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커뮤니케이션, 슬로워크는 이렇게 합니다
코즈 마케팅, 한창 주목받은 마케팅 용어였죠. 사회적인 가치를 근거 삼아 브랜딩을 시도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요.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를 드러내고 이를 이용해 평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주요 소비자층인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잘 들어맞는다며, 구매로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봤죠.
아, 이미 좀 오래된 이야기죠? 이후의 이야기가 나와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지금 구매자들은 본인의 가치관과 당장 사회에서 중시하는 가치를 투영해 기업들을 빠르게 파악,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요. 조건도 좋죠. 인터넷으로 가짜든 진짜든 정보를 얻기 굉장히 쉬운 세상이니까요.
나아가 본인의 판단을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과 연결해서 동일시하거나 구매의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업이 사회적인 가치를 ‘이용’하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대신 브랜딩을 통해 직접 ‘창출’하고 이해관계자와 더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더 진정성 있으니까요.
소셜 밸류 커넥트 2019에서 그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 ‘Beyond 코즈마케팅: 브랜드로 사회적 가치 창출하기’ 세션이 열렸어요. 행사는 오전 9시부터 열렸고 해당 세션은 오후 5시에 시작했는데요. 끝 무렵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바닥에 앉아서 듣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흥행하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소셜벤처, 비영리단체, 공공기관이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사회적 가치를 내세울 때, 착한 것 이상으로 명분을 제시하고 관계 맺는 방법을 궁금해한다는 이야기겠죠.
슬로워크 CCO(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 겸 스티비 대표 임의균 님도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고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일’을 주제로 발표했는데요. 슬로워크가 맞닥뜨렸던 실제 상황을 예시로 들며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네 가지 제언을 생생하게 전했어요.
1)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과 용기 있게 마주하기
슬로워크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한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으로 ‘대박’을 냈어요. 여기저기서 비슷한 캠페인을 기획,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왔죠. 그 중 게임사도 한 곳 있었습니다.
왜 모자 뜨기 캠페인 같은 캠페인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게임중독으로 인한 각종 이슈 때문에 캠페인을 하려 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슈를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워싱하는 측면이 강할 거란 생각에 보고서를 만들어 드렸고 캠페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의균 님은 기업들이 이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거나 이미지 세탁을 하기 위해 사회공헌 캠페인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어요. 이건 사실 뭐 마케팅도 아니죠. 그렇지만 어쨌든 마케팅 수단을 활용해 사회적인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으로 무마하기보다는 이해관계자를 불러 모아서 용기 있게 마주하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게임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예요. 다만 기업도, 규제당국도, 게이머도 이미지 메이킹이나 캠페인을 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지 않는다는 점이 한국과 다릅니다. 라운드테이블을 몇 번이고 열어서 이해관계자들을 전부 모았어요. 오랜 시간 갈등하고 토론해서 차근차근 문제를 풉니다. 차라리 이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멋진 마케팅이 되지 않을까요?
2) 관계를 가시화해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기
이번에는 슬로워크의 로드킬 캠페인이에요. 로드킬은 동물이나 곤충이 도로에 나왔다가 교통수단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2년 고속도로에서만 약 2,360건의 로드킬이 발생했대요. 일반도로를 합치면 숫자는 더 커지겠죠. 슬로워크는 여기 문제의식을 가지고 로드킬을 막자는 의미로 책갈피와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오래전 대기업의 환경디자인 컨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기업은 모든 인쇄프로세스를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인쇄사고율이 20%에 육박했습니다. 해당기업이 하청업체들에게 납기기한을 촉박하게 준 이유가 컸기 때문이에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EU에서는 그린북이라는 형태의 가이드에 공공기관이 하청을 줄 때는 납기기간을 충분히 배려하도록 명시되어 있어요.
슬로워크는 이 계기를 통해 눈에 보이는 디자인뿐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로드킬 캠페인은 인간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는 작은 캠페인입니다. 잉크는 인쇄소의 버려지는 잉크를 모아서 인쇄해 이렇게 다 까맣게 나왔어요. 이후 블로그를 통해 인쇄 방법과 제작 과정, 그리고 원본 그래픽 파일을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슬로워크가 만든 도구를 활용해서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죠.
