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itle=”편집자의 말” color=”#333333″]
이 글은 한 아이의 어머니께서 기고한 글입니다. 대선이 너무 이슈라 교육감 선거가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지만, 대선 못지 않게 중요한 선거입니다. 다들 끝까지 글을 읽어보시고 현명한 선택을 내리시길 바라겠습니다. [/box]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의거해,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공약 중 “혁신학교”와 “특수교육 강화”에 있어 가장 강력한 정책을 낸 후보를 뽑을 예정이라는 제 생각을 밝히는 매우 편향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하하하~”
“수민아, 뭐가 그렇게 행복해서 웃니?”
“엄마, 나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야, 웃어서 행복한 거야.”
이렇게 가끔 7살짜리 같지 않은 얘기를 문득문득 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저희 딸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소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1년간의 항암치료를 거쳐 소아암은 치유됐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소변과 대변을 제대로 눌 수 없어 인공 도뇨를 해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도 포기하라고 했던 아이였습니다.
1년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살아난 이 아이에게,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게 해 주고 싶은 것은 어미의 당연한 심정이었습니다.
3살 때 우리 아이 심리상담을 하던 상담교사는 “이 아이는 사회성을 키워줘야 혼자 살아갈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어린이집에 등록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병원과 물리치료실, 장애인복지관만 다녔던 저는 그제서야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뱃속에서부터 어린이집 리스트에 올려놓는다는데, 저는 4살이 다 되어서야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리고 곧 엄청난 벽에 부딪혔습니다.
걷지 못해 기어다니던 아이가 처음으로 ‘거부’당한 곳은 다름아닌 동네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원장은 아이의 사정을 듣더니 “기어다니다가 밟히면 책임 못 집니다.”란 한 마디를 날렸습니다. 구립 어린이집은 나을까 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니, 장애아 한 명이 졸업해야 들어올 수 있답니다.” “어머니, 장애아 2명 이상이 모여야 특수교사 지원이 나와요… 아이 하나만으로는…”
7~8군데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끝에 우리 아이를 받아줬던 곳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습니다. 부모가 출자금을 내고 주체가 되어 교사도 고용하고 시설도 관리하는 독특한 방식의 어린이집이지요. 단순히 부모들이 시설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이=내 아이”라는 공동체 의식 하에 마실도 자주 다니고, 등하원 카풀도 자진해서 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어떤 선행학습을 하느냐보다 같은 반 어떤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했는지, 한달에 한번씩 엄마들과 담임교사가 만나 세시간씩 얘기하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매일 가는 나들이에서 동네 뒷산에 오를 때면, 전업주부 엄마들이 자원하여 우리 아이를 업어서 뒷산에 실어 날랐습니다. 선행학습은 원칙적으로 금지입니다. 장난감도, 별난 교육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보자기나 나뭇가지를 갖고 놀면서도 수십가지 놀이 방식을 개발해 내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끊임없이 믿어 주는 곳이었습니다.
하루는 공동육아를 졸업한 아이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한 초등학생 아이가 우리 아이의 다리 보조기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제게 물었습니다. “푸른숲, 얘는 왜 다리가 이래?” “응, 어릴때 크게 아팠어” “그래? 그럼 내가 데리고 가서 좀 같이 놀께” 그리고서는 우리 아이를 데리고는 모래밭에 가서 노는 것입니다.
그때 제 가슴은 감동으로 물결쳤습니다. 아! 공동육아 졸업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보다도 아이들 싸울 때 중재 역할을 더 잘한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과 함께 우리 아이가 공부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이 생겼습니다.
공동육아 졸업생들은 대안학교에 많이 진학합니다. 하지만 미인가 시설인 대안학교는 국가예산 지원이 없어서, 우리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려면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를 학교 건물에 설치하려면 부모들에게 갹출해야 하는 구조더군요. 특수교사와 특수교육 예산이 나오는 공교육에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공립 초등학교나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영어유치원이다 학습지다 해서 각종 선행학습을 다 하고 초교 입학을 하여 옆집 아이들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이미 사교육에 물들 대로 물든 ‘지극히 평범한’ 공교육 환경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들의 대화 주제가 “그집 애는 어느 학원 다녀요?”– 사교육이 주를 이루는 곳에서, 걷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온당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 아이의 미래, 아니 생존을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혁신학교’였습니다. 혁신학교는 대안학교와 비슷하게, 아이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커리큘럼을 갖춘 학교죠. 지금 감옥에 계시는 곽노현 교육감께서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을 본따 실시한 정책입니다. 혁신학교 중에서도, 학력이 떨어져서 ‘학력 혁신하겠다’는 수월성을 지향하는 혁신학교가 아니라, 창의력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커리큘럼으로 아예 개교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 근처로 무작정, 이사온 것이 작년 여름입니다.
