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러니까 시간이 많던 군인 시절 100여 권이 넘는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적이 있다. 당시 자기 발전에 관심이 많던 내가 약 1년간 100여 권을 읽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여러 권을 읽고 자기계발을 위한 책을 읽는다면 전부 다는 아니어도 상당수의 책을 관통하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시도는 실패했다. 나의 지적 능력이 부족했기에 여러 가지 책을 아우르는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는 책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에 시사점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우리는 ‘활자 매체’를 상당히 신봉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치 활자로 적혀 있는 무언가는 진리를 논한다고 착각하고, 실제로 생산되는 다양한 콘텐츠 중 ‘글’은 아직까지도 가장 권위를 가진다. 그 내용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거 책에서 봤어’라는 대답은 아주 흔하게 나온다.
그런데 ‘활자 매체’를 만드는 주체도 결국 사람이다. 뒤에 사람이 숨어 있기에 어떤 사람이 책을 썼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책이라고 해서 모두 옳은 이야기를 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당연히 비슷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지만, 특히 ‘사짜’가 난립하는 자기계발서 시장에서 쏟아지는 모든 책을 읽을 필요도 없거니와, 읽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도 안 된다. 시간은 우리가 가진 자원 중 가장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책, 즉 엉터리 자기계발서를 걸러 낼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딱 다섯 가지만 짚어보면 된다.
1. 저자 약력에서 신파극이 보인다
책에서 서사는 중요하다. 흐름과 스토리텔링은 책을 읽는 맛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그건 책 본문에서 나와야 하는 내용이다. 지은이 소개에 들어갈 내용이 아니다. 엉터리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기구하게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그건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에 써야 할 내용이다. 본인의 소개를 길게 늘어 쓴다는 건 그만큼 책 내용 자체에 자신이 없다는 증거다.
허름한 시골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음식점, 수십 개의 음식 메뉴를 주렁주렁 걸어놓고 판매하는 그 음식점이 과연 맛있는 음식을 만들까? 책 내용만으로 자신이 있다면 자기소개는 거추장스럽게 길 이유가 전혀 없다. 간결하게 떨어지는 자기소개가 아니고 자기 인생을 줄줄 읊는다면 일단 그 책은 걸러내자.
2. 남의 이야기를 하는 책은 걸러라
우리는 어떤 사람이 급격하게 뜨면 그 이름이 들어가 있는 무수한 자기계발서를 맞닥뜨리게 된다. 멀리로는 오바마 스피치, 히딩크 리더십부터 박항서 리더십 등등.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그 사람의 리더십이나 그 사람의 강점을 제목으로 한 책이 나온다.
그런 책을 쓴 사람들은 대체 책 제목에 언급된 사람의 무얼 그렇게 잘 알아서 그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기는 할까? 그 사람이 화제의 인물이 되기 전에 미리 고민을 한참 해 왔을까? 그럴 리가 없다.
물론 자기계발서는 자서전이 아니다. 자서전만이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쓴 책에서 ‘남’의 이야기만 한다면 그건 자기계발서로의 가치가 아예 없다. 그 사람 당사자가 그렇다고 말한 게 아닌데 직접 그 사람을 만나본 것도 아닌 사람이 추측해 ‘이랬을 것이다’ 하는 말에 무슨 시사점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온 게 아닌 사람이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 깊이가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직접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는 공부법에 대해서 적은 내용이 깊이가 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사례’나 ‘예시’로 담는 건 당연히 설득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만 담은 책이라면? 그 책은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
3. 만능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 원칙을 깨닫게 된 것은 자기계발서보다 내 책 퍼펙트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단계에 다른 프레젠테이션 관련 서적을 검토하면서였다. 이는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서적을 꼭 써야겠다고 결심하는 동인도 되었는데, 그런 책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 방법만 익히면 모든 게 가능하다.
이런 게 어디 있나? 아무리 대단한 방법론이라도 그런 건 없다. 모든 프레젠테이션을 7장의 슬라이드로 끝내라고 한다든가, 큼직한 이미지에 키워드만 담는 슬라이드여야만 좋은 슬라이드라고 하는 그런 책들. 당장 우리의 실무에만 적용하려고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렇게 ‘이 방법으로 모든 게 다 가능하다’ 부류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 책은 무조건 걸러야 한다.
