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점수 없이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최: 무슨 일을 하시죠?
박소연: 패스트파이브, 패스트캠퍼스, 푸드플라이, 헬로네이처 등을 설립한 컴퍼니빌더인 스타트업지주회사 패스트트랙아시아의 기업 브랜딩&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박소연입니다.
최: 캐나다 PR대행사, 에델만, 오라클, 넷앱, 위워크.. 거쳐오신 회사가 후덜덜한데 공통점은 외국계 회사라는 거네요. 교포인가요? 외국 대학 출신?
박소연: 아뇨, 토종 한국인입니다. 한국에서 쭉 중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하고 어학연수도 안 갔습니다 ㅎㅎ
최: 그런데 어쩌다 이 빡센 PR의 길로…
박소연: 원래 그래요. 경영학 전공하다 보면 기획이나 마케팅 쪽에 동경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턴도 화장품 회사 PR팀에 지원했거든요. 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보면 사무실에 매거진 가득 쌓여 있고 기자들이랑 통화하잖아요? 그런 게 되게 멋있어 보이고 재밌을 거 같았어요. 실제로 인턴으로 일할 때에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패션, 뷰티 잡지 계속 날아오고 매일매일 화장품 샘플 기자님들께 보내고 리뷰 받고 보고서 만들고…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일하던 과장님이 “이런 일, 정말로 계속하고 싶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야 뭐 “네, 하고 싶죠.”라고 대답했고요.
최: 오오… 인턴 끝나고 함께 일하자는 영입 제안이었나요?
박소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일단 3학년이었고요, 그 선배들도 “일단 에이전시에서 1~2년은 굴러야 돼”라고 하셔서… 그 길로 정말 무식하게 구글로 ‘세계 최고, 최대 PR 회사’ ‘국내 top PR 에이전시’를 쳐봤죠. 그리고 “그래 여기 가는 거야” 결심도 하고요.
최: …… 그런데 그 에이전시가 캐나다 회사였네요?
박소연: 일단 목표를 ‘세계 최대 PR 회사’로 잡으니 영어를 더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캐나다에 관광비자로 무작정 갔어요. 그러면 6개월 정도는 있을 수 있거든요. 거기 연고도 있었고. 어학연수는 저랑 안 맞아서 여행을 할까 하다가, 그냥 아예 일을 해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캐나다의 잡코리아 같은 ‘monster.ca’에서 인턴십을 찾는 회사를 일일이 찾아보고, ‘나는 한국에서 온 대학교 4학년 마케팅 전공자 누구누구다, 나는 경험을 위해서 여기 왔다.’ 근데 사실 제가 비자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돈 안 받아도 좋다. 나에게 인턴을 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 하고서 한 100곳 정도 메일을 보냈어요.
최: 총 몇 곳에서 연락이 오던가요?
박소연: 100군데 중 2곳만 답이 오더라고요. 돈 안 받아도 된다고까지 해서 더 올 줄 알았는데…
최: 헐…
박소연: 그래서 들어간 곳이 캐나다인만 10명 정도 일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헤드헌팅 회사죠. 거기에서 마케팅으로 6개월 일하다가 잠깐 다른 나라 여행하고, 그 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스타트업에 입사했어요. 거긴 마침 한국 진출을 노리던 회사여서, 저에게 한국어로 제안서 만드는 일을 시키더라고요. 결과가 괜찮았는지 나중에는 대표님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같이 일했던 티켓몬스터 일도 제가 잡고… 그런데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지는 않았어요. 해외에서 살기는 좀 그렇더라고요.
최: 호오…
박소연: 그래서 또 여기저기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국내 회사는 특정 기간에 공고를 내서 사람을 뽑잖아요? 하지만 외국계 회사는 공채라는 개념이 아예 없고, 평소에 이력을 받아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놨다가 TO가 생겼을 때 그에 맞는 인력을 뽑아 배치하는 식이거든요. 저에게는 외국계가 더 잘 맞는 것 같아 여기저기 메일을 보내다가 글로벌 PR 에이전시와 인터뷰를 보고 들어갔어요.
