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대통령은 원래 수염이 없었다. 그가 대선을 위해 여기저기 연설하러 다니던 시기만 하더라도 다른 정치인처럼 얼굴에 털이 없었다. 덕분에 그 깡마른 얼굴이 매우 부각됐는데, 움푹하게 들어간 눈, 뾰족한 코, 튀어나온 광대뼈, 깊게 팬 뺨, 튀어나온 턱 등 꽤 볼품이 없었다. 링컨의 외모는 자신도 인정할 만큼 촌스러웠다. 그런 그가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건 지지자 중 한 소녀의 편지 때문이었다.
소녀는 밤의 램프 아래에서 링컨이 나온 신문 사진을 보다가 링컨의 얼굴에 생긴 그림자에 순간 멈칫했다. 그건 마치 턱수염처럼 보였다.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이 못생긴 아저씨(정적으로부터 고릴라라는 비하까지 들었던 외모였다)의 얼굴에 턱수염이 있다면 인기가 많아질 거라고 직감했다. 열한 살짜리 소녀는 링컨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수염을 기르면 더 잘생겨 보일 것이다. 여자들은 수염 기른 남자 좋아한다. 그녀들이 남편들에게 링컨 당신을 뽑으라고 할 것이다.
이 정도의 내용이었다. 당시 참정권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간파한 이 소녀는 요즘 말로 치면 정치 감각이 뛰어났던 것이다. 링컨은 정말로 수염을 길렀고, 좀 더 따듯하고 듬직한 인상으로 변했으며, 정말 수염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걸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서 정치적 이미지의 전달이 중요하긴 매한가지고, 정치인의 이미지 또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링컨의 수염은 유권자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하는 데 일조했음이 분명하다. 정치인의 외모란 생각보다 큰 자산이다.
자유당의 황교안 대표가 삭발했다
조국 신임 법무장관 임명을 정쟁의 영역으로 끌고 가서 의회를 볼모 삼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셈법이기 때문에 자유당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의 삭발을 비난한다. 사실 말이 좋아 비난이지 조롱과 비아냥인데, 그 안에 깃든 진짜 이야기는 ‘당신이 그래봤자 별 볼 일 없을 것이오’라는 한심함이다.
아니 그런데, 그의 삭발은 한심하지 않게 됐다. 간만에 정국 주도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자유당의 선택으로서도 뭐 그럴 수 있다 치는데, 막상 황 대표의 민머리를 보자니 의외로 보기 좋은 것이었다.
과거 박근혜 시절 비난받을 품행과 궤적이 이어졌고, 국정농단의 죄과에서 쏙 빠져나갔으며, 이후로도 자유당을 이끌면서 평소에 워낙 개그맨들의 설 자리를 위협했던지라 많은 사람이 이번에도 우스우려니 하고 보았을 터. 게다가 보통 때 어깨를 올리고 목을 내밀고 다니면서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기른 탓에 전반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삭발한 그는 정갈한 두상을 가진 데다가 머리칼이 사라지니 조밀한 이목구비와 얼굴의 쉐이프가 한층 돋보이는 것 아닌가.
그 옛날 깡패 출신 정치인 김두한은 항시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다녔다고 한다. 남자에게 머리는 왕관이라는 말을 하며 머리 모양을 수시로 매만졌다. 절대 한 터럭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강고한 것, 대단한 것, 위대한 것을 좇는 남자들의 머리칼이란 김두한의 말마따나 풍성하고 힘 있고 강력해 보이도록 조장되는데, 우리나라 남성 정치인들 대부분이 그에 상응하는 어떤 유행에 맞춰 정치인 머리를 해왔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렬할수록 정치인의 머리 모양은 특유의 형태를 갖춰나갔다.
당연히 황교안의 평소 머리 모양에서도 너무 익숙해서 잘 아는 강한 권력욕을 발견했는데, 특히 그의 경우엔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고전적이던 정치인 머리가 아닌 이상하게 멋 부린 형태였다. 세련되고 선진적이라는 이미지를 원한 건지 뭔지 웨이브를 간드러지게 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 눈에 그는 자신의 머리칼을 비롯해 스스로 외모를 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그의 눈빛과 말투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시선과 발성이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는 장면들은 그가 어딘가 모르게 자신과 비교해 남을 차등적으로 내려다본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뭐랄까, ‘나는 너희보다 훨씬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라서 너희 모두 따위는 가볍게 대해 줄 거야.’에 가까운 과시욕과 허장성세의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힘을 갖고 누려온 사람이 자신의 힘을 자랑은 하고 싶으면서도 그 자랑이 스스로를 약해 보이게 만들까 봐 부러 부드러움으로 발산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떠는 분위기다. 아마도 사람들이 황 대표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그런 점이 직관적으로 느껴져서는 아닐까 싶다.
그랬는데, 황교안은 그런 이미지였는데, 이번에 삭발하고 나니 그런 느낌이 상당히 사라졌다. 왠지 선량해 뵈는 얼굴선만큼 실제로도 나긋나긋할 것 같고 심지 있는 이미지로도 보인다.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이 정도면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링컨의 수염만큼 그의 삭발은 이미지 전환에 좋은 효과를 볼 것 같다.
물론 스스로 귀히 여겼던 머리 모양은 자신의 성정 그대로를 드러내기에 영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고 우스웠다가, 그 소중히 하던 것을 잘라내고 나니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점에선 황교안 스스로 근본적인 회의를 할 사안이긴 하다. 그리고 링컨이 세계사에 끼친 정치적 영향에 비하자면 그의 길은 이미 시작부터가 우울한 측면도 있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됐든 이번 삭발로 인해 그는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에겐 분명한 효과를 거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