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로 유명한 아름다운 도시 루체른에 스위스 최대의 만화 이벤트, <Fumetto>가 개최되었다. 올드타운과 루체른 호수를 따라 열리는 전시회 중 아주 특별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 지하 전시장에는 수많은 원화 대신 아이패드 여러 대가 줄지어 놓여져 있고, 관람객들 역시 너도나도 헤드폰을 쓰고 아이패드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다. 바로, <모션 코믹스>의 전시장이다.
모션 코믹스는 미국에서 등장한 만화 형태 중 하나로, 말 그대로 모션(움직임)과 코믹스(만화)의 합성어이다. 직역하면 ‘움직이는 만화’로 해석 될 수 있겠다. 다만 스스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iPhone이나 타블렛 위에서 펼쳐지는 ‘움직이는 만화’는 독자의 움직임과 결합하여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된다. 2000년도부터 꾸준히 발전해온 유럽과 미국의 모션 코믹스는 2013년 첫 전시회를 거쳐 2014년 <Fumetto> 페스티벌로 그 정점을 찍었다.
이번에 개최 된 전시회에는 <The Killer>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Submarinechannel Studio, 스위스의 Baptiste& Julien Milesi, Monde Binaire, 미국의 Daniel Burwen, 그리고 2012년 부천만화축제 BICOF에서 초청되었던 오스트리아의 Stu Campbell 등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모션 코믹스의 저자들이 참여하였다. 아래는 submarinechannel에서 만든 작품으로, 모션코믹스의 감을 잡을 수 있다.
지난 12일 토요일, 모션 코믹스 저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저자와의 대담’코너 이후 아주 운이 좋게도 CIA: Operation Ajax의 저자 Daniel Burwen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CIA: Operation Ajax는 1953년 이란의 지도자 Mossadegh의 암살을 임무를 받은 CIA의 얘기를 담은 모션 코믹스로, 실화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2012년도 Flurry App 과 Honoree 어워드 등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코믹스 부분에서 우승 및 파이널리스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작이다. 그와 나눈 모션 코믹스와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지면에 담고자 한다.
모션 코믹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민: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 및 사건을 다뤘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작품을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DB: 시나리오, 작화, 어플 개발까지 총 4년 반이 걸렸다.
민: 4년 반이라니! 진심인가?
DB: 정확히는 시나리오에만 2년이 걸렸다. 논픽션인데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다보니 시나리오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
민: 작화는 모두 수작업인가?
DB: 그렇다.
민: iPad를 코믹스를 전시하는 매체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DB: 가독성에 중점을 두었다. 독자가 만화를 읽으면서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를 원했다. 화면이 큰 iPad를 이용함으로써 모션 코믹스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민: 그렇다면, 모션코믹스는 정확히 무엇인가?
DB: 모션코믹스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만화다. 그 명칭 자체는 모션코믹스, 인터렉티브 코믹스, 그래픽 노블 등등 아직도 확실히 정의 내려지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모션이고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음악, 소리, 움직임 모든 것을 포함해서 모션이라고 부른다. 만화 자체의 움직임과 독자의 움직임 만나 진행되는 것이기에, 모션 코믹스는 반수동이다. 분명 만화보다는 능동적이지만, 애니메이션 보다는 수동적이다.
싸이… 아니, 웹툰을 아는가?
민: 한국에도 웹툰이라는 장르에 모션 코믹스가 종종 사용되고 있다. 혹시 ‘웹툰’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나.
DB: 아니, 처음 들어본다. 설명해줄 수 있나.
민: 웹으로 보는 툰, 즉 온라인 코믹스다. 현재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70%에 육박해서, 편리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웹툰이 기존의 종이만화보다 인기다. 한국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네이버’ ‘Daum’등의 종합사이트에는 따로 ‘웹툰’란이 있을 정도고, 요즘은 ‘레진코믹스’를 포함한 10여종의 신규 플랫폼이 생겨서 PC, 모바일 웹, 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서비스 하고 있다.
DB: 상당히 흥미롭다. 그렇다면 인터넷으로만 서비스 한다는 것인가? 오프라인으로 볼 수는 없나?
민: 다운로드를 하거나 출판된 형태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웹 베이스이다.
DB: 인기가 있다니 놀랍다. 그렇다면 수익은 어떻게 얻지?
민: 보통은 연재 처에서 회당 고료를 지불하고, 이후 출판이나, 캐릭터 상품을 통해 얻는다. 완결된 만화의 유료화도 포함해서.
DB: 그게 성공했다니 정말 놀랍다. 사실 미국에서도 만화는 그다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고, 콘텐츠 자체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의식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모션 코믹스’라는 단어 자체도 등장한지는 꽤 오래 됐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성공한 모델은 없다.
민: 미국이 그렇다니 처음 듣는 얘기이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의 ‘웹툰’ 일부분에서도 모션코믹스가 사용되고 있다.
DB: 오?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
민: ‘네이버’에서 연재되던 공포만화 시리즈 중에, 스크롤을 내리면 화면에서 손이 튀어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모션 코믹스’ 가 유명해진 것은 그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현재도 음악이나 소리는 종종 사용되고 있다. -그 예로, <본초비담> 2부, 마지막화 패수에 흘린 눈물과 파일럿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
DB: 매우 흥미롭다. 미국의 모션은 액션이 많은 만화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한국의 웹툰은 모션보다는 음악이 많이 사용하는 것을 알겠다.
역 인터뷰, 모션 코믹스를 아는가?
