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H2’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야구 만화입니다. 소위 말하는 슬램덩크 세대 중에서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많이 보신 만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히로와 히데오, 이 두명의 천재 야구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H2는 실제 야구 선수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만화속에선 두 친구가 서로 라이벌로 대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다보면 신이 이 둘의 대결을 보고 싶어하는게 아닐까라는 얘기가 종종 등장하죠. H2의 작가인 아다치 미츠루는 바로 이들의 대결이 보고 싶어서 그린 만화라고 합니다. 실제 이 만화속 주인공들은 ‘H2’가 아닌 ‘K2’ 구와타 마스미와 기요하라 카즈히로입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길래 이 둘의 대결이 보고 싶어서 만화에까지 등장하게 된걸까요?
전설의 시작
기요하라는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6학년이 주죽인 팀에서 4학년으로 주전을 차지한 기요하라는 6학년때는 팀의 에이스이자 4번타자로 활약하면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간사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간사이지방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구와타는 초등학교 2학년때 소프트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6학년 주축의 팀에서 유격수로 주전을 차지했고 5학년부터 주전급 투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외야수와 1루수로 시작해 결국 투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구와타는 나가는 대회마다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중3때는 참가한 4개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와타와 배터리를 이뤘던 니시야마 슈우지는 훗날 프로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요미우리에서 코치까지 지낸바 있습니다.
니시야마의 말에 의하면 구와타는 중학교 때 이미 140km를 던졌고 미트를 갖다대는 곳마다 공을 꽂아 넣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자가 출루하더라도 워낙에 견제가 뛰어났기 때문에 1루에서 픽오프로 잡아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중학교때 명성이 자자했던 구와타 였지만 고교에 진학 후에는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약 30여개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기요하라는 최정적으로 PL학원과 텐리고교 사이에서 고민을 합니다. 두 학교의 연습을 모두 견학한 기요하라는 100명 이상의 부원을 거느리고 주로 3학년이 연습을 하고 1학년은 정리하는 텐리고교가 아닌 학년에 상관없이 같은 메뉴의 연습을 하고 있던 PL학원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PL학원의 스카우터는 초등학교때부터 기요하라를 눈여겨 봤다고 합니다.
작은 꼬마가 최고의 고교 투수로 되기까지
입학 당시 투수를 원했던 기요하라는 입학동기인 구와타의 실력을 알고는 절대 이길수 없다며 야수를 선택했습니다. 기요하라는 처음 구와타를 보고서 “이렇게 조그만 놈은 뭐지?”라고 했다 합니다. 당시 구와타의 키는 172cm에 불과했고 키가 작았던 탓에 강팀이었던 PL학원에서 구와타는 눈에 띄지 못했습니다. 1학년때 구와타는 중학시절의 명성으로 인해 간간히 투수로 등판하긴 했지만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감독에게 외야 전향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구와타의 연습을 보러 온 그의 어머니에게 “이젠 투수는 할수 없으니 PL학원은 관두는게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서 구와타는 “후보라도 좋으니 투수로서 PL에서 3년간 보내라”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매일같이 땀을 흘렸다고 합니다. 당시 구와타는 기요하라를 비롯해 주변의 선수들이 하나같이 체격조건도 좋았고 스카우트된 선수들만 모아놓았던지라 과연 본인의 실력이 통할지 의문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1983년 여름 고시엔 대회를 목표로 참가한 오사카 지구대회 4차전에서 감독은 구와타에게 선발 등판을 지시했습니다. 이전 경기까지는 뱃보이를 맡고 있었던 구와타에게 찾아온 천금같은 기회였습니다. 당시 구와타를 지도했던 기요미즈 투수코치는 감독에게 구와타가 등판해서 질 경우 자신이 유니폼을 벗겠다고 구와타를 등판시킬 것을 추천했습니다.
