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프라브를 모른다면, ‘SNL’을 생각해보세요
김현미(ㅍㅍㅅㅅ 에디터, 이하 김):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헬렌(헬렌컨설팅 대표 및 임프라브 팀 ‘임프로그(Imfrog)’ 리더): 한국 이름은 장정화이지만, 헬렌이라고 불리는 게 익숙한 헬렌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임프라브 컨설팅 회사 ‘헬렌컨설팅’이 있고요, 한국의 임프라브 팀 ‘임프로그’를 운영합니다.
김: 일단… 임프라브가 정확히 뭔가요?
헬렌: 영어로 Improv라고 쓰고요, 굳이 해석하면 즉흥 연기, 즉흥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완벽한 번역은 아니에요. 보통 연극, 연기에서는 즉흥 연기를 연기 연습을 위해서 많이 사용해요. 그래서 즉흥 연기의 활용이 제한적이에요. 연기 연습을 위한 즉흥 연기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강남역 스타벅스 앞에서 10년 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났어. 연기해 봐.’ 이렇게 상황을 주고 연기 연습을 위한 도구로 즉흥 연기를 하는 거죠. 이때 즉흥으로 해도 중요한 것은 연기를 잘하는 거예요. 하지만 임프라브는 딱 키워드 하나만 던져요. 사과로 연상되는 걸 자유롭게 만들어라. 저는 백설 공주가 떠올라요. 그러면 백설 공주 책을 읽는 장면으로 연기를 시작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연기가 아니고 즉흥이 더 중요해요. 특히 혼자가 아닌 무대에서는 더더욱 즉흥이 중요해져요. ‘사과’라는 제시어를 듣고 무대에 있는 두 배우 중 한 사람은 백설 공주를, 한 사람은 배고픈 거지가 떠오를 수 있죠. 이때 먼저 백설 공주를 떠올리고 백설 공주 연기를 시작했다면, 배고픈 거지를 떠올린 사람은 백설 공주를 만난 배고픈 거지를 연기하게 되는 식이에요.
김: 호오…
헬렌: 일반 연기와는 포커스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즉흥연기는 미국 시카고,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했어요. 미국에서 즉흥연기는 연기의 기본이에요. 연기 오디션을 볼 때 기본적으로 즉흥연기를 시킨다고 해요.
테드(TED)에서 설명하는 임프라브. 영어가 되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임프라브 공연을 진행하는 임프로그 팀의 모습.
헬렌: 원래 IT회사에서 기획 마케팅 일을 했어요. 근데 기획자들이 기획해서 개발자들에게 넘기고 퇴근하면, 그때부터 개발자들은 밤을 새기 시작하는 거예요. 개발자가 너무 불쌍했어요. 그 사람들을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고 싶어서 공부한 게 애자일이었어요. 애자일을 공부하다 보니, 애자일을 잘하려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임프라브도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제시카 코일이라는 외국인 임프로바이저 선생님을 모신 워크숍 세션을 참석하게 됐어요. 근데 그걸 접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이걸 찾아서 헤맸구나, 이게 내 인생의 직업이 되겠구나. 이거랑 저거랑 섞으면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겠구나. 영감이 솟구쳐 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회사를 그만뒀죠.
김: 연기와 즉흥연기의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뭐가 있나요?
헬렌: 임프라브는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유명한 임프로바이저들 중에는 유명한 코미디언들이 많아요. 우리가 많이 아는 사람 중에는 로빈 윌리엄스, 짐 캐리가 있고, 최근에는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여기 출신이에요.
김: 오… 진짜 생각보다 굵직한데요.
헬렌: 그렇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K-pop 아이돌 지망생이 유명 기획사로 모여드는 것처럼 임프로바이저 수천수만 명이 전 세계에서 시카고로 모여요. 임프라브는 기본적으로 시카고에서 많이 발달했어요. 연극게임의 창시자 비올라 스폴린의 아들 폴 실스가 시카고 대학에서 임프라브를 시작했고, 시카고 대학 임프로바이저들이 시카고에 세컨드 시티(Second city)라는 임프라브 극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샤르나 하펀이 I.O.(Improv Olympic)라는 임프라브 극장을 만들어서, 이 두 극장이 시카고의 양대 산맥이 되었죠. 여기에서 굵직한 연기자들이 많이 태어났어요. 임프로바이저들은 그 극장의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게 꿈이에요. 정상급 임프로바이저가 되었다는 것이고, SNL(Saturday Night Live) 같은 임프라브 TV 쇼나 헐리우드 진출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딱딱한 은행 임원진도 ‘즉흥 연기’를 하게 만드는 마법
김: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배울 곳도 마땅치 않을 것 같은데.
