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돈을 블록체인 제품 투자에 몰빵한 남자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어쩌다 이 판으로 오게 됐나요?
김균태(해시드 파트너): EA 게임 프로그래머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10년 정도 게임과 서비스 개발을 하다가, 스타트업 쪽 일을 했죠.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님도 거의 그 정도 알고 지냈어요. 블록체인이 처음 떴을 때 같이 공부도 하고, 공부할 거면 투자도 하자… 그렇게 스터디그룹처럼 시작한 게 해시드의 전신이에요.
리: 공부해보니 어떻던가요?
김균태: 블록체인이 장래가 유망하고 좋은 기술인데, 뭐라도 같이 해보자… 근데 볼수록 블록체인이 인터넷 초창기와 되게 비슷한 것 같았어요. 인터넷 초창기 때에도 좋은 회사들이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너무 일찍 시작해서 망했잖아요. 그러면 직접 비즈니스를 하기보다는, 일단은 투자 회사를 만들자. 그렇게 해시드가 탄생했죠.
리: 처음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였지요?
김균태: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한 관심은 2014년부터였어요. 투자는 2016년부터였고요. 처음에 이더리움을 3만 원에 샀는데, DAO 해킹사건이 터졌죠. 해커가 스마트 콘트랙트의 약점을 노려 이더리움을 엄청 탈취했거든요.
리: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죠;;;
김균태: 스마트 콘트랙트가 아직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진 않아요. 소스코드에 있는 버그를 찾아서 절묘하게 해킹한 거죠. 그때 해킹 전 상태를 기점으로 포크해서 해킹이 없던 걸로 했던 곳이 현재의 이더리움이에요. 반대로 해킹도 인정해야 한다는 쪽이 이더리움 클래식으로 포크(fork; 하나의 암호화폐가 둘로 쪼개짐)해서 나왔죠. 이더리움 가격은 폭락했지만, 이건 이더리움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콘트랙트를 개발자가 잘못 짠 거라 생각했어요. 이런 기술적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본 거죠.
리: 그래서 물타기 해서 더 샀나요?
김균태: 그럴 리가요. 무서워서 더 뺐죠. 나중에서야 다시 가격 오르는 거 보고, 우리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하고 좀 늦게 샀어요. 작년에 250만 원까지 갔다가 또 떡락했고… 그래도 그사이에 한 번도 안 팔았어요.
리: 아직까지 존버하고 계신 건가요?
김균태: 저희는 블록체인 회사와 프로젝트에 투자하니까, 이더리움을 가질 수밖에 없죠. 해시드 파트너가 6명인데 전부 개인 돈은 조금만 남기고, 있는 돈 전부 해시드에 투자했어요.
블록체인, 어떤 서비스와 회사에 잘 맞고 안 맞을까
리: 해시드에서 투자받으면 겐세이 놓진 않나요?
김균태: 개인적으로 굉장히 혜자스러운 펀드라 생각해요. 정말 다양하게 투자받은 회사를 도와줘요. 비즈니스 네트워크 소개부터 토큰 모델 고민, 좋은 개발자 소개, 먼저 고민했던 개발자 초빙해서 세션도 열어주고…
리: 해시드의 첫 결성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김균태: 원래는 파트너 6명 개개인이 따로 투자했어요. 뭐든 새로운 것에는 기대감 곡선이 있잖아요. 인터넷도 엄청 기대감 높아졌다가, 서비스 안 나오며 기대감 폭망하고… 그래도 꾸준히 기술 개발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시 점점 가치가 올라가죠. 우리도 비슷해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장밋빛 미래 보고 엄청 다양한 시도를 하려 했죠. 소셜 데이팅을 블록체인으로 만들겠다… 그러면서 많은 투자 실수를 했어요.
리: 실수라 함은 어떤 것이지요?
김균태: 한창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이런 세상이 빨리 올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 앱 만드는 회사에 여럿 투자했고요. 여전히 그 미래는 믿지만 퍼스트 무버가 무조건 잘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팀이나 현실성, 이런 걸 좀 경시하고 투자했던 적도 적지 않았어요. 이제 좀 전통적인 투자자의 시각도 필요하겠다, 혼자서 판단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파트너 6명이 뭉쳐서 제대로 된 회사 모양으로 가자고 합심한 거죠. 그게 해시드의 시작이었어요.
