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이 된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유리로 된 피라미드입니다. 하지만 유리 피라미드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에는 건축가가 동양인이라는 것, 그리고 보기에 흉물스럽다는 것 때문에 시민들의 반대가 꽤 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낮에는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고, 밤에는 조명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리 피라미드는 지금도 세계적인 명소인 루브르 박물관 앞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습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 등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을 보여줍니다.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렇다면 과연 루브르 박물관이 탄생했을 당시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은 처음부터 박물관이 아니였다?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자 최고의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처음부터 박물관은 아니였어요. 본래는 1190년 필리프 오귀스트 왕이 바이킹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건설한 요새였습니다. 이후 샤를 5세가 이곳을 궁전으로 개조했고, 여러 왕을 거치면서 개조·확장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프랑수아 1세의 수집품만 소장하고 있었지만, 나폴레옹이 활발한 해외 원정을 통해 각지에서 약탈한 작품과 대대적으로 매입한 작품을 더해 현재 225개의 전시실에 40만여 점의 가치 있는 작품을 소장·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전 대통령 미테랑의 프로젝트로 거듭난 곳
‘문화 대통령’이라 불렸던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1981년 ‘궁전 전체를 미술관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이 불편함 없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죠.
현재 중학교 미술 교과서와 고등학교 미술 문화 교과서에는 서양 미술사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중 상당수의 작품이 바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책에서 볼 때와 직접 눈 앞에서 볼 때의 차이는 매우 커서, 작가의 섬세한 붓 터치와 숨결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장들의 작품 감상은 꼭 한번 체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도 소장 작품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자랑인 루브르 박물관은 규모가 매우 커서, 미리 관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팁이에요. 다행히 한국어로 제작한 미술관 안내도가 있으니 미리 챙겨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 시실은 크게 리슐리외(Richelieu) 관, 쉴리(Sully) 관, 드농(Denon) 관으로 나뉘어 있고, 총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곳의 컬렉션을 다 둘러보려면 60km 정도는 걸어야 합니다. 이렇게 규모가 굉장히 크다 보니, 아예 여행 일정 중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는 것도 멋진 계획이에요.
박물관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에 대한 고고학 유물과 기독교 전파 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시대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집니다.
리슐리외, 쉴리, 드농은 누구?
그런데 잘 살펴보면 박물관 전시실에 각각 리슐리외, 쉴리, 드농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사람 이름으로, 리슐리외는 루이 13세 때, 쉴리는 앙리 4세 때 재상이었습니다. 또 드농은 루브르 초대 관장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특히 드농은 나폴레옹 시대 사람으로,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 서 많은 문화재를 파리로 가져올 때 옆에서 열심히 도왔다고 해요.
중학교 미술, 고등학교 미술 문화에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
1804년 12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치른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나폴레옹은 이 자리에서 교황이 건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월계관을 쓰고, 부인인 조제핀에게도 직접 왕관을 씌워주었어요.
1830년 7월 28일 일어난 ‘7월 혁명’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 삼 색기를 들고 바리케이드를 넘어 앞으로 전진하는 자유의 여신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자유를 절실히 원했던 파리 시민들의 열망을 캔버스에 담아낸 낭만주의 미술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 왼쪽에 장총을 들고 서 있는 신사용 모자를 쓴 사람은 화가 자신이라고 하니, 자세히 살펴보세요.
1863년 에게해의 사모 트라케섬에서 출토된 것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상으로 유명해요.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비상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죠. 당시 그리스 어부들이 안전을 기리며 뱃머리에 달던 장식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가장 인기가 많아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썼던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그림 속 주인공이 당시 피렌체 은행가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아내이고, ‘리자’는 그 부인의 애칭이라고 합니다.
‘모나’는 당시 상류층에서 부인들에게 붙인 존칭으로, 다시 말하면 이 작품명은 ‘마담 리자’인 것입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 어린 딸을 잃은 그녀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시간 내내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초상화 그리기: 화가들의 고향에서 남긴 추억의 그림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의 로망을 느껴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에요. 원래는 언덕 위 풍차가 있던 조용한 동네로, 19세기 말부터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을 찾아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되었죠. 이곳을 거쳐 간 화가들의 이름을 굳이 적어보자면 고흐, 모딜리아니, 피카소, 위트릴로, 로트레크 등 세기의 예술가들이 줄줄이 나올 정도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에요.
사크레쾨르 사원(Basilique du Sacre Coeur), 물랭 루주(Moulin Rouge), 몽마르트르 묘지 등의 볼거리를 비롯해 고흐가 머물렀던 아파트, 피카소와 모딜리아니가 살았던 집인 세탁 선(Bateau-Lavoir), 르누아르의 그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의 배경이 된 장소 등도 남아 있어 예술 애호가들이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모두 떠나버린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 딱 좋은 장소는 바로 언덕이에요. ‘작은 광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에는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모처럼 이곳에 왔으니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초상화를 그려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거예요.
2001년 프랑스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프랑스 국민 영화 <아멜리에>의 주요 배경이 바로 이 몽마르트르 언덕이죠. 여주인공이 일하던 카페 두 물랭(Deux Moulin)을비롯해 사크레쾨르 사원, 언덕의 회전목마 등이 등장하니 파리로 떠나기 전에 영화를 미리 보고 가는 것도 좋겠죠?
원문: 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 아이와 함께 유럽여행을 꿈꾸는 가족들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아이와 함께 유럽여행> 중 일부를 발췌·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