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가 스타트업과 함께 베트남에 가기까지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전응식: ‘칸타빌’로 잘 알려진 코스닥 상장사 대원의 대표이사 전응식입니다. 메인은 건설, 부동산 개발이고, 실적은 작년 기준 매출액 3,000억 정도 됩니다. 최근에는 한국 회사, 스타트업들과 협력해 베트남에 적극 진출 중입니다.
리: 대형 건설사가 스타트업과 손잡고 베트남 진출이요? 뭘 벌이는 건가요?
전응식: ‘오픈더테이블’이란 회사와 F&B 사업을 진행해요. 공유주방 서비스 ‘키친서울’을 운영하며 자체적으로 만든 10개 이상의 외식 브랜드를 배달해주는 곳이에요. 베트남 진출을 이야기하다가, 일단 숙성 돼지고기집 하나 내는 걸로 작게 시작하기로 했어요.
리: 베트남 한식 엄청 잘 팔리지 않아요? 한인 수요 장난 아닐 건데…
전응식: 호찌민과 하노이 교민이 18만 명이니 적지는 않죠. 하지만 장사 잘되는 곳은, 90% 이상 베트남 사람이 와요. 결국, 우리가 베트남에 진출한 인더스트리는 모두 다르지만, 어느 업종이든 한국 사람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와야 한다고 봅니다. 병원, F&B, 휴대폰 수리, 모두 마찬가지죠.
리: 병원이랑 휴대폰 수리도 진출했나요?
전응식: 네. 휴대폰 수리는 애플의 공식 서비스센터인 앙츠와 함께 진출했습니다. 베트남도 아이폰 많이 쓰니까요. 병원은 코스닥 상장사인 서울리거와 쁘띠 성형, 그러니까 보톡스나 필러를 놓는 병원을 세웠어요.
리: 한국 시술이면 베트남에서 고가로 여겨질 텐데… 부유층 대상인가요?
전응식: 아니오, 한국보다 싸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부자들이 아닌, 한국 미용에 관심 있는 얼리어답터가 오는 거죠. 이들은 돈이 비싸도 돈을 많이 써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객단가를 더 떨어뜨리고, 더 많은 사람이 오도록 해야겠죠.
리: 정말 다양한 산업을 건드리고 계시는군요.
전응식: 인더스트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보는 건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베트남 내수 시장을 이끌어갈 10대 후반에서 20대에 이르는 베트남 신소비자 계층입니다. 일종의 스타트업이니, 당연히 처음에는 실패가 더 많겠죠. 하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시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성공확률도 높아지겠죠.
다낭에서 여의도 사이즈를 매립하며 베트남 지도를 바꾸다
리: 왜 그 수많은 시장 중 베트남에 꽂혀 있나요? 다른 나라도 많은데 말이죠.
전응식: 우리 대원이 베트남에 진출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만큼 다른 시장보다 잘 아는 시장이니까요.
리: 그렇게 따지면 한국은 훨씬 잘 알지 않습니까?
전응식: 열심히 칸타빌 아파트 잘 짓고 있잖아요. 그리고 한국은 이미 새로운 비즈니스가 들어갈 틈이 많지 않아요. 서비스의 질 만큼 사람들 눈높이도 높아서, 투자금도 많이 듭니다. 반면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라 아직 비어있는 시장이 많습니다. 현재 베트남 국민들의 기대치보다 조금만 높게 만들어도 프리미엄급으로 보이고, 한국보다 훨씬 적은 투자금이 듭니다. 투자 대비 효율은 그만큼 높을 수 있죠.
리: 20년 전 베트남에는 어떻게 진출한 겁니까?
전응식: 진출은 2001년이지만, 검토는 1990년대부터 했죠. 한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며 제조업들이 해외공장을 많이 검토했어요. 주로 중국으로 많이 나갔고, 저희 섬유공장은 베트남으로 가게 됐죠. 섬유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부동산 개발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어서, 한국 기업 최초로 베트남에 일반분양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리: 음? 대기업들 꽤 많이 진출했을 텐데, 대원이 최초라니 의외네요.
전응식: 비슷한 시기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2006–2007년 해외개발 붐이 일며 많이들 진출했죠.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가 일어나며 90% 이상 말아먹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베트남에서 계속 건설사업을 하는 회사가 적진 않습니다만, 저희처럼 시행을 다 하는 업체는 많지 않죠. 다행히 저희는 일반적인 건설사처럼 PF(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 이 경우 아파트와 이후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줌)로 무리해서 돈을 끌어다 쓰지 않았기에,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리: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올리다 보니, 이제 베트남에서의 신사업에도 욕심이 생긴 건가요?