헬렌: 맞아요.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딱 한 군데 SCI(Seoul City Improv)라는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취미 활동으로 하는 팀 밖에 없었어요. 영어로 진행을 하는데, 거기서 2~3년 정도 임프라브를 함께하며 배웠죠. 임프라브를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었어요. 알고 보니 그분들도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저처럼 알음알음 구전으로 배운 것이었거든요. 거기서 사귄 친구들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데를 알아보니, 미국 시카고를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카고로 날아가서 3개월 동안 집중 트레이닝을 받았죠. 그 후에도 2년 후에 3개월 트레이닝을 받았고, 2~3년에는 한 번씩 가려고 해요.
김: 임프라브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던 건가요?
헬렌: 임프라브의 제1원칙이 “Yes, and”예요. 상대방이 하는 말을 Yes,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거기에 and, 내 생각을 덧붙여요. 이 Yes, and 원칙에 의해 장면이 이끌어질 때,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할 때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져요. 임프라브는 기본적인 코미디거든요. Yes, and 원칙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해져요. 내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너무 좋고, 웃음도 많아져요. 제게 임프라브를 배우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내 인생에서 최고 크게 웃은 날이다”라는 거예요. 1년 치 웃음을 다 웃은 것 같다고 하세요.
김: 임프라브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그렇게 몰입하게 만드는 걸까요?
헬렌: 임프라브는 대본이 없잖아요.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소품도 없고요. 배우들이 감독, 배우, 작가 역할을 모두 해야 해요. 그러려면,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관찰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상대방의 이름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지금 뭘 하는지 등이요. 즉흥 연기를 잘하려면 잘 관찰할 수밖에 없는데, 잘 관찰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돼요. 그리고 그렇게 배우가 몰입할 때 관객들도 함께 몰입하면서 즐겁고 행복해지죠.
김: 어떤 수업을 개설하셨나요? 그럼 어떤 분들이 자주 오시나요?
헬렌: 처음에는 임프라브를 원하는 회사에 가서 임프라브를 가르쳤어요. 미국 IT 회사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임프라브를 하고 싶어 했어요. 임프라브를 하면서 프로젝트팀원들을 알게 되고, 친해지는데 임프라브를 활용하고 싶었던 거죠. 한국 사람들은 임프라브를 모르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임프라브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그때 제가 임프라브 과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임프라브를 가르치고 싶어서 먼저 비기너 과정을 오픈했어요. 임프라브 수업을 들으신 분들도 저처럼 임프라브를 더 배우고 싶어 했고, 제가 캐나다, 미국 등에서 배운 것으로 인터미디어, 어드밴스드 과정까지 만들었어요. 비기너는 여태 13개 클래스를 운영했고, 인터미디어도 8개 클래스, 어드밴스드는 3개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제가 아무래도 IT출신이고 또 애자일에도 관련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IT 분들이 관심을 갖고 오셨어요. 그리고 임프라브를 정말 모르기 때문에 입소문 듣고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IT 분들이죠. 퍼실리테이터 분들도 순발력을 기르는 것이나 현장에서 빠짐없이 사람들을 챙겨 이끌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많이들 오세요. 학교 선생님들도 자주 오세요.
김: 학교 수업에 도움이 된대요?
헬렌: 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소통할 때 도움이 된다고 오세요. 강의할 때 이런저런 기법 넣어 보니까 효과를 많이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실제 배우 분들이 오시기도 해요.
김: 아 그래요? 그분들은 전문적으로 연기 배운 분들 아닌가요?
