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인간보다 뛰어난 작업능력을 갖추고도 훨씬 더 저렴한 값으로 일하는 로봇들의 시대가 온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 그리고 우버(Uber)와 웨이모(Waymo)를 비롯한 IT 모빌리티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머지않은 미래에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를 대체할 것이다.
아마존 고(Amazon Go)로 대표되는 무인 계산대로 인해 미국에서만 수백만 명에 달하는 매장 서비스 인력이 사라지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카페 엑스(Cafe X)는 로봇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무인 카페를 확장 중이고, 로봇이 피자를 만드는 줌 피자(Zume Pizza)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3억5천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일자리는 인공지능 기술과 자동화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기존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공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인류는 다음의 질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며 존재의 의미를 증명할 수 있을까?
탐험, 경쟁, 정복 그리고 교역을 통해 발전해온 인류의 역사
많은 이가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승자독식 경제구조를 비판하지만, 소수의 승리자에 의한 부와 권력의 독점은 인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어왔다. 또한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횡포가 극에 달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을 때, 피지배 계층의 개척자들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 그곳에서의 특산품을 기존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왔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에서 후추라는 희소성 있는 향신료를 발견해 유럽 시장에 제공하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후추는 역사상 천 년 동안이나 금보다도 비싼 교역품으로 간주되었고, 이를 얻기 위한 많은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에서 박해받던 청교도 신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건너가 지금의 미국을 건설한 것,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수많은 강대국의 개척자들이 정복 전쟁을 벌였던 것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제 지구상에 더 이상 남은 신대륙은 없다. 그래서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달 탐사에 나섰고, 엘론 머스크는 화성이 새로운 인류의 터전이 될 것이라 주장하며 화성 이주 세부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야만 새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무한한 신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 바로 가상세계(virtual world)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빈민촌의 사람들이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가상의 게임 세계 안에서 생활한다. 가상세계에서의 성취는 명예와 재화 등 현실에서의 성취와 직결되며, 심지어 게임 내에서의 노동을 통해 현실의 빚을 갚는 것도 가능하다.
인류의 경제 시스템은 정말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준 가상세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게임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등장
모든 엄마는 자녀들이 장시간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싫어한다. 게임 중독에 대한 우려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아이가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면 나중에 잘 먹고 살 수 있을까’와 같은 현실적인 걱정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시대가 변했다. 엄마들의 걱정과 달리 이제는 게임만 잘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아니 엄청나게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e-스포츠 시장은 이미 시청자 수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MLB)를 넘어섰고, 수년 내에 미국 최대 규모의 스포츠 시장인 NFL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에서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인 ‘페이커’ 이상혁은 2018년 한 해에만 4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한국의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는 축구, 야구 등 어떤 종목의 선수보다도 높은 수준의 소득이다.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게임 전문 스트리머들 역시 적지 않은 돈을 번다. 유명 게임 유튜버인 ‘대도서관’은 2017년 “나는 유튜브로 1년에 17억 번다”는 카피가 박힌 책 『유튜브의 신』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몇몇 특수 직업군 외에도 한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게임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리니지(Lineage)의 게이머들이다. 1998년에 출시된 이 ‘1세대 온라인 게임’은 20년이 지난 아직도 많은 게이머의 사랑을 받는다. 매출 규모에서도 한국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서 여전히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게임 중 하나이며, 리니지를 모바일 버전으로 포팅해 2018년에 출시한 리니지M 역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리니지의 핵심 성공 요인은 바로 게이머들에게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경제 시스템이다. MMORPG의 특성상 유저들은 경쟁과 협력을 통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게임 콘텐츠를 즐긴다. 레벨이 높아지고 좋은 아이템을 갖출수록 커뮤니티에서 인정을 받기 때문에 많은 유저가 현실 재화를 지불하고서라도 우수한 아이템을 구입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발생한다. 덕분에 좋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이머는 그 가치에 따라 큰 돈을 벌 수 있다. 게임 아이템 거래소라는 비즈니스는 2001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등장했는데, 이와 같은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니즈 덕분에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세 가지 유형의 게임
역사적으로 게임은 세 가지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로 분화되어왔다. 단, 여기서 시기적으로 더 늦게 등장한 유형의 게임이 더 우월한 형태의 게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첫 번째는 하드카피(hard copy) 형태의 게임이다. 최초의 게임 소프트웨어는 플로피 디스크나 게임팩, CD, DVD 등의 매체에 매뉴얼과 함께 동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게이머는 최초 1회의 패키지 구매 후 개발사가 제공한 콘텐츠를 엔딩까지 즐기며 게임을 소비한다. 현대에는 스팀(Steam)이나 오리진(Origin) 등의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카피(digital copy)를 다운받는 방식으로 이런 유형의 게임이 판매된다.
