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탱크 경주’가 가능한가?
물론 시키면 할 수 있다. ‘소련여자’의 모국 러시아에서는 매년 ‘탱크 바이애슬론’을 벌인다. 물론 단순 레이싱은 아니지만, 레이싱적인 요소가 섞여 있긴 하다.
로씨야의 위엄을 보여주는 탱크 바이애슬론(…)
물론 포탑을 뒤로 돌려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포를 이미 앞으로 향한 상대에게 포를 뒤로 향해 대응하는 것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상당수의 현대 전차들은 포탑을 뒤로 돌렸을 때 아래쪽으로 포신을 내리는 것이 좀 제약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탱크 레이스’는 역사에 없었다. 그저 고인물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서나 가능한 일. 여기서는 정말 탱크가 미친 속도로 달리며 싸운다.
월드 오브 탱크 탱크 레이스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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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사실상 불가능한 레이스
먼저 1차 세계대전의 전차들끼리 경주를 하면 어떨까 한번 살펴볼…까 했는데, 다들 거북이다. 시속 6–8km 정도로 사람이 좀 뛰면 금방 앞서 버릴 수 있다.
게다가 고장도 잦고 현수장치(서스펜션)도 아예 없거나, 심지어 엔진 힘도 약해서 어디 구덩이나 제대로 된 장애물이라도 만나면 타고 넘지 못하고 빠지거나 걸리는 일이 잦았다. 당시의 전차 엔진 중 상당히 강력한 축에 드는 물건이 한 150마력 정도 하는데(영국의 Mk.V 전차 기준, 무게 29톤), 150마력이면 싼X페나 쏘X토급만도 못한 수준이다.
그래도 일단 달릴 자리만 마련하면, 이 시대의 전차들 중 1위는 영국의 위펫(Whippet) 경전차다. 느림뱅이들 속에서 그래도 위펫은 최고 속도 13.4km/h라는 경이적인(????) 고속(???????)이 나온다.
오히려 누가 먼저 고장 나는지를 겨뤄도 됐을 듯하다. 당시의 전차는 그야말로 고장을 달고 사는 물건이었고, 장애물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영국군의 경우 작전 중 이런 식으로 버려진 전차가 워낙 많다 보니 독일군의 첫 전차부대는 이렇게 버려진 뒤 노획한 전차들로도 창설이 가능했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 경주가 좀 될 듯…?
2차 세계대전의 전차 속도는 엄청나게 좋아졌다. 포장도로 위에서 30–40km 정도의 속도를 내는 전차들이 속속 출현했다.
당시의 주력 전차인 중(中)전차 기준으로 속도 1위는 영국의 크롬웰이다. 포장도로 기준 최대속도가 60km를 넘는다. 오늘날의 K1전차도 얼추 이 정도 속도가 나온다는 걸 감안하면 속도 자체로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문제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안정성이 떨어졌다. ‘지속적으로 일정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기계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구축전차인 M18헬캣. 전차 주제에 80km/h의 최고 속도가 나온다. 솔직히 요즘 전차 중에도 속도로 이것과 맞붙을 놈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가볍기 때문에 장애물이나 험한 지형도 꽤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무게가 18톤도 채 안 된다. 엔진은 셔먼과 같은 계열인데, 같은 엔진으로 절반 무게를 굴리니 빠를 수밖에. 다른 건 몰라도 ‘경주’할 상황이 벌어지면, 이놈은 그냥 ‘밟기만’ 해도 승리는 반쯤 따놨다 봐야 하지 않을까.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150km까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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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1–2세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그 뒤의 전차들도 나름 세대를 구분해서 따져봐야 할 것이다. 먼저 1950년대에 주로 나온 1세대 전차들은 오십 보 백 보급이니 넘어가자.
1960–1970년대의 2세대에서, 영국이나 미국은 기동성 대신 장갑과 방어력에 투자한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서독)은 속도에 신경을 쓴다. 프랑스의 AMX-30과 서독의 레오파르트 1은 최고 속도를 65km/h급으로 높였다. 실전에서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경주’할 상황이 벌어지면 이 속도가 나름 도움은 될 듯.
