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측 정부”와 국가보안법
- “종북”의 탄생
- “종북”을 넘은 더 많은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서론이 길다 싶으신 분들은 3번부터 읽으시면 되겠고, 이정희의 “남측 정부” 발언이 불쾌하셨던 분들은 1번을 챙겨 읽으시면 되겠다.
이런 글을 쓸 때마다 항상 오해가 붙을까 말해두는데, 나는 북한이 싫다. 그리고 북한과 관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대선판의 이정희도 용서할 수 없다. 더불어 이정희와 관련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른바 “종북”도 싫긴 매한가지다. 헌데 이렇게 북한도 이정희도 “종북”도 싫은 내가, 어째 대선이 코앞으로 다다른 이 때에 “종북”을 까는 여론에 대해서는 좀 참아넘기기 힘들다. 특히 “민주당이 왠지 종북 같아서” 안 찍겠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되든 문재인이 되든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가 있게 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방식의 “종북”의 논리로 양 후보간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부당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종북”이 싫되 보다 ‘잘’ 싫어할 수 있길 바라시는 분들은 이 글을 부디 끝까지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1. “남측 정부”와 국가보안법
쪽팔린 얘기부터 해보자.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인가? 대다수는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48년 유엔이 대한민국을 승인할 때 “유엔의 감시에 의해 총선거가 치러진 지역에 대해” 합법정부로 승인하겠다는 조문을 붙였다. 당시 유엔 감시하 총선거가 실시된 지역은 38선 이남의 한반도였다. 유엔은 결코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로 대한민국을 승인한 적이 없다. 따라서 혹시나 대한민국이 북진을 하게 될 경우에도 ‘수복될’ 북측의 땅은 남한 땅이 아니라 ‘유엔군’의 땅이 된다.1) 이것 때문에라도 대한민국은 자신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강변’해야 했고, 그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발언권이 커지길 바래야 했다. 참으로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위 내용은 사실이다. 김일성이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이 짜증나지만(?) 사실인 것처럼.
NLL(북방한계선)은 북한이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인 걸까? 대다수는 당연히 그리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은 약간 다르다. 1953년 휴전협정 때 NLL이란 선은 남북간에 ‘조인’된 적이 없다. NLL은 유엔군이 전시기 북한과 어떤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따라서 NLL이 조약을 통해 합의된 선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2) 또 그래서 남북회담이 벌어질 때마다 대한민국 외교 당국은 서해의 분계선 문제를 북측과 합의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NLL을 더 강고하게 주장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국제법은 관습법이어서 실점유를 해놓는 것이 차후 협상서 유리할 수도 있고, 아닌 말로 누구 건지 애매하면 일단 잡아놓고 우리 거라 우기는 것이 이른바 ‘국익’을 위해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위 내용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어떻게든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주장하자는 것과, 저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불리할 ‘것 같기’ 때문에 ‘사실’들을 못 말하게 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잡아 가두자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문제다.
60년간 이어온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한민국에 불리하고 적을 이롭게 할 ‘것 같으면’ 처벌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보법 제7조 1·5항의 찬양고무죄다. 사상의 자유는 어느 나라건 조금씩 제약하지만, 저렇게 적에게 이로울 ‘것 같아서’ ‘사실’ 주장을 처벌하는 예는 개명 선진국에는 없다고 봐도 좋다.3) 외국도 치안법이 있지만, 그 법들은 “구체적인 행동과 정부 전복의 가능성”이 있을 때에만 사실 주장을 처벌한다.4) 우리나라에 그 기준은 판검사의 ‘마음’이다. 그런 일부 판검사의 ‘마음’에 의해, 생도들에게 북한사를 가르쳤던 모 해군국사교관은 김일성의 항일운동경력 ‘사실’이 생도들에게 위험’할 것이라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됐다.5) 나도 “종북”이 싫지만 이런 초딩스런 독소조항을 가진 국가보안법이 재개정되지조차 않고 있는 건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자체도 정파적이며 그렇게에 그런 주장을 임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내가 싫어하는 북한의 그것과 가장 닮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법이 왜 아직도 안 없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승만 박정희 때문에? 아니다. 그런 처벌기준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확신범조로 맞다고 생각하는, 성찰하지 않는 국민들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법이 버텼을 리가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대한민국이 “남측 정부”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여러 ‘사실’들이 쪽팔리게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저런 쪽팔린 ‘사실’들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애국할 수 있다는 확신과 방안을 갖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종북”이 싫은 이들 중에 혹시 저런 ‘사실’ 주장도 왠지 적에게 이로울 것만 같아 잡아가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더 읽을 것도 없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민가협의 보고서를 통해 자세히 정리된, 저런 ‘사실’ 주장 만으로 사람을 가두고 고문하여 폐인으로 만든 수많은 사례들을 제발 한번이라도 읽어보시기를 당부드린다.6)
2. “종북”의 탄생
“종북”에 치가 떨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종북”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일까? “종북”의 기원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종북”이 지금처럼 별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종북”을 보기 위해 이전의 역사를 보아야 할 이유이다.
