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약 10여 년 광고/마케팅 일을 한 주제에 ‘네가 감히 마케팅 커리어를 논하느냐’고 비웃을 선배님들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광고대행사, 광고주, 미디어를 모두 경험해보았고, 최근 구글 인턴분들에게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여러 번 하다보니 내 생각을 한 번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어 글을 남긴다.
1. 마케터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향으로 ‘마케팅 = 광고’라고 생각하고, 기업의 마케터는 ‘핫 플레이스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소비자들을 관찰하고, 대행사와 함께 멋진 광고를 기획하며 고민한 끝에 경영진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멋지게 프레젠테이션하는’ 일이라는 환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다. 그리고 광고 대행사의 AE (Account Executive, 광고 기획)를 지망하시는 분들도 동일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런 분들께는 아래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환상을 깨라고 하고 싶다.
사실 마케터의 역할은 업종마다, 회사마다 모두 다르다. 내가 모든 업종에서 일을 해본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제일기획과 미래에셋, 구글을 거치면서 비교적 다양한 업종의 마케터분들을 만나본 결과, 마케터의 회사 내 영향력은 마케팅의 매출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도와 높은 상관 관계가 있다는 개인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이다.(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업계 종사자분들의 feedback 환영합니다!)
보다시피 소비재 기업, 예를 들어 P&G, 로레알같은 기업에서는 마케터들이 조직의 핵심이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Brand manager들이 특정 브랜드의 런칭, 마케팅부터 영업 실적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므로, 쥬니어때부터 막강한 권한과 동시에 책임을 지게 된다. (아래 브랜드 매니저의 역할 설명 도표 참조) 그래서 P&G를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부르고,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에서도 P&G, 로레알 등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터들을 많이 영입하기도 한다.
반면 아무리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마케팅을 통해서 멋지게 만들어도 ‘수익률’이 낮으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절대 받을 수 없는 금융과 같은 업종에서는, 마케터들의 회사 내 영향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2. 마케터가 되고 싶다면?
따라서 마케터가 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아하는 제품과 업종이 뭔지, 그리고 그 기업 내에서 마케터의 영향력이 어떤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자동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여성분이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가 된다면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업무에서 흥미를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특정 제품군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 업종의 마케터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면, 무조건 인턴 기회를 알아보고 직접 체험해보고, 그 것도 어렵다면 그 업종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서 만나보자.
이렇게 발품을 파는게 중요한 이유는, 특정 업종에서 몇 년간 마케터로 경력을 쌓게 된 후에는 다른 업종으로의 이직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업종의 마케팅 전문가로서 경력을 지속적으로 쌓아 나가는게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첫 직장을 고를 때에는 정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여러 업종에서 인턴을 하다보면 나에게 맞는 업종과 회사를 알게 될 것이다.
단, 마케터의 영향력과 연봉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엔 화려한 업종들이 의외로 과중한 업무와 박봉에 시달리고, 따분해보이는 업종들이 널럴하고 연봉도 후한 경우도 많다.
만약 ‘마케터로서의 성공과 인정’보다 ‘널럴하고 돈 많이 주는 직장’이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다면, 그걸 제공해줄수 있는 회사로 가면 된다. 물론 지금 널럴하고 돈 많이 주는 회사가 10년, 20년 후에도 그러라는 보장은 절대 없으니, 업종의 전망을 잘 고려해보시고 지원하시라.
3. 광고대행사 → 기업 마케터로의 전환은 어떨까?
광고대행사의 좋은 점은, 다양한 업종의 광고주들과 일을 해보면서 간접적으로 그 업종 마케터의 역할을 체험해보고, 나에게 맞는 업종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대행사에서는 하루 종일 앉아서 멋진 TV광고 아이디어만 내고 있는줄 아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광고 캠페인 전체 기획 및 집행을 책임지는 AE의 경우, 담당 광고주와 거의 매일 만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화를 하면서 광고 외적인 마케팅 업무도 같이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면 국내 모 통신사 담당 AE를 맡았을 때, 4대 매체 광고는 기본이고 광고주의 브랜드 전략 수립, 광고 캠페인 연계 이벤트 기획 및 실행, 심지어는 요금고지서 디자인 기획까지 해 본 경험이 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시키면 뭐든지 다 해야하는’ 우리나라의 바람직하지 않은 갑을 문화 때문이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해당 기업 내 마케터의 역할, 기업 문화 등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한 AE가 여러 광고주를 동시에 맡는 경우도 많고, 한 대형 광고주만 맡더라도 2~3년에 한 번 정도 담당 광고주를 바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을 체험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에게 맞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을 파악한 후, 나에게 맞는 업종의 마케터 자리를 찾아서 이직하거나 스카웃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경우 제일기획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통신/전자 업종의 AE가 되고 싶어 그 쪽으로 지원을 했고 그 이후 쭉 통신사/전자 회사의 광고와 디지털 컨텐츠 기획을 담당했으며, 그 경력이 구글에 와서도 이어져 지금도 전자 업종을 담당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소위 ‘슈퍼 갑’이라고 불리우는 삼성전자, SKT, KT, 현대차, 공기업 등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 신입 때부터 대행사에 모든 것을 다 시켜버리는 잘못된 버릇을 배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신입 때부터 이런 버릇을 갖게 되면 결코 제대로 된 마케팅 실력을 쌓기 어렵고, 대행사에서 가져온 결과물을 윗 사람들에게 보고만 하는 존재가 된다.
