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3월 8일은 국제연합(UN)이 1975년에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에요. 이번 주 금요일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3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으로 법정 기념일이 됐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범국민적 양성평등 인식을 확산한다는 의미를 담았대요.
여성의 날을 맞아 이번 포스팅에서는 마음이 좀 무거운 주제, 젠더 폭력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해요. 어떤 나라에서는 공공연하게, (정도를 따질 수 있다면) 심하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그저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지금 저나, 독자분 옆에 있는 사람이 휘두른 적 있거나 당한 적 있는 폭력일 수 있으니까요. 본인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주시면 좋겠어요.
테크니컬 라이터인 제가 젠더 폭력 자체를 자세하게 다루려는 것은 아니고요. 대신 폭력을 방지하거나 피해를 완화하는 기술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그전에 우선 젠더 폭력이 무엇인지, 여성의 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부터 살펴볼게요.
여성의 날? 젠더 폭력?
UN여성기구와 유럽성평등기구는 젠더 폭력을 ‘사회적으로 정의된 성별의 차이를 이유로, 법적으로 명시된 인권에 반해서 가해지는 폭력행위를 이르는 용어’라고 정의했어요.
여성과 남성 모두 폭력의 대상이지만 피해자 다수는 여성과 여아입니다. ‘젠더 폭력(gender-based violence)’과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violence against women)’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이유예요. 그러나 폭력의 원인이 성별 격차라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용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자주 사용합니다. 다음은 이를 뒷받침하는 다섯 개의 통계 정보입니다.
- 세계 여성 인구 중 35%가 살면서 1회 이상 파트너가 아닌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본 적 있다(성추행, 성희롱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 세계 여성 인구 중 70% 이상이 살면서 1회 이상 친밀한 파트너에게 물리적, 성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
- 지금까지 밝혀진 인신매매 사례에서 피해자의 51%가 성인 여성이었다. 아이들까지 합치면 71% 정도다. 피해 여성 전체 중 3/4은 성 착취를 당했다.
- 여성 및 여아 6억5천만 명이 18세가 되기 전 조혼을 했다. 조혼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격리되거나 가정 폭력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임신을 너무 일찍 해서 아이를 낳다가 죽는 여아, HIV 보균자로 사는 여아도 흔하다.
- 여성 2억 명이 성기 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 이하 FGM)를 당했다. ‘전통이라서’와 ‘여성이 성관계 시 즐거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외에도 젠더 폭력 관련 통계는 방대해요. 사실 폭력을 겪은 뒤 생긴 트라우마, 상처, 후유증, 우울증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피해자들까지 생각하면 숫자로만 나타내기 부족한 것이 훨씬 많지만요.
한편으로 젠더 폭력은 ‘상대적인 약자가 겪게 되는 폭력’이기도 합니다. 남성이나 남자아이, 성소수자 등이 당하는 폭력 역시 젠더 폭력이죠. 따라서 수십억 명의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되어야 해요.
젠더 폭력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 기술
궁극적으로 피해자, 생존자, 잠재적 피해자는 신체, 건강, 경제, 교육, 정치사회 측면에서 제한 없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해요. 젠더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도 이 목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만,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따지는 데 급급하지 않고 성평등 달성이라는 최종 목표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IT 서비스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봐요. 스마트폰 앱으로 위기 상황을 알릴 수 있고, GPS를 통해 우범 지역을 추적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해서 지도를 만들 수 있으며, 소셜 미디어로 젠더 폭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젠더 폭력에 맞서는 기술을 범용 소비자 기술과 전문가 기술로 나눠요. 전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GPS, 소셜 미디어가 있고, 후자는 DNA 연구소, 범죄를 분석하는 포렌식 기술 등이 있어요. 저는 이 중 소비자 기술만 집중적으로 소개해볼게요. 젠더 폭력을 일상적으로 예방하고 폭력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주요 사용자별로, 네 종류로 분류하고 실제 서비스와 용례를 정리했어요.