최: 그렇게 에델만에 입사한 건가요?
박소연: 맞아요.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글로벌 PR 에이전시에 있는 분들은 영어가 거의 원어민 수준이어야 하거든요. 제가 있던 에델만도 과반수 이상의 임직원들이 교포 출신이거나 해외 대학 출신이었어요. 저는 국내 대학 출신에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도 못했으니 영어 때문에 고전하기 시작했죠. 첫 정식 수습사원일 땐 지금 같은 멘탈도 없었고, 빠릿빠릿함도 모자랐어요. 많이 혼나기도 하고 아 여긴 아닌가 보다 그러던 찰나에 오라클 HR팀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전임자가 2~3년 차의 경력직이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뷰 때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제가 IT 백그라운드도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거의 인턴만 한 상황이라, 오라클이라는 큰 회사의 직무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것 같다고. 그런데 면접관(결국 제 상사가 되셨죠)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2~3년 차 아래는 다 똑같다, 어차피 배워서 해야 하는데 나는 네가 마음에 드니 지금부터 가르쳐 주겠다”고요.
최: 우와…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을까요?
박소연: 그 당시에는 해맑았고(웃음), 영어 면접을 생각보다 잘 봤어요.
최: 그런데 왜 외국계를 고집하셨을까요?
박소연: 교환학생 생활을 홍콩에서 했어요. 그때 굉장히 좋은 기억이 생겼어요. 반면에 학부 때부터 국내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나 인턴 하면서 한국 기업과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같은 일을 할 거면 아예 글로벌 마케팅을 해서 해외라는 큰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 결정적으로?
박소연: 제가 영어점수가 없었어요.
최: 엥?
박소연: 제가 끝까지 토익점수가 없었어요. 교환학생 때문에 쳤던 토플은 유효기간이 간당간당했고요. 당시 국내 대기업은 영어 점수 없으면 아예 지원조차도 안 되는 분위기였는데, 외국계 회사는 점수 없어도 바로 인터뷰까지는 가능했거든요. 영어로 작성한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같은 커버레터만 넣으면 됐죠.
최: 그게 더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만, 뭐…
박소연: 그쵸. 하지만 다소 정확하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더듬거리면서 하고, 남이 하는 말 잘 알아듣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영어학원의 트렌드도 그거잖아요. 점수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손짓·발짓 섞어서 표현하는 게 낫다는 거고, 나한테 뭘 시켰을 때 제대로 알아듣고 잘 해내는 게 낫다는 거죠. 그 마인드로 영어를 대하다 보니 영어가 크게 늘었다기보다도 자신감이 탑재됐어요. 그게 오라클 면접 볼 때 많이 통했던 것 같아요.
최: 표현력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박소연: 맞아요.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한국 또는 아시아 지역의 지점이잖아요?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소다 보니 영업사원이 제일 많죠. 또한 뭔가 마케팅 프로모션을 잘하거나 크리에이티브가 높은 사람보다는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을 주로 원해요. 미국이나 홍콩, 싱가폴, 상해에 있는 사람들과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할 때 겁이 없어야 하고요. 정말 매일같이 컨퍼런스 콜을 하거든요. 그때 영어로 말하고 듣는 데 문제없고, 또 그 이상을 넘어서 ‘좋아한다’는 인상을 줘야 해요.
안 그래도 입사 후에 들은 피드백을 들었어요. 2~3년 차 이후 주니어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이니까 그냥 또렷또렷하고 서포트 잘할 것 같고, 외국계는 실제로 컨퍼런스 콜도 많고 영어 하는 데 두려움 없고 거침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거 같아서 절 뽑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지원하지 마라,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오게’ 하라
최: 외국계 회사는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좋던가요?
