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승인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물어보면 대부분 경제성이라고 한다. 경제성은 투자되는 비용 대비 미래에 대한 예상되는 수익으로 계산한다. 수식은 엑셀 함수에도 있다. 그러나 수식에 들어가는 숫자 하나하나는 모두 예상치로 구성된다. 미래를 어떻게 정확하게 예측하나. 운이 아주 좋으면 그래도 엇비슷하게 되는 거고, 대부분 틀린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틀리는데도 경제성 평가를 왜 하는가? 조직에서 큰 의사결정을 하는데 그 과정의 정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로직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수익과 비용을 예상해서 이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과정을 기록해서, 나중에 비록 틀렸더라도 어디서 틀렸는지, 어떻게 수정하면 되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교훈을 주고 경험이 쌓이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정작 보고 과정에서 보면 경제성 숫자는 확인 차원에 불과하고 의사 결정권자의 마음을 땡기는 ‘한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누군가는 동물적 감각이라고 표현했고 또 누군가는 시너지라고 하더라.
요즘 같은 시대에 환상적인 숫자의 경제성이 나오는 프로젝트가 사실 거의 없다. 수요가 많은 곳은 생산 비용이 비싸고, 생산 비용이 싼 곳은 대부분 오지라 투자비가 예상보다 상승할 리스크가 높고 수요지까지 물류 관련 비용이 더 들어가 결국은 그저 그런 숫자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럼 어떻게 플러스 알파를 만드는가. 여기서 그 분야, 그 지역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문가의 창의력, 상상력이 필요하다. 내가 조선 산업을 애정하는 부산사람이니 거가대교 건설 프로젝트로 예를 들자면… 아, 당연히 우수한 분들이 사업 계획서를 썼을 거다. 나는 그쪽과는 관련 전혀 없고 그냥 상상으로 예만 든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관광객 증가 효과, 물류비용 감소 효과… 그 외에도 우리나라 섬이 여러 개 있지만 그럼에도 이 동네에 국내 최초로 해저 터널까지 뚫어가며 그 비싼 다리를 지금 놓아야만 하는 이유를 가능한 많이 발굴해서 수치화하는 것이다.
선주 감독관이 거제에 3년 살라고 하면 단신 부임 해야 해서 선호도가 떨어지는데 부산에 살아도 되면 배우자와 자녀도 동반할 수 있으니 선호도가 높아져서 수주 경쟁력이 올라간다. 그럼 협력사, 식당 등 파급효과 얼마… 세수증대 얼마… 거제에 살기 싫은 엔지니어는 이제 대안으로 부산에 살아도 되므로 조선소 엔지니어 이직이 줄어들고 또 수주경쟁력이 올라간다. 그럼 부산 부동산 가격이 좀 오르겠네? 세수증대.
부산항 가는 컨테이너 차량이나 조선소 가는 대형부품 차량들이 남해고속도로 2-3시간씩 타다가 거가대교 1시간만 타면 물류비용뿐 아니라 고속도로 유지보수 비용 감소. 이처럼 깨알 같은 플러스알파를 많이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서울에서 온 교수님보다 지역을 잘 알고 지역에 애정이 있는 지역 활동가가 훨씬 잘 찾고 정확하다.
그냥 전국 평균 노임을 쓰는 게 아니라 최근 지역 단가와 생산성을 대입해서 우리 지역은 유휴 노동자가 풍부해서 단가는 싸고 생산성은 뛰어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든지, 이 동네는 외국 원천기술사와 제휴한 업체들이 있어서 중요부품 수급이 싸고 쉽다든지, 최근 이 동네 큰 회사에서 협업하고 있는 외국회사 아시아태평양 본부 유치전에 가점 몇십 점을 더 받아 강력 후보가 된다든지.
회사 인수전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경쟁사 밸류에이션에는 생각 못 할 나만의 밸류. 외부에서 “저거 왜 저 가격에 사지? 미쳤나?”할 때 그 내부에서는 외부자가 모르는 그들만의 깨알 같은 밸류에이션이 더해져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회사가 인수 후 수년이 지나도 그 플러스알파를 안/못 보여주고, 결국은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다. 또 우리가 아는 몇몇 훌륭한 케이스처럼 몇 년 만에 원금의 몇 배를 회수하고도 캐시카우로 포동포동하게 잘 키울 수도 있다.
결국 경제성 평가는 의사결정 과정에 필요한 도구일 뿐 정답은 없다. 계산식은 정해져 있지만 숫자 하나하나 입력한 결과는 당당자의 상상력, 창의력, 논리정연하게 숫자로 정리해놓는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제삼자 검증까지 거치면 오래 걸린다. 그래도 필요한 프로세스다.
작게 보면 의사결정권자가 정당한 프로세스를 거쳤으므로 후에 투자가 예상한 결과를 못 낳더라도 최악의 경우 짤리면 그만이지 배임 같은 책임소재에서는 자유롭다. 담당자도 적절한 자료를 남겼기 때문에 감사에 대응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시스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발전적으로 제안하자면 지역전문가가 많이 양성되었으면 한다. 유명한 교수님들 지방까지 모셔가기보다는 지역을 잘 알고 애정하는 지역행정가가 많이 배출되어서 그 지역 에너지를 극대화시킬수 있는 방안을 많이 찾아내길 바란다. 그리고 지역 데이터도 많이 쌓아나가길 바란다.
나도 미국에서 전문가님 굳이 서울까지 오셔서 자꾸 아시아 평균, 산업 평균과 비교하면 속이 탄다. 이 동네는 다르다고 아무리 말로 떠들어도 전문가 부심 깨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산업에서 통용되는 지표로 이 동네 실적 몇 년 치 딱딱 들이대 주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도 이 과정이 투머치 이론적이고, 투머치 행정적인 것에 가끔은 진절머리가 났다. 경제성 모델을 논리적으로 잘 만들고, 높은 투자 경제성이 예측되었다고 그 투자의사 결정의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예측 과정이 완벽하다고, 예측 결과가 딱 맞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그 둘은 완전 별개로 보인다. 미래 예측은 신의 영역이고 돌이켜보면 운이 70%, 아니 그 이상 작용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결국 경제성 평가는 도구일 뿐 지금 이 의사결정을 왜 하는지, 그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정당성을 명확히 남기는 게 큰 조직에서는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