만약 회사가 계속 승승장구하면 큰 상관없지만, 만약 회사가 어려워져서 정리 해고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이 분들을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이다. 반면 광고대행사에서는 정말 많은 일을 빠른 시간 내에 꼼꼼하게 처리해내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높은 지위에 올라가거나 기업 마케터로 이직한 후에도 Detail을 챙기고 대행사가 일을 제대로 해오는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을’ 출신 ‘갑’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4. 마케터를 꿈꾸는 분들을 위한 조언
1) 영업을 알아야 한다
위의 영향력과 매출기여도의 상관 관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결국 영업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마케팅은 기업 경영진에게 ‘돈 낭비’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이 강화될수록 마케팅 ROI의 측정은 정교화될 것이다. 따라서 자사 제품을 직접 소비자들에게 팔아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업에 도움이 되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이상하게도 마케팅은 고상하고 멋진 일이고 영업은 고되고 피해야 할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마케팅보단 돈벌어오는 영업이 더 대우받고, CEO가 될 확률도 훨씬 높다. 그리고 영업이나 마케팅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자사의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2) 제품을 알아야 한다
예전에 비스킷에 ‘마케터여, 제품 개발자가 되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저 포스팅을 참고부탁드리며, 소비자들이 기업의 일방향 광고를 보고 제품을 사던 시대가 끝나고 온라인을 통해 제품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 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마케팅의 역할도 광고/프로모션에서 점차 소비자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제품 개발 참여가 중요해질 것이다.
3) 기술을 알아야 한다
디지털 마케팅은 일부 특정 부서만의 업무가 아닌, 실무자부터 CMO까지 모든 마케터들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다.
소비자들이 디지털에서 어떻게 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구매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에게 정교한 타겟팅을 통해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며, 온/오프라인 매출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마케터가 프로그래머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기술로 어떤 디지털 마케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구글의 광고세일즈부서에서 일하는게 가장 좋은 이유도, 디지털 마케팅 트렌드와 솔루션를 가장 먼저, 확실히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광고영업사원이 아닌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로서 광고주에게 우리의 솔루션을 잘 전달하고 팔 수 있다.
나와 같은 레벨은 아니지만^^ 작년 11월, 미국 P&G에서 24년 동안 근무한 최고위 임원 중 한 명이었던 Kirk Perry가 구글로 이직, ‘President of Brand solutions’이라는 역할을 맡은, 업계에 상당히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관련 기사) 전통적인 마케팅의 강자인 P&G의 고위 임원도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각하고 이직을 결심하게된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래서 구글/네이버/페이스북 등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여 디지털 마케팅의 기본에 대해서 배우고 향후 다른 업종으로 진출하여 마케팅의 더 넓은 영역을 배우는 것 또한,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고민하는 분들께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4) 평판 관리를 잘 하라
광고/마케팅 업계는 정말 너무 너무 좁고, 한 다리만 건너면 그 사람의 평판과 성과 등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입, 심지어는 인턴 때부터 평판 관리를 잘 해야한다. 일을 잘 해야하는건 기본이고 윗 사람/아래 사람 모두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내부 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협력사나 대행사에게도 본인의 지위를 남용한 ‘갑질’을 절대 하지 말고 항상 예의를 지켜야하며 ‘업체’라고 절대 부르면 안된다. 언제 그 ‘업체’ 팀장이 내 팀장/임원이 될 수도 있고, 경쟁사의 임원이 될 수도 있으며, 내가 어느 날 ‘업체’를 차리게 될 수도 있다.
도움이 되셨길!
원문: 진민규의 마케팅/Tech 이야기 in My Library /편집: 리승환
※ 글쓴이 진민규 님과 함께하는 어벤져스쿨 특강!
글로벌 기업에서 배우는 모바일 시대의 비디오/커뮤니티 마케팅 전략
왜 이 강연을 만들었나요?
지금까지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광고’를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50% 이상의 유튜브 동영상이 모바일에서 재생되고,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소셜미디어로 직접 가지고 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이 강연을 들으면 뭘 알 수 있지요?
모바일 시청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비디오를 제작하는 전세계 유수 기업의 전략과 사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들의 커뮤니티 마케팅 사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컨텐츠를 제공하고 직접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왜 진민규 선생님이지요?
진민규 선생님은 제일기획과 구글을 거쳐 라이엇 게임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유튜브로 비디오 마케팅을 보편화했고, 전세계 게임계를 천하통일한 LOL 성공의 기반에는 커뮤니티 마케팅이 있었습니다. 장담합니다, 이 모든 걸 직접 이끌어온 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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