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는 삼각함수가 삼각형에 관한 것인 줄 알았다. 원을 통해서 싸인, 코사인, 탄젠트를 정의하고 이후 좌표평면에서 이들 함수를 그리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그게 뭔 말인지 사실 잘 이해를 못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혼자서 수학 공부를 하다가 사실 삼각함수는 삼각형에 관한 게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 사이클(cycle)에 관한 것이며, 그래서 정의를 할 때도 원을 통해서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삼각함수의 함수별 주기를 달달 외우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서야 이 세상 여기저기에 삼각함수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빛, 소리, 무늬 등등. 수학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란 걸 그제야 알았다. 수학을 대학에 가기 위한 과목 중 하나로 공부했다가 대학에 와서야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조금은 엿보게 된 것이다.
대학교 때는 인문학(영문학, 정치철학), 사회과학(언어학, 그 외 정치학)을 전공으로 했다. 이게 내가 사는 세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몰랐다. 교환학생을 가고, 사회 경험을 하고, 이후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야 학문과 사회의 연결 고리를 깨닫게 됐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살아야 하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왜 택했는지, 어떻게 택할 것인지를 부단히 고민하는 가운데서 그런 연구들이 나왔다는 걸 가슴으로 느끼게 됐다.
그들 모두 절실했던 것이다. 양차 대전 이후 파시즘 연구, 전쟁의 원인에 관한 사회과학 연구가 쏟아져 나왔던 이유는 극단과 전쟁의 비극을 보았기 때문이고 이후 민주화와 경제발전 연구가 활발했던 까닭은 억압과 빈곤의 실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그렇게 자기가 속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소리 없는 싸움이다. 사람마다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학문은 그렇게 잘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을 이해가 되게 만드려는 집단적 노력이다.
여기까지 오고나서 드는 생각은 내가 어릴 때부터 받았던 교육이 다음의 세 가지를 좀 더 보완해주었더라면 더 재미있게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다. 달리 말해 내가 앞으로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다음 세 가지에 초점을 두고 싶다.
- 공부는 게임과 비슷하다. 스스로 퍼즐을 정의하고, 그 퍼즐을 푸는 과정이다. 학생들에게 사회현상에 대해서 무엇이 궁금한지를 묻고, 그걸 스스로 퍼즐로 만들고, 푸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읽을 때도 그렇게 읽도록 도와주고 싶다(사실 대학교 때 선생님들이 날 이렇게 가르쳐 줬던 것 같은데, 내가 부족했던 부분도 있다).
- 연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이 얼마나 많은 곳에 확대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자연을 볼 때나 사회를 볼 때나 그냥 보지 않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원리가 있다는 가정하에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책뿐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 마지막으로 앞의 두 가지를 할 때 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나누고 싶다. 종교인은 경전을 열심히 읽고 예식에 열심히 참여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신을 향한 마음, 즉 신앙이다. 마찬가지로 학문도 학습과 응용,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정이다. 배우는 즐거움, 발견하는 즐거움, 그런 걸 모르고 살 수도 있지만 알고 산다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롭고 아름답다. 학문의 근본인 철학(philosophy)의 그리스 원어인 ‘필라소피아(φιλοσοφία)’가 의미하는 바는 ‘지혜를 향한 사랑’이다.
한국 교육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들도 많다. 교사들도 우수하고,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뛰어나며, 학생들은 성실하다. 입시 경쟁은 비인간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다른 기득권을 통해 사회적 자원 배분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학문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부분에서는 취약하다.
고등교육에 와서도 남이 시키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스스로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서 학습하고 연구하는 훈련이 잘 안 되는 까닭은 공부가 퍼즐 풀기이자 패턴 찾기임을 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앎을 향한 애정임을 잘 몰라서가 아닐까 싶다.
일례로 얼마 전 지인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통계에서 한국인의 독서량이 세계 상위권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독서의 상당수는 교과서, 참고서 독서가 아닐까 의심한다. 정말 즐겁게 책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OECD 국가 중 우리는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도 최우수지만 그들의 삶에 대한 불만족도 역시 가장 높다.
이 나라가 공부만 많이 하는 나라가 아니라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아는 것이 즐겁고, 생각하는 것이 즐겁고, 그걸 나누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이 많은 곳이 됐으면 한다.
원문: Pursing the Endless 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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