두 번째는 부분 유료화(free-to-play, freemium) 방식의 게임이다. 무료로 게임을 다운받거나 온라인으로 접속해 시작할 수 있지만, 플레이를 하면서 게임 내 아이템의 구매를 위해 추가적인 결제를 하게 되는 방식이다. 앱애니(App Annie)의 조사에 의하면 게임 애플리케이션 중 부분 유료화 방식이 71%에 달할 정도로 가장 보편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방식은 게임뿐 아니라 상당수의 인터넷 서비스에 채택되는데, 이는 “만약 당신이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신 자체가 플랫폼의 상품이다(If you’re not paying for it, you become the product).”라는 메커니즘에 기반한다.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 콘텐츠 외에도 유저 한 명 한 명이 콘텐츠가 되어 게임 공간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유저들 사이에 경쟁과 협력이 일어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작동한다. 유저들은 빠른 레벨업을 위해 유료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보다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비싼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게 된다.
세 번째는 유저가 돈을 벌 수 있는 유형의 게임이다. 앞서 언급한 리니지를 시초로 한 수많은 MMORPG 게임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나는 이 장르의 게임이 더 이상 ‘게임’이라는 틀에 한정되지 않은 가상세계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 가상세계의 경제 또한 현실 경제와 비교될 수 있는 수준의 규모와 시스템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중앙화된 주체가 운영하는 폐쇄된 가상세계를 신뢰할 수 있을까?
많은 온라인 게임은 서비스 종료라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이용자들의 원성을 산다. 수익 감소와 콘텐츠 고갈 등 다양한 이유로 서비스가 종료되면 그동안 수백만 원을 소비하며 게임에 몰입하던 유저들, 그리고 게임을 떠났더라도 본인의 데이터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게이머들은 마치 하나의 세상이 종말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인류의 경제적 터전이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의 결과는 누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는 일은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을 지배하는 규칙에 대한 ‘신뢰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열정적인 게이머들은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특히 몇몇 기획자와 개발자에 의해 허무하게 수정되어버리는 것을 늘 우려한다. 한때 수억 원에 달하던 리니지 최고의 무기 ‘집행검’의 가격이 2017년 어느 날 3,000만원 이하로 폭락하며 리니지의 시장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일이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게임 내 자산가치를 지닌 캐시 아이템이 외부에서 대량으로 유입되며 게임 내 화폐(아데나)의 가치가 폭락한 데서 기인했다.
이보다 악의적으로 개발자가 게임 시스템을 변조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확률형 아이템의 알고리즘 조작이나 온라인 카지노의 확률 조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는 게임 세계에서는 이런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게임이라도, 게임은 게임일 뿐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현실’이라고 정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현실 속에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현실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근간에는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사과는 언제나 땅으로 떨어지고, 내일도 해는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며, 그 누구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자연법칙 위에 사람들의 인식과 조화, 그리고 사회의 법칙과 문화가 점층적으로 쌓여 하나의 거대하고 복잡한 현실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한편, 우리가 현실의 자산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든 장소에서 실제로 존재하며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진 선글라스를 내가 사는 도시 밖의 다른 지역에서 착용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게임 아이템이 현실의 자산과 대등하게 인정받을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이런 상호운용성의 한계에 기인한다.
블록체인은 이런 도전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특성과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중앙화된 게임회사의 서버에 저장된 코드 대신 누구나 투명하게 조회할 수 있고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의해 가상세계의 법칙들이 정의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그렇게 모든 자산의 발행과 소유권이 온전하게 인정되고, 다양한 플랫폼을 오가면서도 자산의 활용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의 인터넷(internet of reality)’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관점을 한번 더 뒤집으면 현실세계의 자산은 물론 우리들 자신마저도, 어쩌면 ‘현실’이라는 이름의 플랫폼에서 발행된 NFT(Non Fungible Token)일지도 모른다.
블록체인 게임, 가장 자유롭고 극단적인 실험의 장
수많은 종류의 암호화폐 자산들이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만들어 낼 토큰 이코노믹스(token economics)는 우리 사회의 경제 시스템을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직 대다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얼리어답터 위주의 커뮤니티에 머무르며 대중적 확산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이런 현상의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실험의 제약’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경제 시스템에 연동된 토큰은 성공적으로 활용될 경우 큰 파급력을 얻을 수 있지만, 현실 가치에 연동된다는 특성이 그 반대급부로 작용해 자유로운 도입을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현실에서 가격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생활 재화나 서비스(커피 한잔, 지하철 탑승권 등)의 이용권을 토큰으로 만들어 낸다면, 토큰 가격의 미세한 변동만으로도 해당 서비스의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반면 게임은 ‘재미있기만 하다면’ 웬만한 억지스러운 설정과 불확실성마저 너그럽게 허용해주는 마법의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는 보통 SF 영화를 보며 다가오는 미래 기술의 효용을 생생한 화면과 함께 받아들이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먼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며 우리의 상상력을 한껏 불러일으키던 것은 다름 아닌 판타지 영화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정교하게 설계된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멋진 모습을 뽐내기 몇백년 전부터, 우리의 먼 할아버지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상세계에서 만들어질 ‘현실의 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한 많은 요소, 예를 들어 통화 시스템, 마켓 플레이스, 길드와 커뮤니티, 거버넌스 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게임을 통해 수없이 실현되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블록체인과 게임의 조합은 이런 진화를 위한 가장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실험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블록체인 기반으로 가상세계를 만들어가는 몇몇 플랫폼은 더 이상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 세계를 만들어가는 팀을 발굴하고 인류의 삶의 터전이 확장되어가는 여정에 함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시드가 블록체인 게임에 투자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