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IGN 코리아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 영화의 2차 전성기 (1999년~현재), 그리고 미래의 트렌드는?
한국 영화 대흥행작 계보를 훑어보면 서울 관객 기준으로 1974년 <별들의 고향>이 46만 명, 1977년 <겨울여자>가 58만 명, 1985년 <깊고 푸른 밤>이 49만 명, 1990년 <장군의 아들>이 68만 명, 1993년 <서편제>가 103만 명, 1994년 <투캅스> 86만 명 등으로 꾸준한 흥행작이 나왔고 기록도 점점 경신되었다.
하지만 외국영화와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1979년 <취권>이 89만 명, 1985년 <킬링 필드>가 92만 명, 1991년 <사랑과 영혼>이 168만 명, 1993년~1997년은 매년 90만 명 이상 동원하는 외화가 등장했고, 1998년 <타이타닉>은 서울 관객 197만 명 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즉 외국영화는 늘 한국 영화보다 몇 발자국 앞서갔고, 한국 영화가 아무리 노력해도 외국영화의 흥행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70~80년대를 넘어서 90년대까지의 분위기였다. 직배영화, 컬러TV, 비디오, 유선방송 등 내적, 외적인 어려움 속에서 한국 영화는 90년대 내내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노력 속에서 어렵게 버텨나가는 것에 만족하는 듯했다. 이렇게 90년대도 저물어가면서 90년대의 마지막이자 20세기의 마지막 1년인 1999년을 맞이했다.
1999년 2월 13일 한석규 주연의 <쉬리>가 개봉되었다. <쉬리>의 흥행 성공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한석규는 <닥터 봉>으로 데뷔한 이래 총 6편의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면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았고, 더구나 <쉬리>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액션 대작으로 흥행의 성공 여부보다 과연 얼마나 관객을 동원하느냐의 여부가 문제였다. 1997년 개봉된 <접속>의 67만 명 기록을 과연 경신하면서 한석규의 최고 흥행작이 되느냐가 관심사였다.
<쉬리>는 예상대로 개봉 초기부터 엄청난 관객을 불러모으며 일찌감치 장기 상영을 예약했고, 연일 찬사의 글이 인터넷에 폭주했다. 한국 영화 중에서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강렬한 액션을 선보였다는 자체가 화제였고, 한국에서도 액션 대작을 만들었다는 신기함과 한석규의 인기까지 더해져서 연일 관객이 몰렸다. 개봉 5일 만에 전국 5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22일 만에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타이타닉>보다 무려 16일이나 빠른 기록을 세웠다.
결국 개봉 8주가 지난 1999년 4월 9일 <타이타닉>의 기록을 경신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쉬리>는 결국 서울 관객 200만 명을 처음으로 넘었고, 전국적으로 약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해방 이래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었고, 어떠한 외국영화도 넘지 못한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99년은 연일 <쉬리> 열풍이 불었다. 1969년 이후 30년 만에 드디어 한국 영화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었다.
1,000만 관객 시대 개막
<쉬리> 이후 한국 영화 제작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진 영화인들은 의욕적으로 완성도 있는 영화들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2000년에 발표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쉬리>에 이어서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두 번째 영화가 되었고, 2001년 개봉된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전국 관객 800만 명을 넘어서며 <쉬리>보다 거의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더 동원했다. 더구나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이었기 때문에 성인 관객만으로 <쉬리>를 넘어섰다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당분간 <친구>를 넘어설 영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 기록이 깨지는 것은 3년이 채 안 걸렸다.
2003년 12월에 개봉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역대 최초로 전국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하여 영화 관계자들의 입이 벌어지게 했는데, 불과 한 달 반 뒤에 개봉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의해서 곧바로 최고 흥행기록이 또 경신되었다. 두 영화는 할리우드 대작 블록버스터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고, 21세기가 되면서 한국 영화는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외국영화를 압도했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 이후 5년 만에 다시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감독의 자리를 되찾았다.
2005년 12월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다시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을 넘어섰고, 다시 2006년 여름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기록을 갱신했다. 2006년까지 한국 영화는 전국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작품이 4편이나 되었지만, 외국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2009년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넘기며, 21세기의 첫 10년간 한국 영화는 무려 5편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던 외국영화는 2009년 12월 개봉된 <아바타>가 3D 첨단 영상을 선보이며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하여 모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체면을 세웠다.
