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을 아는가? 풍성한 웨이브의 금빛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그를, 그녀를 아는가? 영화와 뮤지컬로 알려진 〈헤드윅〉 속 주인공의 모습은 낯설다. 남성의 몸을 가졌어도 우리가 겪어온 남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가발에 과한 메이크업을 하고 통념을 깨는 의상을 입는다. 성(Gender)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시선에 갇히지 않고 분장과 공연을 통해 자아를 표출한다. 우리는 작품 속 헤드윅 같은 이들을 ‘드랙 아티스트(Drag Artist)’라 부르고, 그 문화를 ‘드랙(Drag)’이라 말한다.
드랙이라는 명칭은 영국의 극장 용어에서 비롯됐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여성이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은 사회적으로 점잖지 못한 일이라 여겨졌다. 여성 배역은 주로 여장을 한 젊은 남자 배우가 맡았는데, 그들이 입은 여성복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Dragged)’ 모습에서 ‘드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장남자 배우들은 주로 저급한 희극에 등장하는 하위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드랙에 대해 ‘여성을 희화화한 문화’라는 이미지가 고착됐다. 드랙은 그 후 연극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 채 오랫동안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남성들이 여성 역할을 맡는 관습이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 드랙 문화가 동성애 커뮤니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성 소수자 친화적 공간에 ‘드랙퀸(Drag Queen, 드랙 분장을 한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 등장하며 드랙 문화는 이들 커뮤니티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아갔다. 이후 드랙 문화는 몇십 년 동안 지하 클럽이나 뒷골목의 바 같은 공간에서 꽃을 피웠다.
현대의 드랙 문화는 다르다. 단순한 여장이 아니다. 대부분 동성애자로 이루어졌던 과거와 달리 이성애자 드랙 아티스트도 있다. 여성이 남장을 하고 공연을 펼치는 ‘드랙킹’이 출현했고,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기이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클럽키드’도 생겨났다.
여러 장르가 생겨나면서 그 경계는 모호해졌다. 이제 퀸이나 킹보다는 ‘아티스트’로 통칭한다. 이들 장르의 공통점은 하나다. 분장과 공연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 ‘드랙’은 몇 년 전만 해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문화였다. 그러나 2009년 미국의 TV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가 방영되면서 드랙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는 미국 유명 드랙 아티스트 ‘루폴’의 심사를 통해 드랙 참가자 중 최고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시즌 11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로 팬층이 두텁다. 2016년 방영된 시즌 8에서는 한국계 드랙 아티스트 ‘김치(Kimchi)’가 독창적인 스타일의 드랙을 선보이며 최종 3위까지 올랐다.
이로 인해 한국 드랙 신(Scene)에도 불씨가 지펴졌다. 국내에서 많은 드랙 아티스트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무대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패션 화보 등에서 그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은 당당히 뭍으로 올라왔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드랙 아티스트 ‘지반’을 만나 한국의 드랙 문화와 그의 드랙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우리가 걸치는 모든 것이 드랙이다”
이혜진([email protected]): 드랙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언제였어요?
지반: 2016년 여름, 휴학생 시절에 이태원의 바(Bar)에서 바텐더로 일했어요. 맞은편에 클럽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드랙 아티스트들의 주 무대로 역사가 깊은 곳이었죠. 아마 20년도 넘었을 거예요. 그때 휴식 시간에 밖으로 나오는 드랙 아티스트들을 보게 됐어요.
이: 그때부터 드랙 활동을 하기 시작하신 건가요?
지반: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멋진 퍼포머들이라고만 생각했고 드랙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그분들의 모습을 선망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나를 찾아갔죠. 머리를 길러서 양 갈래로 묶고 출근을 한다든지, 크롭 티에 망사스타킹을 신는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이: 드랙을 시작할 때 특히 누구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나요?
