탑골공원을 만들었다면 지금만큼 이슈가 됐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멜론이 재작년 2000년대 후반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릴리즈했던 것은 유효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는 TV를 통해 대중문화를 ‘주입’ 받았다면, 2000년대 후반을 넘어가면서는 각자 ‘취향’이라는 게 더욱 뚜렷해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온라인 탑골공원을 보다 보면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었던 가수들의 노래를 절로 따라부르는 나를 발견하는데, 10대의 말랑말랑한 뇌에 고작 몇 가지 채널에서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을 돌려 보다 보니 자동으로 입력된 메모리가 절로 활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싸이월드가 대세가 되면서는 ‘브금이 곧 그 사람의 상태나 아이덴티티를 표현해주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프리스타일 Y부터 네미시스 솜사탕까지 더 다양한 음악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곧 개성의 다양화, 취향의 세분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러니 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 20대, 10대 친구들의 콘텐츠 취향과 소비 패턴은 얼마나 더 다양해졌을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펭수의 인기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놀던 사람들이 EBS에서 만든 새로운 캐릭터 ‘펭수’로 넘어갔습니다. 3주 전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이슈가 된 EBS 연습생 캐릭터 펭수는 10월 14일 기준 구독자 19만을 돌파했습니다. 최근 며칠은 하루에 1,000명은 꾸준히 늘어난 듯합니다. 펭수가 ‘아이돌 육상대회’를 패러디한 ‘EBS 아이돌 육상대회’ 즉 ‘이육대’ 콘텐츠로 빵 뜨긴 했는데, 사실 그건 6개월 전에 채널 개설했을 때부터 쌓아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거기다 펭수는 은근 춤도 잘 추고 랩도 잘하는 데다가 재치도 있어서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하며, 가끔 성질도 내고 ‘펭성(펭귄+인성)’ 논란이 생길 만한 행동들도 하면서 한켠으로는 거대한 탈을 쓰고 얼마나 더울까 하는 측은지심도 자아냅니다. 이런 다양한 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러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댓글들을 보면 ‘퇴근하면서 EBS 채널에 들어와 있는 나 자신을 보니 놀랍다’라던가 ‘내 나이 29살. 요즘 내 동년배들 다 펭수 본다’ ‘어서 펭수 굿즈 내 달라, 총알은 장전되어 있다’라는 식의 어른이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종합해보면
유튜브 내에서만 봐도 콘텐츠의 유행이나 대박 콘텐츠가 나타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와썹맨 → 워크맨 → 인기가요 온라인 탑골 공원 → 펭수 등 모두 올해 대박 났던 콘텐츠라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빠르게 유튜브 트렌드가 변하는지 실감이 되죠.
게다가 위 5개 대박 콘텐츠는 다 jtbc, tvn, sbs, ebs 소속에서 만들었죠. 이렇게 기존 매체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온 전문가들이 대거 디지털 콘텐츠 쪽으로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유튜브 콘텐츠의 질은 향상했습니다. 동시에 시청자들의 눈높이 또한 같이 높아져 웬만한 기획력이 아니면 개인이 혼자서 하는 유튜브 채널은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진 것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튜브는 블루오션 같은 이미지로 새로운 크리에이터들을 빨아들이는데, 위와 같은 상황에서 유튜버로서 살아 남으려면 소통, 진정성, 성실함 같은 모범 답안 외에도 타깃을 쪼개고 또 쪼개 딱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카테고리에서 ‘온리 원’이 되는 게 그나마 가능성 있는 전략일 것 같습니다.
원문: 지영킹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