헬렌: 네 맞아요. 그래도 임프라브는 연기하고는 또 다르거든요. 연기를 배울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즉흥연기는 러시아의 유명한 배우, 스타니슬랍스키가 창안한 에쮸드라는 장르를 많이 배워요. 고양이나 강아지가 되어 보고, 냉장고가 되어 보기도 하는 거예요. 어쨌든 임프라브는 연기와는 포커스가 좀 다르고, 코미디다 보니 배울 때 더 편안하고,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연기를 가르칠 때 임프라브를 활용하려고도 하더라고요.
김: 그런데 배우분들은 연기를 배운 분들이라 쳐도, IT분들은 워낙 경직되어 있으니 힘들지 않나요?
헬렌: 맞아요.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아요. 제가 기업 강의도 자주 가요. 그래서 다양한 분과 임프라브를 해봤어요. 기업에서 임프라브 워크숍은 대상에 따라 주제를 가지고 진행을 해요. 예를 들어 신입사원들과는 팀 빌딩을, 진급자 워크숍에서는 리더십을, 또 의사소통을 주제로도 진행해요. IT 회사에서 많이 했지만 은행, 협동조합, 공공기관에서도 해봤어요. 심지어 은행권 C-Level 분들과도 임프라브 워크숍을 진행해봤어요.
김: 어우, 그거 어떻게 되기는 하나요…
헬렌: 제가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과정을 만들어 놨어요. 그리고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임프라브의 힘인 것 같아요. 임프라브를 하려면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음을 열어야 해요. 임프라브의 1원칙이 “Yes, and”면 2원칙은 ‘파트너를 돋보이게 하라’ 거든요. 임프라브를 잘하려면 자기 혼자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 돼요. 자기 혼자 잘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아요. 같이 잘해야 임프라브가 잘돼요. 같이 잘하려면 1원칙 상대방이 무엇을 하든 Yes, and 하고 더 나아가서 Yes, and를 할 때 파트너를 돋보이게 하라는 거예요. 이걸 하다 보면, 처음에 정말 보잘것없던 것들이 나중에는 정말 멋져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돼요. 이게 처음부터 저절로 잘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임프라브를 연습할 때 웜업이라는 것을 많이 연습해요. 서로 마음을 열고, 서로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는 거죠. 그래서, 4시간짜리 워크숍을 하면 아이스브레이킹 겸해서 웜업 게임을 위해 1시간 정도 진행해요. 임프라브는 함께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된 상태에서 진행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웜업 게임을 충분히 진행을 하는 거죠. 말로만 아이스 브레이킹이 아니라 정말로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다행히 어떤 분들이든 최대 1시간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하나하나 하다 보면 굉장히 교묘하게,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랑비에 옷이 젖는 듯 마음이 열려요. 제가 아주 커리큘럼을 훌륭하게 짜 놨죠 (웃음)
김: 살짝만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헬렌: 워밍업할 때 좀 도전적인 주제를 던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닉네임 댄스’를 시키는 거죠. 온몸으로 자기 이름 형용사를 표현하고, 그걸로 아이엠 그라운드 게임을 하는 거예요.
김: 으억… 그걸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 수 있나요?
헬렌: 대부분은 잘했어요. 하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요. 만약 제 이름이 헬렌이다, 그러면 “헬게이트, 헬렌!”이라고 외치는 식이죠. 그리고 에디터님의 이름이 현미이니까 “현명한 미인, 현미!” 하고 던지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거죠. 이걸 하다 보면 점점 마음이 컴포트 존을 나오기 시작해요. 정말 재밌어요. 굉장히 시끄럽고. 하다 보면 사람들이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는 자기 안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해요. 그리고, 이런 부분 때문에 저는 수업 참관을 받지 않아요.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영향을 받아서 더 어려워하더라고요.
김: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나요?
헬렌: 처음에는 한두 명씩 있기도 해요. 그런 분은 제가 직접 도와드려요. 대사할 때 옆에서 돕는다거나… 그렇게 제가 몇 번 도와드리면, 새로운 활동도 잘하게 돼요. 서로 Yes, and로 받아주고, 과정 자체가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런 분들도 잘 적응할 수 있는 노하우와 전문성을 제가 갖고 있어요.
김: 듣다 보니 심리치료 쪽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헬렌: 와, 정확해요. 그래서 드라마 테라피스트도 배우러 와요. 제가 시카고에 공부하러 갔을 때도 변호사부터 테라피스트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훈련을 받았죠.
