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썼지만 논의를 위해 다시 한번 간략히나마 정리하자면요. 기술적으로 SNI 차단은 감청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감청이란 통상 개념에서 통신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그에 반해 SNI 차단은 내용을 보지 않습니다. 이건 편지의 내용과 편지 봉투의 주소의 관계와 같습니다. 편지를 뜯어서 내용을 보면 감청이지만, 봉투 겉면에 쓰인 주소를 보는 것은 감청이 아닙니다.
이 감청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나면 그다음 단계의 우려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사찰’에 대한 우려입니다. ‘국민 간에 오가는 편지의 주소를 정부가 다 보면 그게 사찰 아니냐’ 하는 건데, 원론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사찰이 되려면 그 봉투에 쓰인 발신자 주소가 누구인지 개별적으로 식별하고 또 그것을 저장까지 하는 경우만 해당합니다. 편지가 특정 수신자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동적인 수단으로 수신자 주소를 확인해 차단한 후 발신자 정보는 개별 식별하지도 저장해두지도 않는다면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사찰이 될 수 없습니다.
저번에도 비유한 것처럼, 이것은 도로상의 카메라들의 문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속도단속 카메라와 방범용 카메라는 분명히 사찰 목적입니다. 사찰이기 때문에 그 카메라의 설치 목적과 범위를 법 규정으로 정해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반면 교통정보 카메라는 도로상의 자동차들을 개별 식별하지도 식별정보를 저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사찰과 전혀 무관합니다.
다만 실질적인 ‘사찰’이 될 우려가 없도록 개별 식별하지도 저장하지도 않는다는 명시적인 선언과 규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미 그러지 않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공식적인 규정이 있어야 악용에 대한 우려가 불식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주관 기관인 방통심의위가 실수한 부분입니다.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흐름이 전혀 달갑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도 SW 엔지니어로서 인터넷 공간의 폭넓은 자유를 매우 선호하고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일부 영역이 차단되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원칙론과 별개로 현실론이 있습니다.
불법 영상과 도박 사이트가 판치는데 그에 대해 가능한 선제적 대책들이 너무 미비하고 원칙론만으로는 방법이 묘연합니다. 원론으로서는 반대하지만, 심각한 불법성이 있고 해외에 서버가 있어 제재가 불가능한 등 통제가 어려운 사이트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찬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술적 정의 문제가 일반인에겐 다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이런 간단한 비유로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 SNI 차단 문제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불이 지펴질까요. 일부 ‘전문가’의 잘못된 설명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의 최전선에 오픈넷이 있습니다.
오픈넷은 인터넷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로서,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정부의 통신 자유 침해 시도가 이어질 때 많은 역할을 한 바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오픈넷의 모호함을 불러오는 설명이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기레기 언론들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빌미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물론 접속차단이 곧바로 개별 이용자들의 패킷이나 접속기록 내용을 직접 들여다보는 감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용자의 패킷을 읽고 ‘송·수신을 방해’하는 형식의 감청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또한 불법감청은 아니라고 하여도, 이러한 접속차단 제도로 인해 이용자들의 통신 정보에 대한 국가기관과 망사업자의 통제권이 보다 강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신의 통신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쉽게 통제되거나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인터넷 이용자의 자유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보시다시피 오픈넷은 이게 감청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너무도 확실하게 알면서도 ‘감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명시합니다. 이번 사안과 같은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으로서 내놓기에 적절한 해명 방식이 아닙니다.
조금 과한 비유를 하자면 ‘문재인은 나쁜 놈이 아니지만 나쁜 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런 식입니다. 상세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일반인이 이런 모호한 ‘판정’을 듣고 나면 그사이 어딘가 지점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문재인은 조금은 나쁜 놈인 측면이 있구나’ 이런 식으로요.
물론 오픈넷이 이런 식의, 모호하고 일견 무책임한 입장을 내놓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오픈넷은 불법 영상의 유통 문제가 아닌 오직 인터넷 자유 하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결성 및 운영되는 단체입니다. 그러니 인터넷 자유에 작고 잠재적으로라도 저해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는 항상 비판적인 입장을 냅니다. 그 자체는 존중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이고 좁은 의미에서의 감청의 의미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터넷 자유라는 측면에서의 원론적 반대론이라는 상이한 문제를 동일한 하나의 입장문에서, 심지어 같은 단락에서 뒤섞어서 말해버림으로써 비록 소극적이지만 국민들에게 이게 감청 맞다는 쪽의 오해를 조장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픈넷뿐 아니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양홍석 소장은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닌 양 소장 개인의 입장으로 보이는데, 공식 직함을 걸고 출연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식 입장으로 오인될 수 있는 개인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당연히 부적절합니다.
