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애드햄(Allen Adham)은 열정적인 소년이었다. 학창시절 그의 머릿속은 온통 게임으로 가득 찼다. 부모님에게 “공부하는 데 필요하다”며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른 뒤 그 컴퓨터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가 하면, 스스로 게임을 개발해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코딩과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4살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그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UCLA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친구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 프랭크 피어스(Frank Pearce)와 함께 게임회사를 차렸다. 비용은 아버지에게 유럽 유학 경비로 받은 1만 달러를 아껴둔 것과, 마이크 모하임이 할머니로부터 빌린 돈에서 충당했다.
20대 중반의 친구 셋이 만든 이 회사의 이름은 ‘실리콘 앤 시냅스(Silicon & Synapse)’. 훗날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를 만들며 세계 게임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게임사 ‘블리자드(blizzard)’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주전자닷컴’은 한국의 앨런 애드햄이 모이는 곳이다. 이 웹사이트의 주요 이용자인 청소년들은 스스로 만든 플래시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올린 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게임 개발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만 개가 넘는 플래시 게임이 올라왔다.
그들에게 주전자닷컴은 놀이터이자 학교이고 동시에 연구의 장이었다. 분명 이들 중에는 현재 게임개발사에서 일하거나 대학에서 게임개발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2월을 마지막으로 주전자닷컴에서 이들이 만든 자작 게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 규정 위반으로 ‘자작 게임 게시판’을 폐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게임을 만들고 이를 배급할 때 위원회로부터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주전자닷컴에 올라오는 자작 게임이 이런 등급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플래시 365’, ‘쥬니버’ 등의 웹사이트들에도 플래시 게임 서비스가 종료된다.
물론 청소년들이 플래시 게임을 만들고 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 심사를 받는다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이를 위해서 적게는 수만 원, 많게는 수십만 원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혜택이라고 해봐야 개인 제작 게임물에 대해 심의수수료 30%를 감면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 학생들이 ‘그저 좋아서’, ‘코딩 연습 삼아서’ 만든 비영리 목적의 게임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게임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수출액은 약 45억 5,000달러로 5조 원을 훌쩍 넘는다. 그 난리라고 하는 K팝(5억 달러)과 방송(5억 5,000만 달러), 영화(4,000만 달러)를 다 합쳐도 게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4차 산업혁명’은 정부와 정치권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신산업 규제 철폐 약속을 쏟아내고, 급기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코딩교육을 의무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꿈 많은 청소년 개발자들의 공간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임 규제에 막혀 문을 닫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 엇박자는 훗날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만일 미국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고등학생 앨런 애드햄의 열정을 규제했다면 우리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명작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임요환과 홍진호 그리고 ‘택뱅리쌍’이 써 내려간 스타리그 드라마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밤, 학교에서 배운 코딩으로 재미 삼아 게임을 만들고 주전자닷컴에 올리면서 보람을 느끼는 청소년 중 상당수가 미래의 앨런 애드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의 꿈과 재미, 열정과 보람을 낡은 제도의 틀로 담으려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같은 명작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