21세기 한국 영화의 장르적 특징은 일단 에로영화가 거의 사라졌는데, 가장 관객이 들지 않는 장르가 에로영화였다. 대신 액션 대작을 거침없이 만들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작품이 크게 히트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소재의 영화들이 흥행 장르로 떠올랐고, <친구>의 히트에 이어서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공공의 적> 등 조폭과 관련된 소재도 흥행의 단골로 떠올랐다.
90년대가 한석규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 흥행 배우로 떠오른 인물은 바로 송강호였다. <쉬리>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송강호는 2000년 <반칙왕>이라는 영화에서 원톱 주연으로 예상을 뒤엎고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2009년까지 전국 500만 명 이상 동원한 영화만 총 5편을 남기며 최고의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 <박하사탕>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설경구는 <공공의 적> 시리즈에 연달아 출연하며 모두 흥행에 성공시켰고, 1,000만 관객 영화 <실미도>를 비롯하여 <광복절 특사>, <그놈 목소리>, 또 한 편의 1,000만 영화 <해운대>까지 성공시키며 송강호 못지않은 흥행력을 보여주었다.
감독으로는 강우석, 박찬욱, 봉준호, 강제규, 이준익 등이 흥행 감독으로 위세를 높였고, 신예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를 발표하여 스릴러 영화 최고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만 잘 만들면 장르 불문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추격자>에 등장했던 김윤석과 하정우는 이후 한국 영화의 간판스타로 나란히 떠올랐다.
한국 영화의 약진은 흥행에서만이 아니었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출연한 전도연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에 이어 20년 만에 세계 3대 영화제 주연상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역대 해외 영화제에 출품한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다. 그에 앞서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0년 이후에도 한국 영화는 매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등장했는데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암살>, <7번방의 선물>, <변호인>, <국제시장>, <택시운전사>, <부산행>이 그런 작품들이었다. 송강호는 2010년 이후에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두 편 더 남기며 흥행 배우로의 위업을 보였고, 이순신의 명량 해전을 소재로 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전국 1,700만 관객을 넘어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한국 영화들이 이렇게 흥행 시장을 주도하는 동안 한때 역대 최고 흥행 영화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자존심을 지킨 <아바타>는 순위가 몇 계단 밀려났다. 웹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는 1편 <죄와 벌>, 2편 <인과 연>을 동시에 제작하여 각각 2018년, 2019년에 나누어 개봉했고, 1,441만 명, 1,227만 명을 동원하여 두 편 합쳐 2,600만 명이 넘는 기록적인 흥행을 올렸다.
한국 영화의 호황기 속에서 주목할 만한 예상 밖의 흥행작도 탄생하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장르의 약진이다. 2008년 개봉된 <워낭소리>가 놀랍게도 전국 200만 관객들 돌파하여 10만 관객 동원도 쉽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올렸다. 이 기록은 6년 뒤 개봉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의해서 깨졌는데 무려 480만 관객을 동원하여 어지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은 관객 동원을 다큐멘터리 장르가 이루어낸 결과였다.
2011년부터 통합전산망 서비스를 통하여 개봉 영화에 대한 전산통계 서비스가 진행되었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를 2006년에 공식 오픈하여 한국 영화의 정보와 통계를 인터넷 서비스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한국 고전 영화에 대한 VOD 서비스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한국 영화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010년 이후에도 해외 영화제에 더욱 활발히 문을 두드린 한국 영화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2년에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드디어 오랜 숙원인 3대 영화제 대상을 최초로 수상하는 성과를 얻었다.
원로 배우들의 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도 있었는데 주로 TV에서 활동해 온 김혜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로 오랜만에 영화에 등장하여 2010년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60년대 트로이카 스타였던 윤정희는 2011년 <시>에서 오랜만에 복귀하여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한국 원로 여배우들이 해외에서 2년 연속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1999년 <쉬리>의 히트 이후 한국 영화 산업은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외화를 압도하는 시대를 열었고, 이젠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매년 등장하고 있다. 60년대 누렸던 영화 산업의 호황을 21세기 들어서 다시 재현하고 있는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 산업의 앞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일까?
