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가히 총력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양쪽다 내세우는 주의/주장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 오직 유신/반유신, 반수꼴/반빨갱이 등의, 선거 안나가면 안될 것 같은 선동전이 하늘을 찌른다. 여기에 안철수의 문재인 지지선언 이후로 순식간에 격차가 감소하면서 선거전의 열기는 더더욱 뜨겁다. 이게 뭐 딱히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오늘은 그 다른 생각을 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온라인 정치판을 좀 오래 봐 온 사람들이라면, 일군의 호남지역주의자 그룹에 대해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칭 난닝구. 그 이름의 유래는 바로 아래의 사진에서 시작한다.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에서 일련의 정치인과 지지자들을 남겨두고 열린우리당은 떠나갔는데, 그로부터 시작된 비노계열 호남계 구 민주당 지지자(헉헉…)들을 총칭 런닝 혹은 난닝구라고 부른다. 미국 공화당이랑 민주당이 서로 당나귀와 코끼리를 상징으로 삼듯이, 자신에게 붙은 별명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자체는 뭐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고… 어쨌든 온라인에서 런닝이라고 하면 크게는 구 민주당계 지지자, 작게는 구민주당계 호남지역주의자를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런닝의 일관된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 호남 버리면 니들 죽는다. 물론 그동안 어떤 친노도 호남을 버리겠다는 식으로 말한 친노는 없었다. 특히 초창기 친노의 경우 5.18과 광주를 매우 신성시 한 편이었기 때문에, 속마음이야 어떨망정 겉으로는 몇몇 구시대의 정치인을 숙청할 뿐, 우리는 호남을 최대의 아군이자 진보의 성지로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초기에는 분명히 그랬지…
문재인 후보는 그런점에서 참으로 독특한 케이스다. 그는 분명히 민주당의 PK 후보지만, 호남에서 딱히 인정받은 적도 인정받겠다고 날뛴 적도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에 대한 호남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데도 불구하고, 안철수와의 격전의 시절에도 호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기괴한 케이스다. 지난 총선에서도 오직 PK에만 상주하면서, 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가 아무 지역에도 지원을 다니지 않는 희대의 상황을 연출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태도가 타 지역에서의 패배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발언인 부산정권 발언(APEC 정상회의와 신항 개발 등 부산을 지원했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현 정권을)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까지 연결하고 나면, 문재인에게는 부산을 제외하면 관심이 있는 지역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사실 이런 특성은 PK 정치인들에게서 전반적으로 관측되는 것이기도 한데, 과거 김두관 전 지사에게서도 보였던 것인바, 그는 행자부 장관을 잠깐 할때도 중앙일간지와 경남지역신문만을 보겠다고 해서 타 지역 사람들을 식겁하게 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건 문재인 개인의 퍼스널리티에서만 기인하는 특성은 아니다. 과거 혁통시절의 멤버들이 모여있다는 문재인의 시민캠프 멤버들 자체가 그런 류의 특성을 갖고 있다. 무슨수로 증명할거냐고? 사실 이런걸 입 밖에 낼 사람은 별로 없지만, 우연히 그분들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무려 온라인을 소중히 하신다는 문재인 후보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지역공약’ 되시겠다. 지역별 공약이 동네 구석에 처박혀 있는건 그렇다고 치고, 어떻게 부산 공약만 덩그라니 올라갈 수 있지? 참고로 박근혜쪽은 이렇게 생겼다.
물론 실수라고 할 수 도 있다. 나도 문재인만 아니면 실수라고 생각도 해보겠다. 아니, 사실 이 링크를 보기 전까지는 실수로 덮어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문재인 홈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버젓이 있다! 아직도 링크 살아 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민주당의 정책이며, DJ시절부터 내려오는 지역문제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아무도 쓰지 않은 거다. 부산내용만 들어 있는건 실수라고 하더라도, 이걸 뺀건 명백히 고의다.
하나 더 재미있는게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역공약을 보자. 디빌게 매우 많지만, 일단 넘어가고, 이건 이번에는 이걸 편집해서 문재인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이다.
도대체 홈페이지 편집을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감히 당과 후보가 내놓은 공식적인 그림에서 맘대로 캐치 프레이즈 문구를 빼다니! 민주당의 규율이 땅에 떨어진것인지 아니면 편집이 발이라서 그걸 짤라낸 것인지.
홈페이지의 관리는 문재인 3대 캠프중 시민캠프에 일임되어 있다고 한다. 그 시민캠프는 과거 혁통시절부터의 멤버와 시민운동권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던데, 이분들께서 후보의 공약을 맘대로 잘라내시고, 제대로 만들어져 있던 페이지도 숨기고, 아마도 부산 페이지 먼저 만들다가 모종의 이유로 스탑! 이게 다 홈페이지 관리자의 단순 부실이라면 할 말이 없다.
자,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보너스. 문재인이 초기에 다녔던 지역과 저 지역공약집을 비교해 보자.
사실 문재인이 PK를 제외한 지방정책에 너무 관심이 없는거 아니냐는 지적은 꽤 최근까지 지적된 것이기도 하다. 가령 이런 지적이 있는데…
문 후보의 경우 정책구상 발표와 지방분권 정책간담회 등에서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현하겠다고 했으나 공약집에서는 지방분권사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데다 주요 내용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문재인의 정책구상’에서 언급한 국가분권균형위원회 설치가 공약집에 빠져 있어 실천 의지를 알 수 없고 지방분권의 근본 대책으로 거론돼온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이 지적됐다.
뭐 그런 거다. 물론 이런 지적을 받고 나름 공약집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다른 정당도 아니고 DJ의 지역등권에 기초했다는 민주당측의 후보가 11월 말에 이런 지적을 받으면 솔직히 쪽팔릴 정도지. 그리고 여전히 문재인 홈페이지의 지역별 공약은, 박근혜에 비하면 디테일이 없다시피 한지라. (심지어는 지역공약은 각 지역당에서 자체적으로 홍보하고 중앙당에서는 일체 홍보하지 않겠다고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관심법이 있는건 아니니, 문재인이 뜻하는 바가 어디 있는지 다 알 수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대충 생각해 볼 수 있는 미래는, PK정당화 된 민주당 (난닝구 정치인은 내보내고 친이계 상도동을 대거 흡수중이다) + 수도권 깨시민으로 구성된, 아마도 열린우리당 시즌 2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70~80% 정도는 아무 때라도 동원할 수 있는 호남을 가지고 선거라는 게임을 하고자 할 것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참으로 ‘합리적’인 발상일지는 모르겠으나, 난닝구 입장에서는 이런 NTR적인 상황을 그냥 눈뜨고 보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니, 오늘도 어떤 난닝구는 진짜 박근혜를 찍어서 복수를 해야 할지, 눈물을 머금고 호구가 될지 알면서 문재인을 다시 찍어야 할지, 아니면 투표를 포기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나에게 더 좋은 넘과 덜 좋은 넘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배신할 넘과 나를 원래 배신할 넘 사이에서 고르는건 참으로 딜레마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