리: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김균태: 이후에는 너무 들뜨지 않고 프로토콜 기술에도 관심 있어요. 아직까지 블록체인업계는 교통정리가 안 된 상황이에요. 이더리움, EOS, 트론… 이런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마다 자신들의 프로토콜이 있죠. 그리고 이 중에서 대다수 유저가 선택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이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겠죠. 그래서 너무 앱에만 몰빵하지 않고, 프로토콜 레벨, 이더리움, 이오스 등에도 일부 투자해요. 아직까지는 생태계가 정리되지 않았고, 기술 자체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거든요.
리: 앱보다도 플랫폼?
김균태: 그렇진 않아요. 해시드는 굉장히 소비자 중심적인(consumer oriented) 펀드예요. 기술이 가치 있으려면 결국 사람이 많이 써줘야 하고, 그러려면 좋은 애플리케이션이 나올 수 있는 플랫폼이 강자가 되겠죠. 이더리움, EOS 등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직 앱이 만들어질만한 환경이 덜 구축돼 있어서예요. 궁극적인 지향점은 플랫폼 자체보다 이 위에 올라갈 앱들이 실제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어떤 가치 줄 수 있을까, 이쪽에 훨씬 집중해요.
리: 그러면 주로 어떤 회사에 투자하나요.
김균태: 사실 죄송하게도 투자를 거절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직은 블록체인과 핏이 잘 맞는 섹터와 아닌 섹터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생각에는 가상세계에서 시작해서 가상세계에서 끝나는 게 블록체인과 잘 맞는 것 같아요. 게임, 엔터, 스트리밍… 게임은 특히나 그렇죠. 온라인에서 바로 시작돼서 온라인 내에서 다 해결되니까. 과거 인터넷과 모바일을 봐도 새 플랫폼, 디바이스 나오면 가장 많은 실험이 일어나는 게 게임업계였고요. 그렇게 가상세계와 접점이 큰 쪽에 많이 투자하는 것 같아요.
리: 반대로 실물과의 접점이 들어가면 블록체인과 잘 맞지 않는 건가요?
김균태: 안 맞다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도 그 시간이 점점 짧아져요. PC에 적응하는데 30년, 인터넷은 10년, 모바일은 3~5년… 계속 짧아지죠. 블록체인 기술, 스마트 콘트랙트, 암호화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이보다 더 짧을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익숙해진 후에는, 실물 경제와 맞닿아있는 앱도 블록체인과 잘 맞아떨어질 수 있겠죠.
블록체인, 대체 뭐가 그리 매력적인가?
리: 블록체인, 암호화폐에서 어떤 긍정적인 걸 보고 몰빵한 건가요?
김균태: 디지털 세상에서는 데이터를 자산화하기 힘들었어요. 디지털 세상에서의 데이터는 쉽게 카피가 가능하니, 소유권이 온전히 내게 있도록 만들기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는 실물이든 화폐든 A라는 사람이 B에게 돈을 주고, B는 A에게 용역과 서비스를 제공해주잖아요.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게 안 됐고, 이를 위해 나온 게 중간자, 써드파티, 페이팔, 은행 같은 중간자죠. 블록체인은 이런 중간자 없이 디지털에서 가상의 자산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태계에서 사용할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존의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데이터를 이어줬다면 이더리움은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사람과 자산, 정보와 자산을 이어줄 수 있다 생각한 거죠.
리: 그런 화폐 시스템은 이미 게임에서 잘 동작하지 않나요?
김균태: 하지만 하나의 게임 안에서만 동작하죠. 이조차도 게임 회사가 만든 룰을 따라야 해요. 유저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자신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죠. 중앙화된 게임회사의 결정에 따라 화폐가 공급되고 돌아가요. 지금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게임회사에 종속되지 않고 참여자에게 거버넌스가 맡겨지는 거죠.
리: 많이들 탈중앙화를 이야기하는데 실질적 민주화가 잘 이뤄지는지는 의문이에요.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지분 많은 사람이 발언권 센 건 비슷하지 않나요?
김균태: 탈중앙화 개념이, 모든 일반인에게 권력이 이양된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블록체인이 없는 현재의 주식회사 모델을 봐요. 주식이 상장돼 있지 않으면 정보에 접근도 못 해요. 주식을 사고 싶어도 살 방법이 없어서, 주식 가진 사람을 찾아가야 하죠. 중앙화된 시스템에 딱 맞는 회사만, 장외시장이나 거래소에 가야 참여의 길이 열리는 거죠.