당시 난색을 표했던 나카무라 감독도 기요미즈 코치의 역량을 과 알수없는 자신감에 구와타를 선발로 기용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여기서 패하게 되면 고시엔 출장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기요하라는 고교대회 공식전 첫 홈런을 터뜨렸고 구와타는 상대타선을 단 2안타로 막아내면서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본격적인 KK콤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구와타는 여름 고시엔에 출전해 사실상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전경기에 출장을 했습니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사상 최초의 여름-봄-여름의 고시엔 3연패를 노리던 이케다 고교를 상대로 7대0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그 경기에서 구와타는 홈런 이외의 출루는 스태미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전타석 풀스윙으로 일관했고 이전까지 홈런을 맞지 않았던 이케다고의 미즈노로부터 홈런을 뽑아냈습니다. 결승에서도 3대0 승리를 이끌면서 당시 학제개혁 이후 최연소 우승투수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고시엔은 기요하라를 위해 있는 것입니까?”
먼저 주목받았던건 기요하라 였으나 1학년 여름이 끝난 이후 주목 받고 있는건 구와타였습니다. 구와타는 1학년으로는 유일하게 선일본고교선발팀에 뽑혀서 미국원정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만화에선 기요하라가 미국원정을 다녀오죠.) 1984년 2학년 봄의 선발대회와 여름의 고시엔에서는 결승에서 패하며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5년 3학년의 봄대회에선 4강에 머물렀지만 여름 그들의 마지막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마지막 고시엔에서는 기요하라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결승에서 2홈런을 날리는 등 마지막 고시엔에서만 5개의 홈런을 날리며 기록을 세웠고 당시 아나운서가 “고시엔은 기요하라를 위해 있는 것입니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3학년때는 간간히 투수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기요하라는 고시엔 대회에서만 13개의 홈런을 남겼고 고교통산 64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학년 고시엔대회에선 1경기 3홈런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구와타는 역대 2위이자 전쟁 후 1위인 고시엔 20승 3패를 기록했으며, 오사카 대회에서는 당연히 무패였습니다. 또한 고시엔에서 6개의 홈런도 날렸는데 이 기록은 기요하라의 13개에 이은 고시엔 역대 2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기요하라를 버린 요미우리와 기요하라의 눈물
고교 졸업 후 기요하라는 프로진출을 선언했고 구와타는 와세다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습니다. 기요하라는 가족 전체가 요미우리의 팬일 정도로 요미우리행을 원했었고 요미우리의 왕정치 감독 또한 기요하라를 1위 지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갈것으로 여겨졌던 구와타를 어느 구단도 지명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 요미우리는 기요하라가 아닌 구와타를 지명했고 기요하라는 요미우리를 제외한 6개 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구와타가 요미우리를 가기 위해 다른 구단이 지명하지 못하도록 와세다 대학에 진학한다는 얘기를 했단 소문이 있었고 구와타는 이를 부정했습니다.
요미우리와 한신이 아니면 사회인야구에 진출하겠다고 했던 기요하라는 요미우리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추첨을 통해 세이부에 입단하게 됩니다. 드래프트 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인 기요하라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순순히 세이부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세이부에 입단한 기요하라는 첫해부터 31홈런을 날리면서 신인왕에 올랐습니다. 1987년 프로 2년차였던 구와타는 15승 6패 2.17의 성적을 남기고 사와무라상을 수상했으며 팀의 리그 우승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최종적으로 웃는 자는 기요하라였습니다. 요미우리와 함께 저팬시리즈를 치른 팀은 다름아닌 세이부였습니다.
세이부가 앞서던 6차전 9회 투아웃 상황에 드래프트 당시를 떠올린 기요하라는 1루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요미우리가 자신을 외면한 원망과 원한을 푸는 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라이벌이 되어 일본 프로야구를 정리한 두 친구
당시의 세이부는 기요하라와 함께 아키야마가 콤비를 이루면서 AK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왕정치의 기록을 깰 타자는 기요하라뿐이 없다는 말까지 들으며 입단 4년째인 1989년 6월 4일 만으로 21세 9개월만에 100홈런을 날리면서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3년 후인 1992년 6월 26일에는 만 24세 10개월의 역시나 최연소의 나이로 2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세이부에 있는 11년간 무려 6번이나 저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같은 기간동안 구와타는 요미우리에서 2번의 우승을 차지했으나 3차례나 세이부에게 우승컵을 내줘야했습니다.
1990년 6월 2일 구와타는 히로시마를 상대로 20개의 내야땅볼 아웃을 잡아내면서 역대 1위의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구와타는 평소 “가장 이상적인 투구는 타자 전원을 내야땅볼을 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H2에서 히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투구와 같은 맥락이죠.
