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중국에 대한 책 세 권만 추천 좀.
중국 공부 시작하려는데, 뭐부터 읽으면 될까요?
딱히 중국에 가보지도 않았고 머릿속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시끄러운 중국인들과 뿌연 미세먼지 속의 자전거 천국뿐인데, 그렇게 경제가 급성장하고 미국과 견줄만한 국제 정세 실력자가 되었다고 하고 그나마 우리가 자신 있던 IT 분야조차 한국을 넘어섰다고 하는 놀라운 말들을 자꾸 들으니까 아예 무시하긴 뭐하고. 공부를 시작하긴 해야겠고. 책으로 알아가 볼까?
근래 정치 경제 분야 최강 국가로 부상한 중국인만큼 10년 전에 비해서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위와 같은 질문을 들으면 마치 ‘한국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어떤 책을 읽으면 한 번에 다 알 수 있을까요?’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중국’이라는 존재가 13억의 사람이 어우러져 격동하는 삶의 터이자 세계가 아닌 하나의 ‘키워드’ ‘공부해야 할 분야’로 인식되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어에 ‘The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표현이 있다. ‘모른 척하거나 피하고 싶은데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을 뜻한다. 중국이야말로 우리에게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같이 살게 된, 그래서 알아가야만 하는 불편한 코끼리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우리가 ‘미국’ 혹은 ‘일본’, ‘프랑스’를 알아가기 위해 하나의 분야만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는 그 나라에 대한 정치, 경제 뉴스를 짬짬이 찾아보고, 그 나라의 역사, 문화가 담긴 문학을 읽고, 그 나라의 언어를 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알아가듯이 중국에 대한 접근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키워드’가 아닌 ‘세계’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아가려고 시도하는 게 나은 법! 그 시작점으로 책은 아주 좋은 도구이다. 그래서 중국을 알 수 있는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이참에 다른 분들도 볼 수 있게 쭈욱 정리해보았다.
나도 이 거대한 코끼리에 대해 아주 일부분밖에 알지 못한다. 더듬더듬… 하지만 내가 만져봤던 중국은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중국은 이런 곳이다 하는 우리의 조각이 모이면 어렴풋이 이 거대한 코끼리에 대한 단상이 정리되지 않을까. 읽은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재미있었던 것 위주로 분야별로 다양하게 꼽아보려고 노력해봤다.
정치/경제/경영
『마윈: 세상에 어려운 비즈니스는 없다』는 중국 IT 역사의 신화를 써 내려 가고 있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얼마나 아무것도 없는 시절부터 어렵게, 어렵게 지금의 거대 제국을 일궈 냈는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성공 일색의 뻔한 스토리가 아니어서 좋아하는 책. 2014년 뉴욕 증시 상장 이후에야 외부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거대 제국 알리바바의 초기 모습들과 전략의 역사를 잘 정리해주었다. 지금이야 중국을 쥐락펴락하는 손꼽는 제국의 머리이지만, 대학의 무명 영어 강사이자 수레에서 중고물품을 팔던, 반짝이던 청년 마윈의 모습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중국의 실수’ 시리즈를 만들어낸 샤오미 신화의 핵심을 이야기한다. 출간된 지 벌써 4년이 되어 굉장히 따끈따끈한 책은 아니지만, 제품 내에서 사용자를 어떻게 사로잡는지에 대한 콘텐츠 전략과 샤오미 내부의 문화에 대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2017년 빌 게이츠가 ‘올해의 책’으로 꼽아서 유명했던 책. 서양의 학자들이 동양권의 발전과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읽어볼 수 있는 전과와 같은 책이다. 다만 직접 아시아를 겪어보지 못한 유명한 서양 노학자가 역사의 법칙에 우리를 끼워 맞추려는 시도가 느껴져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은 책이었지만,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한다.
역사
평설 열국지(13권)
나를 빚은 단 두 권의 책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열국지’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웬만한 중국 고사성어, 사자성어의 유래가 결집되어 이 ‘춘추전국시대’를 모르면 중국을 안다고 할 수 없으며 군웅들이 할거하는 난세의 수천 명의 희로애락과 전략들이 담겨 있는 리더십과 치세의 정수라고 자부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예와 세와 명분의 겨룸, 정치 권력의 다툼, 인재 등용과 용인의 진수. 여러 버전이 있지만 유재주 저의 평설 열국지를 읽었기에 이 시리즈 추천.
장정일 삼국지(10권)
한국 사람들이 아는 중국의 반은 아마 ‘삼국지’ ‘삼국연의’에서 시작할 것이다. 영웅들의 도원결의와 동고동락, 배신과 신의, 등용과 용인의 최고봉. 중국에는 삼국지를 10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도 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중국인이 사랑하는 역사의 정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리로 삼국지만 한 건 없다. 외국인이 와서 홍길동을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을 다시 보듯이, 삼국지는 중국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지름길이다.
초한지(10권)
항우와 유방의 결전 이야기. 열국지와 삼국지를 읽은 당신이라면, 초한지도 아주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항우와 유방이라는 두 영웅의 이야기에 치중될 것 같으면서도, 제국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이인자, 삼인자들의 암투와 처세술이 더욱 돋보이기도 한다.
