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맥주에 대해 돌아다니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 글리포세이트: 국제암연구소가 2A군 발암물질로 분류. 맥주나 우리 체내에 존재해선 안 되는 성분. 식수내 잔류허용치는 0.075.
- 다양한 수입 맥주에서 글리포세이트가 0.6-49.7 범위에서 검출됨.
정보의 진위를 살펴보겠다. 이하 단위는 ug/L로 통일함.
논란의 시작은 2015년
국제암연구소(IARC)가 글리포세이트의 발암 가능성을 보고했다. 이후 미국의 소비자 권익단체 US PIRG 등에서 글리포세이트 사용을 반대해왔고, 우리나라에 유행한 ‘농약 맥주’ 정보도 여기에 근거한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IARC와 정확히 반대된다. EFSA와 IARC간의 의견 차이는 치열한 논쟁을 불러왔고, 22개국 100여명 연구교수가 참여한 대규모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EU의 27개국 전문가들이 EFSA의 연구를 지지하였으며, 미국환경보호국(EPA), 유럽화학물질청(ECA)도 같은 결론을 발표했다.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농약 규제 기관도 마찬가지. 2016년 로마에서 열린 WH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합동 회의(JMPR)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식품을 섭취함으로서 노출된 글리포세이트 정도로는 암이 생기지 않을 것.
즉 IARC를 제외한 다른 모든 단체가 글리포세이트의 발암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IARC의 연구가 잘못되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양쪽은 연구의 대상, 범위 등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목적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IARC는 글리포세이트가 단순히 암을 일으킬 수 있느냐는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EFSA 등은 농도를 극소량으로 규제하면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두 가지 결론 모두 사실일 수 있다. 암을 일으키는 물질은 맞지만, 농도가 아주 낮다면 실제로 암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도를 얼마나 허용해야 할까?
미국환경보호국(EPA)은 식수에 대한 규정치를 둔다. 최대 오염물질 수준(Maximum Contaminant Level, MCL)이라고 한다. 글리포세이트의 MCL은 700이다. 참고로 맥주에서 가장 높이 나온 수치가 49.7이다. 유럽 식수지침에는 각각의 농약에 대한 규정이 없다. 대신 어떤 활성 성분도 최대 0.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유럽의 식수지침을 적용하면 맥주에서 검출된 글리포세이트 양이 문제가 되는데… 이 지침은 예방 측면에서 만들어졌다. 본질적으로 식수에 농약이 존재할 리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기준을 모든 작물에까지 적용할 수는 없다. 농약을 사용한 제품에서 잔류물이 검출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수가 아닌 식품은 농약의 독성을 토대로 최대 잔류 허용량(maximum residue limit, MRL)을 설정한다. 잔류 성분이 있더라도 건강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농도를 뜻한다. 맥주는 특정 MRL이 설정되지 않은 가공품으로, 기본 구성 요소인 보리를 기준으로 한다. 보리의 기준은 2만 이다. 다시 말하지만 맥주에서 가장 높이 나온 수치가 49.7이다.
독일연방위해평가원(BfR)의 계산에 따르면 1,000L의 맥주를 하루에 마시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하루에 맥주 1,000L를 마실 수도 없겠지만, 아무튼 여기엔 함정이 있다. 알코올이 글리포세이트보다 발암 가능성이 150만 배나 높다는 점이다. 심지어 알코올은 1군 발암물질이다. 아마도 글리포세이트에 앞서 알코올 섭취로 먼저 암에 걸릴 게 틀림없다.
물론 이러한 근거에도 글리포세이트를 반대할 수 있다. 위험은 아무리 적어도 가능하다면 일단 피해야 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들 수도 있고, IARC 이외의 모든 단체가 거대 기업의 로비에 굴복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을 제로(0)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
글리포세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농약 성분이다. 유비쿼터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제초제. 물, 식물, 동물 등 먹이사슬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이스크림, 시리얼 등에서도 검출된 바 있다. 인간의 소변을 이용한 5건 이상의 연구는, 대상의 절반에서 글리포세이트가 0.5-233 까지 검출되었음을 보고했다. 특히 농약을 사용하는 농장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많은 수에서 검출되었다. 즉 인간의 체내에 존재해선 안 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글리포세이트는 농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초제다. 효과가 좋을뿐더러 지방에 용해되지 않아 인간의 몸에 축적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녔다. 이것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다른 제초제를 사용하게 될 텐데, 이런 풍선효과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살충제 계란 사건 때 이슈가 되었던 농약 성분은 피프로닐(fipronil)의 인체 독성은 글리포세이트의 약 500배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식품을 통한 간접 섭취에 한한다. 글리포세이트 성분에 직접 노출될 시 독성은 결코 낮지 않다. 특히 제초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독성을 강화를 위해 첨가되는 POEA라는 계면활성제는, 글리포세이트의 인체 독성을 몇 배나 강하게 증폭한다. 대표적인 제품이 지금 이슈가 되는 라운드업이다.
실제로 이러한 제품을 의도적으로 음독한 경우 치사율은 무려 7-20%에 달한다. 농장에서 직업적으로 수십 년간 제초제를 뿌린 결과 암이 발생했다는 외국 재판 사례도 있다. 글리포세이트와 암 사이에 강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 것이다. 따라서 복합제제의 시판 금지, 공공장소에서 사용금지, 수확 전 사용주의 등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현재 활발히 이루어진다.
글리포세이트 복합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맥주가 위험하냐 아니냐를 논한다. 조금 더 생산적인 논의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
원문: 조용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