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독일 최대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조종사들이 사흘간 파업을 벌였습니다. 약 4,000회의 비행(전체 비행의 90%)이 취소되고, 50만 명가량의 승객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루프트한자에서 다른 항공사를 주선하는 등 이런저런 보완대책을 강구하기는 했습니다. 루프트한자 역사 이래 최대의 파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파업으로도 노사협상이 타결되지는 않았고, 부활절 이후에 재차 파업이 단행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부활절 연휴는 해외여행이 몰리는 시즌이므로 노조 쪽에서 회사나 국민 사정을 봐준(?) 셈입니다.
이번 조종사 파업은 제가 작년 가을 독일에 온 이후 처음 보는 대규모 파업(Mega-Streik)이었습니다. 언론에서도 관련보도가 연이어졌고, 논쟁도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한국의 작년 코레일 파업 때와 별로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독일 조종사 파업은 합법적이었으므로 경찰력이 투입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조종사들이 파업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때까지의 조기퇴직 연금제도를 회사측에서 변경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은 55세 이후에 조기퇴직하면 법적 퇴직연령에 도달하기 전까지 마지막 연봉의 60%를 받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도를 회사측이 폐지하려 한 것입니다.
파업과 관련된 또 하나의 사안은 노조측의 임금인상 10% 요구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해 왔으므로 이번에 왕창 올려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조종사 평균 연봉이 약 18만 유로(약 2억 6천만 원)로 일반 노동자 연봉의 약 5배입니다. 거기서 10%를 더 인상해달라고 나선 것이지요.
루프트한자 조종사는 연금 면에서건 임금 면에서건 독일 노동자의 최고 정상급입니다. 가히 ‘노동귀족’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래서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의 진보쪽에 가까운 주간지 <슈피겔>에서도 노조에 대해 다소 공격적인 인터뷰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노동귀족’은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의 거대기업 및 공기업(공무원 포함) 정규직에 대해서 노동귀족 논란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동귀족 논란은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노동귀족이란 용어 자체가 영국의 숙련 노동자를 겨냥해 엥겔스 등이 처음 사용한 것이지요.
미국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파산하기 전의 GM 노동자는 다른 자동차공장 노동자에 비해 임금이나 의료보험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습니다.(파산 이후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부두 하역노동자들도 10년 전쯤 파업 때 보도를 보니 연봉이 10만 불 이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귀족 현상은 어느 나라건 불가피한 “범세계적 현상”로서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느낌을 주는 이 용어자체를 아예 폐기해야 할까요. 오늘은 그런 문제를 독일 조종사 실태를 통해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해 한국 노동귀족의 보편성과 특수성도 따져 보고자 합니다.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생기는 이유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 문제는 일찍이 경제학의 할아버지인 아담 스미스(A. Smith)가 『국부론』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임금격차는 작업환경, 소득안정성, 교육훈련, 책임성 등 비금전적 불이익을 보상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상적 임금격차(compensation differential)’라고 하지요.
그런데 아담 스미스의 임금격차 이론은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상태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만약에 특정한 일자리로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아담 스미스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힘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부두의 하역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해 독점력을 행사한다면 임금결정은 사뭇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우리 부두의 항운노조는 이런 특권을 행사해왔습니다. 한국의 부두노조 위원장 중에는 조폭 보스 비슷한 인물도 있어서 여럿이 감옥 가기도 했지요. 남성미 넘치는 말론 브란도가 나온 미국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에서도 조폭이 부두노조를 좌지우지했던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점자본이 독점력으로 초과이윤을 획득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면, 거기에 취업한 노동자들도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원래 노동귀족이란 용어는 바로 이런 현실과도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기서 제도라는 것은 예컨대 최저임금제나 자격증제도처럼 시장 밖으로부터 시장내부로 주어지는 요소입니다. 임금도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이므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이 왜곡되어 있으면, 수요와 공급이 자유경쟁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임금격차가 아담 스미스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임금격차라기보다는 “노동귀족 – 노동평민 – 노동천민”의 차별을 논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루프트한자의 조종사의 경우
루프트한자 조종사는 수당을 포함해 초봉이 73,000유로입니다(20대 중반에 취업 가능함). 초봉부터 일반노동자 평균연봉 38,000유로의 두 배 정도이지요.