지반: 처음에는 스스로도 드랙에 대해 확신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쇼에 서기 전까지 많이 흔들렸어요. 변해가는 제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때 같이 바텐더로 일했던 분이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드랙 아티스트 ‘나나’님이에요. 그분을 통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배운 것도 많고요. 그 후로 스스로를 정립해가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쇼에 서고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주고 응원해줬죠.
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던 건 어디에서였나요?
지반: 이태원의 ‘Q bar’예요. 공연자로서 페이를 받고 선 첫 무대다 보니 정말 떨렸어요. 노래 한 곡을 립싱크로 3분 정도 공연하는데 거의 한 달 가까이 준비를 했어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해서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무릎에 힘이 풀려 친구에게 안겼어요.
이: 처음 공연했던 곡이 Pink의 ‘Slut Like You’ 이던데, 곡을 선정하는 기준과 무대를 꾸밀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어떤 것인가요.
지반: Pink의 ‘Slut Like You’는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는 노래인데,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첫 공연 곡으로 선택했죠. 항상 잘하고 싶고,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신중하게 노래 선정을 해요. 강한 여성에 대한 동경심이 있어서 서문탁이나 이은미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해요. 무대를 꾸밀 때는 주로 곡을 기준으로 메이크업과 의상에 신경을 써요. 강한 비트의 음악일 땐 동작이 큰 안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쇼트커트 가발을 쓴다든지 하는 식이죠.
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공연이었나요.
지반: ‘불후의 명곡’에서 차지연 씨가 불렀던 네 박자라는 곡을 했을 때예요. 제가 공연하는 곳은 관객의 80% 정도가 외국인이에요. 이 노래가 긴 독백으로 시작해서 걱정을 가지고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들이 숨죽인 채로 제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거예요. 내용은 알아듣지 못해도 제가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마음으로 전해진 거죠. 관객과의 내적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해준 경험이었어요.
이: 국내에서도 드랙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추세예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반: 유튜브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드랙 아티스트들과 ‘김치(Kimchi)’ 때문이겠죠. 무엇보다 넷플릭스를 통해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국의 드랙은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갈래도 다양하고, 퍼포먼스나 워킹, 코미디적인 요소도 다루고 있고요. 드랙 문화가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드랙 아티스트들이 그런 이미지로 비칠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물론 드랙을 어떻게 보는지는 자유, 느끼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 안타까운 면이 있죠.
이: 드랙 문화를 ‘여장’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어요. 드랙퀸이라는 단어로 인해 ‘여성비하에서 파생된 문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지반: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생각들을 기반으로 ‘이건 킹이다, 퀸이다’ 나누다 보니 ‘혐오 아니냐’ 하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드랙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려 하는 문화죠. ‘여성을 혐오해서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드랙 아티스트는 없을 거예요. 루폴이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사람은 알몸으로 태어나며, 우리가 걸치는 모든 것이 드랙이다.
긴 머리를 했다고 여자인 것도 아니고, 짧은 머리를 했다고 남자인 것도 아니라는 거죠. 사회적으로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려다 보니 서로 반대의 성을 표현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현재 활동하는 사람 중 다수가 ‘LGBTQ(성 소수자)’이다 보니 ‘드랙 문화는 LGBTQ만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대중도 있을 것 같아요.
지반: 오랫동안 LGBTQ 커뮤니티에서 발전해온 문화이다 보니 그런 인식이 자리 잡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현재의 드랙 문화는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 활동하는 드랙 아티스트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지금까지 드랙이 베일에 싸여 있는 문화였다면 이제 베일을 벗고 대중과 소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앞으로의 목표가 뭔가요?
지반: 스튜디오를 차리는 거예요. 드랙 아티스트들의 플랫폼이자 LGBTQ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어요. 휴학생 시절 행성인(행동하는 성 소수자 인권연대)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요. 인권 활동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저 또한 어렸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마치며
현대의 드랙 아티스트들은 내면에 자리 잡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혹은 억압당했던 것들을 분장과 공연으로 표출해낸다. 그 모습이 생소해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든 그들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Deny me and be doomed).
〈헤드윅〉의 이 대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진정한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