전응식: 저희가 2006년부터 다낭에 신도시를 만들었어요. 총 63만 평이니 여의도의 3/4 정도죠. 이 중 대부분은 바다를 매립한 땅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를 바꿀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였죠. 이 중 1차 매립 부지인 23만 평, 전체의 1/3 정도를 끝낸 후 프로젝트 전체를 매각했습니다.
리: 다낭이면 엄청난 프로젝트였겠군요. ㄷㄷㄷ…
전응식: 지금은 상상 못 하겠지만, 당시 다낭에 한국 교민은 두 자릿수에 불과했습니다. 국제공항도 낡은 2층짜리 초등학교 같던 곳에 일주일 국제 편이 전 세계에서 50편도 안 됐을 거예요. 지금은 한국-다낭만 주 320회 이상 뜹니다. 한국 관광 가이드만 1,200명이 넘고, 다낭을 찾는 관광객이 연 80만 명이에요.
앞으로의 베트남, 1990년대 한국처럼 폭발적 소비 성장이 일어난다
리: 그러면서 베트남에 제대로 진출해보자… 란 생각을 하게 된 거군요.
전응식: 15년 이상 베트남을 지켜보며 인구와 소득 변화에 주목하게 됐어요. 지금 베트남의 1인당 GDP가 2700불 정도예요. 한국이 1987년 3,000달러를 넘었거든요. 그러니 지금 베트남이 한국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 본 거죠. 그래서 아파트 공급도 한국의 1980년대 후반에 맞췄어요. 프리미엄급이 아니라 중산층, 화이트칼라 맞벌이를 위한 아파트를 공급했죠.
리: 갑자기 한국의 1기 신도시 공급이 떠오르는군요.
전응식: 네, 굉장히 유사합니다. 지금 베트남 부동산이 뜨는 것도, 1기 신도시 이전 공급 부족으로 한국 부동산이 뜬 것과 비슷하고요. 또 내년에 입주할 아파트를 호찌민에 짓는데 아마 7,000만 원에서 1억 정도에 공급될 거예요. 이 정도면 중산층이 은행 빚을 끼워서 살 수 있는 가격이거든요.
리: 트렌드를 잘 읽으면 건설업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굳이 타 산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응식: 한국이 1977년 국민소득 1,000달러가 넘고, 1987년 3,000달러가 넘었습니다. 1970년대생은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안 된 시대 태어나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경제성장을 경험하며 소비를 주도했죠. 소비도 습관인 게, 돈 안 쓰던 사람들이 돈이 생겼다고 돈을 막 쓰지는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여유가 있으심에도, 항상 불 안 끄고 다니면 뭐라 하시지요. 전쟁을 겪은 세대라 절약이 몸에 익은 겁니다.
리: 하긴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소비에 자유롭죠.
전응식: 네. 한국은 1970년대 전후 태어난 세대가 소비를 주도했죠. 경제가 성장하며 중산층이 탄탄해졌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한국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잖아요. 1990년대 오렌지족이 부정적으로 비쳤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 세대를 통해 소비 시장이 커지는 것을 상징하기도 해요. 생산기지가 소비시장이 되며, 공장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간 거고요.
리: 중국도 최근 생산기지에서 소비시장이 되고 있네요.
전응식: 중국도 1990년대 생을 주링허우(90后)라고 하잖아요. 이들이 2000년대, 2010년대에 성장을 맛보며 소비를 늘린 거죠. 지금 중국이 소비시장이 되며 공장들이 해외로 나가고요. 베트남도 같을 거로 추정합니다. 2000년대 생이 주 소비 계층이 되는 2020년 전후 소비시장이 폭발적으로 늘 거라는 거죠. 우리는 주택을 전문으로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는 한국의 기업, 스타트업과 손잡고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가려는 거예요.
베트남 진출하는 스타트업, 함께 하며 적극 지원할 생각
리: 대원 정도 규모면 신규사업팀 꾸려도 되지 않아요? 다른 기업에서 돈 많이 주고 스카우트해도 되고.
전응식: 큰 기업에서 하면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안 됩니다. 스타트업들은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부딪히잖아요. 큰 기업에서는 본사 투자 좀 더 받을 생각부터 하겠죠. 그리고 저희 전문 영역이 아니면, 잘하는 팀과 같이 가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고 봐요. 저희는 베트남을 잘 아니까, 백그라운드만 지원하는 게 맞는 거죠. 저희는 베트남을 하나의 큰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이런 협업 모델을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봅니다.
리: 합작 형태 외에 투자도 진행하고 있나요?
전응식: 지금 몇몇 회사, 금융기관들과 함께 500억 정도의 베트남 소비시장, 또는 뉴비즈니스 펀드를 조성해요.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구성될 거고, 베트남 관련 비즈니스의 시리즈 B나 시리즈 C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최근 베트남의 카톡이라 할 수 있는 ‘잘로’가 유니콘이 되며 시장의 많은 관심을 받거든요. 원래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가 많이 주목받았는데, 요즘 투자가 과열되며 베트남으로 관심이 이동해요.