1994년 저팬시리즈에서 세이부와 요미우리가 맞붙은 5차전 요미우리의 선발은 구와타였습니다. 경기는 요미우리가 앞어있는 상황이었는데 6회말에 타석에 들어선 기요하라는 구와타를 상대로 홈런포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8회말에 다시 구와타를 상대한 기요하라는 다시 한번 홈런을 날렸습니다. 비록 경기는 9대3으로 요미우리가 이겼으나 KK대결은 기요하라의 압승이었습니다. 그해 구와타는 14승 11패 2.52의 성적을 남기고 MVP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95년 불의의 팔꿈치 부상을 당한 구와타는 1996년까지 시즌을 모두 날리고 1997년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온 팀에는 옛동료 기요하라가 있었습니다. 1996년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기요하라는 드디어 염원하던 요미우리로 이적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기요하라의 요미우리에서의 성적은 그렇게 신통치는 못했습니다. 이적 첫해 32홈런을 날리기도 했으나 계속된 부상과 부진으로 한때 왕정치 기록을 깰것으로 기대됐던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팀내 베테랑으로서 젊은 마쓰이와 다카하시 등을 이끌면서 팀의 4년만의 리그우승과 6년만의 저팬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최고령 일본인으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구와타
하지만 구와타와 기요하라가 만났을때 이미 그 둘은 이전의 기량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기요하라는 요미우리 이적 첫해 32홈런을 친 이후 한번도 30홈런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2001년에 121타점을 기록하면서 생애첫 주요 타이틀을 차지할뻔 했으나 아쉽게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고 지금도 기요하라는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구와타는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부진을 거듭했고 2002년에 12승 6패 2.22를 기록하면서 부활하는 듯 했으나 이후 한번도 20경기 이상 출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요하라는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오릭스로 이적을 했고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2008년을 끝으로 은퇴를 했습니다. 구와타는 누구나 끝났다고 생각한 시점에 돌연 미국행을 결정합니다. 피츠버그와 마이너계약을 맺은 구와타는 39세 70일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로선 일본인 최고령 데뷔였으며, 메이저리그 전체로도 2차대전 이후 사첼 페이지와 디오메데스 올리보 다음으로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비록 21.0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지만 그의 도전은 높이 살만합니다.
일본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기요하라와 구와타는 한번쯤 들어봤을겁니다. 기요하라는 워낙에 괴짜였고 반대로 구와타는 반듯한 이미지였죠. 어찌보면 만화에서와는 좀 반대인거 같기도 합니다.
기요하라는 비록 무관의 제왕이지만 일본야구에 남긴 업적은 대단합니다. 21년 연속 2자릿수 홈런은 역대 1위와 타이이며, 13년 연속 20홈런 역대 3위, 통산 끝내기 홈런 12개로 1위, 통산 끝내기 안타 20개 역대 1위이며 올스타전에서만 7번이나 MVP를 차지했으며 올스타전에서 날린 홈런이 12개이며, 저팬시리즈에서도 3번이나 MVP를 차지하는 등 큰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개인타이틀에선 구와타가 앞서지만 남겨놓은 업적을 보게 되면 기요하라가 더 훌륭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요즘 H2를 다시 보면서 생각나서 글을 남겨봅니다. 실제로는 오사카 출신인 둘이지만 만화에서는 일부러 북도쿄와 남도쿄로 나눠서 지구대회를 치루는 도쿄를 배경으로 한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아다치 미츠루는 기요하라보다는 구와타를 더 좋아한거 같죠?
기요하라 카즈히로 통산성적
.272 .389 .520 2122안타 525홈런 1530타점 1346볼넷 196사구(역대1위) 1955삼진(역대1위)
신인왕, 베스트나인 3회, 골든글러브 5회, 올스타 18회, 올스타 MVP 7회, 저팬시리즈 MVP 3회
구와타 마스미 통산성적
173승 141패 14세이브 2761.2이닝 1980삼진 방어율 3.55
최저방어율 2회, 최다탈삼진 1회, MVP 1회, 사와무라상 1회, 베스트나인 1회, 골든글러브 8회, 올스타 8회, 저팬리시리즈 MVP 1회
원문: H2러브의 MLB 스토리 / 편집: 리승환
woolrich outletWhat does FFA think of these 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