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앱 낚시에 분노한 글램 대표 “내가 만들어서 바꾸겠다”
이승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재원: 소개팅 앱 ‘글램’으로 잘 알려진 회사 큐피스트 대표 안재원입니다.
이승환: 어쩌다 소개팅 앱을 만든 거죠?
안재원: 첫 아이템은 친구와 알람을 공유하는 서비스였는데, 1년 만에 망했어요. 망할 때 깨달았어요. 제가 준비한 건 알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서비스였다는 걸… 제시간에 일어난 걸 알려주는 것, 자기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는 것도 다 연결이잖아요. 그래서 알람 앱을 만들면서도 데이팅에 되게 관심이 많았었어요. 소개팅 앱도 많이 써봤고요.
이승환: 소개팅 앱 써보니 어땠습니까? 잘 꼬셨나요?
안재원: 아뇨, 화만 잔뜩 났어요.
이승환: 왜요? 돈은 지르는데 매칭이 안 돼서?
안재원: 데이팅 앱 회사 다니는 후배한테 대놓고 물어봤어요. 왜 이리 매칭이 안 되냐고. 알고 보니 1달 이상 접속도 안 한 여성 유저가 노출되었던 거예요. 그 사람에 낚여 헛돈 쓰던 거죠. 그런 예쁜 유령 유저들로 외로움을 자극하는 게 말이 되냐,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이승환: 그렇다고 직접 만들 것까지야…
안재원: 제가 건대 총학생회장 출신인데, 선본 슬로건이 ‘낭만건대’였어요. 대학생활에서의 낭만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축제 때 남녀 500 대 500 미팅까지 해봤어요. 대학 생활에서 취업도 중요하지만, 연애도 그렇잖아요. 나중에 대학 생활을 떠올렸을 때 취업에 고군분투했던 게 떠오를까요,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를까요?
2년간의 삽질, 리그오브레전드 소개팅 앱으로 1위 소개팅 앱 되기까지
이승환: 초기 개발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이나 이런 건 있나요?
안재원: 모든 게 다 힘들었죠. 백엔드 개발자, 앱 개발자가 있는데, 둘 다 백엔드와 앱 개발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다 공부하면서 시작했죠. 전 나머지 다했습니다. 어릴 때 SES 빠돌이였어서, 그때부터 웹디자인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글램의 UX디자인까지도 담당했죠.
이승환: 돈은 다 어디서 벌어서?
안재원: 처음에는 제 보증금 뺐어요. 그동안 친구 집에 얹혀살았죠. 그걸로도 부족하니 연대 보증으로 은행 대출도 받았습니다. 또 제가 웹디자인 프리랜서 뛰고 그랬죠.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돈이 없어서 바둑이 사이트 디자인도 해주고 그랬어요. 1주일 밤 새우고 200만 원 받고…
이승환: 출시하니 반응이 어떻던가요?
안재원: 1년 만에 안드로이드만 출시했는데 진짜 반응 없더라고요. 그래서 iOS도 만들었는데, 여전히 장사는 하나도 안 됐어요. 그냥 다 지인 파티였어요. 사용자 200명 정도 됐나? 다 아는 사람이다 보니 매칭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됐습니다(…) 외모랑 위치 다 맞춰 놨으니…
이승환: 그래서 또 접을 준비를 했나요(…)
안재원: 다른 서비스보다 우리 서비스가 UX도 좋은데 왜 안 될까… 마케팅하는 후배들에게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조르면서 마케팅 노하우들을 습득했습니다. 그러다 ‘소개팅 계의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콘텐츠가 빵 터졌어요. 글램 등급이 롤처럼 다이아, 골드, 실버, 브론즈로 나뉘어 있는 게 먹혔던 거죠. 이후 사용자들이 재미 삼아 자기 얼굴 사진 올리며, 사용자가 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명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를 팔에 새긴 이유
이승환: 회사 이야기도 좋지만, 대표님 본인의 연애는 어땠습니까.
안재원: 저는 여자는 지켜줘야 하고, 뭐… 결혼 안 할 거면 연애도 하면 안 된다는, 보수적 관점을 가졌었어요. 그래서 25살 때까지 한 번도 연애를 못 했어요. 이 생각을 바꾸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근혜가 틀렸다는 걸 몰라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틀렸다고 하면 내 모든 과거가 부정당하니까 지지하는 거잖아요.
이승환: 지금은 어떤가요?