사실 한국영화 산업은 호황 속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쉬리> 이후에 많은 영화인들이 창작의 의욕을 불태우며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고, 감독, 배우들의 선수층도 과거에 비해서 매우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 관객도 매년 1억 명을 훨씬 웃돌고 있고, 80년대의 단관 개봉과는 달리 기대작들은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기도 한다. 연간 50번 이상 극장을 찾는 골수 관객들도 매우 많다. 하지만 이런 호황이 60년대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가 문제다. 2009년 <해운대> 개봉 당시만 해도 외국 영화인들은 100억대의 제작비로 그런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는 한국 영화의 알뜰함에 신기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여하는 작품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영화 관객 수가 늘어났다고 해도 시장규모 대비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영화들이 너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추석 시즌에 <안시성>, <명당>, <협상> 세 편이 동시 개봉되었는데 <안시성>만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고, 나머지 두 편은 200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음에도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달했다. 결코 실패한 흥행이 아니었음에도 워낙 치솟은 제작비 때문에 적자를 본 셈이다. 수백만 명이 관람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대작이 무려 같은 날 세 편이나 개봉될 정도로 시장 규모를 감안 안 한 대작 영화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300만 명 이상 동원하는 영화는 10편 내외, 100만 명 이상 동원하는 영화는 30편 내외에 불과하다. 2018년 개봉작 중 <상류사회>, <물괴>, <창궐>, <마약왕>, <스윙키즈>, <인랑> 등 제작비에 훨씬 못 미치는 흥행 실패를 한 영화들이 즐비하다. 치솟은 제작비에 의한 흥행 부담은 현재 한국 영화가 떠안고 있는 큰 숙제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큰 문제다. 60년대와 달리 영화에 따른 관객의 편차는 너무 크다. 1,000만 명이 넘는 영화가 매년 두 편 정도 나오지만 1만 명도 못 넘는 영화들도 무척 많다. 2018년에 5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불과 42편. 매주 3-4편의 한국 영화들이 개봉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는 30%가 안 될 것이다. 즉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다. 대기업 자본이 투입된 소수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고, 저예산 영화는 제대로 스크린을 확보하기조차 어려워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장르의 지나친 재활용으로 인한 식상함도 문제다. <쉬리> 이후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절감되는 스릴러 장르도 대표적인 식상한 소재가 되고 있다. 유명 배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완성도가 오히려 낮아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할리우드 스타일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남발도 눈높이가 높아진 한국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승된 제작비만큼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관객들의 평가다.
70-80년대 암흑기는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아서 어려웠다면 현재는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는데도 불구하고 다수의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 오히려 암흑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타인>이나 <암수살인>, <미쓰백>, <곤지암> 같은 영화의 선전은 향후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한 작품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용의자 X>, <사라진 밤>, <독전>, <완벽한 타인>. 이 영화들은 비교적 근작이었던 외국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지만 별로 히트하지 못한 외국영화들 중 우리나라에서 통할만 한 내용을 선별하여 판권료를 지불하고 리메이크를 한 경우다. 새로운 창작에 비해서 위험성이 낮고 한국 정서에 맞게 좀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암수살인>,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작품들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이 아닌 시나리오 위주의 드라마 장르 영화지만, 오락성보다는 탄탄한 완성도로 인하여 손익분기점을 무난히 넘긴 사례들이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좋은 시나리오가 결합하여 관객에게 호응을 받았고 300만 정도의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훨씬 초과하는 알찬 영화였다.
<미쓰백>, <곤지암> 같은 영화는 그야말로 저예산 영화로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한 작품들이었지만, 관객들에게 높은 호응을 받은 사례들이다. 물론 이렇게 저예산 영화로 어느 정도 흥행 성공을 기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국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영화의 흥행이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영화는 막대한 선 비용이 지출되면서 1~2년 뒤에나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고비용 고위험의 산업이다. 영화에 대한 투자는 그야말로 도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많고 매년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열정과 모험심으로 100년을 버텨 온 한국 영화인들이었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런 시기를 열 번이나 건너온 셈이다. 누군가는 손해와 리스크를 감수하고 모험에 뛰어드는 열정이 있기에 한국 영화의 역사가 어느덧 한 세기가 쌓인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다가올 100년을 시작하며 지난 100년간 한국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온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응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한국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원문: IG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