흔히 진보를 “종북”으로 등치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헌데 예전부터 진보가 “종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전쟁 치른지 얼마 되지도 않은 1950년대에 평화통일을 이야기하고, 보도연맹 학살자 신원복구를 이야기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다만 이승만의 반공이 “북한에게 이겨야 하니 닥치고 내 말을 따라”였다면, 조봉암의 반공은 “북한에게 이기려면 사회가 더 강해야 하고, 사회가 강하려면 우리가 더 민주적이게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북한에게 이기기 위해서라도 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7) 그리고 그 정도 얘기에도 이승만은 조봉암을 목졸라 죽였다. 현재 종북으로 찍힌 2012년의 통진당이 ‘공산당에게 이기는 진보’를 구상한 1950년대의 진보당을 반의 반만이라도 닮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단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60년대에 야당이 군사독재에 맞서 주장했던 것도 이런 ‘승공의 민주화’라는 논리였다. 헌데 이런 구호로 60-70년대의 상황이 돌파되지 않자, 싸우던 세력들은 보다 극단적인 방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북이 싫지만 북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민주화하자’라는, 다분히 상식적이고도 말랑말랑했던 구호로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대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네들이 찾은 답은 이러하다. “시발 우리는 북한이 좋다!”
이 때부터 나온 “민중”이란 말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은 내 나라가 아니며, “대한민국”의 건국은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그 실패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민중”은 그에 맞서 이 나라를 성공의 역사로 다시 바꿔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전제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심지어 당시 이런 생각을 ‘정권에 세뇌당한 일부’ 외에는 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름이 “민중”이었다.8) 실제 사람들이 그리 생각했을지를 떠나서, 그런 강경한 주장들이 마치 일리있게 들릴 정도로 당시 박정희, 전두환의 공권력과 각종 고문, 의문사가 횡행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실패한 “대한민국”에 맞서 “민중”이 찾기로 된 국가의 이상이 다름아닌 ‘통일된 민족국가’였다. 거기에 북한이 끼어있었음은 물론이다.
민주화운동 내의 종북의 논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그 시절은 대부분 “대한민국”이란 말을 싫어하고 “민족”이란 말을 쓰기 좋아했다. 물론 그런 민주화운동 또한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했겠지만, 적어도 그 때 당시는 “대한민국”이란 말은 입밖에도 꺼내기 싫었던 것이다. 국가를 국가로 부르지 못하고 다른 “민족”이란 상상의 나라로 바꾸어 부르는 관행이 이 때 정착된 셈이다.
이렇게 당시의 “종북”이 겨냥했던 것은 진짜 ‘북한’이 아닌 바로 ‘현 체제의 부정’이었다. 이것이 이 시기의 “종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사실 당시의 운동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어떤지 잘 알지도 못했다. 중요한 것은 군사독재로 쩔어있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부정과 그로부터 세워질 민중의 각성이었다. ‘공산당을 이기기 위해 민주화하자’는 승공의 논리가 지금 눈으로는 더 이성적이고 말이 되지만, 적어도 그 때 당시는 ‘대한민국보단 북이 낫다’는 반공체제부정의 “종북” 논리가 시국을 뚫는 데에 더 큰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바른 말만 해서 세상이 바뀌면 얼마나 평화롭겠냐만 보통 세상일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종북” 논리를 포함한 체제 전복의 민주화 논리가 시대를 바꾸었던 역할은 어느 정도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그 때에나 그랬다는 얘기지만.