그런 다음에 엄격한 호봉제(연공임금)가 시행되어, 물가도 별로 오르지 않는 나라인 독일에서 매년 3%씩 임금이 인상됩니다. 승진도 99%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해 55세 정도에 임금은 최고수준인 약 26만 유로에 이르고 그 이후엔 하락합니다(임금 피크제). 아울러 55세에 조기 퇴직하면 매년 12만 유로 정도를 받습니다. 삼성에서 퇴직한 사장이 몇 년간 재직시 월급(성과급 제외)을 받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리해 루프트한자 조종사는 독일 최고의 대우를 누리고 있습니다. 경영진까지 포함해서 소득수준을 따지더라도, 루프트한자 기장은 석유가스업계 경영진, 금융업계 경영진에 이어 제3위에 위치합니다.
대단하지요. 한국에서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루프트한자 조종사도 거기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아니 하늘에 가까운 곳에서 일하니 그냥 “신의 직장” 또는 “신이 올려준 직장”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독일에선 결혼사기꾼들이 조종사를 사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까지 하고 그게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니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노조 파업을 이끄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파업을 이끄는 측의 논리입니다:
조종사가 되려면 비행학교에서 비싼 돈 내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략 2~3년간의 교육에 개인이 약 7만 유로를 부담해야 한다. 독일의 교육이 일반적인 경우 대학원까지 무상임을 감안할 때 이건 커다란 사전투자다.
게다가 장시간 비행에서 생활리듬이 깨지고(일반인도 어쩌다 타는 비행기의 시차적응이 힘들지요), 매년 조종적격심사를 받아야 한다. 거기서 탈락하면 더 이상 비행기를 몰 수 없다. 그래서 상당수의 조종사들이 그런 사태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그 보험료가 월 400유로에 이른다.
또 조종사들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조종사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또 루프트한자는 작년에 10억 유로의 영업이익(전년 대비 60% 상승)을 올렸고, 조기퇴직연금을 폐지하려는 조치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려는 조치다. 조종사 인건비는 전체 비용의 5%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돈이 없으면 조종사 교육을 못 받는지는 않습니다. 취업한 이후에 월급에서 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아닙니다(보통 월 500유로씩 12년간 납부). 어쨌든 노조 측은 그런 부담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조종사들은 지적으로 우수해야 하며, 500인 이상의 승객 생명과 4천만~2억5천 유로에 이르는 비행기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노조측은 내세웁니다. 조종사가 아차하면 대량참사가 일어나지요.
한편 파업에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루프트한자 조종사는 정규인력의 12%에 지나지 않으면서 전체 인건비의 1/3과 전체연금부담의 40%를 차지한다. 이건 불공정하지 않은가. 그리고 회사는 저가 항공사들의 경쟁압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걸 감안해야 하지 않는가.
조종사가 생명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간호사나 기차-버스 운전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조종사들의 연봉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은 연봉밖에 받지 못한다. 그러니 생명 운운하지 말라. 또 연예계 스타나 축구선수와 비교하는 것도 부당하다. 이들은 파업을 통해 임금을 올릴 권리가 없다.
양쪽 다 들어볼 만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조종사는 수학, 물리학도 잘 해야 하고 관제사와의 통화를 위해 영어도 능통해야 하지요. 게다가 야간 비행이라는 게 주는 육체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수많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와 그 지망생 중에 스타가 되는 것은 스타라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교육과정만 무사히 마치면 자리 잡을 수 있는 조종사와 그들을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다만 미국야구 선수들에서 보듯이 스포츠 선수들도 파업을 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덕적으로 조종사 대우와 그들의 파업을 논하는 것은 노사대결에서 ‘응원단’ 이상의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이 현재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왜 루프트한자 조종사의 연봉은 그리 높을까
먼저 루프트한자 조종사의 연봉은 영국의 British Airways, 프랑스의 Air France, 스위스의 Swissair 조종사의 연봉과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프트한자 회사측에서 밝힌 내용이니 틀릴 리 없겠지요.
