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게 투자유치는 선택일 뿐 필수가 아니다.
지난해 뉴스에서 “스타일 난다”의 Exit 사례가 큰 화제가 되었다. 큰 금액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기사가 보도된 로레알 인수전까지 회사가 단 한 번의 투자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정말 놀랐었다. 스타트업을 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스타일 난다의 경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고 현실 세계에서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다.
우리 역시 창업 초기에는 ‘투자’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참 많이도 했다. 현재는 대표 역할 때문에 투자유치를 담당하는데, 여러 업무 중에 투자유치가 가장 힘들고 싫고 어렵다고 느낀다. 투자유치를 할 때면 살이 쭉쭉 빠지곤 한다. 투자유치의 길고 긴 프로세스 그리고 스타트업이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감안한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다. 안 받을 수 있는 실력과 상황이라면 안 받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왜 많은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는지?
찾아보면 많은 이유들이 나오긴 한다. 투자를 받은 회사들의 투자를 받지 않은 회사들보다 성공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긴 하다. 그러나 무조건 투자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마다 이유나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유들로 투자를 받았었다.
1. 돈이 없어서
초기에 투자를 받는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 역시 그랬다. 초기 스타트업 대부분이 돈이 없어서, 또는 현재 회사의 자금 사정보다 자금이 많이 들어가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 구조이거나 로드맵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이지만 스타트업이 후반으로 성장해 갈수록 수십억, 수백억 심지어 조 단위의 자금이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 당장의 큰 손실을 감안하고 성장을 위해 투자를 받는 경우이다. 이를 ‘계획된 적자’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FFF (Family, Friend, Fool)라고 하는 3곳으로부터 사람과 자금을 조달해서 시작하는 극초기를 지나 조금 더 성장을 한 다음 에인절 또는 시드 투자유치를 시작한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투자유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창업자 또는 창업팀의 자금이 바닥나는 시점 최소 6개월 전에 시작을 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투자 라운드이다. 좋지 못한 투자사에게 돈을 받게 되는 등 시작이 안 좋을 경우 그 뒤에 후속 투자 역시 험난한 여정이 될 확률이 높다. 좋은 시드 투자사들은 창업팀이 초기에 서비스나 제품의 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을 찾는데만 집중하게 해 주고 그 외의 다양한 주변 일들에 대해 창업팀의 리소스가 들어가는 것들을 최소화해준다.
2. 속도를 내기 위해
에인절/시드 단계를 지나서 어느 정도의 시장 적합성을 찾고 나서는 속도의 싸움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우리 서비스가 마케팅비 1억으로 10만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자금이 충분하다면 5억이면 50만, 10억이면 100만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자금에 비례해서 사용자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1억의 마케팅 자금으로 10만 사용자를 확보해서 수익을 내고 다시 재투자를 통해 10억의 자금 상황까지 도달하는 데 3년이 걸리다고 하자. 더 빠르게 속도를 내기 위해 10억 원의 외부 투자를 통해 3년의 시간을 1년 ~6개월까지 공격적으로 줄이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회사나 서비스에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하면 투자를 받는 것이 좋다. 주변 시장 상황이나 경쟁회사보다 시장 우위를 점하기 위함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정한 금액으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데이터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돈이 없어서 투자를 받는 경우보다는 설득에 수월하다. 그렇다고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3. 인적 네트워크 확보
보통은 스타트업 멤버들은 서비스나 제품에 몰두해야 한다. 물론 창업팀이 가진 기존의 경력이나 경험, 인맥이 있지만 회사에 몰입하다 보면 대인관계는 소홀하게 되기 마련이다.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서 좋은 성과를 내면 최고일테지만 현실에서 사업의 과정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면 ‘결혼을 했다’, ‘피를 섞는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 투자를 했던 투자사분들의 역할과 도움이 실제로 그러했다. 회사가 신경을 잘 쓰지 못하는 재무 전략이나 규모·단계별로 챙겨야 하는 것들에 대한 조언이나 우수한 인재들의 소개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같은 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과 좀 더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같은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았기에 성향이 비슷한 회사들이 많다. 함께 비즈니스를 하기도 하고 후속 투자유치 시에 서로 겹치지 않는 투자사를 소개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주로 투자사가 포트폴리오를 위해 운영하는 작고 큰 세미나 또는 모임에 참석을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한다.
4. 후속 투자 유치
우리의 경우 첫 서비스로 성장을 하다가 실패를 경험했다. 다시 새로운 서비스로 처음부터 시드 투자를 시작, 후속 투자를 단계별 받으며 자금적은 지원을 받고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참 많은 투자유치가 있었다. 현재는 스푼 라디오의 성장성을 믿고 약 10여 개의 투자사들이 한 배를 타고 있다.
후속 투자 시에 가장 확실한 포인트는 서비스나 제품의 성장성과 성과이다.하지만 이런 성장과 성과를 잠재적인 후속 투자사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에는 기존 투자사분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 투자 라운드별로 투자유치 이후 내부에서 리뷰를 했다. 떠올려보면 항상 기존 투자사분들의 소개 또는 직간접적인 도움으로 후속 투자 유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존의 투자사가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이번 라운드에서의 투자사들과의 연결은 물론 실제 투자 완료까지 이루어졌을까? 기존 투자사분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판단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5. 멘토
대표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를 받고 말 못 할 고민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함께 고민할 대상이 너무나 적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소주 한잔하면서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생기는데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기존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회사 내부의 민감한 고민거리를 친한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이야기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투자사 담당자분들은 한 배를 탄 사이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들을 잘 알고 있어서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힘들 때나 고민이 생겼을 때 투자사 담당자분께 무작정 전화를 걸어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심적 위안을 얻기도 한다.
좋은 투자사를 어떻게 찾냐고 질문을 자주 받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는 아직 나쁜 투자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어떻게 좋은 투자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우선 첫 투자사를 잘 만났고, 이를 시작으로 잠재적인 좋은 투자사들로의 연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투자사보다는 투자사 실무 담당자를 보기 위한 노력들을 했던 것 같다.
투자 시 미팅 시 해당 투자사가 우리의 편에 선다면 어떤 지원들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물어보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담당자가 경쟁회사의 편에서 지원을 시작한다고 가정도 해보고, 투자사 담당자가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생길지 짐작해보기도 한다. 회사가 어려울 때나 좋을 때 상관없이 한결같은 사람, 회사의 목표나 꿈을 믿고 묵묵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투자를 받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투자금으로 엮여 시작하는 관계이지만 실무에서는 돈보다는 사람 간의 케미와 궁합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원문: 최혁재 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