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무엇일까? 브랜딩은 무엇일까? 마케팅과 브랜딩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마케팅은 매출 증대를 위한 여러 활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브랜딩도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까? 브랜드 컨설팅으로 25년 동안 밥벌이를 하며 마주한 이론적·실무적 고민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이름하여 브랜드 캔버스 3.0 개발 스토리!
59년간 변하지 않았던 브랜드의 정의를 재정의하다
먼저 마케팅과 브랜딩의 정의부터 한 번 살펴보자. 경영학 개론서에 등장하는 마케팅의 정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세 번이나 변화했다. 지난 30여 년간 ‘교환 개념’에서 ‘관계 개념’을 지나 ‘이해관계자를 포괄하는 총체적 활동’을 정의한 개념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브랜딩의 개념은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국마케팅협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가 1960년에 만든 브랜드 정의는 현재까지도 그대로다. 1950년대는 브랜드가 곧 상표인 시대였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내용이 21세기에도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필자는 1999년, 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6개월에 걸친 스터디 끝에 브랜드의 정의를 재정의했다. 미국마케팅협회가 가진 브랜드의 한계성을 극복해 영리 브랜드를 다시 정립하고, 지금까지도 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19년에 걸쳐 연구한 ‘브랜드 캔버스’
하지만 막상 브랜드 컨설팅을 하며 실무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문제를 보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브랜드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고 해서 현업에서 뛰는 이들에게 실무적인 도움을 주기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왜 우리나라에는 실정에 맞는 제대로 된 브랜드 기획 모델이 없을까?
고민 끝에 ‘이니스프리’를 직접 기획한 아모레퍼시픽 윤경희 브랜드 매니저와 함께 한국형 브랜드 실무 기획 모델인 ‘브랜드 캔버스 1.0(Brand Identity Circle)’을 2001년에 만들었다. 단순 분석 모델이 아닌 기획자 중심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 취지였다.
당시만 해도 브랜딩 컨설팅 회사에는 네이밍, 디자인 전략을 의뢰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브랜딩이 총체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까지 포괄해야 한다. 아쉽게도 브랜드 총괄 매니저의 역할을 컨설팅 회사에 맡기는 곳은 별로 없었고, 공들여 만든 브랜드 캔버스 1.0은 빛을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4년, 스타트업을 돕기 위해 브랜드 교육 및 코칭 활동을 하던 중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환경 자체가 달랐기에 스타트업에 맞는 브랜딩 전략을 찾고자 브랜드 캔버스 2.0(Brand Imagination MAP)을 새롭게 기획한 것이다.
지난 4년간 200여 건의 브랜드 코칭 및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캔버스 2.0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는 최근 환경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청년장사꾼, 브랜디, 온누리DMC, 시지온, 위스테이 같은 많은 스타트업 및 소셜벤쳐, 사회적 경제 기업 같이 브랜드 캔버스 2.0을 활용해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실무와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진짜 브랜딩 전략을 찾은 것이다.
브랜딩으로 사업 전략을 만들다, 시지온
대기업처럼 마케팅과 사업기획 부서가 없는 스타트업들이 ‘브랜딩’만으로 어떻게 비즈니스 전략을 찾아가는지 사례로 한 번 살펴보자. 가령 시지온의 경우, 소셜댓글서비스로 불리던 ‘라이브리’와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플랫폼인 ‘어트랙트’의 런칭으로 비즈니스 방향과 브랜드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시기가 있었다. 이때 전 직원이 원데이 워크숍에서 브랜드 캔버스 2.0을 활용해 ‘리액션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업의 정의를 찾아냈다.
시지온은 댓글을 서비스하는 회사가 아니라 ‘리액션 콘텐츠 기술회사’로 정의되며 모든 사업전략이 더 명확해졌다. 그뿐 아니라 ‘라이브리’와 ‘어트랙트’의 브랜드 설계도까지 브랜드 캔버스 2.0을 통해 탄생했다.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이었기에 실무자들까지도 모두 브랜딩 방향성에 맞추어 비즈니스 전략을 짜는 성장 기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시지온은 브랜드 캔버스의 가장 든든한 홍보대사가 되었다.
내부 합의점을 찾아 브랜딩 전략을 세우다, 더함
사회적 부동산을 다루는 더함의 경우, 신사업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는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이 달라 애를 먹었다. 그래서 먼저 원데이 워크숍에서 조직원들이 생각하는 ‘위스테이’의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브랜드 캔버스 2.0을 활용해 ‘위스테이’에 대한 브랜딩 아이디어를 하나씩 모아 나갔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자 “우리 브랜드는 이래야 한다, 저건 안 된다”라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워크숍이 끝날 즈음에는 브랜드 캔버스 2.0이 정성 들여 채워져 있었다. 이는 실제로 ‘위스테이’ 브랜드 런칭에 사용되었고, 결과가 좋아 1년 후 브랜드 설계도를 수정하는 작업을 한 번 더 진행했다. ‘위스테이’ 팀은 브랜드 캔버스가 어떻게 내부 구성원 간의 합의점을 도출하고, 이를 브랜딩 전략에 적용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대기업, 비영리 기관까지 수많은 조직이 브랜드 캔버스 워크숍 과정을 거쳐 갔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브랜딩 초보부터 전문가까지 모두가 충분히 소통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브랜드 캔버스 모델을 19년 동안 꾸준히 개선했다. 특히 브랜드 관련 용어가 영어로 되어 있어 정확한 개념 정립이 어렵다는 의견을 수렴해 한글화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2019년 4월, 브랜드 캔버스 3.0을 드디어 완성했다. 이와 함께 브랜드 캔버스를 활용한 5가지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25년 동안 브랜드 업계에서 한 우물만 파며 더 빠르고, 쉽고, 명확하게 브랜딩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해왔다. 브랜드 캔버스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브랜딩 모델보다 정교하며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모델이라 자신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소상공인도 모두 브랜딩을 통해 비즈니스 전략을 짜고, 사업적으로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브랜드 캔버스 3.0을 발판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영학, 마케팅을 몰라도 임직원과 함께 브랜딩 전략을 한 장에 정리할 수 있는 시간, 브랜드 캔버스로 놀러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