박소연: 일단 내가 보고할 대상이 한국에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메일이나 컨퍼런스콜이나 멀리서 업무 과정이나 결과를 잘 보고해야 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요. 그 말은 곧 재택이든 뭐든 일단은 잘해서 결과가 잘 나오는 게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음,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몇몇의 한국의 보수적인 회사처럼 9시 출근해서 밤 9시 될 때까지 12시간씩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업무시간 같은 건 보고되지도 않으니 결과만 좋으면 되니까요. 다만 반대로 말하면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어도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과정은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한국문화와 다른 점과 이런 이유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서는 한국 회사처럼 주변 동료가 뭘 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개인주의가 좋은 사람은 일하기 너무 좋고, 안 맞는 사람들은 섭섭해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강연에서 다룰게요. ^^
최: 오라클에 들어가게 된 레쥬메는 언제 보냈는지 기억하세요?
박소연: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잡코리아, 사람인, 피플앤잡, 그리고 외국계 회사에 제 레쥬메를 계속 업데이트했어요. 링크드인이 없을 때였지만 있었다면 거기도 그렇게 했을 거고요. 그게 먹혔던 것 같아요. 인사 담당자는 항상 그곳에서 적절한 인력을 찾거든요. 그래서 제 후배들에게는 본인의 레쥬메를 실시간으로, 섹시하게 업데이트해두라고 얘기해요.
최: 쇼잉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박소연: 네. 그런데 제가 이번 겨울에 실리콘밸리에 다녀왔는데, 거기 계셨던 분들도 똑같이 말하시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서도 인사담당자가 계속 링크드인 모니터링하고 리쿠르팅 한다고.
최: 그러니까 정리하면 그거네요? 한국에서는 채용공고를 보고 사람들이 지원하는 건데, 해외에서는 반대로 사람을 쭉 훑다가 맞는 사람에게 연락을 넣는다는 거군요.
박소연: 네, 저는 모든 이직이 거의 그런 식이었어요. 헤드헌터를 통해 이력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인사담당자가 사이트를 보고 연락이 왔죠. 제가 연속적 이직이 잘 된 것처럼 보이는 건, 공고가 나서 지원하고 지원자들과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게 아니라, 자동으로 서류전형이 통과된 상태에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최: 면접에서 합격할 확률도 높나요?
박소연: 그쵸. 그쪽 담당자들이 먼저 스캐닝한 후 어, 얘 괜찮을 것 같다 해서 부른 것이니까요. 완전 상황이 달라지는 거죠. 또 제가 지원해서 면접을 볼 경우 “면접 날짜는 언제언제입니다”라고 통보를 받잖아요? 그러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쁘거나 말거나 무조건 그때까지 맞춰서 가야 해요. 하지만 인사담당자가 저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면접 날짜를 잡으면 조율하기도 쉬워요. 설명도 많이 해 주고요.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포지션은 이건데, 내가 니 이력서를 봤을 때 잘 맞는 것 같아서 좀 만나보고 싶다. 외국계는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다 보니 이력서 업데이트가 정말정말정말 중요해요.
최: 이직 혹은 취업에 또 다른 팁이 있을까요?
박소연: 일단 제가 속해 있는 마케팅, PR 쪽만 말씀드릴게요. 처음부터 큰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한 번에 들어가려면 실력만큼이나 ‘운’이 좀 받쳐 줘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만의 전문성, 스페셜티를 키우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전문성이라는 건 사실 주니어 때 인정받을 수 있는 자질은 아니라고 봐요. 3년 차 이하는 ‘해 봤다’ 정도로만 받아들이니까요. 그래서 전문성보다는 자질, 태도를 많이 보시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 직무에서 그 자질과 태도를 키우기 위해서는, 제가 인턴을 하던 시절 선배들의 조언처럼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경험해보는 걸 추천해요. 에이전시 경험이 있으면 기업과 담당자들은 “일단 이 친구는 터프한 상황을 버텨냈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플러스 점수를 많이 줘요. 또 헤드헌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해요. 이력서나 자소서 피드백을 받고, 인터뷰 팁을 얻거나 모의 인터뷰를 진행해 보는 등 유익한 조언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인터뷰 스킬이 굉장히 좋아지게 되죠.