더불어 80년대 후반의 상황은 과거의 냉전을 잊고 중국과 대만 사이에 사람이 오가고 동서독이 통일되며 언감생심 중공군의 후예들과 국교를 맺는 한중수교의 판이 벌어지던 때다. “민족”이란 말을 지키고 있으면 그러한 국제무드에 맞춰 뭐라도 될 것 같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안될 일이지만 만약 남북 통일이 될랬으면 이 때 됐어야 했단 생각도 든다. 이 때는 동아일보가 신문지상에서 무려 ‘김일성 주석’에게 공개적으로 덕담을 보내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9) 이런 분위기 덕에 북한과 어떻게든 함께 해보자는 얘기가 그리 이상스럽게만 들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래봤자 이는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딱 여기까지가 현재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종북”에 대한 인식 수준 같다. 하지만 지금의 반북 여론은 그렇게 과거에 비추어 가벼이 넘길 만한 대상이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3. “종북”을 넘은 더 많은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지금 새 세대들은 북한이 ‘진심’으로 싫다. 누구에 세뇌되어서가 아니다. 냉전 논리를 못 깨서가 아니다. 이들은 최루탄 날리던 그 투쟁의 세월을 지나 그래도 ‘살만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고 더 살만해져야 하지만, 이 정도 만들어낸 것도 전 세대들이 흘린 문자 그대로의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 세대들 앞에 과거를 알아달라고 피칠갑을 하고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과거가 어찌됐든 지금 말이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지금 세대들이 북한과 그에 얽힌 ‘민족’을 어처구니없어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이렇게 ‘아래로부터’ 북한이 싫은 현재의 여론을 의외로 많은 어른들이 낯설어하고 또 간과한다.
연평도 포격이나 3대 세습같은 자명한 문제들은 일단 제쳐놓고 말하자. 우리에게 ‘민족’이 왜 필요한가? 새 세대들에겐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기표가 있다. 이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대한민국에 순정한 애정이 있다. 냉전 체제 순응과 군사 독재의 함몰을 의미하던, 그리하여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던 이전 세대의 “대한민국”이란 ‘기표’와는 달리, 이 시대에는 그것이 긍지의 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즐겨 말하는 것이 곡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 지났단 얘기다. 그보단 이제까지 ‘민족’이란 말로 우회하고 있던 국가정체성이 보다 적합한 옷을 찾았다는 평이 정확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즐겨불리게 된 건 박정희로 인해 살림이 핀 시점이 아니다. 그 때까지도 저 말은 어딘가 모르게 함함한 것이었고, 민주화세력이 기성정치권에서 민주화의 제도적 결실을 내놓던 김대중정부 이후부터 비로소 저 말이 ‘아래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즉 박정희의 돈줄과 더불어 지난 세대가 벌려놓은, “대한민국”이란 말을 부정하던 민주화의 노력이 그를 가능케 했다. 대한민국이 갑갑했던 그들은 있던 대한민국을 부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것들을 대한민국으로 만들었다. 단적인 예가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 4.3사건 사과이다. 희생자 중에 정말로 북이 좋았을 사람이 없지 않았음에도, 노무현은 이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사과했다.10) 이는 공비들에게 반공의 국시가 유린당한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니던 것들이 비로소 대한민국으로 명명된 기나긴 인정투쟁의 결실이었다. 대한민국이 품을 수 있는 용적이 커지던 그 과정을 목도하고 자란 세대의 눈은 그 전 세대의 눈과 같을 수 없다.