영어 안 되던 초짜, 3개월 만에 ‘미국 본토 최정상 무대’에 오른 비결
김: 생업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장르의 일을 하시는 건데 불안은 없으셨나요?
헬렌: 걱정이야 많았죠. 그런데 남편 덕분에 해냈어요. 진짜 식상하죠? 근데 제가 임프라브로 전향하고 헬렌컨설팅을 하는 에너지와 지식을 습득하는 1년을 남편의 든든한 지지 속에 보냈어요. 사실은 생업도 남편이 책임져 줬죠. 지금도 이것만으로 먹고 살 돈벌이는 되지 않아요. 너무 안 알려져 있으니까. 아직은 제 마지막 연봉의 반토막 정도예요.
김: IT마케팅 업종에 계셨으니 연봉도 높으셨을 텐데, 아깝지는 않나요?
헬렌: 저도 남편도, 임프라브가 굉장히 훌륭한 도구고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도 남편에게 그래요. 개발자로 언제까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애?(웃음) 이건 블루오션이다, 나는 국내 최초이고 유일한 풀 타임 임프로바이저이자 임프라브 코치다, 우리나라에서 임프라브 교육을 정기적으로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좋다고 마구 추천한다. 부모님들이 오셔서 그래요. 이건 학교 정규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좋다고. 그 정도로 훌륭한 도구라는 데에 저는 확신이 있어요.
김: 시카고에서는 어떻게 배우신 건가요?
헬렌: 시카고 임프라브 시어터에서 ‘임프라브 트레이닝 센터’라는 타이틀을 걸고 임프라브를 가르쳐요. 낮에는 클래스를 운영하고, 밤에는 공연을 하는 거죠. 저는 거기에서 인텐시브 코스를 수강했어요. 10주, 20주 하는 정규 코스를 2주일, 3주일로 확 압축해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만큼 인텐스 하죠. 배우다 보면 막 울면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감정적으로도 힘들고, 머리론 알겠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괴로운 사람도 있고. 저는 거기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트레이닝 받고, 밤에는 임프라브 공연을 봤어요. 남들 공연하는 게 너무 궁금해서 밤마다 계속 봤어요.
김: 말만 들어도 힘들 것 같네요… 외국인데 언어적으로 어려운 건 없었나요?
헬렌: 제가 호주를 1년 갔다 와서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SCI 활동을 2~3년 하면서 조금 더 공부가 됐고요. 그래도 처음 시카고에 갔을 때는 말이 너무 빨라서 70%도 알아듣기 어려웠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오히려 영어를 못 해서 이익을 굉장히 많이 얻었어요.
김: 엥? 그런 게 돼요?
헬렌: 시카고에서는 임프라브 하는 사람을 3가지로 나눠요. 하나는 머리로 임프라브를 하는 사람, 마음으로 임프라브를 하는 사람, 그리고 크레이지하게 하는 사람. 보통은 머리로 해요. 그렇게 하면 가만히 서서 말을 많이 하거든요. 재치 있는 대사, 유머로 표현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몸을 많이 쓰는 편이었고, 몸을 많이 쓰다 보니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인식되어서 각광을 받은 거죠. 그리고 또 제가 영어가 짧잖아요? 문장이 길지 않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직설적이고 다이렉트한 거예요. 제가 다이렉트로 얘기하니 굉장히 통쾌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못한 덕분에 득을 많이 본 거죠. 그러다 보니, 저는 시카고에서 연예인 병에 걸려 있었어요(웃음)
김: 아니, 그건 또 어떻게-_-?
헬렌: 전 세계에서 시카고로 모인다고 했잖아요? 진짜 수십 개 나라에서 와요. 아시아, 유럽 어디 할 것 없이 몇백 명이 모이는데, 그럼에도 네이티브 코리안은 처음 온 거예요. 2014년 당시만 해도 아시안이 별로 없었어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각광을 받았죠. 사실 학생 신분으로 큰 무대에 서기 쉽지 않아요. 아까 말씀드린 I.O.나 세컨드 시티의 메일스테이지는 치열한 오디션을 뚫어야 하고… 아무튼, 공연에 서기가 정말 힘들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저는 네이티브 코리안 임프로바이저라는 타이틀 하나로 초대를 받아서 무대에 섰어요.