저는 정말 아이 때문에 이사온 것이었지만, 이런 변화의 물결을 가장 먼저 냄새 맡은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건설사였습니다. 이사오고 나니, 혁신학교가 심지어는 아파트 값을 들썩이게 만든다는, 부모들이 대치동을 떠나게 한다는 기사들이 연일 실렸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제가 전에 살던 동네인 상도동에서 몇 년째 재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빌빌대던 아파트 단지에 혁신학교가 학부모 청원으로 들어온다는 소식까지 들릴 지경이 됐습니다.
물론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는 가운데 혁신학교 같은 호재를 건설사들이 놓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혁신학교의 효용에 대해서는 분명 부풀려진 부분이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행학습과 사교육의 폐해를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 보자는 출발점이 혁신학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아 부모들이 비슷하게 생각했더군요. 이 혁신학교에 우리 아이는 아직 진학도 하기 전인데, 이미 장애아가 12명이나 있었습니다. 특수교사 1인과 활동보조교사 1인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우리 아이는 지적장애는 없어서 다른 보조는 필요하지 않지만 2~3시간에 1번씩 소변을 빼 줘야 하는 도뇨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도뇨를 누가 담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학교 선생님, 교육청, 장학관, 동사무소 등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런 것은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발로 뛰지 않으면 아이의 특수한 장애 상황에 대해서 먼저 나서서 지원해 주지 않더군요.
이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장기적으로 비용 지원이 아닌 직업교육 등 정말 이 아이를 위한 맞춤 교육을 공교육에서는 지원해 줄수 없는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아들이 정규교육 과정에서 부딪히는 개인적 필요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그 아이의 평생에 걸쳐 고민해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교육감 선거가 대선만큼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가 공교육 테두리 안에 있는 12년을 처음 시작하는 초등학교 1학년에 우리 아이가 진학하고자 하는 ‘혁신학교’의 뿌리를 더 튼튼히 다져 줄 후보를 원합니다. 혁신학교가 상징하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철학의 토대를 좀더 다져 나가고, 나아가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한 특수교육 기반을 강화하는 후보를 뽑으려고 합니다. 공교육의 탈을 쓰고 사교육을 강화시킬 것 같은 후보는? 당연히 반대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후보가 누구인지? 에이블뉴스의 이 기사를 보시면 대강 변별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후보는 인지도 제로였다가 일요일 저녁 박근혜 후보 덕분에 인지도가 대폭 상승한 분입니다.
꼭, 19일에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세요.
저에겐 나름의 교육관이 있습니다. 미래에 정말 경쟁력이 있는 인재는, 자아정체성이 확실하고, 남의 의견에 경청과 공감을 할 줄 아는, IQ보다는 EQ가 뛰어난 아이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좋은 직업—검사 변호사 의사 교사 등도, 기술인이기 이전에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IQ만큼 EQ, 즉 공감 능력이 중요한 직업이라는 점,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안철수씨도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의대 시절 담당 교수가 꼽았던, 좋은 의사가 되는 제 1 조건은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책에서 “외고, 명문대 등을 거쳐 사시 패스한 전형적 수재가 검사가 되면, 도대체 피의자가 왜 그렇게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밖에 없어 좋은 검사가 될 수 없더라”고 잘라 말하며 “그러니 검사님들, 소설책이라도 좀 읽으시라”고 일갈한 바 있습니다.
우리 아이도 이런 EQ가 뛰어난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되도록 상처를 덜 받게 하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도 있답니다.
아직 아이가 없으시거나 미혼인 분들도, 꼭 교육감 선거에 투표해 주세요.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네가지 없는 초딩’들과 길거리의 ‘반인반수 중딩’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셨던 분들이라면 더욱 더 말이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여러분의 일터에 알바로 취직할 수도 있고, 직장 후배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