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수부의 시각
손석희가 없었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더 암울했을까?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방송해주는 그의 노력이 고맙다. 웬만한 미국 앵커 부럽지 않다. 나에게 월급 주는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라도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한다. 사고 현장에 있는 사망자 가족들이나 자원봉사 잠수부들이 너도 나도 동영상을 들고 혹은 인터뷰를 해주러 손석희를 찾는 걸 보면 바로 저럴 때 기자는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좋은 평판은 긴급상황때 더욱 빛난다.
강대영이란 잠수부가 손석희뉴스에서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어제 다른 잠수부들에 이어, ‘언딘’이라는 업체가 시신의 인양을 일부러 꾸물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쇼킹한 내용은 인터뷰 후반, 12분 넘어가면서 나온다. 사고 초반 잠수해서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대목이다.
“사고 당시 바로 이후부터 계속 의문스러운 부분이고. 왜 적극적으로 구조를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참 어느 누구의, 뭣 때문에 구조를 안하는 지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라 난 한 마디로 잘라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조류는 거기가 세다고 하나, 배가 워낙 크고 에어포켓이 잡혀서 선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배의 균형이 잡힌 겁니다. 구조작업은 안으로 들어가서 진행할 수 있는 최고 좋은 상황이었죠. 작은 배들은 뒤집히면 공기가 빠지지만 큰 배들은 격벽이 있어서 에어포켓이 많이 잡히는 구조죠. 그 정도라면 구조시간을 많이 필요로 안 해도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가서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이유는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고 초반에 구조작업이 지체되는 걸 두고 온갖 핑계와 변명들이 쏟아졌다. ‘맹골수로는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두 번째로 센 지역이다’ ‘손을 뻗어도 자기 손도 안 보인다’ ‘무리한 작업을 하다가 잠수부들이 다치면 어떻게 하냐’ ‘태풍이 부는 63빌딩 위에서 작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등등. 그중엔 잠수부 출신이라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변명만 할거라면 구조대라는 건 왜 존재하는가. 해군과 해경은 자신의 안위를 희생해서라도 국민의 목숨을 구해야하는 조직 아닌가. 그게 군대와 경찰의 존재의 목적 아닌가.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지지부진했던 데에 대해 UDT출신 블로그 이웃님께서 이미 열하루 전에 댓글로 말씀해주신 바 있다. 다시 한 번 소개하자면 이렇다.
2004년 이었나… 그즈음 서해 왕등도 앞바다, 파나마 선적 DURI호가 약 88미터 깊이에 뒤집어져 침몰해서 벙커씨유가 새어나오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영국 다이버 죤베넷 이라는 잠수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을 그 작업에서 잃었고, 저역시 실종된 죤베넷을 수색하기 위해 들어간 선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나왔습니다. 시야는 그야말로 0cm, 조류는 남해보다 훨씬 사나워 물 속에서 마스크가 조류에 벗겨질 정도였습니다. 그것보다도 작업이 어려웠던건 bottom 체류 가능시간이 17분에 다이버의 몸에는 5개의 탱크가 묶여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부대 선 후배들이 최선을 다해 구조를 하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또 물속의 상황은 물에 들어가 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자로서 이 상황을 답답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제발 이 상황에서 개같은 매뉴얼은 다 무시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기자님 말씀처럼, 누군가 책임을 지고 아이들을 빨리 살려내야 한다는 단 한가지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류가 심하다구요? 시야가 20쎈티요? 바람과 파도가 심하다구요? 안전줄? 가이드 줄 연결하는데 며칠이 걸렸다구요? 감압챔버요? 릴레이식으로 계속 투입한다구요?…..정말들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죤베넷을 잃고 수색작업을 할때 우리는 모든 걸 무시했습니다. 조류가 잠잠한 시간이요? 그런거 없습니다. 1분 1초라도 빨리 찾아야 살릴 수 있다는 한가지 희망뿐이었기 때문에 조류 따위는 신경 안썼습니다. 시야 20센티요? 깜깜한 바다에서 눈 감고도 훈련하는 다이버들입니다. 그정도면 좋은 시야입니다. 바람과 파도가 심하다구요? 물속은 되려 잠잠합니다. 감압챔버요? 그 수심에서 무슨 감압을 합니까?
제발 그 따위 군부대 메뉴얼은 다 갖다버리세요. 아이들의 목숨에만 집중해서 구조작업을 했으면 합니다. 내 아들이 내 동생이 지금 갇혀있다는 생각이라면 어떤 작업 명령이 나왔을까요? 조류요? 그런 개소리 집어치웁시다….감압이요? 수심이 30미터면 실제 작업은 바닥에서만 합니까? 실제 작업 수심은 10-20미터입니다. 제발…온갖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아이들 중 단 한 명이라고 살리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구조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오늘 강대영씨의 인터뷰를 보니 11일 전 ㅇㄷㅍ님이 이렇게 울분을 토하셨던 게 새삼 이해가 간다. 그게 정말 군부대 매뉴얼 때문인지, 지휘구조상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알지 못하는 비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불문하고 정말 실망스럽다.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 때문에 죽도록 내버려뒀다면 그것은 정말로 살인이다.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이 무능하고 개념없는 시골노인이라면, 자신의 이익 혹은 책임회피를 위해 구조를 지연시킨 사람이 있다면, 악마다.