반면 ‘민족’은 어떠한가? 한때 찬란했던 민족자주세력은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상상의 북한은 실제의 북한과 달랐고, 그들은 참담한 북한의 실태를 자기 세계관에 정초시키는 데 실패했다. 민족주의를 중시했던 백낙청이 90년대 초에 이미 북한의 “농성체제”는 자주성의 모범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한 바 있지만,11) 백낙청을 빨갱이라 깠다던 빨갱이의 아들 김지하는 시위 학생이 분신하는 앞에서 ‘생명사상’이 중요하다는 헛소리를 남기고 민족주의의 또다른 변종인 기공과 단의 세계로 빠져들었다.12) 민족의 찬란한 광영을 상상으로라도 맛보고 싶었던 이들은 상상 속에서 꺼낸 <환단고기>를 현실로 착각하며 대제국의 퇴폐적인 환각에 빠져들었다. 통일이 중요할 수 있었지만 그 후 어느 누구 한 사람 통일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통일은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과 문학이 되어갔다. 방사포를 쏘는 북한을 마음으로 감싸안으란 건 가공할 형용모순이었다. 이런 마당에 민족이 더 이상 현실적인 기표로 와닿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새 세대는 같이 살았다던 오천년의 민족사보다 갈라져 살아온 60년의 역사가 훨씬 중요하다.
이제 사람들은 오랫동안 열망해온 국가정체성을 ‘민족’이란 틀로 우회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주어로 말해주기를 바란다. 국가정체성을 ‘부정’이 아닌 ‘주어’로 얘기하고픈 욕망이야말로 실은 해묵은 것이고, 나아가 전 시대가 바라마지 않았던 것이다. 남북교류도 좋고 다 좋으나 그 속에 “대한민국”이란 기표가 명시적으로 들어있기를 새 세대는 원하고 있다. 그네들에넨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므로, 그 당연한 것을 분명치 않게 얼버무리는 데 대해 “종북”이란 혐의를 두는 것이다. “종북”을 향한 새 세대의 욕망은 바로 ‘정체성’에 대한 요구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주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정공법인 시대가 왔다. 이제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주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이상 반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꾸리는 기술은 여러가지지만, 적어도 북한을 치켜세워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장하던 전략은 이제 시효가 다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 그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싸워야 한다. 기실 그것은 너무도 오래 비어있던 욕망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더 넓어지고 더 많은 이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껏 소외되어온 대한민국이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가령, 국가보안법을 싫어하는 우리가 왜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이 아니던 시절을 모두들 잊었단 말인가.
민주당에게 제언한다. 당직자들은 아마도 지난 시대의 경험 때문에 “대한민국”을 ‘주어’로 말하는 것이 우세스러워 보일 것이다. 바로 그 우세스러움이 필요한 때다. 대한민국을 적극 호명하라. 대한민국이란 말을 박정희에게서 빼앗아, 우리가 더 넓히고 다듬어 가꾼 대한민국임을 자랑하라. 당신들이 느낄 우세스러움이 그저 당연하게만 여겨지는 새 세대 또한 당신들이 낳은 자식이다. 지난 세대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국가정체성을 선물받은 첫 세대들이다.
민중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한 시대의 여론이 그런 방향을 띠게 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읽지 못하는 쪽은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다. 또한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미운 것을 잘 미워하는 방법을 알고, 그 미움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줄 아는 노력이 각자 필요하다. 우리에겐 해묵은 “종북”을 뛰어넘는 더 많은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 손엔 유권자 한 명 몫의 표가 쥐어질 것이다.
원문: cryingkid
1) 김일영, [건국과 부국](기파랑,2010), 145쪽. 이미 돌아가셨지만 참고로 이 분은 이승만, 박정희를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보수를 해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리영희, [반세기의 신화](삼인,1999)의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 참조. 개인적으로 이런 정국에서 이 분 같은 어른이 안 계시다는 게 슬프다.
3) 황교안, [국가보안법](박영사,2011) 중 제7장, “각종 이적행위” 부분 참조.
4) 심희기·이석수, [국가보안법의 운영실태와 개정방안](한국학술정보,2004) 중 제5장, “미국·독일·북한의 국가안전보장관련법제” 참조.
5) 관련 기사 링크
6)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2004) 참조. 관련 링크
7) 조봉암, “평화통일에의 길”(1957), [죽산 조봉암 전집 1](세명서관,1999) 참조. 특히 8장, “몇 가지 오해와 곡해”를 볼 것.
8) Lee Namhee, The Making of Minjung ; Democracy and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 2009.
9) 장성원(경제부장), “김일성주석귀하”, [동아일보] 1989.1.23., 5면.
10) 사과문 전문 링크
11) 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작과비평사,1994), 19쪽.
12) 관련 기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