반면 블록체인은 디지털로 간편하게 자산을 발행할 수 있고, 스마트 콘트랙트로 회사나 단체에 맞는 디지털 주권도 만들 수 있어요. 아직은 과도기라 탈중앙화 단체가 잘 굴러가지만은 않지만, 과도기를 넘기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탈중앙화된 단체나 회사가 나올 거라고 봐요.
리: 블록체인 없이는 디지털 자산 발행이 불가능한가요?
김균태: 블록체인이 없다면, 결국 ‘어떤 단체를 믿을 거냐’로 귀결되겠죠. 국가가 제공하는 KRX 시스템이든, 페이팔이든, 어딘가에 믿음이 있으니까 우리가 실물자산을 거래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하나의 중앙화된 단체를 믿고 갈 것인가, 블록체인상에서 완전히 탈중앙화된 형태로 갈 것인가의 차이가 남죠. 그래서 블록체인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근본적인 철학은 다르다고 봐요.
리: 듣고 보니 그렇네요. 국가가 제일 신뢰 간다 하지만, 작은 나라보다야 큰 기업이 더 믿을만할 테니…
김균태: 베네수엘라 화폐가 쓸모없어질 정도로 하락했죠. 아마존이 하나의 국가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이 블록체인과 탈중앙화의 혜택을 더 크게 볼 수도 있겠죠.
플랫폼 위 앱을 넘어, 플랫폼 간 연결까지 가는 블록체인의 미래
리: 그런데 암호화폐가 실제로 쓰이는 서비스를 보면, 그냥 포인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김균태: 맞아요. 그런데 그 포인트가 하나의 서비스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서비스, 여러 제품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죠. 또한 물건 살 때 쓰는 포인트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 콘트랙트 로직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향으로 암호화폐가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리: 넥슨 게임끼리는 하나의 화폐를 공유하지만, NC 게임이랑은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EOS 쓰는 게임끼리는 연동이 되나요?
김균태: 게임 제작자의 의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EOS 화폐만으로 움직이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면 EOS에 종속되죠. EOS 블록체인 위에 자신만의 토큰을 발행할 수도 있고요. 독자적인 토큰을 쓰면서도, EOS와 교환 가능하게 연결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EOS 블록체인 위의 여러 게임은 서로 연결될 여지가 있지요.
리: 그러면 EOS, 트론, 이더리움 사이에도 그렇게 연동이 가능한가요?
김균태: 당장은 아니지만 곧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지금 인터체인 솔루션이 많이 연구되고 관련 서비스가 나와요. 완성은 아니지만 코스모스 같은 인터체인이 이더리움, EOS, 트론 같은 여러 퍼블릭 블록체인끼리 데이터 자산을 교환해줄 수 있을 거예요.
리: 뭔가 블록체인 플랫폼도 완전히 떨어진 생태계라기보다는, 나라와 나라처럼 서로 소통하는 느낌이군요.
김균태: 충분히 가능해요. 블록체인은 DNA 자체가 한 국가에 종속되기보다 글로벌을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처음부터 플랫폼과 플랫폼, 서비스와 서비스 사이 거래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고 만드는 경우가 많죠.
리: 그러면 마치 국가 간 화폐가 거래될 때 금이 나름의 역할을 하듯, 비트코인이 금 역할을 할 거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시나요?
김균태: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지금까지 케이스를 봤을 때 비트코인이 현재 암호화폐계의 금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에요.
리: 그 느려터지고 기능 없는 놈, 금 역할이라도 해야(…)
김균태: 개발자들이 노력하면 비트코인도 스마트 콘트랙트든 뭐든 올릴 수 있어요. 그런데도 안 하는 건 전 좀 의도적이라고 봐요. 비트코인 OG(original gangster; 2013년 즈음에 비트코인에 이미 들어가고 비트코인의 가치를 숭상하는 이들)들은 비트코인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PoW(proof-of-work; 작업증명: 개노가다 방식이라 더럽게 느림)라는 컨센서스를 해치고 싶지 않아 해요. PoW라는 철학을 절대 해치지 않는 한에서만, 다른 요소를 받아들이죠.
PoW는 컨센서스 알고리즘의 특성상 노드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컴퓨팅해야 하기에, 애초에 스마트콘트랙트를 PoW 환경 위에 올리는 건 철학적으로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비트코인 OG들은 이미 비트코인을 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리: 근데 비트코인이 PoW를 벗어난다면, 그 결정권은 누가 가지는 거죠? 결국 51%의 딜레마는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요?