최: 혹시 그 노하우를 공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박소연: 자세한 건 강연 때 말씀드리겠지만 몇 가지만 먼저 풀자면, 좋은 점은 어필하되 불필요한 말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회 초년생의 경우 내가 이것도 해 봤고 저것도 해 봤고, 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본인의 단점을 드러내게 될 수가 있거든요. 저도 처음에 이런 피드백을 받고 바로 적용했어요. 헤드헌터분들이 말한 단점도 ‘너무 말이 많고 솔직하다’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만요.
헤드헌터에게 조언받는 건 의외로 되게 쉬워요. 그들이 잘 보는 잡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를 잘 업데이트해 놓으면 연락 올 확률이 높거든요. 대개 헤드헌터가 제안한 회사에 관심이 없을 경우 “죄송합니다” 하고 끊는데, 그다음에 이어질 취업 기회(job opportunity)를 위해서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헤드헌터분들이 굉장히 많은 걸 해줘요. 자소서나 이력서를 먼저 필터링하고, 개선점을 알려주고, 모의 인터뷰도 해 주죠.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해요. 진짜 원하는 포지션에 지원하게 됐을 때 인터뷰 말아먹으면 억울하잖아요. 제일 중요한 건 실전이에요. 그 실전에 대비해 지금 당장은 관심이 없더라도 비슷한 직군에 미리 도전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그 과정을 한 번 겪어보고 나와 잘 맞는다 싶으면 입사하면 되고, 잘 안 되면 다음 기회를 위한 준비로 삼으면 되죠.
최: 호오…
박소연: 이직 생각 없이 열심히 일하다 오랜만에 면접 보면 분위기나 긴장감 때문에 본인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어느 기업이든 인사담당자분들이나 리쿠르팅 전문가들은 굉장히 예리한 질문을 던져요. 그러니 실전을 통해 대비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최: 저희 대표님이 이 인터뷰를 좋아합니다.
박소연: ㅎㅎ물론 항상 ‘이직’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하라는 건 아니에요. 정말 솔직히, 전 항상 입사할 때마다 ‘곧 조만간 다른 데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간 적은 없어요. 아마도 이직 관련되어서 조언하시는 분들은 모두 비슷한 말씀 하실걸요? 현직자들이 학생들처럼 스터디할 수 없잖아요. 아무리 경력자라도 오랜만에 면접 보면 떨리죠.
이직은 소개팅과 똑같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소개 안 시켜줌
최: 면접은 총 몇 번이나 보셨어요?
박소연: 한 서른 번 정도 본 것 같네요.
최: 지원은 몇 번이나 하신 거죠?
박소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어떻게 보면 저는 제게 먼저 연락한 곳에 가게 된 경우가 더 많아서. (웃음)
최: 그러면 소연 님의 서류 중 어떤 점이 좋아서 인터뷰로 이어진 것일까요?
박소연: 비록 한 회사에 짧게 (한 곳에서 최장 경력이 3년 미만이니까요) 있었지만, 이력서를 보면 제 직무에서 다른 이야기를 안 했어요. 누가 봐도 “아, 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썼죠. 기획이 좋아서 이런저런 기획을 했고, 마케팅 쪽으로는 이런저런 직무를 해 봤고, 영업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봤다 이렇게 중구난방 하게 썼으면 광탈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스타트업이든, 외국계든, 에이전시든 마케팅이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줄여서 ‘마컴’밖에 안 했거든요. 인더스트리도 거진 비스름하게 IT로 통일했어요. 뭐, 에델만수습사원 때부터 테크 부서에 있었고요. 제가 블랙베리 담당이었고 오라클, 넷앱, 에이전시에서조차 매일 손들고 “저 테크(Tech) 기업 맡을래요”라고 했으니까요. 문과생 출신의 마컴 담당자지만 나름의 스페셜티를 가져가고 싶었어요.
최: 블랙베리라니… 생각보다 옛날 사람이셨군요.
박소연: (웃음) 하여튼 인사 담당자가 봤을 때 ‘얘는 IT를 좋아하고, B2B IT에 대한 경험이 있네’라고 생각하도록 썼어요. 지금 대표님도 제가 여전히 테크 산업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세요. 커리어 관리는 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이력 관리에서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걸 이력서와 자소서에 적는 것이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일해왔다는 경력으로 증명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어떤 회사에서 6개월이나 1년 단타로 일한 것도 큰 흠이 되지 않죠.