이렇게 각국 최대항공사에서 조종사 연봉이 비슷하다는 것은 조종사 국제시세가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조종사는 영어로 소통하고, 또 한국조종사들이 중국항공사들에게 두배 가까운 연봉으로 스카웃되는 걸 보면 조종사의 국제시장이 어느 정도는 작동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독일 내에는 루프트한자 이외에 Air Berlin과 같은 저가항공사들도 있습니다. 이 항공사 조종사들의 연봉은 루프트한자에 훨씬 못 미칩니다. 초봉이 루프트한자의 대략 60% 정도에 불과하고, 최고연봉은 그보다 더 차이 나게 낮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선 Air Berlin과 같은 저가항공은 주로 유럽 내에서만 운행합니다. 따라서 루프트한자에서와 같은 장거리 비행은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노동환경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커다란 임금격차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걸 보완설명해주는 것은 루프트한자의 독점적 지위입니다. 항공기사업이란 것은 막대한 투자(항공기 구매비용)가 요구되는 사업으로 아무나 쉽게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각국의 최대항공사들은 적어도 초기엔 자국 고객들을 상대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고 보여 집니다.
루프트한자 등의 이런 독점적 지위는 거기서 근무하는 조종사들에게 이익을 나누는 차원에서 노동귀족적 지위를 보장한 셈입니다. 물론 모든 근무자들에 대해서는 아니고 비교적 높은 숙련이 요구되는 조종사직종이 그런 특혜를 누렸습니다. 조종사들은 강한 조직력으로 연공임금제와 특혜적 조기퇴직제도도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조종사들이 상당히 괜찮은 직종임이 알려지면서 조종사들의 공급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루프트한자 조종사보다는 낮은 연봉으로 조종사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그걸 토대로 저가항공사들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큰 비행기를 구입할 자금이 부족하니 주로 단거리 항공에 치중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종사 자격증 소지자들은 이제 대개가 루프트한자에 취직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니 신규루프트한자 입사자들은 자격증 소지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들만이 채용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노동귀족처럼 직원의 자녀가 특혜를 받는다거나 뇌물을 바치고 입사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루프트한자 조종사와 에어 베를린 조종사 사이에 대단한 실력 차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권적 지위에 올라가기 위한 별로 의미 없는 경쟁인 셈입니다. 현대자동차 생산직을 뽑는데 구름같이 몰리는 인력 사이의 실력 차가 별로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미 강한 조직력을 확보한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은 조종사 공급증대에 의해 일단은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게다가 장거리 운행이라는 독점적 영역을 여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당장 파산에 내몰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가항공사들은 빠른 속도로 루프트한자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베를린 공항에 가보면 루프트한자 카운터는 잘 안띄는데, Air Berlin 카운터는 여러 개가 늘어서 있습니다(물론 루프트한자의 거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러니 회사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이번에 조기퇴직연금제 폐지라는 칼을 내뽑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퇴직연금제와 같은 사람들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경제학분야에서는 어떤 이익이 확보될 때 증가하는 행복과 그것이 박탈당할 때 감소하는 행복을 비교해 봅니다. 그러면 똑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감소하는 행복 쪽이 훨씬 크게 나옵니다.
20평 아파트에서 30평 아파트로 옮길 때의 행복증가와 반대 경우의 행복 감소를 비교해 보십시오. 아마도 후자가 훨씬 클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행복증가에는 금방 익숙해져 버리지만 행복감소는 고통이 더 오래 갑니다.