과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책 중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있다. 실제 이 책을 읽고 나는 2개월 넘게 책에 나온 방법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생활 자체가 망가져 원래의 사이클로 돌아오는데 또 두 달 넘는 시간을 써야만 했다. 사실 제목 자체가 그럴듯하고 ‘새벽’ ‘아침’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책을 손에 쥐게 하는 데까지 충분했다. 필자가 바라는 게 그런 거였을까? 어찌 되었든 내가 구매한 책으로 인세를 벌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에겐 각자에 맞는 ‘생체리듬’이 있다.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를 파악하고 그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라는 말은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이란 말은 모두가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같이 새벽까지 일이 잘되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게 고된 사람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솔루션이다.
배 아플 때는 소화제를 먹고, 머리가 아플 땐 두통약을 먹어야 한다. 한 가지 솔루션으로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따위는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즉 거대한 원칙이 있고 그걸 각자의 삶에 조금씩 변형해 적용할 수 있어야 진짜 솔루션이 된다. 한 가지 솔루션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저자가 1년간 최근 책을 낸 개수가 여러 권이라면 의심하라
어떤 저자가 전업 작가라 하더라도 1년에 5권 이상의 책을 써서 출간했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3달도 되지 않는 동안 한 권의 책을 완성한 셈이다. 초고와 퇴고의 과정에 비슷한 시간을 쓴다고 가정하더라도 한 달 반에 한 개의 거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즉, 너무 자주 책을 내는 사람들의 책은 걸러야 한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도 ‘책’이라는 결과물을 1년에 수 권 넘게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다음의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남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차용해서 제대로 된 시사점 없이 뒤죽박죽 이루어진 짜깁기 서적
- 과거 자기의 책의 내용과 수없이 겹치는 자신의 결과물 짜깁기 서적
- 제대로 된 고찰과 검증이 없이 시사점이 없는 서적
- 자신의 이름만 빌려주고 타인들이 아웃 소싱한 서적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된 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내 경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1에서 시즌2를 내는 데 있어 5년이나 걸렸는데, 책을 개정 증보하기 위해서 당위성을 확보할 만큼 강력한 이론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매직 템플릿 가이드’라는 이론을 끝내 생각해 내지 못했다면 나는 개정판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부분 외에도 예시도 바꾸고,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도 추가했지만 그게 새로운 책을 낼만큼의 임팩트가 없다면 쓰면 안 된다. 독자를 향해 장난을 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이라는 게 ‘이제 써야지’라고 앉아서부터 쓴다기보다는 평소 생활에서 꾸준히 고민하다 빠르게 글을 써 내려 가는 과정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물리적인 한계 상 1년에 아주 여러 권의 책을 써내는 저자라면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만약 수년간 그렇게 1년 평균 4–5권의 책을 낸다면 더 볼 필요도 없이 걸러도 되고.
5. ‘구매 서평’이 아닌 비구매 서평의 개수가 많다면 걸러라
책을 구매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타인의 서평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호평이 많으면 책을 구매하는 빈도는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시는가? ‘마케팅’이란 이름으로 책을 읽지도 않은 서평들이 잔뜩 넘쳐난다는 사실을.
국내 주요 서점 사이트에서는 서적을 구매한 사람이 서평을 쓰면 서평에 ‘구매’라는 마크가 붙는다. 즉 ‘구매’라는 말이 안 붙은 후기는 직접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의 후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책을 쓴 사람이 지인이거나, 책의 내용에 너무 감명을 받아서 같은 서평을 다양한 서점 사이트에 복붙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라도 억지로 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구매 서평보다 비구매 서평의 수가 몇 배나 더 많다면 과연 그게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이라고 볼 수 있을지?
앞으로 책을 구매하는 데 있어 서평을 참고할 생각이라면, ‘구매’ 마크가 있는 서평만 골라서 보도록 하자. 물론, 구매 서평이 비구매 서평 개수보다 한참 모자라는 경우라면 그 책을 걸러도 좋다. 얼마나 내용으로 자신이 없었으면 가짜로 서평을 도배하겠는가?
마치며
아무리 별로인 책에서도 어쩌면 나만의 보석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과 확률의 싸움이다. 90%의 확률과 0.001%의 확률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단순히 돈 몇 푼 잃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졸작을 만나 그 책을 끝까지 참고 읽었는데도 얻는 게 하나도 없다면 소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셈이 된다.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