어떤 사람이 네이버를 언제 접속하는지 자체를 정부가 다 일일이 체크해서 확인하고 문제없으면 보내주고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접속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통신 내용 자체를 정부가 일일이 다 검열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발언은 거의 거짓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면서 개인 식별이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했기 때문입니다. 양 소장의 논리는 이런 개인 식별 가능성을 전제한 덕분에 검열, 즉 사찰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었습니다. 결국 현재 방통심의위가 SNI 차단 과정에서 개인을 특정, 식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주장이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방통심의위의 스탠스가 바뀌는 미래 정권에서 실질적 사찰로 발전할 우려가 있는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선 사찰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법 규정의 강화로 미래의 사찰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으므로, 이런 시민단체들이 현실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주장이 아니라 악용 방지에 대한 법 규정 강화를 통한 확실한 보장 약속입니다.
이런 시민단체들의 부적절한 발언들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려는 다수 언론사가 적극 악용합니다. 오픈넷은 감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부연했고 양홍석 소장은 개인 식별이 있는 것처럼 사실이 아닌 전제를 하면서 검열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두 가지 떡밥을 기본 재료로 해서 기레기 언론들은 마음껏 정부 때리기를 합니다.
식재료 두 가지로 튀김도 하고 볶음도 만들고 국도 끓이고 밥에도 넣어 매일같이 여러 언론사가 한 상 가득 합작으로 차려냅니다만, 사실 재료는 두 가지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느 기사 하나 다른 논리가 없이 다들 똑같습니다. SNI 차단에 대한 설명이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이들 언론사와 기레기가 문제가 불거진 후 여러 날이 지난 지금까지 정말 몰라서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건수가 있으니까 때리는 겁니다.
그 와중에 일부의 여론도 잘 따라와 줍니다. 불법 영상과 단순 야동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고의적으로 둘을 뒤섞어 다 그냥 야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청와대 청원을 하거나 시위까지 하니까요. 물론 그들도 언론들의 선동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불법 영상은 음란물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당신들의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당신의 가족이 그 대상이 되어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삶이 통째로 무너져내릴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고 그냥 음란물이라 주장하며 히히덕거리며 즐기는 당신도 범죄자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걸 부인하고 싶어서 대놓고 시위나 청원도 하는 것 아닙니까.
말이 나와서 마저 쓰자면, 청와대 청원의 내용은 일견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요구의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최초 청원자는 차단의 목적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고, 우회 방법은 계속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명분을 걸었습니다.
향후 인터넷 검열의 우려가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청원의 진짜 목적이라면, SNI 차단의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차단의 수단과 방법 등에 대한 엄격한 법 규정을 만들어 향후 악용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그는 취지에 동의한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차단 자체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기만적인 요구를 내놓았습니다.
또 우회 방법이 계속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궤변입니다. 우회 방법으로 무력화되는데 왜 반대를 합니까. 그가 이걸 거론한 진짜 속내는 우회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회 방법이 나오면 방통심의위는 또 다른 더 강력한 차단 수단을 찾아내려 애쓸 것이라는 걸 우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당장은 우회를 해서 ‘잘’ 쓰고 있지만 향후 우회가 더 어려워질 것을 걱정해 차단 자체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앞서 비유한 도로상의 카메라들의 문제를 다시 돌아봅시다. 도로상의 방범용 카메라는 그 목적과 실질 성격상 더도 덜도 아닌 사찰입니다. 차도에만 있습니까. 대도시 곳곳에, 후미진 뒷골목까지 방범 CCTV가 거미줄처럼 깔려있어, 일단 집 밖으로 나온 이상 그 사람의 행적은 완벽하게 추적 가능해집니다.
권력으로 그 카메라들을 맘먹고 뒤지면 개개인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분단위로 다 추적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국가 통제의 수단입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통제수단이라 그에 대한 규제가 있고 계속 더 강화되어야 하는 거고요.
SNI 차단 따위보다는 그런 카메라들의 사찰 악용 가능성이 수백, 수천 배 더 큽니다. 하지만 어떤 경위로건, 우리 국민들은 그 카메라들을 용인하기로 사회적으로 합의를 한 셈이고, 그 카메라들을 이용해 수많은 흉악범, 파렴치범들을 효과적으로 검거해왔습니다. 그런 도로 카메라들에 비해 실질 통제 가능성이 대단히 미미한 SNI 차단에 그렇게까지 목매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면서 SW 개발자로서 인터넷 자유의 강력한 지지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가치와 원칙도,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배타적인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불법 영상의 경우 피해자들의 피해가 일시적이지 않고 사실상 항구적으로 계속되는데도 마땅한 대책 자체가 없습니다.
그에 대해 비록 SNI 차단은 전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지만, 다른 마땅한 수단이 없고 얼마간이라도 불법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입니다. 저는 제 자유에 대단한 의미를 두지만 단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 국민이 조금씩 불편해져야 한다면,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익숙하게 배웠듯이 아무리 민주주의, 자유주의 국가라도 그 법체계는 각 개인들의 자유를 무제한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공동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최소한만큼은 제한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불편이 점점 일반화되고 당연시되어서 국가의 통제가 분별없이 커지지 않는다는 명문화된 제도 기반의 보장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정책 자체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이렇게 찬성하지만 이런 면에 대한 국민들의 선제적 우려는 타당하고 당연한 요구입니다. 방통심의위가 그런 후속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 국민들을 안심시켜주기를 바랍니다.
원문: 박지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