안재원: 지금은 아니죠. 저부터가 다양한 관계와 사랑을 긍정했기에, 지금의 큐피스트 비전이 세워진 거죠. 이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왜 나는 이 일을 했고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저는 외로움에 대한 트라우마가 정말 강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집에서 컴퓨터만 했어요. 고독이 응어리졌고, 제 연애는 못 하고 남 소개팅만 시켜줬죠.
이승환: 왜 본인은 연애 안 하고, 남만 시켜준 거예요?
안재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버려질까 봐… 지금 얼굴도 성형한 거예요. 다 고쳤어요. 그런데 살펴보니까 외로웠던 거, 남들 미팅 주선한 거, 소개팅 앱을 만든 거, 이게 다 하나였던 거예요. 내가 내 과거의 외로움을 채우지 못해서 계속 이러는구나… 그래서 창립자들과 이야기했어요. 내가 이런 상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냥 소개팅만 시켜주는 회사로 남고 싶지 않다, 이런 외로움을 해소해주고 싶다…
이승환: 그러니까 뭐래요?
안재원: 다들 동의해 줬어요. 서비스는 잠시뿐이고,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려면 우리가 왜 일하는가에 대한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 과정에서 엄청 치열하게 긴 시간 이야기했어요. 외로움은 뭘까,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렇게 반년 만에 사명을 만들었어요. “Satisfy the desires of love(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예요. 제가 팔에 문신을 새기면서 바꿀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돈 버는 소개팅 앱으로 남지 않겠다: 모든 사랑의 모습을 수용해야
이승환: 최근 글램에서 무료화를 외치던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안재원: 부분적으로 무료화한 결과 결제 유저가 사람이 거의 절반으로 줄며, 매출액도 30% 이상 깎였습니다. 몇십억이 날아간 거죠.
실제 대표가 등장한 무료화 광고. 100만 뷰지만 혀 짧다는 댓글만 가득(…)
안재원: 그렇진 않습니다. 구성원들 모두 매출이 떨어지는 걸 감수하자고 동의했어요. 큐피스트는 소개팅 앱만이 아닌 외로움을 해결하는 회사로 가야 하고, 그러려면 돈보다 매칭이 잘 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이승환: 그러면, 큐피스트에서 사람 뽑을 땐 어떤 걸 많이 보세요?
안재원: 사명감이요. 직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큐피스트의 비전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면접 때 이런 걸 많이 물어봐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이승환: 대표님이 생각하는 사랑의 미래는 어떤 모습입니까?
안재원: 저희 사무실에 걸린 그림을 보세요. 사람과 로봇이 함께 있어요. 인종을 초월한 모습이 있고, 다자간 연애의 모습이 있죠. LGBT는 물론이고, 로봇과 사람이 함께 있어요. 이 모습이 저희가 지향하는 모습이에요. 관계와 사랑에 있어 모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거죠.
이승환: 그러면 글램 앱에 LGBT 기능은 안 넣습니까?
안재원: 준비 중입니다. 물론 프라이빗 이슈를 잘 지켜드려야 하기에 시간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이승환: 매출이 또 깎이겠는데요… 어쨌거나 이 세상에 호모포비아라는 게 꽤 존재하고 그 인간들이 글램을 쓰지 않을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요?
안재원: 그게 무서워서 저희 비전을 버릴 순 없습니다. 젠더관은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승환: 말씀을 들어보니, 사랑이라는 게 꼭 연애나 결혼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는 건가요.
안재원: 그렇죠. 사랑을 정의하기 되게 힘들어요. 사랑을 정의하는 순간 제한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저 그림에도 “DO NOT DEFINE”을 쓴 거예요. 연애는 사랑의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해요. 누군가에겐 그리 잘 맞는 방식이 아닐 수 있죠. 저는 사랑에는 굉장한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걸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승환: 그럼 조직 내부에도 구성원의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안재원: 네, 채용할 때 젠더관도 물어봅니다. 소수자 혐오는 물론이고, 남성 혐오,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어도 안 되죠. 특정 카테고리의 누군가를 혐오하는데, 어떻게 사랑과 관계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겠어요. 또 남녀 성비도 따집니다. 서로가 볼 수 있는 관계가 너무 다르니까요.
어덜트 토이 시장에 진출한 이유: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 보내고파
이승환: ‘외로움을 해결하는 회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재원: 저는 외로움을 진화의 산물이라 생각해요. 외로운 사람들이 번식하고 유전자를 남기죠. 또 인간은 더 나은 짝을 만나려 하는데, 그게 참 힘드니까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죠. 서로 좋은 사람만 찾다 보니, 사랑의 빈부격차는 부의 빈부격차보다 심각하다고 봐요.
