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인 방송, 국민 TV
주요 일간지, 특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공중파 방송사까지 친정부적인 인사에 점령되면서, 더이상 정권에 대한 비판 기능을 상실했으며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생각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협동조합형 TV 방송이라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언론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국민 TV다.
국민TV는 지난 4월 1일 개국했으며, 김대중 정부의 농림부 장관이었던 김성훈 씨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나는 꼼수다’로 유명한 김용민 씨가 제안하고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한 ‘서프라이즈’에서의 활동으로 유명했던 서영석 씨가 상임이사로 있다. 매체의 성격을 대강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국민TV, 조선일보의 오보를 저격하다
국민TV는 개국 사흘 째인 4월 3일, 저녁 9시 뉴스 격인 ‘뉴스 K’를 통해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북 무인기의 청와대 항공사진’이 가짜라고 비판했다. 그들이 내세운 근거는 이렇다.
조선에 실린 사진을 보면 우측 하단에 운동장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있다(화살표로 표시한 부분).
그런데 구글 어스로 해당 지점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2012년판에는 조선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이 위치해 있지만, 그 이후인 2013년판에는 같은 장소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옳다꾸나, 조선이 2014년에 북한 무인기가 찍었다며 내놓은 사진은 사실 2012년의 풍경이구나,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TV가 디스를 시작했다. “북한은 2014년에 2012년을 촬영하는 무시무시한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나 봅니다”라며 말이다.
조선일보의 재반박, 그리고 진실게임
그런데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출처는 말할 수 없지만 사진은 진짜가 맞다고 다시 반박했다. 이에 잉여로운 네티즌들이 매의 눈으로 조선이 보도한 사진과 구글 어스의 2012년, 2013년판 사진을 다시 비교했다. 뭐 찾아가서 직접 보면 더 확실하겠지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른 점이 건물의 유무 뿐만이 아니다. 운동장에 원래 있던 건물의 지붕 색깔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2012년에는 3색 조안나 지붕이었던 것이 2013년에는 초록색 지붕을 바뀐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조선의 사진에서는? 초록색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설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 3색 지붕 건물을 초록 지붕 건물로 개보수하면서 운동장에 가건물 따위를 세웠던 건 아닐까? 그 가건물들을 세워놨던 게 하필이면 2013년판 구글 어스 사진에 찍혔던 건 아닐까?!
게임의 결론: 국민TV의 패배
그리고 진실 공방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국민TV의 문제의 기사가 인터넷에서 내려갔다.
물론 추가적인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임시조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타 언론사의 보도가 오보임을 주장한 근거가 고작 구글 어스 사진 뿐이었다는 것은 너무 부실해 보인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조선일보가 1승을 올린 상황처럼 보인다.
국민TV는 기사를 내린지 약 열 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 보도가 ‘성급한 보도’였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공지문을 올렸다. 비교적 빠른 대응이라 칭찬해 줄 수도 있겠지만, 타사의 언론 보도를 오보로 규정하고 이를 조롱하기까지 했으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오보’나 ‘잘못’ 같은 정확한 표현 대신 ‘성급한 보도’란 표현으로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는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목적’에 함정이 있다
국민TV는 애당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의 편향성과,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의 비판 기능 실종 등을 비판하며 출범한 대안적 언론이었다. 이 자체는 분명 좋은 목적이지만, 때때로 이 좋은 목적이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언론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같이 PC방 폭력성 실험이나 하고 있는 한심한 언론을 만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 해도, 거기에 함몰되면 얼마든지 이번 국민TV의 오보 소동 같은 잘못이 반복될 수 있다.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은 주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경주마처럼. 진실은 때때로 내가 보지 못한 곳에 숨겨져 있고, 또한 오류는 때때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터져나오곤 한다. 국민TV가 좋은 목적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개국 사흘 만에 터진 이 소동은 몇 번이고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번엔 비극이었으니, 다음부터는 희극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국민TV는 더이상 대안 언론이 아니라 정말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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