그나저나 해경은…. 아까 뉴스타파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 처음 경비정이 도착했을 땐 배가 그다지 많이 기울지 않은 상태였다. 해경 한 명이 배에 올라타 복도를 따라 걸어다니는 장면도 나온다. 딱 한 명 뿐이다. 그때 좀 더 많은 해경이 배에 올라타 승객들을 밖으로 인도했더라면 좌현이고 우현이고 아이들이 훨씬 많이 살아남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 뒤늦은 후회다.
2. 일본인의 시각
도쿄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켄타씨가 마이니치신문 일요일판에 나가는 기사를 쓴다면서 내게 세월호 관련 코멘트를 부탁했다. 난 이 문제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익명의 개인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을 확인은 못해봤다. 이메일 교신 마지막에 그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일본도 많은 치명적인 사고를 겪어왔어. 2011년의 후쿠시마 핵 사고, 2005년에 100명 이상을 죽인 통근열차 탈선 사고, 2012년 8명의 승객이 죽은 고속버스 사고 등등.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해당 회사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를 탓했어. 내가 한국인들이 다르다고 느낀 점은 한국인들은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 혹은 국가 전체를 비난한다는 거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비슷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런 정서가 지금 한국에서처럼 넓게 퍼지진 않았어.
한국이 틀렸다는 말은 아냐.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지.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래서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한 일본 대중은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 가해자들, 담당 공무원들과 대중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
나는 한국인들의 이런 특성이 한국을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당분간 불면증은 이어질 것 같다. 밤에 세월호 관련 뉴스들을 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이룬지 벌써 2주가 다 되어간다. 내일은 연휴전이라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은데 걱정이다.
3. 블로거의 시각
사고 초기부터 여러가지 의심이 들었다. 영자신문 다닐 때 배운 습관이 있다. 한국 정부에서 내는 정보는 일단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하나씩 팩트를 확인한다. 왜? 한국의 높은 공무원들은 자기합리화와 책임회피를 위해 현실을 왜곡해 포장할 능력과 의지가 모두 있다. 또 정부기관을 ‘출입처’로 삼아 매일 출근하면서 공무원들이 사주는 밥을 먹는데 익숙해진 한국 언론은 그걸 제대로 견제해주지 못한다.
구조에 동원된 것이 항공기 몇 대, 선박 몇 대, 조명탄 몇 발 이런 얘기는 확인해볼 수도 없고 설령 세어봐야 의미도 없다. 확인가능한. 모두가 인정하는 팩트는 단 하나, ‘구조자 0명’이다. 뭘 얼마나 동원했든지간에 결론적으로 한 명도 못 구한 것 아닌가. 해경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고 잠수해 구조를 해와야 할 사람들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았다(잠수부 개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지휘하는 조직의 얘기다).
참고로 미국 911사태때는 대형 여객기가 건물에 충돌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사망자 3000여 명 중 경찰과 소방관이 400명이었다. 비극이지만 그런 적극적 마인드가 구조대에겐 당연히 필요하다. 생존자 1명과 군경 1명의 목숨을 바꿀 각오로 뛰어들게 했어야 한다. 일선 소방관들도 화재현장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걸고 뛰어들지 않는가? 그리고 종종 희생자도 생기지 않는가? 구조대라는 직업의 특성상 희생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세월호 현장에는 현재까지 해경이든 해군이든 작업중 사망한 사람 0명, 큰 부상 입은 사람 0명, 구조자도 0명이다. 꼭 군경의 희생이 따라야 학생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군경 지도부가 혹시 모를 군경의 희생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하는 게 두려워 학생 구조작전을 소극적으로 펼쳤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선장이 승객에게 탈출명령을 내리지 않은 건 회사의 지시 때문일 거라고도 짐작했었다. 이 추측도 점차 사실인 걸로 밝혀지고 있다. 황당하면서도 신기하다. 난 이제 한국이란 나라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기 시작한 것 같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난 만일 윤진숙씨가 아직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고 있더라면 지금 장관보다는 사고 뒷처리를 잘 했을 것 같다. 적어도 피해자 가족들과의 공감은 잘 했을 거다. 그는 비호감일지언정 솔직한 사람이었다. 사고 직전에 장관직에서 잘린 걸 두고 ‘이런 재난을 피해가다니 해고도 천운이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짐작에 그는 지금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는 커녕 굉장히 마음아파하고 있을 것 같다.
P.S. 2014. 4. 30. 사고 초기 해경이 해군 UDT의 구조작업을 막았다는 기사가 났다. 해군에서 직접 공개한 내용이라 한다.
원문: indi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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