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내용이어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죠. 때론 좋은 의도일지라도 말에 오롯이 표현되지 않아 오해를 사기도, 진심을 다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란 속담처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죠.
뛰어난 언변으로 거란의 침입을 막아냄은 물론 강동 6주까지 얻어낸 서희의 외교담판처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말도 있지만, 우리의 생활을 더 따사롭게 만드는 일상 속 사소한 말도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말, 푸른빛이 도는 6월을 맞아 공유해봅니다.
1. 시각장애인에게 봄을 선사한 어느 시인
모스크바 광장에 구걸하는 시각장애인이 있었습니다. 한겨울임에도 얇디얇은 겉옷 한장만 걸친 그는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동정을!’이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의 발걸음은 멀어지기만 했죠.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인은 그에게 돈을 주는 대신 팻말에 적힌 문구를 바꿔줍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머지않았겠지요.
그 후, 놀랍게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고 시각장애인의 깡통에도 하나둘 돈이 쌓여갔습니다. 누군가에겐 잠시 스쳐 지나갈 겨울이지만, 1년 내내 겨울을 나는 시각장애인의 삶과 대비되는 이 문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채 거리 위에 살아가는 ‘겨울’ 같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봄은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피어나는 온정으로 이루어지고요.
‘동정’이란 행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시각장애인의 문구와는 달리, ‘이웃의 관심이 있으면 고된 삶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음’을 암시하는 시인의 문구는 행인들의 눈길은 물론 마음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팻말의 문구를 바꿔준 시인의 이름은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유명한 그의 짧은 문구 한 마디가 시각장애인의 겨울을 따스한 봄으로 바꿨습니다.
2. 완벽한 타인에서 완벽한 우리로
식사를 하기 위해 홀로 맥도날드에 온 한 할머니는 잠시 서성이다가 창가 옆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한 청년 앞에 멈춰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식사해도 될까요?” 낯선 이의 제안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청년은 흔쾌히 “당연하죠!”라고 답합니다.
거절의 두려움을 깨고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한 할머니와 흔쾌히 받아들인 청년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식사 내내 끊임없이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작년 9월 미국 CBS 17 News가 전파한 이 소식은 진정한 ‘우리’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3. 세계적인 가수를 알아본 한마디
미국 디트로이트의 어느 학교, 흑인 소년 ‘모리스’는 친구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시각장애를 앓는 가난한 흑인이라는 게 이유였죠.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과학 시간에 사용하던 쥐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조그마한 쥐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할 때, 선생님은 모리스에게 쥐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앞을 못 보는 모리스였기에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부탁을 의아해했죠. 하지만 아이들의 우려에 굴하지 않은 모리스는 뛰어난 청력을 발휘해 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넌 섬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귀를 가졌단다.
이 소년은 바로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떨치는 스티비 원더입니다. 놀림받던 한 소년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만든 건 소년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애정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4. 전쟁을 멈춘 간절한 진심
2006년 코트디부아르에선 환호와 절규의 소리가 동시에 퍼졌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으로 불안정한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죠. 절망스러운 전쟁의 상황에서 유망한 코트디부아르의 축구선수는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주세요.
그의 진심이 통한 걸까요? 꿈만 같게도 정부군과 반군은 2002년부터 이어지던 내전을 멈췄고, 이듬해인 2007년엔 평화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간절한 말 한마디로 평화를 일궈낸 그는 바로 코트디부아르가 낳은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되는 드로그바입니다.
그는 내전이 멈췄을 당시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준 순간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평화는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요.
마치며
말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특별한 가치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때론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기도 누군가는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푸른 빛이 가득한 6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싱그러운 햇살을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요.
원문: 슬로워크 블로그 / 글: 슬로워크 오렌지랩 마케팅라이터 은비
참고 자료
- 김재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 Strangers having lunch at Indiana McDonald’s goes viral, CBS17News
- 「엘비스·머라이어 케리…스타를 만든 건 `설렘`」, 매일경제
- 「‘전쟁도 멈춘 드록신’ 드록바, 은퇴 선언」,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