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됐어?”
몇 년 전 한 아이가 전교 1등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네 글자만이 남아 있었다.
부모에게 아이는 종교다. 부모는 아이를 신처럼 여긴다. 신에게 모든 걸 해야 한다. 그래서 말한다. 게임 그만 하라고, 더 공부하라고, 좋은 대학 가서 잘 살 수 있다고, 다 널 위한 거라고. 단 한 가지만 맞다. 자식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
부모가 신으로 모신 아이는 괴롭기만 하다. 숭배의 대가는 부담을 넘은 압박이다. 그들은 20년 넘어 신도에게 억눌린다. 뭔가를 되돌려줘야 하는데, 그럴 능력은 없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선물 1위가 ‘전교 1등 성적표’였다.
이게 우리들 부모 세대가 낳은 세상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모든 부모의 말이다. 부모 세대는 어릴 때부터 성공신화를 보며 자라왔다. 노력하면 더 잘살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부모 세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 그 희생을 기반으로 부모 세대는 부와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났다. 그럼에도 부모 세대는 윗세대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처럼 머리가 좋지는 않다. 그래도 세상은 부모보다 훨씬 정확히 본다. 그들은 형들이 좋은 학교를 나오고도 취업을 못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것을 봐왔다. 그 목소리를 매일같이 부모 세대가 보지 않는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본다.
의사이자 청소년 교육자로 살아가는 김현수 원장의 말은 이렇다.
사실 아이들은 알고 있어요. 자신이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은 것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1등할 수 없는 것을. 사실 아이들은 노력도 하기 싫고, 그냥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선생님, 정말 힘들고 괴로워요. 저는 너무 어릴 때부터 고생만 실컷 하는 것 같아요.”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모든 걸 해줬는데, 왜 아이들은 이렇게 약해빠졌냐고 이야기한다. 15년 간 청소년 상담에 힘쓴 김현수 원장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가장 시급한 자유는 안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무언가를 ‘더’ 하겠다는 아이들은 없고. ‘덜’ 해달라는 아이들로 가득 찬 상황이죠.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만약에 아이들이 약하다면, 부모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생각을 심어준 게 어른들이다. “공부 그렇게 해서 어느 대학 갈래?” “그런 문제도 못 풀고 앞으로 어쩔 거냐?”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살아온 아이들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할까.
한강의 기적과 IMF 극복, 월드컵 4강 신화를 본 부모 세대에게는 희망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현수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민족이 일구지 못한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이 고양된 능력주의가 아이들을 여러 번 고생스럽게 합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어른들은 약한 아이가 아닌 괴물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위는 비교다. “엄마친구아들”로 희화화되는 비교는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줄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를 미워하고, 그 기대에 따르지 못하는 자기 자신마저도 미워하게 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아이들 문화 안에서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를 견뎌주지 못하는 문화가 그득합니다. 어른들에게 배워서, 어른들이 혼내듯이 아이들도 자기 또래 아이들을 마구 혼내고 비난합니다. 자신들이 받은 혐오나 모멸감을 되돌려주고 싶어하고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일베나 다른 혐오사이트를 맴돌기도 합니다. 이번 생애는 망했기 때문에 어떤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부모 세대는 지금 10대와 20대를 비웃는다. 아이들은 약해 빠졌다고. 심지어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들은 민주화를 이뤘는데, 애들은 일베나 한다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건 바로 어른들이다.
게임 중독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부모의 압박이다
모든 부모가 애들이 게임밖에 안 한다고 질책한다. 김현수 원장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게임은 불안을 피하기 위한 결과적 행동입니다. 중독은 신나고 행복한 과정이 절대로 아니에요. 단지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하는 기능일 뿐이죠.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부모들이 아이가 하는 게임에 정말 한 번이라도 깊은 관심을 가져봤을까? 부모가 하는 행위라고는 고작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뺏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들에게 그저 ‘형벌’로 느껴진다. 차라리 부모 세대가 당한 ‘체벌’이 나을 지경이다. 그때는 놀이터를 앗아가지는 않았으니까.
사회성이 없이 게임만 한다고 질책하는 부모들, 바로 그들이 사회성을 앗아갔다. 성적만 강요하는데 어떻게 사회성이 생기겠는가. 물론 부모 세대도 성적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이웃이 있었고 형제도 있었다. 형제도 없고 이웃과 단절된 아이들과는 외로움의 수준이 다르다.
사실 게임은 아이에게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모와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진솔한 이야기를.
“그래도 엄마와 아빠가 필요해”
아무리 10년 전후를 함께 살았더라도, 아이와 30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는 부모 입장에서 소통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부모와 편하고 친하길 바란다. 산전수전 겪어온 부모도 함께 사는 게 힘든데, 아직 서툰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김현수 원장의 조언은 이렇다.
존중하며 잘 들어주세요. 많은 어른들은 듣기를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듣지 않게 되면 어른들의 자기중심적 생각을 아이들에게 훈계하는 일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열심히 들어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노력해 주세요. 그것이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줍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우리는 아이들이 꿈을 꾸면 그것을 짓밟기에 바쁘다.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하면 “그거 공부보다 훨씬 힘들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 게임이 언제까지 갈 것 같아?”라고 현실로 비웃는다. 그 결과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부모와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아이가 신이라는 종교를 가진 부모들은 힘들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이 한 마디만 기억한다면 좀 더 나은 아이와의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만남에 집중해 주세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이에게 전적으로 집중해서 만나주세요. 마치 우주에 단 둘만 존재한다는 느낌으로 온전히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느낌으로 만나주세요. 엉터리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 무시하고 만난다는 느낌은 아이를 상당히 기분 상하게 합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너무나 쉬운 이야기지만 또 지키는 부모는 거의 없을, 그런 이야기다. 한 순간이라도 만남에 집중하자.
※ 해당 기사는 해냄출판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