김균태: 그렇죠. 그게 마이닝 파워가 될지, 아니면 토큰의 개수가 될지의 차이일 뿐, 지금까지의 알고리즘에 따르면 그걸 벗어나는 경우는 잘 없어요. 맘에 안 들면 포크할 수는 있겠죠. 많은 퍼블릭 블록체인은 오픈 소스 정신에 기반하니까.
리: 맘에 안 들면 포크할 수 있다는 게 더 혁신적이네요. 기업은 막 쪼갤 수 없잖아요.
김균태: 그것도 블록체인마다 특성이 달라요. 지금 이야기한 모든 게 굉장한 다양성, 다양성 폭발을 보여주죠. 이렇게 엄청난 다양성이 초기 생태계 빌드에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진화도 DNA가 많을수록, 환경에 적합한 생명체가 나올 가능성이 높잖아요. 모든 걸 오픈소스화 시켜서 포크해도 상관없다는 곳도 있고, 코어한 건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며 직접 노드 돌리는 회사도 있어요. 중앙화에서 탈중앙화까지, 끝에서 끝까지 다 있는 거죠.
왓챠와 스포카로 알아보는 놀라운 블록체인의 생태계
리: 이렇게까지 설명을 듣고도 블록체인이 작동하는 방식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요. 예로 여기 휴대폰에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잖아요. 그 위에 이더리움 플랫폼이 들어오고, 그걸 기반으로 또 앱이 돌아가는 건가요?
김균태: 전통적인 개발자 입장에서는 EOS나 이더리움 모두 기존 OS 위에서 실행되는 애플리케이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EOS나 이더리움 위에서 스마트 콘트랙트가 실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 가치를 지닌 토큰이 처리되는 모습을 생각하면, EOS나 이더리움도 토큰의 입장에서는 OS 또는 플랫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개발자들이 스마트 콘트랙트를 이용해서 만든 애플리케이션(Dapp)이 EOS나 이더리움 플랫폼 위에서 구동됩니다.
리: 성공적으로 돌아가는 앱의 예를 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김균태: 저희가 투자한 프로젝트 중 콘텐츠 프로토콜과 캐리 프로토콜이 실물과 많이 맞닿아 있어요. 콘텐츠 프로토콜은 왓챠에 적용했어요. 기존 왓챠를 얼마나 오래, 깊숙이 사용했느냐에 따라 토큰을 나눠줬던 게 출발점이에요.
리: 이건 그냥 포인트로도 되는 거 아닌가요?
김균태: 왓챠플레이가 콘텐츠 프로바이더들에게 콘텐츠 이용료를 정산해줘야 하잖아요. 여기서 정산의 투명성조차 설득이 쉽지 않아요. 왓챠를 통해 몇 명의 유저가 어떤 콘텐츠에 플레이 타임 얼마를 썼냐… 그때마다 이거 어떻게 믿을지 문제가 생기죠. 그런데 블록체인은 조작의 우려가 매우 낮아요. 또 월 정산도 불만이 많은데, 실시간 데이터 기반으로 바로 정산이 가능해지죠. 반대로 유저 입장에서 자신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봤고… 이런 데이터가 플랫폼 입장에서는 다 돈이거든요. 이걸 누가 사용했을 때 일정한 리워드를 받을 수 있게 돼요. 결국 다 약속, 프로토콜이에요. 그 약속을 시스템화하고 실행시키는, 잘 돌아가게 하는 게 블록체인의 역할이라 생각하면 돼요.
리: 그런데 블록체인이라고 해킹이 불가능한 건 아니잖습니까.
김균태: 가능하죠. 근데 좀 다른 게, 전통적인 해킹은 내가 가진 잔고 등의 숫자를 바꾸는 거예요. 반면, 블록체인에서의 해킹은 기존에 일어난 트랜잭션을 다 없애버리고 무효화하는 거죠. 전통적인 해킹은 내가 가진 프라이빗키를 탈취해서 조작하는 거고, 블록체인은 내가 누군가에게 지불했다는 사실 자체를 없애버리고 새로 기록들을 쓰는 거죠. 거기에 들이는 노력과 마이닝 파워와 토큰… 그걸 다 쓰려면 해킹해야겠다는 유인 자체가 사라지게 돼요.
