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IGN 코리아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이 아닌 미국 넷플릭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예고편의 조회 수는 무려 293만 회. 최근 두 달간 이보다 더 높은 조회 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시즌 발표,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로마〉 예고편들뿐이었다. 〈싸인〉 〈쓰리 데이즈〉 〈시그널〉 등 독보적인 작가 김은희가 극본을 쓰는, 한국 시대물과 서양 좀비물이 혼합된 독특한 장르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킹덤〉이 드디어 방영되었다.
왕이 죽었다는 괴상한 소문으로 술렁이는 경복궁, 이를 확인하고자 강녕전으로 들어갔던 세자 이창은 그곳에서 이상한 것을 보게 된 후 은퇴했던 어의가 다녀갔다는 단서를 쫓아 부산 동래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퍼진 괴이한 역병으로부터 호위무사 무영, 의녀 서비, 의문의 남자 영신과 어리숙한 동래부사 범팔과 함께 살기 위한, 그리고 살리기 위한 역경의 여정에 돌입한다.
첫 회. 섬세하게 만들어진 복식과 화려한 궁궐의 아름다움과 이와는 정반대의 음침한 분위기, 짧아서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수려하고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화면 연출은 기대했던 만큼 만족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힘을 쓰지 못하는 왕족, 권력을 휘두르는 사대부, 왕위를 이을 사내아이의 출산 등 조선 시대 권력의 역학관계를 보여줌에 있어 사건의 발생과 역병의 진화 과정이라는 기본 설정과 함께 필요한 정도만 보여주려 한 것인지 장면과 장면이 물 흐르듯 이어지지 못하고 스토리와 편집마저 끊긴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또한 사극 특유의 대사 처리나 현대물의 대사 처리, 그 어느 것에 중점을 둔 것일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대사 처리가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눈에 띄어 크게 아쉬웠다.
류승룡의 연기는 전작에서도 익히 보았던 것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대사 처리나 캐릭터의 중심이 확실히 잡힌 느낌이다. 류승룡과 여러 장면을 함께 한 김혜준은 ‘SNL 코리아’에서부터 눈도장 찍으며 기대했는데 목석같은 연기와 함께 어린 중전의 캐릭터조차 정립하지 못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아쉬움 모두 땅거미가 내릴 시간이 되자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진다. 일단, 〈킹덤〉의 좀비는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검푸른 시반이 가득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서양의 좀비물에 등장하는 좀비를 떠올려보면 대부분 죽은 지 오래되어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난 모습을 했을뿐더러 이제 막 일어난 좀비마저 싱싱함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르다. 초반 몇 장면에 불과했지만 〈부산행〉과 〈창궐〉에서의 것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신선한 설정이다.
보통 좀비물에서 보여주는 물량은 앞에 있는 인물만 찍고 뒤는 CG로 채워지곤 하는데, 〈킹덤〉의 액션 시퀀스 대부분은 카메라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블루 스크린을 설치할 수 없는 초가집이 즐비한 세트장에서 촬영했기에 모든 걸 실제 스턴트 배우가 연기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액션 시퀀스가 단 몇 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기가 막힌 액션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사라져버리고 어느 순간부터 감각을 잃어버리게 할 정도로 사람의 정신을 빼놓기까지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공포물로서의 좀비물은 나오지 않을 듯싶다. 많은 수의 좀비가 산 사람을 향해 빠르게 뛰어드는 액션 시퀀스는 스턴트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로 인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량이 큰 장점이자 매력인데 활용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킹덤〉의 스토리에서 탁월하다고 느껴졌던 첫 번째는 조선 시대 사회제도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난 국난, 임진왜란을 통해 비유한다는 점이다. 시간적 무대는 전란이 끝난 지 3년 후이긴 하지만 공간적 무대는 임진왜란의 궤적을 그대로 복기한다.