김: 아, 그러면 정식 공연도 하신 건가요?
헬렌: 네, 많이 했죠. 선생님들과도 많이 했어요. 연예인 병에 걸린다는 게, 끝나고 나면 와서 너 진짜 웃기다고 술 사주고 페이스북 친구 해 달라 그러고 사진 찍자 그러니까, 우버를 불러 놓고서도 탈 수가 없더라고요.
김: 말씀 주신 임프라브 페스티벌은 언제 열리는 건가요?
헬렌: 지역별로, 나라별로, 도시별로 있어요. 유럽에서는 베를린, 파리, 코펜하겐에서도 매년 열리고, 아시아에서는 최대로 크게 개최하는 데가 필리핀 마닐라, 중국 상하이, 베이징, 그리고 싱가포르. 이렇게 해요. 보통 2년에 1번씩,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정해서 개최하죠.
김: 듣다 보니 동아시아, 한국이나 일본 제외하고는 굉장히 많이 퍼져 있는 예술이라고 보면 되나요?
헬렌: 한국에서도 점점 퍼지는 추세예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 팀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3개 정도 더 생겼어요. 제가 하는 임프로그라는 팀이 있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파벤저스라는 팀이 있고, 비볼라투소라는 팀이 있어요. 일본도 저희랑 비슷하게 도쿄랑 오사카에서 팀이 활발하게 활동해요. 다만 후발주자로 마닐라나 중국, 싱가폴에 비해서는 아직 작은 거죠.
김: 그럼 지금 총구성원은 몇 명인가요?
헬렌: 전체 인원은 20명쯤 되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액티브하게 활동하시는 멤버가 6명에서 8명 정도고요.
2018년 3월 임프로그 오픈 데이 영상. 그러고 보니 왜 임프로그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헬렌: 지금 ‘코리아 임프라브 시어터’라는 곳이 숙대입구에 있어요. 우리 임프로그와 외국인 크루 위주의 SCI가 거기를 썼죠. 그런데 저희는 지금 연습실을 강남이나 선릉에서 빌려 써요. 직장인들이 많다 보니 숙대입구로 오는 교통을 굉장히 불편해하시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수업도 강남이나 선릉에서 해요. 임프로그도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선릉에서 연습해요. 임프로그는 순수하게 임프라브를 즐기는 팀이에요. 사실 그래서 제가 임프라브를 비즈니스로 하는 게 힘든 부분도 있어요. 임프라브를 순수한 예술로 접근하느냐, 비즈니스로 컬래버를 하느냐…
저도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해요. 저는 순수 공연 예술로서의 임프라브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게 너무 좋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이걸 통해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방식이 비즈니스적으로 풀리는 걸 수도 있죠. 그렇게 해야 조금 더 많이 알려지고 퍼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임프라브를 좀 더 순수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고. 제 안에서도 양가감정이 싸우는 거죠.
김: 되게 어려운 문제 같네요. 예술로서 키우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적 방법론이 필요한.
헬렌: 맞아요. 사실 돈이 문제죠. 제가 만약 100억짜리 로또에 당첨된다면, 저는 우리나라 중심가에 임프라브 극장을 만들고 싶어요. 돈이 많으니까 입장료 안 받아도 돼요. 거기서 재능기부 형태로 어려운 사람들, 특히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임프라브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저녁에는 매일 공연하면서 제 자아실현도 하고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제가 잘할 수 있는 임프라브로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돈도 벌어야 하는 거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김: 그러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
임프라브의 마법: 선생님, 부부, 아이, 회사까지 너무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김: 여태까지 가르치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헬렌: 너무 많죠. 너무 많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그해 마흔 되셨던 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분이 선물을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하다고, 자기가 마흔 평생에 처음으로 찾은 취미생활이라고… 내가 하고 싶어서 즐기면서 이렇게 행복하게 한 건 처음이라고.
김: 아이고…ㅠㅠ
헬렌: 또 어떤 분은 이래요. 월요일이 원래 월요병 때문에 힘든 날인데, 제 수업 때문에 너무 기다려진대요. 힐링 타임이라고.
김: 임프라브의 어떤 부분이 그분들을 감화시키는 것일까요?
