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의 오픈소스, ‘지속 가능한 업계를 만드는 열쇠’
2019년 1월 헤이그라운드에 파타고니아의 벤처캐피탈, 틴 쉐드 벤처스(Tin Shed Ventures) 필 그레이브스(Phil Graves) 운영팀장이 왔습니다. 8층 스카이라운지가 꽉 들어찼어요.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어떤 벤처회사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죠.
파타고니아는 워낙 유명하고 인기가 많습니다. ‘사회와 환경에 최대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며 환경 보호 운동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업을 운영한다’는 미션을 내건 회사인데요.
멋있다 싶다가도 정말 ‘그대로 하고 있나?’라고 들여다봤을 때 껍데기만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와 지금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환경 보호 운동을 하고,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여기 반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함으로써, 미션을 달성하는 것이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확실히 합니다. 타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따라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브랜드, 가치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틴 쉐드 벤처스는 조금 생소하죠. 필 그레이브스 팀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파타고니아가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열어젖힐 수 있고 돈도 더 잘 벌어요. 틴 쉐드 벤처스가 투자한 회사들을 보세요!’라면서 더 많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소셜 벤처 투자사라고요. 넥스트 파타고니아를 찾겠다는 의지죠. 필 그레이브스는 본인의 딸이 틴 쉐드 벤처스를 가장 잘 설명한다며 덧붙였습니다.
딸 아이가 제가 하는 일을 제일 잘 설명해줘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우리 아빠는 파타고니아가 벌어오는 돈을 환경 보호하는 회사들에게 갖다줘.’ 이보다 더 정확한 설명은 없을 거예요.
세 가지 투자 기준
틴 쉐드 벤처스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12개 기업에 약 4,000만 달러, 한화로 약 450억 원을 투자했어요. 필 그레이브스는 세 개의 기준으로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 단기적인 수익보다 환경 보호와 공익적인 가치 추구를 우선시 하는지,
- 파타고니아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지,
- 오픈소스를 지지하는지 여부를 본다고요.
1·2번 기준을 풀어보면요. 다른 벤처캐피탈은 투자받을 기업에게 사업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며, 단기적으로 수익을 불릴 수 있는지, 엑싯 전략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물어봅니다. 반면 틴 쉐드 벤처스는 장기적으로 어떤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우선 묻습니다.
그 환경 문제는 파타고니아의 주요 비즈니스와 연계되어야 하고요. 파타고니아가 아웃도어 사업과 먹거리 사업을 하니 아웃도어 소재를 좀 더 친환경적으로,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회사, 유기농 농업 솔루션 회사를 주목하죠.
그런데, 파타고니아가 오픈소스요?
눈길이 갔던 부분은 마지막 3번 기준이었어요. 아웃도어 회사에서 투자하는 회사가 오픈소스를 지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더라고요.
필 그레이브스 팀장은 이를 다른 기업들에게 “이리 와서 함께 하자”는 손짓이라고 설명합니다. 틴 쉐드 벤처스를 파타고니아의 미션을 확장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환으로 본다면 여기서 투자하는 기업 역시 오픈소스에 공감해야겠죠.
예를 들어 투자 기업 중 누마트 테크놀로지(NuMat Technologies)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합성 신소재를 만드는 기술 플랫폼을 개발합니다. 파타고니아가 관심을 기울일만한 분야고요. 게다가 누마트 테크놀로지는 오픈소스를 지지하면서 원천 기술 일부를 깃허브에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틴 쉐드 벤처스에게는 딱 맞는 투자처였던 셈이죠.
유해물질 측정 등 원천 기술을 공개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경쟁사에게도 우리와 함께 하자는 사인을 보내는 것이에요. 환경을 보호하면서 회사 규모를 키우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나아가 파타고니아와 틴 쉐드 벤처스, 피투자사들은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늘어나길 바라요. 저희와 같은 여정을 가는 회사가 많아져서 생태계가 커지면 좋겠죠.