이승환: 지옥이네요…
안재원: 저는 굉장히 화가 나요. 진화에 따르면 인간은 외롭고 행복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큐피스트는 그런 걸 해결하고 싶어요. 사랑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짚신도 짝이 있다’ 같은 어쭙잖은 희망 고문이 아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로봇과 사랑할 수도 있죠. 그 첫 스텝으로 만든 게 섹스 토이 브랜드 ‘로마(LOMA)’예요. ‘나를 사랑하자’는 ‘Love myself’의 줄임말이죠.
이승환: 섹스토이라니 좀 뜬금포인데요.
안재원: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와 섹슈얼리티에 솔직해지는 것만큼, 사랑에서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로마가 자위의 인식을 바꾸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딸 친다”, 이거 좀 음지 느낌이잖아요. “마스터베이션은 나쁜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야.” 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요. “딸 친다”고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해라, 로마해라, 오늘 밤에 로마하고 자라, 어제 로마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당연하게 만들고 싶어요.
이승환: 섹스토이가 요즘 젊은 애들한테는 많이 받아들여진다고는 해도, 회사 이미지에 약간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이런 부담도 클 것 같은데요.
안재원: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섹스 토이가 좀 음지의 뭔가로 여겨지잖아요.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인간의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소개팅, 토이, 더 나아가면 로봇이 될 수도 있겠죠.
이승환: 토이나 로봇보다 AI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육체적 교류가 아니라 감성적인 영역도 있잖아요.
안재원: AI 테크트리를 타는 방향도 있죠. 하지만 AI는 저희 같은 스타트업이 가기 힘들다 생각했어요. 그보다 하드웨어를 잘 만들고, 기술기업의 AI를 붙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승환: 미션도 좋지만 기업도 돈을 벌어야죠.
안재원: 네, 저희도 생존만을 위해 살았던 때는 생존 그 자체가 미션이었죠. 하지만 그 단계를 벗은 지금은 사명이 먼저입니다. 그렇다고 섹스 토이의 시장성이 나쁘지도 않아요. 1인 가구와 잘 맞고, 한국 사회의 개방성도 커지고 있으니까요.
사랑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기업이 목표
이승환: 회사 안에 일하는 법이 많이 붙어 있어요. 굉장히 자유로운 회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부는 꽤 빡빡하게 돌아가나 보네요.
안재원: 업무는 자유롭게 하는 편입니다. DO&DON’T에서도 DON’T를 중요하게 여겨요.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는 거죠. 대신 KPI 같은 성과는 원대하게 설정하며 지키려 합니다. 사명도 실질적인 성과에 기반해야 달성 가능합니다. 스케일업의 기본은 정성을 정량으로 바꾸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목표는 측정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저희의 철학 중 하나입니다.
이승환: 연애시장에서 성혼시장으로 넘어가는 곳이 많은데, 그쪽으론 별로 관심이 없는 건가요?
안재원: 현재는 관심이 없습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관계를 이어주는 데 관심이 많아요. 한국을 벗어나 우리의 철학을 글로벌에서 펼칠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좋은 고급 인력을 많이 모셨어요.
이승환: 그렇다면 앞으로 큐피스트에서 어떤 일을 펼치고 싶습니까?
안재원: 사랑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이를 위해 3가지 혁신을 꿈꿉니다. 먼저, 인식의 혁신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미디어에 의해 너무나 쉽게 정의됩니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부터 시작되죠. 하지만 실제 사랑은 그보다 훨씬 방대하고 다양한 모습이죠. 두 번째가 대상의 혁신, 남녀만이 아니라 LGBT도 있을 수 있고 로봇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마지막은 관계의 혁신, 관계는 연애와 결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외로움을 없애나가는 게 저희의 비전입니다.
이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안재원: 과거 인류의 화두가 생존의 의식주였다면, 앞으로 인류의 화두는 사랑과 관계입니다. 인스타그램 피드와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많은 이가 외로움과 고독, 우울로 고통받습니다. 과거 배고픔을 고민하던 인류가 이젠 배부름을 고민하듯, 외로움을 고민하는 현 인류는 앞으로 관계의 과다를 고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소개팅 앱’ 회사가 아닌 사랑의 미래를 만드는 회사로 거듭나겠습니다.
※ 해당 기사는 큐피스트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