헬렌: 먼저 “Yes, and” 때문이에요.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성격 등이 연기에 담기는데, 자신의 말과 행동과 감정이 Yes, and로 받아질 때, 그러면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창의적인 것들이 나올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이게 또 너무 재밌어요. 하는 사람도 웃고, 보는 사람도 웃어요. 정말 깔깔대며 웃어요. 어떤 분들은 막 집에 가시면서 배가 너무 아프다고, 경련 일어날 것 같다고 하시고.
아, 기억에 남는 분들이 또 있어요. 부부가 들으셨는데, 부부관계가 너무 좋아지셨대요. 그리고 자제 분들과도 관계가 너무 좋아진 거예요. 그래서 다른 부부에게 막 추천하신 거예요. 그분들이 들어서 또 다른 부부에게 추천해주시고, 남친여친 있으신 분들도 듣고… 변화가 그렇잖아요. 혼자 변화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변화하고 싶어서, 같이 들으러 오시는 거죠. 막 다단계처럼. ‘너 한번 해 봐, 내가 해봤는데 진짜 좋아.’ 막 이렇게. (웃음)
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확실히 드네요. 아까 말씀하신 사이코드라마적 요소도 있고, 소통 스킬도 늘려주는 교육적 요소도 있고. 뭔가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어려운…
헬렌: 맞아요. 임프라브는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 모든 사람이 매일 해요. 집에서, 직장에서 말을 하기 전에 이런저런 말을 해야지 하고 미리 계획을 세우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70 시니어까지 다 해 봤어요. 저와 했던 모든 분은 정말 많이 웃고, 즐거워하셨어요. 이런 면은 정말 만병통치약 같아요.
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만, 이 사람들은 내가 정말 공략하고 싶다, 그런 타깃은?
헬렌: 자기감정 표현이 힘든 분,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고 억눌린 내성적인 분, 리더십이 필요한 분, 소통과 공감이 필요한 분 등 너무 많죠. 요즘 또 화두인 게 공감 능력이잖아요. 저는 처음에 공감 능력을 개발하거나 향상시키기는 아무래도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그 첫 번째 실험 대상이 저희 남편. (웃음)
김: 네?;;
헬렌: 저희 남편이 굉장히 유하고 부드럽고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공감 능력은 굉장히 떨어졌어요. 개발자거든요. 남편에게 “낮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걔가 아무래도 나 안 좋아하는 것 같애.”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했거든요. “데이터가 부족해.” “논리적으로 굉장히 비약적이야.” 그런데 임프라브를 하면서 공감 능력이 굉장히 많이 향상된 거예요.
제가 또 애자일 쪽도 해요. 애자일 코리아 얼라이언스의 보드 멤버예요. 애자일 코리아 콘퍼런스나 밋업 같은 데 운영진을 해요. 그래서 첫 타깃이 자연스럽게 개발자가 됐어요. 논리적이고, 데이터 찾고, 공감 못 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게, 개발자는 혼자 일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개발자도 기획, 마케팅 등을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스킬을 발달시키려면 필요한 수업인 거죠.
김: 이 부분을 부각해 써야겠어요. 이걸 들으면 훌륭한 개발자가 될 수 있다.
‘달러쉐이브클럽’의 원동력, 임프라브: 당신도 할 수 있다!
김: 서칭하면서 신기했던 게, 미국 스타트업 중 달러셰이브클럽이라는 데가 유튜브 클립 한 개로 엑싯까지 성공했단 말이죠. 그런데 그 CEO가 임프라브를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오로지 이 유튜브 광고 하나로 320만 고객을 모으고 질레트 제품 가격을 20% 떨어뜨린 유명 스타트업 달러셰이브클럽.
김: 어… 화분?
헬렌: 그러면 그 화분으로 극을 꾸미잖아요? 이게 정통적인 임프라브 스타일인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 사실 돈을 받고 공연하는 사람들인데, 사실 공연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보장할 수가 없는 거예요.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어요. 아무도 몰라요.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이지만 비극으로 갈 때도 있어요.
김: 헬렌 님도 엄청나게 비극적인 결말을 낸 적이 있나요?