몇몇 분들은 이렇게 조언하시기도 했어요. 한 회사에 2~3년은 쭉 붙어 있고 그다음에 이직해야지, 왜 1년 있다가 옮기고 2년 있다가 옮기냐고요. 그런데 오히려 외국계 에이전시와 인하우스를 넘나들며 커리어를 쌓은 선배가 외국계 회사에서는 그런 게 흠이 아니다라고 조언해줬었어요. 잘나가는 글로벌 회사는 ‘네가 능력이 있고, 다른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컨택해 왔으니 그걸 선택한 건 당연하겠지’라는 마인드거든요. 마찬가지로 뽑는 회사에서도 자신감이 있죠. 우리 회사는 굉장히 좋은 시스템과 그 이상의 비전을 갖추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하는 한 너도 이 일자리를 잡고 놓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죠. 반면에 한국 회사는 “얘 뽑아 놨는데, 막상 우리 회사를 징검다리로 보는 것 아니냐” 같은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한국 회사에서 먼저 연락을 줘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도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근데 소연 씨, 또 좋은 데 조건 있으면 갈 거죠?”
최: 이직 결정이 곧 퇴사 결정이었나요? 그러니까 다른 곳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직을 시도하셨고, 거기에 합격한 후 퇴사하신 건가요?
박소연: 그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대책 없는 건데, 저는 퇴사는 퇴사대로 결정하고 이직은 이직대로 준비했어요. 저는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다, 여기보다 다른 곳에서 무언가 하는 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거 같다는 확신이 들면 그만뒀어요. 이건 저만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기도 한데, 3개월 쉬고 6개월 쉬고 이런 게 큰 흠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다만, 면접장에서도 그 기간에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돼요. 선배들도 그랬어요. “때려치워, 너 20대인데 공부해도 되고 대학원 가도 돼. 옵션은 많아.” 그러니 제가 행복하지 않은 생활을 굳이 끌고 갈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갑자기 퇴사했다 해서 내 인생이 말리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은 안 가져가도 될 것 같아요. 물론 공기업이나 대기업은 다를 수도 있지만, 제가 속한 분야와 직군, 그리고 외국계 회사는 공백을 전혀 흠잡지 않아요. 다만 “뭐 하고 놀았어요?”라는 질문에 나만의 논리와 이유, 증거 자료(?)를 낼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저는 중간에 살짝 놀 때도 블로그를 썼어요. 넷앱에 면접 볼 때는 “제가 IT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은 적은 없다. 블로그에 꾸준히 IT 뉴스와 관심사를 스크랩해서 올리고 정리하는 노력을 했다”고 얘기했거든요.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신뢰감을 주죠.
최: 언제부터 밋업 같은 글로벌, 국내 네트워킹에 다니셨어요?
박소연: 오라클 다닐 때부터요. 꽤 오래 갔었죠.
최: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준비하시는군요.
박소연: 그렇다기보다는… 임원분들이 PR 담당을 대동하고 다니시거든요. 저는 사실 어부지리로 접한 거죠. 그런데 거기서 칵테일이나 깔짝거렸다면 당연히 눈에 못 띄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정말 인사 많이 하고, 사람들과도 재미있게 지내려고 했어요. 외국계 회사 모임에 가면 외국인이 정말 많아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했죠. 나는 이런 회사에 있고 PR 담당 일을 해, 하면서. 그렇게 알게 된 사람 중 맞는 사람들과는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게 소위 “커넥팅 닷(Connecting dot)”이 되어 준 것 같아요.
※ 커넥팅 닷: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인생을 뒤돌아볼 땐 수많은 점(사건, 행동, 말, 결정 등)들이 연결되어 ‘커넥팅 닷’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문에서 했던 말.
최: 그 밀접한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박소연: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생활하는 거니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많아요. 그럴 때 가능한 한 도와주는 거죠.
