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슬프다. 학생들은 추운 바다에서 떨고 있고, 또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힘이 미약하고 온전하지 못해 아이들을 배 밖으로, 뭍으로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이 동원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가고, 해는 야속하게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만조와 간조는 어제와 다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선장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선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선장이 배를 버리고 먼저 도망쳤다. 선장이 도망나와서 온돌에 젖은 돈을 말리고 있었다. 사고 당시 선장은 침실에 있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분노할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한 개인에 대해 얼마든지 손가락질 할 수 있다. 천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분노하고 있다. 나도 그 분노하는 한 사람이고, 나 역시도 그 선장의 되지도 않는, 어제 저녁 인터뷰 같은 변명을 내 앞에서 늘어놓는다면 스스로 범법자가 될 각오를 할 수 있다. 그는 최하의, 억겁이 지나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만으로는 다시 이런 사고를 막아낼수는 없다.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할 우리들은, 이번 사고를 보고 돌을 던지는 것으로 지금의 울분을 던져버릴수도 있겠지만, 또한 들고 있는 돌을 하나하나 앞에 쌓아서 사고라는 파도를 막는 제방을 쌓아야 한다. 소를 잃었더라도, 우리는 아직 아흔아홉마리의 소가 남아있고,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선장의 죄는 결국 200명 가까운 사람을 삼켰다. 하지만 비단 선장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 사람을 임시 선장에 앉힌것은 청해진해운이다. 이 사람을 배의 책임자로 임명시킬때, 주의사항이 제대로 주지되지 않고, 그것에 숙련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잘못만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이 사람도, 일을 얕잡아보고 자신이 맡을 수 없는 일을 맡은 죄는 있지만, 적어도 그 과실이 100%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박의 안전은 회사 혼자 책임져야 할까? 한국은 여객운수 영업에 있어서 허가제를 따른다. 즉 국가에서 허가하지 않은 정기운수행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청해진해운이 아무리 사기업이라고 해도 국가의 허가를 받고 영업하는 운수업체인 이상, 안전교육 및 가이드라인 작성은 국가의 책임이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받은 국가의 “지도”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선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한 훈련 계획을 해양항만청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지켜진것은 한번도 없었다. 운항관리계획서를 통해서 인가받은 “멋진 훈련 계획”은 그저 종이 위의 망상에 불과했다. 이 훈련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졌고, 훈련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숙지하는 사람이 조타실에 있었다면 이번 사고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안, 마우나리조트, 그리고 세월호
청해진해운과 해양선박 관리행정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 더 많은 똥덩어리들이 남아있다.
1년에 한건씩 학생 체험학습에서 대형참사가 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학생 단체활동에 있어서 구조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몇년전부터 학생수련활동에서의 최저가입찰제를 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학교에서는 1인에 1천원 내외의 여행자보험 가입만을 보태놓고 안전기준을 준수했다며 여전히 최저가입찰제를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최저가입찰제를 도입한 상황에서도 교장 혹은 담당 관계자들은 계속 리베이트를 챙기고 있었다.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를 만들었더니 운영위 전체에게 리베이트를 돌리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결국 이러한 리베이트들은 학생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비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태안 참사, 마우나리조트 참사와 이번 세월호 참사를 1년도 안되는 간격으로 겪고 있다. 안전기준은 달라지지 않았고 지난 태안 참사때 수련회를 주관했던 여행사는 아직도 정상 영업중이다.
학생들은 “추억”이라는 뜬구름 잡는 단어를 위해서, 학부모와 교사들은 “단합”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고, “동의서”는 동의가 아닌 “나는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자백서 비슷하게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누군가가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모두 역적으로 몰리는 것 부터, 최저가입찰, 리베이트 관행, 저가여행 관행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아니, 사실 더이상 수학여행이 가지는 의미는 0에 가깝다.