임진왜란의 발단은 일본의 부흥과 야망이었지만 일본의 부흥과 전쟁의 조짐조차 알지 못한 채 당파싸움만 일관하던 왕과 정부,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이 전쟁을 더욱 처참하게 만들었음을 우리 모두 익히 알 것이다.
역병은 왕과 정부가 있는 궁 안에서 시작되어 임진왜란 이전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비유하고, 일본군이 처음 상륙했던 부산 동래가 역병이 퍼지기 시작하는 초반 무대가 되었으며,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던 일본군이 한양에서 파견된 조선 중앙군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상주가 후반 무대가 된다.
두 번째는 좀비물이 생존,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 주가 되는 것과는 달리 〈킹덤〉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 시작점이 된다.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역모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려 했던 세자 이창, 병과 배고픔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던 백성,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착호군 출신 영신 모두 생존이 먼저였던 인물들이다.
드라마 내에서 좀비에 대한 언급에 인육을 탐한다는 것도 있지만 피와 살이라 표현하는 대사가 있다. 춘향전에서 “금 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백성들의 기름일세”라는 쓴 암행어사 이몽룡의 서찰은 물론 서경과 목민심서 등에 자주 나오는 피와 기름(살)이란 표현은 왕과 사대부, 즉 위정자들에게 백성을 섬길 것을 강조했던 유교적 의무를 말한다. 그 의무를 게을리하는 위정자들의 행태는 좀비의 행태와 같다고 비유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조선은 좀비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기 전부터 이미 살아남기 힘든 아수라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자 이창과 착호군 출신 영신이 변화한다. 몹쓸 짓이기도 하고 역병의 시작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영신의 행동은 배고픔으로부터 병자들을 살리고자 하는 행동이었고, 세자 이창은 명에 공물로 바치던 귀한 육포를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사대부 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한 행동, 조선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지배층의 의무를 강조했던 이상향에 가까운 그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 이상향의 정점에 의녀 서비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비의 행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들뿐이다.
서비의 역할이 역동성을 지니지 못하고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쉬움을 얘기하는 평이 나올 듯싶지만 세자 이창과 영신이 향하는 정점에 이미 우뚝 선 것만으로 그 반대편에서 사람을 죽이는 조학주와 대조의 축으로서 이야기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반전. 1시즌 마지막에 가서 좀비에 대해 파악했던 게 잘못되었음이 드러난다. 이 반전이 놀라운 것은 좀비물이나 호러물의 익숙한 것으로 유도하는 지능적인 거짓말로 시청자를 속였을 뿐 아니라, 낮과 밤의 문제가 아닌 낮과 밤의 차이가 문제라는 설득력을 가졌다.
또한 생사초가 자라는 언골의 이상한 점, 물속에 잠긴 시체에 대한 궁금증, 조학주 외 좀비에 대해 이미 아는 듯한 인물 등 모든 수수께끼를 한 번에 풀어낸 열쇠이자 2시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로써 그 역할이 탁월했다.
하지만 여기서 옥에 티라고 하기엔 큰 실수 하나가 눈에 띈다. 만약 좀비에게 특정 골디락스 존이 존재한다면,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활발한 좀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청 들라는 말 대신 어설픈 사랑 고백을 했던 범팔은 어떻게 될지, 믿을 수 있던 자에 대한 의심은 어떤 뒤틀림으로 시청자를 놀라게 할지 이미 제작 확정된 2시즌을 기대해본다.
THE VERDICT
시작은 조금 불안정했지만 스턴트 배우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액션 시퀀스, 제목이 〈킹덤〉인 이유가 조선은 이미 아수라였다는 비유와 이 비유가 인물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 미스터리와 반전을 위한 단서가 제공되고 1시즌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2시즌에 대한 기대까지 한꺼번에 선사한 반전, 모든 게 탁월했다. 다만 옥에 티 하나라고 보기엔 큰 실수 하나가 마지막 점 하나를 못 찍게 했다.
원문: IGN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