리: 또 다른 적용 예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김균태: 스포카의 도도포인트에는 캐리 프로토콜을 적용했어요. 도도포인트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적립금을 포인트로 주는 거예요. 실제 구매 데이터니까 정말 가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거죠. 블록체인 위에 데이터를 얹으면, 누군가 내 데이터를 잘 쓸 수 있어요. 마케팅 회사, 프로모션하는 가게… 이런 곳에 내 데이터를 공급하는 대신 리워드를 받고 포인트처럼 쓸 수 있는 형태로 개발 중이에요. 물론 사람들은 블록체인인지 뭔지 모르고 쓰겠지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기반에는 블록체인이 있죠.
리: 이것도 듣다 보니, 그냥 신용카드 회사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김균태: 일단 여기도 왓챠처럼 정산 이슈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존에는 고객 데이터를 써도, 정작 데이터를 제공한 우리들에겐 리워드가 없었잖아요. 반대로 가게 사장님들은 데이터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고요. 그런데 유저가 데이터 제공을 on으로 맞추면, 누군가에게 내 데이터가 프로모션 등에 사용되고 리워드를 토큰으로 받겠죠. 반대로 마케팅 데이터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토큰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조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프로젝트예요.
탈중앙화와 공유는 단순한 대세가 아닌 흐름
리: 뭔가 다 열려 있으니, 뭐든 할 수 있다… 는 느낌도 듭니다.
김균태: 실제로 그리 간단하진 않아요. 더 커지려면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끼리 인센티브를 잘 맞춰야 하거든요. 한 회사가 너무 독식하면 다른 회사가 조인해서 힘을 보탤 이유가 없죠.
블록체인은 애초에 네트워크 구성부터, 여러 독립체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프로토콜 위에서 놀면, 그게 네트워크 보안을 더 강하게 만들고, 네트워크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해요. 일종의 파지티브 피드백 루프가 만들어져야 하는 거죠. 위의 도도포인트 사례도 사용자와 마케팅 회사, 가게 사장님, 모두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방식으로 프로토콜을 만든 거죠.
리: 웹에서도 이런 시도가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데, 왜 잘 되지 않았을까요?
김균태: 블록체인은 디지털에도 소유권이 명확한 자산을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웹은 결국 중앙화된 단체가 독식했고, 이들이 보상해주는 구조였죠. 블록체인에서는 이를 완전히 탈중앙화하며,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네트워크 안에서 내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또 이를 통해 네트워크가 더 건강해질 수 있게 만들었어요.
리: 다양한 퍼블릭 블록체인마다 철학도 좀 다른 듯한데, 님 취향은 뭐예요?
김균태: 저는 좀 중립적인데 이더리움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봐요. 이더리움이 끝까지 놓지 않는 게 탈중앙화 철학이거든요.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꽉 쥐었어요. 반대로 카카오의 클레이튼 블록체인, 라인의 링크 블록체인은 조금 더 유저 친화적인 블록체인 같아요. 이더리움보다는 중앙집권적이지만, 어차피 유저 입장에서 블록체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내게 이득 되냐, 재밌냐, 이런 가치로 서비스를 이용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사용자가 좀 더 빨리 블록체인을 맛보게 해줄 거라 생각해요. 그러면서 탈중앙화도 진행시킬 거고요.
리: 카카오 라인이 왜 탈중앙화를 해요?
김균태: 결과적으로 과거 발전한 회사들도, 근본적으로는 자기 서비스를 더 오픈할수록 성장하는 걸 배워왔다고 생각해요. 네이버, 카카오, 라인… 다 오픈 API 만들고 개발자 생태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유저 보상 시스템을 시도해오며 세를 불려 나갔잖아요. 이 궁극으로 가 있는 게 탈중앙화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회사가 독식할 수는 없겠지만 프로토콜 전체의 가치는 회사 하나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질 수 있겠죠. 과도기 단계에서는 많은 힘이 집중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네트워크에 기여하고 함께 하는 쪽이 더 큰 성장을 끌어낼 수 있어요.
한국, 앱 분야를 중심으로 블록체인 리드할 수 있다
리: 별개로 엔지니어 출신인데… 개발자들에게 블록체인 개발을 배우라 권하고 싶나요?