이런 “이익과 손해의 비대칭성”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의 부당한 기득권 10을 박탈해 그 10을 그동안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있던 B에게 넘겨준다고 합시다. 그때 B의 행복증가보다 A의 행복감소가 더 큽니다.(물론 이건 단순화한 논의입니다.)
따라서 B의 지원만으론 A의 저항을 돌파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걸 돌파하려면 A의 저항을 제압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게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기득권집단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혁명적 정권이라야 부당한 기득권체제를 단칼에 해체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해방 후 한국의 농지개혁처럼 혁명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득권집단이 모든 걸 잃는 대신에 일부를 양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든 서구든 이와 같은 혁명적 상황 하에 놓여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부당한 기득권일지라도 그걸 한걸음씩 한걸음씩 바꿔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만능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미국에서도 GM노동자들의 특권은 GM이 파산하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루프트한자 조종사와 Air Berlin 조종사의 대우격차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입니다. 그런 조정과정에서 이번과 같은 파업이 나타난 것이지요.
한국 조종사들의 파업 사례
한국에서도 2000년과 2005년에 대한항공 조종사가, 2004년에 아시아나 조종사가 파업을 벌인 바 있습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아니 월급을 그렇게나 많이 받는 조종사들이 파업까지 벌이는가”하고 융단폭격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조종사들의 요즘 평균연봉은 대략 1억원이 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루프트한자 조종사들보다는 많이 떨어지지만 한국의 다른 직종에 비해선 높은 편이지요.
그리고 한국의 파업권은 독일만큼 보장받지 못합니다.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선 파업이 불법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게다가 한국인은 독일인과 달리 “빨리 빨리” 문화 속에 살고 있고, 파업에 따른 불편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강제로 조정권을 발동해 파업을 중지시켰습니다.
범위를 넓혀서 한국의 조종사라는 특수직종이 아니라 거대기업 노동자와 루프트한자 조종사를 한번 비교해 봅시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에서 그 이익을 공동으로 향유한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독일이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루프트한자를 비롯한 독일 대기업이 한국의 재벌처럼 중소기업을 무자비하게 쥐어짠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습니다. 또한 루프트한자 내에서 비정규직 조종사들이 낮은 임금으로 조종 업무를 분담하지도 않습니다. 한국 거대기업에서 사내하청을 통해 비정규직이 차별받는 것과는 다르지요.
게다가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이 받는 높은 연봉 중에서 40% 정도는 세금과 사회보장분담금으로 공제됩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의 가처분소득의 차이는 줄어들지요. 아울러 그렇게 거둔 세금으로 교육, 의료, 주택 등의 복지를 충당하니 국민들 사이의 생활수준 격차는 한국과 비교하면 작은 편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한국의 부당한 임금격차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해법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찌기 블로그에서 논의한 바 있습니다만, 독일 루프트한자 사례를 보면서 그 해법을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거대기업이 시장에서 확보한 독점력에 따른 이익을 그 거대기업 노동자가 공유하는 것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독재정권이 아닌 한). 혹시 최근 스위스에서 투표에 붙여진 것처럼 ‘최고임금제’(경영진의 보수제한)를 실행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만. 그래서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도 루프트한자 조종사의 노동귀족적 지위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
하지만 그 독점적 이익이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착취에 기인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착취를 줄이는 방법은 공정거래를 강화하든가, 중소하청업체(및 그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시키든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복지제도 강화를 통해 거대-중소기업 노동자 생활격차를 줄이고, 그를 통해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숙련을 축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해서 ‘복지강화’와 ‘부당한 임금격차 해소’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기업이나 공무원의 대우를 조정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가주도적 경제성장을 추진한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력이 공기업이나 공무원으로 몰렸습니다. 그리 몰린 인력들은 거대기업이나 적어도 대기업 수준의 처우를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공기업이나 공무원에 대해선 민주적 견제도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질적 임금격차를 줄어들게 하면 자연히 공기업 등에 대해 ‘신이 내린 직장’ 운운하는 말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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