1) 피해자와 생존자를 위한 현장 기술
현장에서 피해자 또는 생존자가 화면을 문지르거나 특정 버튼을 누르는 등 빠른 행동을 취하면 비상 호출을 전송하게 만드는 서비스들이 있어요. 앱, SMS, 전화, 이메일, 소셜 미디어로 사진, 위치 정보, 인터랙티브 지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인도 뉴델리 소재 앱 개발사 ‘서클 오브 식스’가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네요. 긴급할 때 쓸 앱이니 UI가 중요한데요. 잠깐 보면 통화 아이콘이 있고, 주위에 6명의 가족 및 친구 아이콘을 배치했어요. 서클 오브 식스의 PM은 ‘인도에서는 경찰서가 피해자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앱을 이렇게 설계했다’고 말했죠. 비상상황을 알릴 때 통화 아이콘을 여섯 방향 중 어디로든 밀면 그 사람에게 경보가 갑니다.
이 외에도 폭력 현장에서 병원까지 프로토콜을 서비스로 구현한 앱 디마기(Dimagi)가 해당 기술에 포함되고요. 세이프티핀, 셰이크투세이프티 등의 앱도 사용됩니다.
2) 피해자 지지자를 위한 기술
피해자, 생존자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도 그들을 도우려는 단체, 개인이 있어요. 주로 교육분야와 연계해서 인터넷을 십분 활용하네요. 코세라, 코드카데미 등 온라인공개수업(MOOC) 전문 회사가 주도적으로 젠더 폭력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를 개발해서 배포하고 있어요.
좀더 전문적으로 법적인 지원을 하려는 개인이나 단체의 경우 NNEDV.org의 하위 단체인 테크세이프티닷오아르그가 제공하는 툴킷을 보면 좋겠네요. 툴킷에는 젠더 폭력 범죄가 일어났을 때 초기에 법적 조치를 취하는 방법,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 커뮤니티 차원에서 법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간단하게나마 실려있습니다.
3) 피해자, 생존자, 가족, 지인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기술
여성, 여아의 권리를 경시하는 사회라면,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야 할 피해자, 생존자, 그 주변인이 용기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입을 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힘들죠.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특히 더 눈에 보이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소셜 미디어가 대표적이죠.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확성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조직화해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 자하 두쿠레는 조혼과 FGM(성기 절제)를 당한 피해자이자 생존자예요. FGM은 감비아 전통과 문화, 종교와 결부되어 오랜 기간 지속된 악습입니다. 때문에 자하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구조적인 압박이 심했죠. 게다가 자하의 아버지마저 그의 딸을 ‘유난스럽다’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피해자를 돕는 단체에 찾아갔고 이후 FGM 철폐 운동을 이끄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자하는 트위터로 본인의 활동을 기록했고, 겪은 일을 알렸어요. 그러면서 지지자들과 느슨하게 연대해 오프라인 세미나, 토론회 등을 열었습니다. 그 결과 감비아 정부가 법적으로 FGM을 금지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어요. 자하는 지금도 트위터로 ‘실질적으로 FGM을 하지 말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자하는 활동가 개인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사례였고, 한편 미디어 회사가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합니다. genderIT.org는 젠더 폭력과 관련된 뉴스레터와 콘텐츠를 발행하는 온라인 플랫폼이고 Witness.org는 영상 콘텐츠 위주로 제작, 배포하는 미디어입니다 .
4) 위치, 지역 정보를 크라우드소싱 하는 기술
피해자가 긴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범지대와 주변 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기술이에요. 세이프시티가 대표적이에요. 데이터를 크라우드소싱 해서 일반인에게 배포할 수 있는 정보로 가공합니다. 지역 기반으로 범죄 발생 트렌드를 읽고 정보를 수집하며 이 정보를 개인이나 커뮤니티가 사용할 수 있게 공개합니다.
기술이 만능은 아니지만
IT 서비스가 유일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지도 못하죠. 예를 들어 젠더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민의 39%만이 휴대폰을 소지했고, 여기서도 젠더 격차가 생깁니다. 여성이 휴대폰을 소지한 경우는 남자가 소지한 경우보다 21% 낮아요. 또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여성이나 여아가 휴대폰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명예 살인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한계도 있어요. 예를 들어 앱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힌디어 정도로 제한적이죠. 언어장벽을 넘어 기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음성 합성 기술이나 번역 기술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렇지만 젠더 폭력을 예방하고 젠더 폭력의 피해를 완화하는 데 기술을 최대한 선용한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피해자와 생존자, 잠재적인 피해자가 젠더 폭력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이고, 피해자와 생존자가 목소리를 내어 연대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데에 기술을 사용한다면요.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람은 키잡이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원문: 슬로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