김균태: 전 굉장히 큰 기회라 생각해요. 생태계가 엄청 커질 거니까요. 저도 개발자 출신이라 커리어 두고 AI를 더 열심히 할지, 지금 새롭게 뜨는 블록체인을 팔지 고민했어요. AI도 파급력이 엄청나다 생각하지만, 블록체인은 완전 새로운 에코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 보니 기회가 정말 크게 펼쳐질 거라 생각해요.
리: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을 좀 리드할 수 있을까요?
김균태: 플랫폼으로서 그리 강국은 아닌 것 같아요.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미국이 압도적이죠. 근데 한국이 늘상 그렇듯 뭐든 빨리 만들어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안 유저들이 굉장히 얼리 어답터에요. 새로운 기술 나왔을 때 거리낌 없이 시작하고 쉽게 친숙해지죠. 그래서 의미 있는 앱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리드할 것 같아요. 이미 실험적인 게임들이 EOS, 트론 위에 여럿 올라오고요.
리: 미국은 플랫폼 쪽만 강한 건가요?
김균태: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라 부르는 금융 앱은 미국이 주도해요.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받는 서비스는 이미 인기죠. 예로 메이커다오는 이더리움을 담보로 DAI라는 스테이블 코인을 대출해줘요. 이렇게 블록체인 기반 앱이 조금씩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건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리: 좀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가서… 떡상과 떡락의 시기에 시끄러웠던 ICO는 어떻게 보세요?
김균태: 새로운 게 나오면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거기에 대한 적절한 규제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정부에서도 이미 많은 리서치를 하고, 아주 강한 서포트도, 아주 강한 규제도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블록체인이 파급력과 잠재력이 큰 기술인 만큼, 싹을 자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근데 일반인 입장에서 ICO 중 스캠을 가리기 힘들긴 하죠.
김균태: ICO도 결국 투자행위지만 정보 격차가 크다 보니 무분별 투자가 많죠.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물론 규제도 꼭 필요하다고 봐요. ICO 자체가 나쁘냐면 반반이에요. 일반인 투자자가 사기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떡락하면 ICO에 성공한 회사도 힘들어져요. 기관투자자는 가치가 떨어진 걸 받아들이고 어떻게 잘 될지 고민하지만, 일반인들은 자기 자산이 엄청나게 깎여나간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기업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커요.
리: 리버스 ICO는 어떻게 보세요?
김균태: 소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봐요. 블록체인이 더 활성화되고 더 많은 사용자가 블록체인을 접하면 다양한 리버스ICO 프로젝트가 실질적으로 쓰이는 날이 올 거예요. 아직은 가상세계에 비해 좀 느린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미래 믿고 올 거라 생각해요. 리버스ICO한 회사들이 약속을 잘 지켜나가면 더욱 그런 흐름이 빨라질 테고요.
리: 해시드에서 몇백억 투자했을 텐데, 언제쯤 팡파르를 울릴 수 있을까요?
김균태: 기본적으로 저희는 롱텀으로 바라보고 투자해요. 근데 실제 블록체인 기반의 앱들이 동작하는 게,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닐 것 같아요. 버추어 콘텐츠 섹터는 1~2년 안에 쓰지 않을까 싶고… 실제 오프라인에서 결제하고 포인트 적립하고… 이런 것까지 블록체인으로 되는 세상은 5~7년 사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얼마 전 IMF에서 SNS를 통해 대중들에게 5년 내로 점심 먹고 계산할 때 뭘 쓸 것 같냐는 설문을 했어요. 그때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암호화폐로 결제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요.
[차명훈·김균태] 그들은 어떻게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변화시켰나
- 블록체인 생태계의 변화/트렌드
- 현시점에서 블록체인 업계의 한계와 극복 방안은?
- 코인원/해시드는 어떻게 블록체인 업계를 변화시켰는가? 앞으로는?
- 비즈니스/IT 트렌드의 동향을 감지하고 변화를 미리 알고 싶은 분들
-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 있는 분들
- 스타트업이 특정 산업군을 어떻게 혁신하는지 배우고자 하는 분들
- 7:30~8:00 해시드는 어떻게 블록체인 산업을 변화시켰는가
- 8:00~8:30 코인원은 어떻게 블록체인 산업을 변화시켰는가
- 8:30~9:30 Fire Side Chat, Q&A (모더레이터: ㅍㅍㅅㅅ 이승환 대표)
- 날짜: 4/24(수)
- 시간: PM 7:30~9:30
- 장소: 스파크플러스 강남점 16층 갤럭시홀
픗픗 아카데미와 스파크플러스가 공동 개최하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