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유럽(스페인, 이탈리아)에 오피스를 두고 기업 액셀러레이팅과 스타트업 투자를 병행하는 마인드 더 브리지(Mind The Bridge)에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OI)에 관한 재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마인드 더 브리지는 전 구글러인 마르코 마리누치(Marco Marinucci)가 설립해 현재는 혁신 자문 회사를 표방, 전통적인 액셀러레이터 기관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곳이다.
필자도 마리누치를 2015년 샌프란시스에서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의 인상으로는 실리콘밸리의 유럽계 특히 이탈리아계 스타트업 팀을 유럽으로 진출시키거나, 유럽의 주요 투자자와 연결하는 데 특별한 역량을 가진 액셀러레이터로 기억한다. 지금은 기업 혁신을 주도하는 혁신 자문 회사로 진화하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유럽 내 콘퍼런스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속한 로아인벤션랩도 기업 오픈 이노베이션을 외부 기술혁신 조직인 스타트업을 키워드로 대기업 내부의 혁신성을 높이고, 새로운 조직 문화개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애자일 프로세스를 디자인 씽킹 방법론을 적용해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발굴한 초기 스타트업팀에 시드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펀드를 함께 만들어 병행하면서.
여하간 마인드 더 브리지와 영국의 네스타(Nesta)와 함께 발표한 「오픈 이노베이션 아웃룩 2019(Open Innovation Outlook 2019)」 보고서에 따르면, 왜 대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은지 잘 보여준다. 네스타는 비영리 기관으로 글로벌 이노베이션 관련 연구조사, 컨퍼런스 개최, 보고서 발행 등을 수행한다.
이 보고서는 기업조직 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담하거나 담당하는 부서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자료에 따르면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벽은 크게 기업의 내부요인-외부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부요인이다. 주목할 만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오픈 이노베이션의 절차적 이슈
- 응답자의 47%가 엄격한 잣대의 내부 프로세스를 지적
- 예컨대 오픈 이노베이션에 참여하는 기업 내 현업부서와 외부 이해관계자(OI 파트너)가 함께 모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물리적 공간/장소, 협의된 결과물의 관리와 보안, 완전히 새로운 KPI에 대한 정립 등에 대해 기존 대기업의 잣대로만 적용. 이 경우 OI 파트너사들의 반발이 올 수밖에 없으며, OI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음.
2. 오픈 이노베이션의 전략적 이슈
- 응답자의 33%는 여전히 자신이 속한 기업 내부의 OI의 목적/목표-전략이 실제 OI 활동과의 연계가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
3. 오픈 이노베이션의 문화적 이슈
- 외부 기술혁신조직인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 ‘여기서는 절대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없어’ 문화, 내부 기업가 정신/문화 부족 현상에 대해서는 크게 개선되는 것으로 답변
- 그럼에도 응답자의 53%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벽으로 ‘여전히 기업 내부에 팽배한 위험 회피(Risk Aversion) 문화’라고 답변
- 오픈 이노베이션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감히 OI 파트너들과 실패를 즉시 보고(Fast Fail)함으로써 실패를 자산화할 체계 및 문화를 만드는 것, 그러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경우 OI 활동 또한 성과 중심으로 KPI를 설정하다 보니 ‘성공 가능성이 없는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아이러니한 현상 발생, 이는 OI 추진 담당 부서를 굉장히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음
기타 오픈 이노베이션 전담조직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수준 높은 스타트업에 대한 액세스 역량, 스타트업 지원 리소스 관련해 적정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한다.
정말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하려면?
필자에게 이 짧은 보고서에서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1. 절차, 3. 문화적 이슈라고 이야기하겠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대기업 내부조직이 새롭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개발-런칭할 수 없다는 가정을 깔고 간다.
따라서 이를 좀 더 잘할 새로운 외부 조직을 어찌 보면 초청(Invitation)해 한시적 원 팀(One Team)을 만들고, 기존의 워터폴(Waterfall) 방식이 아닌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공동의 제품-서비스를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실패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더 많은 ‘혁신 가능성’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자산화하는 나름의 ‘방법론’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경우 외부 혁신조직/OI 파트너사를 ‘초청’한, 혁신조직 관점보다는 마치 ‘하청계약’을 맺고 내부 현업조직의 KPI를 달성하기 위한 ‘아웃소싱’ 파트너로 착각할 확률이 다분히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개념과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외부 혁신조직,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적 자원으로 구성된 OI 전담조직을 내부에 둬야 한다.
