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기초선거 공천여부는 정치세력 내지 사회세력을 구분하는 의미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각 정당 내부에서도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따라 의견이 나뉘었으며, 시민단체들 간에도 참여연대와 여연은 공천 유지, YMCA, 경실련은 공천 폐지가 오랫동안 자신의 견해였을만큼 의견이 분분한 이슈입니다.
그렇다고 기초선거 공천에 대한 의견을 기준으로 헤쳐모여가 되느냐? 택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즉, 기초선거 공천여부는 처음부터 아, 타를 구분할 만한 기준이 아니었으며,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 간 합당의 명분이나 새정치의 기준이 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슈로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려니 싸움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전투 하나의 패배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 택도 없는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구도 자체가 망실되었다는 점입니다.
1. 정치구도의 망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버려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경제민주화, 기초연금, 복지, 조세, 기초선거 공천폐지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간첩 조작사건 등 국정원의 거짓, 검찰의 거짓말 등등 박근혜 정권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아주 뻔뻔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집요하게 그들의 거짓 하나하나를 검증하고 따져 보아야합니다.
그러나 정책의 해설은 정치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와 같은 공약의 후퇴와 파기를 하나의 가치판단으로 수렴시켜서 의제를 설정하여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 즉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진실에 입각한 선명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입니다. 저는 그 의제 설정 세팅을 흔히 이야기 하는 ‘구도의 설정’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의 개별 공약의 후퇴와 파기에 대하여 판단해달라고 국민들에게 제시할 구도는 무엇일까요? 약속 VS 거짓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합당의 명분을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 공약은 박근혜 정권의 수 많은 거짓 중 하나일 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거짓말 하는 정치, 거짓말하는 대한민국과 싸우겠다는 가치와 명분을 제시하면서 합당을 하고 대통령을 압박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을 수도 있고(누가 뭐래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단일 야당으로서 헌정사 이래 가장 많은 의원을 보유한 거대 정당입니다),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경우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 부각되면서 거짓 VS 약속의 구도는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까지 박근혜 정권 내내 정치의 주요 구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불통의 벽 앞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우리의 기득권이라도 먼저 내려놓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면, 원칙, 결단, 희생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며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진보정당을 포함한 야권 전체도 동반상승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헛된 가정법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무공천 방침 철회과정에서 약속 VS 거짓의 구도가 망실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사실과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기초선거 공천폐지 약속은 박근혜나 안철수․김한길이나 다 지키기 않은 꼴이 되었으니, 이제 거짓 VS 약속의 구도는 성립이 안 되는 판이 된 것이지요.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화가 납니다. 잘못된 신념과 정치적 미숙함이 박근혜 정권 내내 가져가야할 가장 중요한 구도를 망실시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박근혜의 무엇에 대해서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독재자의 딸? 수구? 택도 없습니다. 박근혜의 태생과 과거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이정희 후보의 가열찬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대선에서 51%의 지지로 국민들이 승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약속 VS 거짓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자 정치적 선택의 기준, 즉, 정치전선의 구도가 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를 망실시킨 자들…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말들을 꾹 눌러 내립니다.
2. 새정치와 중도가 손상된 안철수 리더쉽
안철수 리더쉽은 새정치, 중도, 민생 정도의 키워드로 정리가 됩니다. 포지션으로서의 중도는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상실되었습니다. 이제 당내 투쟁을 해야 겠지요. 가치와 정책으로서의 중도가 남은 것인데요, 김효석 류의 뉴민주당 플랜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현재의 민주당을 오른쪽으로 끌고 가는 것일테고 서민들이 기대할 바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새정치 역시 민주당과의 합당 자체로 빛이 바랬고, 무공천 방침 철회로 타격을 받았으며, 앞으로 한 달 간 지속될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과정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향식 공천을 하면 조직이 약한 안철수 쪽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고, 지도부에서 전략공천을 하면 이게 무슨 새정치냐라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합당 선언 당시 30% 초반으로 반짝 상승했단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정당지지율은 현재 20% 대이고, 지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이 정도의 정당지지율이라면 당의 통제를 따르기 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면 지도부의 권위와 전국 선거의 판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개혁공천’은 ‘개판 공천’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광주시장 공천 문제를 둘러싼 파열음은 그 전주곡쯤일겁니다). 상향식으로는 살아 돌아올 용사가 없고, 전략공천은 새정치가 아니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 속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안철수의 새정치는 참 많이 망실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것은 민생.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다만 중도를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으로 했을 때, 특히 중도를 가치가 아니라 거리로, 즉 이 세력과 저 세력 사이의 거리상 중간을 중도로 이해했을 때,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서민들에게는 얄미운 시누이 노릇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안철수 의원도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3. 전망
이대로라면 지방선거는 야권 패배. 지방선거 이후 대선까지에서 약속 VS 거짓의 주요 구도는 망실. 안철수 리더쉽 중 새정치, 중도 부분은 망실. 이제 남은 부분은 민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구도, 리더쉽, 조직의 복원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보정당은 진보정당대로, 시민사회단체는 시민사회단체대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백마 탄 초인이 우리를 구원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런 초인을 기다리는 정치, 리더쉽을 투기적으로 버블링하는 정치로는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소박하고 진지하게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아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 위기이고 자신이 가진 것이 참으로 별거 없다는 ‘위기인식 능력’이 우선되어야 할겁니다. 정당 지지율 40% 이상, 국정지지율 50% 이상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은 지금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면 바로 레임덕이다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각자도생, 진보정당들의 정신승리를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는 제발 중단했으면 싶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야권 전체가 좀비정당이 되는 수가 있으니까요. 패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시작입니다.
원문 작성일: 2014년 4월 15일
valentino flatsLouis Vuitton Fall 2013 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