2세대에 가면 구소련 전차들이 또 속도라는 면에서 나름 무시 못 할 ‘선수’가 될 것이다. 이 시기의 소련 전차들 중 서방측의 2세대에 해당하는 T-64와 T-72는 최대 속도 60km/h 초반을 찍으니 말이다.
다만 이 시기에 이르면 서방측 주력 전차 사실상 전부가 자동변속기와 핸들형 조향장치를 이용해 자동차에 가까운 조종 감각을 갖추는 것과 비교해, 여전히 두 개의 레버를 힘겹게 앞뒤로 움직이며 조종수의 노하우와 체력(!) 모두를 요구하는 당시의 소련 전차들은 ‘경주’라는 장르에서는 속도와는 별개로 꽤 고전하지 않을까 싶다.
2차 대전 이후: 3세대 이후
제3세대, 즉 1970년대 끝 무렵부터 시작해 1980–1990년대에 이르면 서방측 전차들의 주행성능 향상은 ‘미친 듯한’ 수준이 되어버린다.
최고 속도도 빨라졌지만, 특히 가속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3세대 주력 전차의 가속 능력은 2세대와 비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100% 이상 향상된 경우가 많다. 이는 적 대전차무기 공격을 피하는 데 있어 최고속도보다 가속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 실전을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서방측에서 주행성능 투톱이라 할 물건은 3세대에서는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계열 전차들, 그리고 일본의 90식 전차다. 에이브럼스의 경우 1,500마력의 힘도 힘이지만 가스터빈이라 반응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라는 덕을 본다. 에이브럼스가 정지상태에서 32km/h까지 가속하는 데 7초 정도면 충분하다.
게다가 3세대 주력 전차부터는 그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달리면서 싸우는’ 게 가능해졌다. 이전의 전차들은 포안정장치, 즉 차체가 흔들려도 주포는 늘 일정한 위치를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 해도, 정말 달리면서 포도 같이 쏘는 걸 목표로 그걸 달아준 게 아니었다. 달리다가 멈췄을 때 포신이 흔들리는 걸 최소한으로 억제해서 더 빨리 조준하겠다고 달아주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3세대 주력 전차(적어도 서방측)부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컴퓨터와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연동된 디지털식 사격통제장치(FCS)가 등장하고, 그냥 포신만 안정시켜주는 게 아니라 포탑의 방향까지 표적 방향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2축식 포안정장치가 실용화되면서, 정말 ‘달리면서 전투’도 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물론 현실에서 레이싱 탱크는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최대 속도보다는 제법 느린 속도(20–40km/h 사이)로 움직이면서 사격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기 때문. 움직이면서 쏜다는 게 막 영화나 게임처럼 미친 듯이 달리면서 쏘겠다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그 자체가 적에게 표적이 될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경주’라는 상황이 워낙 현실에 벌어지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 또 전차끼리의 성능도 시대에 따라 정말 천차만별인지라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대의 3세대 이후 주력 전차, 특히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서 만든 전차들의 승률이 여타 전차보다 상당히 높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냥 직접 해보자: ‘월드 오브 탱크: 위대한 레이스’
밀덕들의 고인물 게임으로 알려진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최근 ‘위대한 레이스’ 모드를 내놓았다. 과거 3대의 탱크를 마개조하여 최고 150km/h의 속도로 3:3 레이싱을 펼치는 게임. 속도도 겨루지만 포격을 가하며, 상대 탱크를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탱크 레이스 모드는 이벤트성으로, 10월 7일까지 계속된다. 계속해서 다른 스테이지가 제공되며 이 기간에는 더 많은 보상이 제공된다. 고인물 게임이라고 무시했던 월드 오브 탱크를 피했던 게이머라면 바로 이곳을 클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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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기사는 월드오브탱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