오픈소스죠. 이렇게 관계를 가시화해서 협업하는 주체, 나아가 생태계에도 도움이 된다면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브랜딩이 된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앞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은 디자인을 잘하는 것을 넘어서 일반인도 디자인을 잘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 도구를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고 봅니다.
3) 관계를 다각도로 보고 권리를 명시해주기
SNS에서 이 코스터 보신 분 아마 계실 겁니다. 슬로워크의 여성자유보장위원회 피치(Pitch)가 만든 굿즈예요. 원래 사내 행사 캠페인 용도로 만들었는데 여성의 날을 맞아 외부에도 배포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혹시 이 농담은 나만 즐거운 건가 생각해요
사생활은 말하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을 수 있어요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를 구분해요
동료가 난처할 때 내 한마디는 힘이 돼요
외모보다는 능력을 칭찬해요
그는 피치 코스터를 권리의 명시 측면에서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예시로 들었어요. 다양한 장소에서 코스터를 보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의 권리를 고려하며 말과 행동을 주의할 수 있으니까요. 관계를 잘 만들고 회복하는 과정이죠.
아티스트 캔디 창의 세입자 권리 명시 카드도 예로 들었습니다. 캔디 창은 보증금 납입과 관련된 권리부터 위생과 관련된 권리, 집을 꾸밀 수 있는 권리 등 세입자의 권리를 명시한 카드 세트 1만 개를 만들었어요. 비영리단체 등에 배포했고 판매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볼 때 관계는 극단으로 치달아 망가져 버리기 쉬운데요. 회복을 두고 고민한다면 혁신적인 제품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이해관계자의 자발적인 참여 유도하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014년 관람예절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자고 슬로워크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미술관 측에서 예절 몇 가지를 제시하고 시민들이 서명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요. 슬로워크는 어렵다고 봤어요. 미술관 예절을 정의할 수도 없을뿐더러 일방적으로 예절을 정해서 이대로 하라고 ‘가르치는’ 방식의 캠페인은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서명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뮤지엄 매너는 ________ 이다’ 문구에 본인의 목소리를 적어넣을 수 있는 콘셉트로 톤을 유연하게 바꿨고, 귀여운 고양이를 앞세워 이해관계자가 편하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캠페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끝 무렵이 아니더라도 업무 중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단계를 잘 설계하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마치며
그는 이렇게 네 가지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소개했는데요. 현실적인 문제들은 있습니다. 그는 첫째로 사내 자원 배정 문제를 꺼내놓았어요. 슬로워크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팀은 주로 기업의 사회공헌 팀인데 정작 역량과 예산은 대부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팀에 배정이 됩니다.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같은데 자원 배분은 적절히 되고 있지 않죠.
그는 두 번째로 실무단에서 협업을 하면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추상적이라고 짚어주었어요. 예를 들어 ‘새싹에 물을 준다’와 같은 표현이요. 슬로워크는 협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의뢰를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전달받으면 양질의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영리단체나 공공기관은 관리자 입장에서 사이트나 디자인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네요. 사용하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요구와 구현된 결과물의 차이가 심하면 이용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런 문제는 사용자를 배려하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용자 맞춤형 홈페이지 메뉴 구성을 예로 들었습니다. 한 글로벌 도시의 홈페이지 메뉴가 10대, 20대, 30대… 70대, 이렇게 사용자의 연령별로 나뉘어 있던 것이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했죠. 이해관계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의균 님은 다시 한번, 관계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라고요. 많은 조직이 연간 보고서나 지속 가능 보고서를 만들면서 저마다 본인들의 잘한 것들만 홍보하잖아요. 사실 본인들이 잘 못 하는 것도 솔직하게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죠. 예를 들어 ‘Sorry Works’라는 재단이 있는데 병원 의사들에게 환자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자’를 권유하는 재단이에요. 실제로 한 대학병원에서 그렇게 했고 의료소송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비영리단체, 소셜벤처, 공공기관이 사업 및 협업을 하다 보면 결국 이해가 상충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정 중 좋은 말만 나오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서로에게 진솔하게 ‘미안하다’ 고 말하면서 멋지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슬로워크 블로그 / 취재·정리: 슬로워크 테크니컬라이터 메이 / 이미지 편집: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