이 전담조직을 중심으로 초청한 외부 혁신조직과 내부 OI 활동에 참여하는 부문/부서 간 조율이 일어나야 하며, 일하는 방식-절차-새로운 성과측정의 방법-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방법론이 설계되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에 대한 문화적 공감대 형성, 이후 추진과 실행을 위한 절차적 이슈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문화적 이슈와 절차적 이슈는 따라서 따로 떼어내서 분리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한 이 이슈는 상향식(Bottom-Up)으로 대기업 내부에서 형성되기 불가능하다. 최고 경영층/소유주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전사 문화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전제로, OI 전담부서/기구 설치를 통해 완전히 내부 운영조직과는 다른 ‘별동대’로서 절차적 이슈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대기업/중기업 내에서 디지털 변환을 추진하는 것, 그리고 이와 연계한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최고 경영층/소유주의 강력한 추진 의지 및 지속성과 연속성의 보장 등 하향식 접근 방식(Top-Down Approach)에 의해 가능하지 상향식으로 올라가서 전사적 중요도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디자인 씽킹’ vs ‘비즈니스 씽킹’
오픈 이노베이션이 부상한 배경은 진일보한 기술의 등장, 이에 따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특정 시장에서 파이프라인(Pipeline)을 깔아 전통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했던 기존 대기업-중견기업들이 이른바 변화와 혁신의 국면을 맞이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즉 내부에서 뭔가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필자는 이를 비즈니스 씽킹의 시대에서 디자인 씽킹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있으며,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존 전통적인 대기업 조직이 조직 전체 문화, 일하는 방식을 비즈니스 씽킹이 아닌 디자인 씽킹으로 진화하는 데 있어, 플랫폼적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대다수 기업은 비즈니스 씽킹에 익숙한 조직이다. 비즈니스 씽킹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 주로 시장 수성과 관리, IRR/ROA/ROI 등의 지표가 중요
- 수익모델에 집중
- 워터폴, 하향식의 제품-서비스 개발 방법이 지배적
- 사업기획을 위한 TF 구성, TF를 감사하는 감사반 존재
- 파워포인트 중심의 보고체계, 사업승인은 모두 숫자 기반
반면 디자인 씽킹에 익숙한 조직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 고객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새롭게 전달 가능한 신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방식에 집중. 이를 통해 회사의 새로운 EV(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접근방식에 초점을 맞춤
- 이를 위해 필요하면 외부 조직과 협업하는 체계 구축, 관찰-대화-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이견 조율
- 즉시 보고 추구, 스프린트 방식 업무추진을 위해 직급 체계 단순화, 애자일/플랫(Agile/Flat) 키워드가 중요
디자인 씽킹 조직은 그러니까 한마디로 필자가 보기에 1년, 12달 상시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이 늘상 일어나면서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억지로 남들이 한다고 하니, 우리도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100%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다음과 같이 2가지 단계로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1단계 디자인 씽킹 메소드
- 전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필요조건(Requirement)를 정의하고, 도출해야 할 솔루션의 아웃풋 이미지를 정의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하고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필요
- 완전히 서로 다른 생각과 KPI를 가진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개발과 적용, 내부화 필요(시각화 도구는 이 지점에서 개발)
2단계 디자인 씽킹 메소드
- 합의된 솔루션의 아웃풋 이미지를 스프린트 방식으로, 정해진 시간 내 한 팀이 되어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시장-고객 대상으로 검증
- 합의된 협업툴 활용, 스크럼 또는 칸반 응용
- MVP 테스트의 효율성 확보, 이를 아우르는 애자일&린(Agile & Lean) 접근 개발 방법론 세트업
- 프로토타입의 성과측정 및 실패 시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연구조사 및 결과의 내부 배포, 자산화
기업의 모든 업무 환경이 이제 온프레미스(On-Premise)환경에서 클라우드 환경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러면서 대시보드-시각화-기업 정보 수집 활동이 중요해졌듯 오픈 이노베이션도 비즈니스 씽킹에서 디자인 씽킹이 중요해졌다. 이는 구조화(전략)-시각화(디자인)가 어우러지고 상기 두 단계에 걸친 과정이 대시보드로 관리되는 체재로 가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짐을 의미한다.
대기업 조직의 R&D, 상품기획, 영업-마케팅 등 실제 제품-서비스 및 고객과 맞닿은 부서 중심의 모든 현업 팀에게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조직/팀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혁신 제품-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보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일시적 따 라하기나 생색내기가 아니라 전통적인 기업조직, 특히 대기업 조직이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고객과 시장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단어다.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관심이 중요한 시점이다.
원문: Vertical Platform / 필자: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