위의 책들이 시리즈가 너무 많아서 부담이 된다면, 김태권 작가의 만화 한나라 이야기 시리즈를 추천한다. 알기 쉽게 재미있는 만화로 중국 역사를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말하고자 하는 ‘역사의 흐름’, ‘역사 속 질문’이 있어 울림이 있었다. 철저한 고증에 거친 그 시대의 복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덤.
이 또한 ‘통사’인데, 우리가 아는 중국 고사성어의 유래를 알고 싶다면 이처럼 백과사전 같은 책은 없다. 생각보다는 굉장히 얇은 책이기도 하다. 가볍게 읽어보기에 추천.
에세이/현대사회/문화
대군의 지휘관은 사로잡을 수 있어도 범부의 야망은 빼앗을 수 없다.
이런 공자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이 책의 수많은 주인공은 공산당의 최상위층에 있는 권력자, 몇조 위안을 가진 중국 최고의 부자들이 아니다. 길거리의 청소부, 맹인 사회운동가, 도망자, 무명의 대학생, 학원에 다니는 취준생, 그리고 벤처 창업가다. 최고 지도자층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이런 야망이 있다는 그 역설적인 사실이 중국의 저력에 진실로 소름 끼치게 한다. 중국 사람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의 공허감과 뜨거움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역시 ‘사람’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애정이 있는 책이라 독후감도 첨부해본다.
내게 고대 중국을 알게 해준 게 열국지라면 현대 중국을 알게 해준 건 팔 할이 ‘위화’였다. 문화대혁명 시기부터 현대 중국까지 중국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팬심 좀 많이 보태서, 단연 위화. 대수롭지 않게 쿨하게 휘갈겨 내려간 듯한 그의 글에는 분명히 ‘웃음’이 담겼는데 그 뒤에 ‘서늘한 현실’이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 대중(인민)을 바라보는 ‘측은함’이 담겼다.
중국을 하드코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아할 만한 책. 베이징의 호방함과 상하이의 세밀함을 비교하는 것에서, 빌딩과 공터 사이의 ‘소리’를 느끼라는 대목에서(와 진짜), 상하이의 음식과 거리를 묘사하는 데서 진짜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아 소름이 쫙쫙 끼쳤던 책. 나는 내가 사는 공간에 이런 구체성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가.
중국에서 대박을 친 중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혀끝의 중국〉 감독이자 미식가, 그리고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음식 칼럼니스트인 천샤오칭 감독이 지난 10년간 자신이 경험한 음식 이야기와 삶에 대한 따뜻한 에피소드를 담아낸 책. 역사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중국 음식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 책을 추천.
중국 상하이 정경록 영사님이 쓰신 책. 더 이상 앞으로 중국이 우리 삶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아니다 담론은 의미 없다고 본다. 눈덩이가 산꼭대기부터 쾅쾅거리며 굴러오는 상황에서 저게 이쪽을 지나갈 것이다 저쪽을 지나갈 것이다 갑론을박하는 게 우선순위는 아니다. 우리 마을을 지나가든 안 가든 우선 가장 급한 건 현실적인 대비를 하는 것. 그래서 직접 현장에서 뛰면서 느낀 안타까움으로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정부, 대기업, 그리고 중국 14억 인구에 이쑤시개 하나만 팔아도 이익이라는 헛소리를 하는 한국 사람들을 꼬집는 게 내심 시원했다.
소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본인까지 3대에 걸친 처절한 생과 한의 드라마. 중국 근대사에 대해 처음 눈을 뜨게 해줬던, 중국 영화를 세 시간 정도 보고 나온 것 같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던 책이다. 책에서 말로만 듣던 ‘대장정’과 ‘문화대혁명’이 그냥 한 줄의 역사 속 대목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이자 우리 가족 고난의 이유가 될 때, 나를 처절하게 힘들게 했던 삶의 터 그 자체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되게 된다. 지금 중국을 이끌고 있는 중심 세대의 성장 과정과 그것을 품었던 중국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라. 꼭, 꼭.
위화 소설의 정수. 너무나 가난하고 처절했기에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욕정과 야심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 중국의 현세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소설. 위화가 병적으로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가슴 시린 것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것인데, 예를 들면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중국을 중국 미인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처녀막을 사고파는 세태로 그려낸다.
이 또한 위화 소설로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봤을 중국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장예모 감독이 만든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중국의 시린 근현대사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정말 백과사전처럼 차례로 볼 수 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기에 한번은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 때문에 만두 먹을 때마다 울컥 눈물이 난다.
다 필요 없고 이것도 너무 많으니 딱 세 권만 추천해달라면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핵심 쟁점들을 36가지 질문으로 나타낸 『하버드 대학 중국 특강』, 중국인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야망과 공허감을 이해할 수 있는 『야망의 시대』, 가슴 시린 현대 중국인들의 세태를 10가지 키워드로 보여주는 중국 대표 작가 위화의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추천한다.
자, 이제 중국이라는 커다란 코끼리에게 손을 뻗을 시간. 싫든 좋든 이제 같이 부둥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 화이팅!
원문: 최혜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