해외여행이나 단체여행은 이제 딱히 드문 일이 아니다. 누구든 해외로, 경주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도 얼마든지 길을 나설 수 있다. 왜 꼭 학교가 나서서 이런 여행을 주도해야 할까? 누구누구가 소외된다는 Tous ces casino jeux sont disponibles dans un environnement des plus securises. 핑계로 아무도 행복하지 않는 여행을 만드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낡은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이 사고 이전에도 수많은 사고를 겪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
경주 마우나리조트는 체육시설 용도로 허가된 실내체육관을 공연장으로 사용했다. 수십킬로와트의 앰프가 강당을 메웠을 것이다. 5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는 날, 아무도 건물이 무너질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 “이건 안돼”라고 말했다면 적어도 그 곳에서 깔려죽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압적인 문화와 황금만능주의는 아무도 현금 앞에서 “안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태안에서는 그저 해병대 출신인 조교가 말도 안되는 훈련을 지시했고, 결국 사람을 죽였다. 명백한 살인이 저질러졌음에도 수련회는 계속 떠나고 있고,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단합과 극기를 기른다”라는, 학생들에게 딱히 도움이 될 지 의문인 것을 강요하기 위해 우리는 다섯의 창창한 젊음을 떠나 보내야 했다.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털렸다. “개인정보 관리회사” KCB는 거의 모든 여신회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신용정보회사이다. 인가되지 않은 정보장치가 정보망 내부를 들낙거렸고, 테스트 데이터라고 NDA만을 믿고 (NDA같은걸 썼을지도 의문이다) 고객의 정보를 USB에 한가득 담아줬다. 그리고 대한민국 신용은 멸망했다.
화왕산 억새 태우기 사건은 아예 지역 산림청에서 안전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고, 심지어 그 가이드라인을 지켜 6년동안 성공적인 행사를 진행했음에도 “이번에는 제대로 안 해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7명의 사망자를 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할 수 있는지를 알고서도 지키지 않았던 이번 사건은 아마 가장 멍청하고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더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아예 인가도 안 받은 시설에 아이들을 맏겼던 씨랜드 화재사건, 불이 나서 빠져나가려던 학생들을 “돈 내고 가라”고 막은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화재 대피 요령도 숙지하지 않았던 기관사와 불연재따위는 사용하지 않았던 지하철 열차가 만들어낸 대구 지하철 참사, “왜 무너졌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전에 “대체 이런 건축물이 어떻게 8년을 버텼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무량판 구조의 우수함을 알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교량판이 들떠서 철판으로 위를 막아놓고도 통제를 하지 않았던 성수대교 사건까지…… 우리는 대비할 수 있었던, 수많은 경고가 있었던 사고들을 겪어가면서 안전을 배웠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렸고, 결국 모두 죽었다.
지금도 제2롯데월드 공사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터지고 있다. 분명 중단되어야 하는 공사지만 “국익”, “국가 이미지”타령하면서 규제혁파 바람을 타고 미친 공사가 진행중이다. 착공 이후 4차례나 중대형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아무도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고 있다. 근로감독관을 파견하면 “감독관을 피해서 일하라”라는 미친 무전만 날라다니고 있다. 국방을 말아먹을 줄 알았더니, 아예 그 이전의 국민의 생명을 말아먹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
사람이 죽어야만 고쳐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안전불감증의 사례 앞에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고쳐지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사람이 죽는다고 고쳐지는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백명이 죽어도 아직까지 탑승자와 희생자마저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아예 누가 죽었는지 모르면 사고가 잊혀지겠다는 발상일까? 4백명 가까운 인명이 걸린 상황에서도 해양경찰은 크레인선 사용료 때문에 어디서 불러야될지를 몰라 12시간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날려먹었다. 이런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유약함이라는 단어조차 과분하다. 그저 우리는 모두 멍청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지목해서 그를 향해 손가락을 뻗기는 쉽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온다. 모든 사고에 완벽한 책임이란 없다. 심지어 범죄에도, 우리는 범죄를 막기 위해 경찰을 세웠고, 군대를 세웠으며 또 법과 도덕을 세웠다. 그 체계가 무너진 결과가 범죄이고, 심지어 범죄의 가해자 역시 어느새 선량한 모두로부터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부디 이번만큼은, 또 하는 말이지만 제발 이번만큼은 이번 사고를 통해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남은 모두의 무사 귀환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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