헬렌: 당연하죠. 다 자살하고 끝낸 적도 있어요. 저는 심지어 상하이에서 갓난아기를 죽이는 결말로 끝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헉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것도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몰입하고 공감했다는 뜻이거든요.
김: 무궁무진하군요.
헬렌: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세컨드 시티라는 곳의 헤드가 고민한 거예요. 아무리 즉흥 공연이어도 퀄리티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장르가 뭐가 있을까? 그래서 이 사람이 만든 게 ‘스케치’라는 장르예요. 이게 뭐냐면, 딱 봉숭아학당이나 개그콘서트 생각하시면 돼요. 짜여진 틀 안에서 새로운 걸 꾸며 와서 선보이죠. 똑같아요. 임프라브로 시작하되, 얘를 몇 번씩 하면서 다듬어 나가요. 웃긴 부분 살리고 재미없었던 부분 빼내고. 그렇게 다듬고 다듬어서 달러셰이브 영상 광고를 만든 거죠. 그래서 그 CEO가 “나는 임프라브의 덕을 봤다”고 말하는 거고.
김: 확실히 그 클립 보면, 요새의 다듬어진 클립들과는 다르게 미스나는 부분들이 생겨서 재밌더라고요.
헬렌: 그렇죠, 틀은 있고 다듬기도 했는데, 또 날것의 생생한 느낌이 나는 것. 그것이 바로 임프라브가 원천적으로 가진 매력이고, 하지만 망한 부분은 제거하는 정제 과정을 거친 게 스케치인 거죠.
김: 마지막으로, 강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실 예정이세요?
헬렌: 임프라브 체험 과정을 구성해 보니 4시간이 가장 좋았어요. 그렇지만 직장인 분들이 평일 저녁에 이 정도 시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시간을 조금 줄여서 2시간 30분 정도로 진행하려고 해요. 처음 30분은 워밍업을 하면서 마음을 열고, 그 후에는 임프라브의 제1 원칙인 Yes, and 연습을 해볼 거예요. 임프라브의 기본을 배우면서 자신의 의사소통 방식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의사소통 방식을 개선할 수 있어요. 그다음에는 커뮤니케이션 연습을 더 하거나 공감 연습을 할 거예요. 마지막에는 ‘숏 폼(Short form) 게임’이라고 해서 5~10분 정도의 짧은 임프라브 게임들이 있어요. 공연에도 쓰이는 게임들인데, 이걸 체험하실 수 있게끔 구성해 보려고 해요.
김: 정규 과정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헬렌: 정규 과정은 2시간씩 10주 과정이에요. 매주마다 특정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는 임프라브 게임을 배웁니다. 임프라브를 잘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가 있고, 이를 위한 게임들이 있거든요. Yes, and, 감정, 마임, 스토리 등을 집중 훈련을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까운 가족, 친구들을 불러서 직접 공연도 하죠. 이런 체험 과정을 ㅍㅍㅅㅅ아카데미에서도 진행해보는 계획을 짜요. 반응이 좋으면 정기 과정으로도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헬렌: 저는 임프라브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임프라브를 보고 즐기는 분들도 많이 늘었으면 좋겠고요. 제 바람은 딱 그거 하나죠.
[장정화]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즉흥연기, 임프라브로 능률을 높이자
왜 이 강의를 만들게 되었나요?
임프라브(Improv)는 코미디 장르의 즉흥연기입니다.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고, 자신감이나 순발력, 자기표현도 잘할 수 있게 되는 부수적 효과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재미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임프라브를 통해 많은 분이 웃고 즐기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크게 소리내어 웃을 수 있다.
-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 (쓸데없이) 자기 표현을 잘 할 수 있다.
- 내가 원하는 바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 인생이 재미가 없으신 분
- 소리내어 웃은 지 한 달이 넘으신 분
- 자신감과 순발력이 필요하신 분
- 사람을 대하기 어려우신 분
- 아이스브레이킹 & 워밍업
- 임프라브가 뭔지 알기(소개)
- 임프라브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Basic Scene 만들기)
- 임프라브 게임 경험하기(마임, 스토리, 감정 게임 등)
- 회고
- 날짜: 5월 29일(수)
- 시간: 19:30 ~ 22:00
- 장소: 위워크 삼성역2호점(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