짧은 대담 이후, 그는 직접 자신의 아이패드를 쥐어주며, 읽은 다음의 소감을 듣고 싶어했다. (덕택에 지금부터는 문답이 거꾸로 됩니다…)
민: 상당히 흥미롭다. 일단 대화와 움직임이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점이나, 소리가 적제적소에 사용되는 것, 그리고 이렇게 세부 사항이나 (별 표시를 누르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세부 정보가 나온다) 전해지는 정보의 양으로 봤을 때, 일반 만화보다 훨씬 흡입력이 있다. 정말 연구를 많이 했고, 작품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겠다. 비디오가 들어가는 점도 재미있다.
DB: 고맙다 (웃음) 그럼 만화 자체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
민: 솔직히 말해도 되나?
DB: 물론.
민: 움직이는 역사책 같다 (웃음)
DB: 그럴 줄 알았다(웃음) 아무래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얘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역사적 이물에 관한 설명을 넣을 때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어플리케이션 개발 담당자한테 혼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한 내용인걸! 하면서 쟁취했다 (웃음)
민: 모바일기기가 상용화되면서 그를 통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이런 모션 코믹스라는 매체를 활용하면 상당히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DB: 그런가? 역시 성공한 모델이 있어 흥미롭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미국 만화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만약 미국만화가 한국에 진출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민: 최근 어벤져스 시리즈나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실사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의 DC코믹스나 마블의 영웅 스토리에 한국 독자들이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처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상용화 된다면 한국의 독자들이 정말 기뻐할 것이다.
DB: 긍정적이라니 다행이다. 역시 인터넷상에서는 경계가 없다는 걸 실감한다. 언젠가는 내 작품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한국을 찾은 유명작가의 아쉬움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작가들의 대담에 살짝 끼어들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지난 2012년 BICOF(부천 만화 축제)에 초청되었던 NAWLZ의 저자 Stu Campbell(이하 Sutu)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하니 그는 매우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NAWLZ는 interacive comic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그는 “사실 초청 받아서 갔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왜냐하면 내 옆에는 C.B. Cebulski(마블 코믹스의 저자)가 앉아 있었거든! 굉장한 귀빈 대접이었던 건 물론이고, 항상 통역이 따라다녀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게다가 BICOF에서 만들어준 전시장은 또 어찌나 멋지던지,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정말 만화를 사랑하는 것 같더라! 정말 즐거웠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iPad를 이용한 24부작 온라인 만화 NAWLZ의 저자답게 그는 ‘웹툰’을 알고 있었으며,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열정에 놀랐다고 말을 이었다. “만화 공모전이 열리는 것을 직접 봤는데, 가장 놀란 것은 작업 속도였다. 하루에 4장이라니!” Sutu와 다른 작가들은 하루에 한 장 작업하기도 벅차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한국에서 즐겁게 보냈던 시간에 비해 그 뒷맛은 씁쓸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벤트 기간 중 공동작업에 관심을 보인 수백 장의 명함을 받았고, 한국에서 돌아온 이후 그 주소들로 짧은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한국에서도 시험 중인 모션 코믹스
2000년대 이후 지난 십 수 년간, 한국만화의 대세는 스크롤 방식의 웹툰이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신규 디지털 플랫폼의 난립으로 인해 만화, 혹은 웹툰시장 내에서의 경쟁력을 위한 새로운 연출 방식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새로이 대두 된 것이 바로 ‘모션 코믹스’.
모션 코믹스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미국에서는 ‘마블’의 ‘인피니티 코믹스’를 예로 들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스마트툰”이라는 방식으로 연출적인 시도를 했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지난 2011년에 발매되었던 네이버 웹툰 <치즈 인더 트랩>의’보이스 웹툰’ 역시 이 보이스 드라마 CD에 만화의 장면을 삽입해 만든 모션 코믹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Daum’의 <0.0MHz>가 ‘무빙툰’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곰툰’의 <전설의 주먹>, <글로리힐>이 ‘모션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만화’가 서비스되고 있다.
한국 만화, 새로운 변화의 동력 얻을까?
사실 한국에는 웹툰이라는 매체가 생기기도 전에 모션 코믹스를 시도한 디지털 플랫폼이 있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4년전 창간되었던 온라인 만화 웹진 <N4>가 바로 그것이다. 현 거북이북스의 대표이자 당시 유명만화 편집자였던 강인선을 비롯해 오프라인 잡지의 기자, 평론가등을 영입했으며 다양한 독자층을 노린 콘텐츠의 유/무료 열람을 웹진형식으로 서비스하고자 했다.
콘텐츠에는 음악과 소리를 겸한 플래시 만화(모션 코믹스)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플랫폼 자체가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그 세를 다하였다.
2014년 현재, 국내에는 10여종의 신규 디지털 플랫폼이 난립하고 있다. 물론 이중에는 진지한 자세로 만화를 연구하는 ‘만화인’들도 있으나 투자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일부 사기꾼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인작가들을 상대로 부당한 계약을 시도하거나, 금전적, 사업적 문제로 서비스 중단을 했던 몇 플랫폼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와중에 지난 4월 10일, 마블과 DC 코믹스의 만화가 연재되는 미국 최고의 만화 어플리케이션 ‘코믹솔로지’가 서적계의 절대 강자 ‘아마존’에 인수된 것은 전 세계 만화계에 큰 이슈였다. 이렇듯, 만화 플랫폼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이다.
만화가 음식이라면, 매체는, 플랫폼은 그를 담는 그릇이다. 넘쳐나는 디지털 플랫폼 중 과연 마지막까지 깨지지 않을 ‘그릇’은 어느 것일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연출적 변화와 형태적 변화를 가져올지 두고 볼 일이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음식도 달리 보이듯이,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그릇 안에서 만화가 어떤 형태로 발전하여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될지 기대해본다.
*도움 주신 분: 전진석 /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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