필 그레이브스의 말에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서 사용자에게 더 기능적이고 예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인 아웃도어 업계잖아요. 고어텍스(Goretex)처럼 소재의 기능성 자체가 효과적인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걸 다 공개해버리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딛는다니 배경이 궁금해졌죠. 그래서 그 시작을 따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오픈소스 스토리요.
그러던 중 천연 고무 제작사인 율렉스(Yulex)가 과테말라에서 채취한 식물성 고무 재료를 제안해서 파타고니아는 돌파구를 찾았는데요. 이를 활용해 석유 재료의 고무보다 햇빛과 소금을 잘 견디고 오존과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웻수트를 만드는 한편 더 나은 재료가 있는지 여부도 검토하면서 10년을 보냈습니다.
제품은 2016년에야 빛을 봤죠. 그말인즉슨 새로운 재료와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물류 거점들을 뚫었고 재료를 다뤄서 웻수트를 제작할 수 있는 공장들을 찾았다는 의미기도 하잖아요. 파타고니아로서는 10년 동안 어렵게 셋팅한 경쟁력인 셈이죠.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 유무형의 노력이 가득 녹아 있고요.
환경 보호를 위해 이렇게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는 것만으로 놀라웠는데요. 더 팔짝 뛰게 만들었던 것은 파타고니아가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더불어 ‘지속 가능한 의류연합’의 일원으로서, 이렇게 하면 정말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는지 수치화할 수 있는 ‘힉스 지수’를 만들어서 역시 오픈소스로 공개했어요.
본사인 파타고니아도, 소속 투자회사인 틴 쉐드 벤처스도 공익적인 가치를 고려해 제품을 생산하면서 그 과정과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미션과 비즈니스의 균형을 맞춰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앞의 경쟁력 확보보다 업계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움직임이어서요.
슬로워크의 오픈소스
슬로워크도 오픈소스를 지지하고 다양한 기술을 공개합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특징을 활용해 세상을 더 민주적인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조직적인 공감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진행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보면요.
우선 세 개 시즌에 걸쳐 나온 ‘슬로데이’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 기준을 따르면 누구나 상업/비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결과물을 내놨죠. 슬로데이 시즌 1에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각각 아이콘 이미지를 만들어 정리했고요. 시즌 2에서는 감정의 인포그래픽화, 시즌 3에서는 유엔(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기준을 물리적인 카드에 적어 출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슬로데이 프로젝트 디자이너였던 길우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대해 “오픈소스로 공개한 인포그래픽 아이콘을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작업이 중요했습니다”라며 “다소 복잡한 아이콘 표현은 배포용 아이콘으로 만들 때 원형을 분리해서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수정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외에도 협동조합 빠띠는 빠띠.xyz, 가브크래프트의 일부 기술과 운영 가이드라인을 공개했고요. 곧 민주주의서울까지 공개할 계획입니다. 슬로워크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함께 작업한 ‘뉴스트러스트‘도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죠. 최대한 다양하고 정확한 의견을 담은 기사를 추천, 배열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저널리즘 가치에 기반을 둔 뉴스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해 뉴스 배열에서 의견의 다양성을 담아내기 위해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죠.
CEO 시스는 슬로워크의 오픈소스 철학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보안의 요소 중 시스템의 투명성, 즉 이 시스템이 믿을만 한지 보장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가 오픈소스라고 생각합니다. 사용된 기술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구성원 누구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감시하고 개선할 수 있게 만드니까요. 기술이 소수의 엘리트와 투자자가 더 많은 재산을 획득하는 일에 우선 활용되지 않도록 말이죠. 즉 오픈소스는 공공재와 자원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민주주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슬로워크의 미션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오픈소스를 지지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점, 더 많은 조직이 사회혁신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점, 회사의 미션에 충실해 비즈니스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 확장해나간다는 점에서 슬로워크도 파타고니아만큼이나 멋진 발걸음을 내딛고 있어요. 차근차근, 최대한 원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원문: 슬로워크 블로그 / 정리: 슬로워크 오렌지랩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