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itle=”편집자의 말” color=”#333333″] 이 글은 원래 들풀님의 허가 하에 나경원과 박원순, 가치의 차이의 전문을 재게재하기로 했으나, 대선에 맞춰 들풀님의 의견(절취선 이하) 부분을 (중략)을 통해 마구 잘라내며 대선에 맞춰 보았습니다. 들풀님의 넓은 아량을 바라오며(…) 너무나 좋은 원문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box]
미국의 진보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고민을 한다. 진보라고 해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사회주의에서 환경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 아이디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뜻을 대표하는 후보가 없거나 당선시키기가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08년에 공화당의 존 맥케인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나선 대통령 선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인물로만 보면 공화당 맥케인과 민주당 오바마가 모두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공화당 쪽은 부통령 후보로 세라 페일린이라는 악수를 두긴 했지만, 맥케인은 명망 있고 합리적인 정통 보수로서, 대통령 후보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같은 당 소속 전임자 부시가 문제였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평가한 대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서, 8년이나 집권하면서 미국과 세계를 구렁텅이로 몰고 간 부시에 대해 국민의 반감이 너무 컸다. 이러한 반감은 그대로 오바마의 지지로 연결되었고, 변화를 부르짖는 오바마의 캠페인에 많은 사람이 열렬히 호응했다.
그러나 두 후보가 모두 싫거나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진보에게는 언제나처럼, 당선 가능한 후보라는 의미에서의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맥케인과 오바마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2000년의 앨 고어 vs. 조지 W. 부시 꼴을 재현하면서 공화당의 재집권을 도와주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진보 진영에서 존경 받는 학자이자 활동가인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은 오바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바마를 지지했다기보다 공화당 정부를 심판하고 끝장내는 데 더 무게를 두었다고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 모두 공화당(즉 맥케인)을 반대하는 투표를 하기를 권했고, 결과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선거에서 심판론은 흔한 주장 중 하나지만, 이 경우에서 우리는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는 경우에 유권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차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선거일을 보름쯤 앞두고 촘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맥케인을 거부하고 오바마를 위해 투표하십시오. 하지만 환상은 버리세요.”
대담자: 보통 사람들 처지에서 볼 때, 지배 권력의 한 측이 다른 쪽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를테면 지금 맥케인과 오바마에 대한 지지가 엇비슷하게 나오며 각축을 벌이는 주(州)에 있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선택이 있습니까? 당신이 만일 이런 주에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촘스키: 나는 맥케인을 반대하는 투표를 하라고 조언하겠습니다. 이 말은 오바마에게 투표하라는 뜻이 되지요. 하지만 환상을 갖지 말고 말입니다. 지금은 변화와 희망에 대한 화려한 레토릭이 나돌지만, 오바마가 집권하면 이들은 모두 중도적인 민주당 정책으로 녹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이 이미 자세히 밝혀 놓았듯이, 맥케인과 오바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차이는 매우 커집니다. 어느 한 순간에 보면 그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고려해 보면, 부유한 계층이 아닌 일반 대다수 국민에게는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 측이 서로 다른 엘리트 계층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현저하며 중요한 것입이다. 여러분이 이런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며 투표에 임한다면, 당신이 선택하는 사람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일 겁니다.
하워드 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뒤에, 맥케인에 반대하고 오바마에 투표하십시오.”
대담자: 선거가 몇 주 남지 않았습니다. 오바마가 앞서 나가고 있지만, 오바마 지지자들은 돌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은 선거 과정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고 쓴 바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당신은 사람들이 투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투표를 마지못해 할 게 아니라, 일정한 한계를 인정한 채 맥케인에 반대하고 오바마를 위해서 나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진: 당신이 알다시피 나는 미국의 정치 과정을 매우 불신합니다. 유권자에게는 매우 제한된 선택만이 주어집니다. A 아니면 B, 혹은 A 아니면 A’ 라는 식이지요. 공화당 아니면 민주당이구요. 정책을 보면 양당은 거의 언제나 매우 비슷합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아주 가깝지요. 따라서, 우리 사회가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대표하는 후보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오바마와 맥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후보자 사이의 작은 차이가 아주 중요한 결과를 낳았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차이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 적도 있고요. … (프랑스 사례 거론함) …
설령 오바마가 실제로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오바마를 위해 투표하는 이유이고, 여러분이 오바마를 위해 투표하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가 변화와 관련한 추상적인 문구들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의미 있는 내용으로 그 문구들을 채우게 만들려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분노의 사회 운동이 그를 둘러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변화의 잠재력을 구현해 내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후보자 간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가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시간의 누적이라는 통시적 환경에서 그 차이의 가치를 찾아냈고, 진은 권력의 크기라는 공시적 조건에서 그 차이의 중요성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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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은 실망하고 분노하고 허탈해 한다. 희망을 어디에 걸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그 놈이 그 놈 아닌가.
… 라고 생각하신다면 구태의연한 네거티브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 측의 선거 전략에 그대로 말려드신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온 몸에 구정물을 뒤집어 쓴 개가 상대 개와 맞서려면 상대 개에게도 구정물을 퍼부을 수밖에 없다. (중략)
선거에 나선 한 측은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인식이 널리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선거에 염증을 내고 투표 할 의지를 잃어버리기를 바란다. (중략) 그 놈이 그 놈인가? 전혀 아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나는 있다고 본다. 있어도 크게 있다. 구정물을 제외하고 보자. (중략)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두 사람이 살아오면서 세상에 끼친 영향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두 사람이 살아 오면서 화두에 둔 이해관계의 종착지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 어찌 작은 차이겠는가. (중략)
두 사람의 소속이 또 말해 준다. (중략) 두 사람의 측근이 또 말해준다. 선거를 치르는 두 사람의 근처에 모여 있는 인간들을 보라. 이것이 어찌 작은 차이겠는가. (중략) 이런 말은 다 필요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 어찌 작은 차이겠는가.
촘스키와 진이 말했듯, 차이는 작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하물며 차이가 큰 다음에야. (중략)
촘스키의 말대로, 또 하워드 진의 말대로, 나의 이익과 희망을 온전히 체현한 후보가 없어서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환상을 버리고 대신 대화를 할 줄 아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나의 이익과 희망을 이야기할 때, 이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어줄 줄 아는 후보가 필요하다. 내가 투표하지 않으면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당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