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레이스 동안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며 성불을 도와왔던 세 차례의 토론이 모두 끝났다. 비록 의무적으로 주어진 일정 안에서 끝난 토론이긴 하였지만 각 후보의 정책세부사항과 실현의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지지후보가 이미 정해진 상태의 관객 입장에서 TV토론은 난장의 현장이자, 우리 편 힘내라! 의 장이나 다름 없었다. 사람들은 토론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지난 마지막 3차 토론에서 5,60대 시청자들의 시청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겐 차마 보고 싶지 않은 목불인견의 지옥도가 TV에서 펼쳐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명백하게 귀에 박히고 눈에 들어오는 사실들이 있었다. 토론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던 이정희 후보의 악마적인 극딜이나, 수많은 여성들이 혹독한 겨울을 대비한 어…그…부츠를 지르게 만든 박근혜 후보의 높은 설득력, 그리고 많은 미중년 얼빠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문재인 후보의 초록 넥타이가 이번 토론회의 대표적인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초록색은 사실 패션 코디에 흔하게 쓰이는 색은 아니다. 일단 한국인의 얼굴색에 잘 어울리지 않고, 애매한 채도와 명도는 다른 패션아이템과의 조화가 어렵다. 박근혜 후보는 새빨간 자켓으로 새누리당의 색인 붉은색을 토론회 내내 뿜어냈다. 하지만 이를 상대해야 하는 문재인 후보는 색채 활용에서 불리한 입장이다. 현대 남성 복식에서는 색채의 다채로운 사용이 어렵기에, 특히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TV토론회 자리에서는 넥타이 외에 다른 컬러 아이템이 전무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을 대외적으로 상징하는 색은 노란색이다. 비록 내부적으로는 기존 민주당을 계승했다는 의미로 초록색을 사용하지만, 그것도 노란색과의 그라데이션으로 녹아나는 색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가 어렵고,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당의 색깔을 크게 대표하지도 못하는 초록색을 선택한 것은 큰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토론회에서의 초록 넥타이는 진중하고 신뢰감을 준다는 전형적인 평가를 받는 동시에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 또한 얻어냈다. 백발 미중년에 초록 넥타이라니 품격 돋고 품위 돋는다는 얼빠들의 감상평도 다수 목격되었다. 대한민국의 어느 장년 남성이 안 그렇겠냐만, 평소 문재인 후보의 패션 센스가 과히 칭찬받지 못하던 수준임을 감안하면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 만을 보는 것이 무릇 사람의 자세. 문재인 후보를 비토하는 세력에게는 초록색 실크 타이가 촌스럽고 유치한데다,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 될 터이다. 종북세력 주제에 초록색이냐! 광나는 초록 타이라니 안목이 없어서 미역이나 달고 나왔느냐! 따위의 반응이 예상되지 않는가.
석가모니께서 수행하실 때 어느 청년이 석가모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갔다. 석가모니께서는 묵묵히 미소를 지으며 욕을 다 들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자가 화가 잔뜩 나 석가모니께 왜 대응하지 않으셨냐고 물었다. “제자야 네가 손님이 와서 음식을 가득 차렸다. 손님이 그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고 가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겠느냐?” “저의 것이지요.” “맞도다, 내가 욕을 듣되 응하지 않았으니 나는 그와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욕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러하다. 초록넥타이에 대한 비난을 듣지 않는 얼빠는 이제 미역으로 한 상 차려 드리리라.
미역은 갈조류에 속하는 한해살이 해조로써 한국과 일본의 특산물이다.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영양식품이자 또한 칼슘과 요오드가 많이 함유되어 고대로부터 임산부와 산후 여인들을 위한 영양 보충 식품으로 이용되어왔다. 미역은 여름이 지나고 파종하여, 겨울 내내 성장한다. 성장하는 미역은 억세지 않고 영양이 풍부하기에 겨울철에 채취하곤 한다. 그렇다, 미역은 지금이 제철인 것이다.
바다내음이 물씬 나는 제철 미역을 즐기기 위해서는 살짝 데친 미역, 혹은 잘 손질한 신선한 물미역 그대로 초장이나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쌈을 싸 먹는 것이 제일이다. 그대로 먹으면 한입 가득 대양의 싱그러움이 넘치는 신선하고 매끌매끌한 물미역은 추운 겨울 연말 연시, 기름지고 간이 과한 음식과 술에 질려버린 입맛을 그대로 살려주는 식탁의 효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싱거운 미역만으로는 부족한 당신, 바다의 향기를 더욱 느끼고 싶은 당신, 혼탁한 정치판에 복잡한 속에 탁 털어놓을 소주 한 잔이 필요한 당신을 위해서 더욱 추천하고 싶은 음식, 과메기 미역쌈이 여기 있다.
예부터 경상도 해안가에서 풍부하게 어획되는 청어의 눈을 꾀어 아궁이 연기에 훈연, 겨우내 먹도록 만들었던 저장식품에서 비롯된 과메기는 그 고소하고 쫄깃한 맛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겨울철 별미이자 술안주가 되었다. 청어 어획량의 감소와 제작상 여건으로 지금은 꽁치 과메기가 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지만, 꽁치 과메기는 건조 가공하는 과정에서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져 특유의 고소한 맛을 내고 비린내가 덜해 더욱 사랑 받고 있다. 잘 손질한 미역에 과메기를 얹고 김, 쪽파, 마늘, 고추를 척척 쌓은 후 초장을 발라 큼직하게 만든 쌈을 크게 벌린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자. 가히 바다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전해진다. 소주 일잔, 이잔을 저절로 부르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경북 포항 구룡포가 과메기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MB 형님 이상득의 형님예산 의혹 중 ‘과메기 예산’이 크게 한 자리를 차지 할 정도로 과메기는 포항과 경북을 대표하는 토속음식이다. 아직 지역주의의 부끄러운 유습이 남아있는 한국 정치판에 호남을 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치 세력의 후보이자, PK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문재인 후보가 목에 걸고 온 초록 미역은 지금 차가운 겨울 뜨겁게 달아오른 선거철에 본인이 제철을 맞았다는 선언이다. 또한 미역이 부르는 과메기라는 식(食)심상으로 경북과 경남, 호남을 어우르는 탈지역주의 소통을 설득하는 후보라는 정체성을 그는 목에 걸고 온 미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