리: 사무실도 지원해줍니까?
전응식: 저희가 호찌민에 공유 오피스 ‘퍼블릭오피스(Publik Office)’를 운영하니 그것도 가능하지요. 처음에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임대가 잘 돼서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확장해볼 계획입니다. 병원, 학교, 공유 오피스, 다 어찌 보면 수익형 부동산입니다. 결국 부동산도 콘텐츠를 붙여야 가치가 커집니다. 요즘 한국도 다양한 시도가 있는데, 성장국가에서는 더욱 큰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니 펀드 조성도 생각 중입니다.
리: 다른 산업 건드리는 만큼, 건설도 꾸준히 진행 중인가요?
전응식: 그렇죠. 그래도 우리 대원이 제일 잘하고 잘 아는 게 부동산 개발이니까요. 아파트 공급뿐 아니라, 다낭 프로젝트 같은 장기 투자로 도시를 만든 경험도 있잖아요.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은 대규모로 투자합니다. 최근에 LG가 진출한 베트남 제3의 도시 하이퐁은 10만 평, 호찌민에서 2시간 거리인 ○○○는 50만 평을 개발 중입니다.
리: 대원과 함께 베트남에 진출하면 어떤 부분을 도와주십니까?
전응식: 일단 저희가 자금을 같이 투자하니 사업하는 분들께 리스크는 많이 줄겠지요. 인허가, 오피스 등 여러 지원도 있지만, 일단 베트남을 좀 더 잘 이해하는 파트너와 시작하니 좀 더 부담을 덜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작이 반이라 생각하거든요.
리: 사업 자체에 도움도 주십니까?
전응식: 저희가 도와드릴 게 뭐 있겠습니까. 사업은 그 분야를 잘 아시는 분들이 알아서 잘하는 거죠. 그래도 20년간 저희 경험을 조금씩 나눈다면, 적게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처음에 헤매는 게, 능력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눈높이에 맞추며 우리 브랜드는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러면 결국 과투자가 돼요. 현재 베트남인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게 투자하는 게 합리적 투자죠.
리: 한국에서 스타트업하는 분들이 찾아와서, “나 베트남 가고 싶으니 투자해주십쇼” 하면?
전응식: 저희와 연관성이 있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죠. 다만 아이템보다는 사람을 볼 것 같긴 해요. 한국이 레드오션이라고들 하지만, 누군가는 또 포화 시장에서 성과를 내잖아요. 해외처럼 리스크와 변동성이 큰 곳일수록 아이템보다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리: 베트남 시장에서 잘할 것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전응식: 글쎄요. 전 일단 한국과 베트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편적으로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같은 젓가락 문화, 몽고반점, 유교 문화의 어른에 대한 존중, 높은 교육열… 국민소득 다르다고, 사람이 막 다르고 하진 않더라고요. 이 나라는 어떻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는 건 오히려 안 좋다고 봅니다.
리: 그러면 질문을 바꿔서… 베트남 신사업 잘하려면 이것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전응식: 음… 개발도상국 시절의 한국을 돌이켜보면 좋을 것 같아요. 1980–1990년대 한국의 사회문화 변화를 살펴보는 거죠. 예로 한국에 뷔페가 많았던 적도, TGI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많았던 적도 있잖아요. 이런 사회적 변화를 살펴보고, 할 수 있다면 중국의 2000년대, 2010년대 변화도 함께 나열해 보면 좋겠지요. 물론 모바일 시대 기술 변화를 염두에 둬야겠지만, 베트남도 인구와 소득에 따른 변화는 비슷할 거로 봐요.
리: 시장조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전응식: 흔히들 말하는 방법은 뭐든 도움이 되겠지요. 여기에 덧붙이자면 직접 경험해보길 권합니다. 특히 호찌민과 하노이는 너무나 다른 곳이니, 양쪽 다 생활해봤으면 해요. 문화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전응식: 개인적으로 한국의 젊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저는 바닥부터 회사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가업으로 이어 운영하잖아요. 기존에 없던 기업과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베트남 진출에 관심이 있는 대표님이라면 누구든 편히 연락하셨으면 합니다. 굳이 베트남이 아니더라도 편히 소주 한잔하자고 연락하셔도 좋습니다.
8월 17일 호찌민 퍼블릭 오피스에서 ‘스타트업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링 & 펀드레이징’ 세미나가 있습니다. 세미나는 무료로 진행되며, 대원 전응식 대표님과 김태원 사외이사님(인터뷰 보러 가기), 언스트앤영의 동남아 투자를 맡은 왕중식 파트너님이 함께 합니다.
문의는 퍼블릭 오피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니, 베트남에 관심 있는 분들은 편히 참석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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