최: 도움 주기를 주저하지 마라…
박소연: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친구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워요. 그냥 같이 노는 게 재미있고, 마침 이런 자리가 생겼는데 잘 맞을 것 같아서 추천해 주고, 그렇게 기회가 열리고… 도움을 받기 위해 네트워킹에 간 게 아니라,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외국 갔을 때 현지 사람들 알고 싶어 하잖아요? 외국 사람들도 한국 오면 똑같은 걸 느껴요. 그러니 저도 한국 친구들을 많이 소개해 줬죠. 친구들도 부르고, 동료들도 부르고. 그렇게 친목 도모를 하는 거죠. 네트워킹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냥 재미없는 애, 혹은 끌려온 애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거지만 자연스럽게 얘기하다 보면 길이 열리죠. 이건 어느 네트워킹 모임이나 똑같아요. 기회가 숨어 있는데 못 찾는 것뿐이죠. 저도 네트워킹 모임 많이 다닌 건 아니거든요. AMCHAM(미국상공회의소)이나 BCCK(영국상공회의소) 주최 네트워킹 모임밖에 안 갔어요.
최: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셨으니 길이 열린 것 아니겠습니까.
박소연: 저는 취업과 이직을 소개팅으로 비유해요. 소개팅도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법이잖아요? 입 꾹 다물면 그 사람이 원하는 자리가 굴러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니 저는 항상 제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나는 새로운 것에 오픈마인드인 사람,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말이죠.
그렇게 내가 아무리 ‘영어 잘해요’라고 이력서에 써도, 링크드인에서 보증(endorsement)이 많이 붙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링크드인에 그런 기능이 있거든요. 아는 사람들이 “이 사람의 경력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라고 체크해 주는 거죠. 지인의 일차적 검증이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이 친구를 아는데 이 친구 인성도 좋고 일도 곧잘 합니다, 라고요. 생각해보면 굳이 회사는 모르는 사람 뽑아서 위험 감수할 필요가 없죠.
뭔가 높은 사람들 있죠?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포지션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든지 잘해요. 그런데 자기 또래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잘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심지어 나와 관계하는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구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사실 평판은 거기서 나온다고 봐요. 저도 항상 기회는 전혀 의외의 사람에게서 만들어졌거든요.
최: 그래서 휴가도 실리콘밸리로 다녀오신 건가요?
박소연: 그러게요(웃음) 그래서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어디에 관심을 갖는지 다들 아시나 보네요.
[마케터 커리어 토크] 용기 없이 이직하기: 마케터 편
어떤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방송작가→ 광고대행사→ 뱅크 브랜드 마케터 권아연 님
- 방송구성작가에서부터 광고대행사, 브랜드 마케터까지
-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 원하는 바를 항상 생각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카만녀(카드뉴스 만드는 여자)’, 현 배달의민족 마케터 김지현 님
-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 스타트업 마케터의 포트폴리오는 만들 수 있는 걸까?
-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과 큰 스타트업의 장단점은?
외국계 대기업에서 패스트트랙아시아 PR 매니저로 이직한 박소연 님
- 외국계 회사, 영어 실력 및 학교(스펙)에 너무 겁먹지 말자
- 밀레니얼 세대로서 이직의 기준은 오직 세 가지 (10년 후 내 미래, 현재 나의 행복, 회사의 방향 or 미션과 나의 가치관)
- 리얼 프로이직러의 소소한 Tip & 조언
자세한 강연 소개
REAL 프로 이직러의 팁!
- ‘잘’ 이직하는 법: 조금 늦었다고? 확실한 목표성을 가지고 원하는 직업에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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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계 기업의 이직: 영어 실력이나 학교(스펙)에 겁먹지 않고 이직하기
- 원하는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
- 스타트업에서 어떻게 진로를 설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
- 외국계 및 스타트업 업계 취업준비생
- 장소: 스파크플러스 역삼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201 아주빌딩 2층 06141)
- 날짜: 2019년 2월 23일
- 시간: PM 1:00~4:00